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DRX팀의 김혁규 선수는 실제로는 이런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9일, 김혁규 선수는 롤드컵 그룹스테이지 첫 경기에서 패배한 뒤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플레이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 또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혁규(10월 9일, 경기 패배 후 인터뷰)

이 인터뷰를 정리한 기사(2022년 10월 9일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에서 제목을 <롤드컵 첫 패, ‘데프트’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주문했다>로 뽑았고, 인터뷰 영상의 유튜브 썸네일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혔습니다. 이후 DRX팀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고 인식됐던 팀들을 차례로 꺾으면서 이 단어가 팀의 캐치프레이즈가 됐습니다. 롤드컵이 시작할 당시 배당률 32.17(유럽 e스포츠 베팅사이트 Odds Portal)로 전체 팀들 중 9위였던 DRX는 ‘역배’를 거듭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의 주인공 김혁규 선수는 게임계에서 이미 전설이 된 이상혁(게임아이디 페이커) 선수와 결승전에서 만났습니다. 2013년 이후 이미 롤드컵 3회 우승을 거쳐 수백억 대의 연봉을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상혁 선수가 모차르트였다면, 2014년 이후 롤드컵 4강, 8강에 그쳤던 김혁규 선수는 살리에리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데뷔도 비슷했지만, 한 명은 최다 우승의 꽃길을 걸었고 한 명은 비교적 험한 흙길을 걸어오다 이번 결승에서 만난 겁니다. 데뷔 10년 만에 ‘노력하는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를 이기는 모습, 꼴찌팀 DRX가 전설의 T1팀을 이기는 장면에서 팬들에게는 ‘꺾이지 않는 마음’ 단어가 각인됐습니다.

한 걸음 더
실제와 다른 사실, 있지 않았던 사실을 사람들이 착각해 실제 있었던 것처럼 믿는 것을 ‘만델라 효과’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감옥에서 숨졌다고 잘못 기억하는 현상에서 따왔습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명언이지만 알고 보면 실제로 하지 않았거나 내용이 조금 다른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면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들게 된다”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광 3법칙’이 사실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에 의해 실제 발언에서 일부 각색돼 사람들에게 기억된 것도 만델라 효과로 볼 수 있습니다. “스무 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마흔 살에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칼 포퍼가 한 적이 없다는 것도 만델라 효과 중 하나입니다. (출처 : 뉴스톱 [가짜명언 팩트체크]) 이런 명언들처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도 실제 말에서 각색된 만델라 효과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현실에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일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며 ‘업셋’과 ‘언더독’에 환호하는 이유는 현실에선 그런 일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시골의 나약했던 소년이 성장해 결국 마왕을 무찌르는 ‘왕도물’, 농구를 처음 시작해 레이업과 골밑슛도 제대로 못했던 주인공이 결국 최강팀을 이겨내는 슬램덩크 같은 ‘소년 만화’가 인기 있는 이유도 같을 겁니다. 스포츠 게임과 판타지 세계가 마음을 이끄는 건 약한 사람이 계속 지고 강한 사람이 항상 이기는 현실을 잠시 떠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too)’나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지적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LivesMatter)’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꽂히는 단어, 시대정신을 잘 담은 구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구호가 실제 발언과 다르다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우리의 가슴을 웅장해지게 만들고 희망과 자신감을 잠시나마 가져다줬다는 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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