좀 더 설명하면
지난 2016년 4월, 당시 부왕세자였던 무함마드 빈 살만은 국영방송을 통해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합니다. 활기찬 사회(A Vibrant Society), 번영하는 경제(A Thriving Economy), 진취적인 국가(An Ambitious Nation)라는 3대 영역으로 구성된 개혁 방안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세 가지 축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아랍과 이슬람 세계 중심지로서의 위치, 세계 투자 강국이 되기 위한 결의, 그리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국제 허브로의 변화, 이 세 가집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다 바꾸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고 내용도 방대한데요, 조금 거칠지만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제도든 뭐든 싹 갈아엎어서라도 석유 의존도가 심한 사우디의 경제 체질을 바꿔 아랍 최대의 부강국가의 위상을 유지하겠다' 이런 거죠.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아람코 민영화 등 상당히 개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이행방안의 구체성이 너무 모호한 것 아닌가?'라는 평이나 '목표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라는 점 등에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거대한 돈줄, 그 한 축을 쥐고 흔드는 사우디의 움직임을 세계는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빈 살만 왕세자는 보란 듯이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을 직접 발표합니다. 바로 그것이 바로 사막 위의 미래형 스마트도시, '네옴 시티'입니다. 사우디 북부 타부크 일대, 홍해와 인접한 사막과 산악지대에 마치 길처럼 길게 이어진 도시, 그것도 서울의 44배 크기로,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진, 완전 재생에너지로 가동될 '저탄소 스마트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사막에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건 두바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빈 살만 왕세자의 청사진은 이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자율 주행 자동차와 무인 승용 드론이 자유롭게 다니고 인구보다 많은 로봇 직원들이 인간을 돕는 등 2017년 당시만 해도 그의 말은 마치 과학 소설 같았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몽상처럼 느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추산으로도 이 도시의 건설에 5천억 달러, 우리 돈 670조 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각에선 실제 저런 도시를 만든다면 그 두 배, 즉 1조 달러는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왕세자는 충분히 그런 의문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만 일할 겁니다."

한 걸음 더
사우디는 왜 이런 꿈 같은 도전에 나서게 된 걸까요? 물론 빈 살만 왕세자의 도전 의식이나 개혁 의지의 반영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우디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가 맞은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걸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다음은 두바이유의 10년 가격차트입니다. (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국내외 사이트가 있지만, 따로 찾아보실 분들을 위해서 그냥 네이버에서 '두바이유'로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을 사용하겠습니다. )

이를 보면 '사우디 비전 2030'이 발표될 2016년쯤 크게 떨어진 유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4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지더니 2016년 1월엔 최저 배럴당 25.57달러까지 빠졌습니다. 이 기간 전고점인 2013년 최고치인 배럴당 112달러와 비교하면 거의 5분의 1토막이 난 모습입니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도가 정말 큰 나라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당시에도 사우디의 석유 부분은 GDP의 41.8%, 재정수입의 87.5%에 달할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가 하락은 사우디 경제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정적자 확대, 외환보유고 감소라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실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유가가 떨어지면서 사우디의 외환 보유고은 20% 이상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사우디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모든 가격이 그런 것처럼 결국 유가도 수요 공급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등 신흥국의 원유 수요 감소, 재생에너지 활용의 확대, OPEC 국가들의 경쟁적인 증산, 북미지역의 셰일 오일 생산 증가 등 전형적으로 수요는 감소하는데 공급은 증가하는 모습으로 에너지 시장이 움직이고 있던 겁니다. 때문에 사우디의 바람과는 반대로 지속적인 저유가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급등했지만...이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7월, 이란이 13년 만에 국제사회로 복귀합니다. EU, 중국 등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 사우디의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복잡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건 30% 가까이 치솟은 청년실업률이었습니다. 민간을 압박하면서 공공 일자리도 만들었지만 추락하는 유가는 이조차 어렵게 만들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때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불린 사우디가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준 석유라는 카드를 밀어두고 '세계 최대 규모의 미래형 도시'라는 꿈을 세계에 쏘아 올리게 된 겁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사실 지난 2016년 발표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 '사우디 비전 2030'은 지지부진한 상태였습니다. 네옴 시티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내부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경제적으론 두 가지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속적인 저유가 상황과 코로나19의 확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이것도 역시 유가 때문입니다. 이번엔 저유가가 아닌 고유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한 돈풀기가 끝나고 찾아온 엄청난 인플레이션. 미 연준이 이 물가를 잡기 위해 역대급 속도로 금리를 끌어올리며 방어에 나서고 있는 지난 시간. 빨려 나가는 달러로 지구 한쪽에선 나라가 망하고 있을 때, 사우디는 급등한 유가로 조용히 웃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노려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첫 삽도 뜨게 된 것이겠고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 비전 2030'의 5년 성과를 점검해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우디 주가지수인 타다울이 MSCI와 다우존스 신흥지역 지수에 편입되기도 했고, 비석유 부문의 GDP 비중도 2016년 55%에서 2020년 59%로 늘어났습니다. 2020년 5G 인터넷 속도 세계 1위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하지만 사실 이 사업의 핵심 목표에서는 저조한 성과를 냈다는 평입니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외국인 직접 투자 유입 부분에서의 한계였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우디인 실업률은 비전 발표 이전인 2015년의 11.6%보다 높은 12.6%로 뒷걸음질쳤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 규모도 "2015년 81.4억 달러에서 2017년 14.2달러까지 줄어든 뒤 반등하여 2020년에는 54.9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네옴시티에 들어간다는 670조 원의 사업비. 솔직히 가늠도 잘 안되는 숫자입니다. 오늘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산다고 따져보면, 시총 순으로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에 삼성바이오로직스까지 사고도 35조가 남네요. 시총 5위 LG화학을 살 수는 없으니 시총 9위 31조 NAVER를 사면 4조 원 정도 남겠군요. 망상이 길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렇게 큰 사업비가 집행된다고 하니 어디가 얼마를 수주할 예정이라느니 하면서 온갖 테마주들이 들썩입니다. 차라리 '얼마 수주'면 괜찮습니다. '수주 기대감'은 뭘까요? 물론 테마주 트레이딩을 잘하시는 분들이라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매를 잘하실 겁니다. 하지만 차갑디 차갑던 시장이 이제 하락세를 멈추고 어느 정도 올라온다고 하니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마음으로 뒤늦게 시장에 뛰어 들어와 이런 테마주에 올라타는 게 정말 좋은 선택일 수 있을까요?

일부 해외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건 신기루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조금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저렇게 5개년 추진 성과까지 공개적으로 밝히는 모습 등에선 이 사업을 향한 사우디의 의지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2의 중동 붐'까지 불 수 있다는 이 역사적 수준의 대규모 사업 속에서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우리도 한몫을 단단히 챙겨야 할 겁니다. 우리 기업들이 그럴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당연히 해야 할 것이고요. 당장 이틀 뒤엔 일본에 있을 예정인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을 떠나길 아쉬워할 정도로 좋은 이미지와 우리만의 청사진을 주고 얻을 것을 얻는다면, 이를 위한 열정은 아주 좋은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를 미끼로 당신을 홀리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잠시 눈이 멀어 있던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찬 바람도 쐬시면서 깊은숨을 한번 쉬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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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현, ‘사우디 비전 2030’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손성현,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의 5년 추진 성과 발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상현, 사우디 ‘비전 2030’ 실행 본격화와 시사점, 포스코경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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