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첫 몇 달간은 약속대로 딜러로부터 대출 할부금만큼 돈이 들어왔습니다. 차주들은 안심하고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행복한 시간은 얼마 못 갔습니다. 차일피일 입금이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연락이 끊긴 겁니다.

피해 차주들은 다급하게 차를 팔아보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출금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내 차 시세를 조회하면 2천만 원이 안 나오는데, 이 차량에 대한 대출은 4천만 원이 잡혀있는 겁니다. 팔아도 대출금을 메울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죠.

피해자들은 경기도 안산의 중고차 매매 사무실도 찾아가 보고, 딜러가 건넨 등본의 주소로도 찾아가 봤지만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경찰이 추적해 보니, 이들 딜러 일당은 태국으로 출국한 상태였습니다.

한 걸음 더
그렇다면 차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된 원인, 어떻게 차량 시세의 최대 2배까지 대출이 나왔을까요? 캐피탈사도 대출심사 과정이 존재합니다. 1) 고객 신용점수 2) 매매계약서상의 차량가액 3) DB 이렇게 세 가지 요건을 고려해서 대출 한도를 정합니다.

취재 결과 허점은 DB에 존재했습니다. DB는 각 캐피탈사가 차종과 연식, 주행거리 등을 고려해서 중고차 시세를 분석해서 만든 자료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10만km 탄 18년식 레인지로버면 0000만 원까지 대출 가능’ 이런 식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많이 이용된 모 캐피탈사의 경우엔 이 DB 자료를 구성하는데 ‘옵션’과 ‘사고이력’이 포함돼있지 않았습니다. 중고차 시세에 수리, 사고이력과 옵션 여부는 큰 변수인데 말이죠.

한 마디로 DB상 차량가액은 폭넓게 잡혀있다고 보면 됩니다. 고가의 차량일수록 옵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가장 인기 있는 옵션의 모델로 평균치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해당 딜러는 이런 구조를 미리 파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서가 2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매매상사용 계약서와 캐피탈용 계약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매매상사에 제출한 차량 매매가는 2400만 원, 캐피탈사에 제출한 계약서상 매매가는 4700만 원이었습니다. 거의 2배 정도 불린 것이죠.

통상적으로 딜러는 중고차를 할부로 판매할 때, 캐피탈사에 해당 고객의 신용점수가 어떠한지, 이 차량으로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합니다. 이때 DB상 최대로 나올 수 있는 금액을 파악하고, 매매가를 그에 맞춰 올려서 제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캐피탈사의 대출심사 과정으론 별문제 없이 4700만 원 대출이 이뤄지는 겁니다.

현실과 제도
캐피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캐피탈사는 사실 금융회사다. 중고차마다 상태가 너무나 다른데, 마치 중고차 매매상사처럼 차량 상태를 일일이 파악해 시세를 정할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지만, 허점이 존재하고 이를 악용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금융감독원과 여신금융협회는 이런 중고차 대출 관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중고차대출 표준약관을 제정했습니다. 차량 가격 대비 과도한 대출을 방지하기 위해 대출한도 산정원칙도 명시하도록 해놨습니다. 하지만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뿐입니다. 캐피탈사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DB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중고차에 대해 제한된 정보를 갖고 있는 건 맞다”며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DB 자료 등도 공통된 양식을 만들 수 있도록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피해 차주들은 당장 매달 몇 백만 원씩 나가는 할부금에 울상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족 명의로 여러 대 계약했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과 감당이 안 돼 차량을 공매 처리했는데 손실액이 수천만 원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해당 딜러가 수리와 반납을 이유로 차를 가져간 상태로 도주하는 바람에, 차도 없이 매달 할부금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현재까지 60여 명에 피해 금액도 30억 원이 넘습니다. 경찰은 해당 딜러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인터폴 수배 등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피해 당하기 전에 먼저 알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원은 딜러가 이면계약을 제안하면 무조건 거절할 것, 대출 절차도 본인이 직접 밟을 것, 차량 구입 시에는 시세와 수리이력 등을 꼼꼼히 확인해 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기도 찾아보면 그렇게 신종수법도 아닙니다. “명의를 빌려달라, 수익금 나누자”며 접근했다가 대출금과 차까지 가지고 잠적한 경우는 이미 많습니다.

당하지 않으려면 많이 알아보고, 의심하고, 또 따져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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