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BS 김보미 기자입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공익신고자가 왜 싸워야 합니까?" 지난달 28일, 전직 보험설계사 송 모 씨는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했으면 좋았을까요? 믿고 있었던 국가기관에서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저는 왜 공익신고 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피해를 봐야 하는 건가요?" 송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송 씨는 지난 2020년 5월, 국내 굴지의 보험대리점인 ㈜글로벌금융판매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습니다. 이 보험대리점은 송 씨가 몇 년간 일했던 곳입니다. 재직 기간 목격해 왔던 보험 대납 사기와 탈세 행위들을 용기 내서 공익신고 한 겁니다. 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보험대리점이 고객들과 이면 계약서를 작성해 가며 삼성생명이나 현대해상 같은 원수보험사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를 빼돌리고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들은 기업 고객들과 '3년만 계약을 유지하고 중도 해지한다'는 이면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객 손해 아닌가?' 싶은데, 보험대리점이 해약 위약금까지 내줍니다. 여기에 더해 일정 기간 보험금도 대납해 준다고 합니다. 보험대리점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인데, 보험업계 사람들이라면 수긍이 간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렇게까지 보험대리점이 대납을 해줘도, 보험사로부터 받는 계약 성공 수수료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 금액이 월 보험료의 20배가 넘기도 합니다. 결국 보험료를 대납해도 남는 장사를 하게 되는 구조인데, 계약 당사자들은 모두 이득이기 때문에 함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송 씨는 보험대리점 대표로부터 이런 수법으로 영업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계약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불법 행위를 계속할 수 없단 생각에 이면 계약서 등 자료를 수집해 금감원에 신고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송 씨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고를 하면 그릇된 일이 올바르게 고쳐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금감원은 "인력이 부족하다", "언젠가는 조사할 거니 기다려달라.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며 계속 기다려 달라며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송 씨는 그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신고를 넣었습니다. 사건을 다시 이첩받은 금감원은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며 조사를 종결했습니다. 송 씨는 여러 증거들을 보강해 금감원과 권익위, 감사원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기다림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송 씨는 피의자 신분이 됐습니다. 2022년 3월, 보험대리점 본사로부터 보복 고소를 당한 겁니다. 송 씨가 보험료 대납 사기 행위에 가담했고, 거기에 송 씨의 가족 계좌도 쓰였다며 보험업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단 내용이었습니다. 송 씨는 "자신들이 대외비로 저질러왔던 불법 행위들을 외부에 신고하니까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본사에서는 주동자인 대리점 대표는 제쳐두고, '눈엣가시'인 송 씨를 내치기 바빴습니다. 송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신고를 해놨으니 진짜 주범들의 혐의를 잘 밝혀주겠지'라며 국가기관을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이상하게만 흘러갔습니다. 다섯 달 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 송 씨가 공익신고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송 씨도 공범으로 입건됐습니다. 대표의 지시에 따랐던 게 문제가 된 겁니다. 졸지에 송 씨는 자신이 공익신고한 사건과 역고소당한 사건, 이렇게 같은 내용으로 총 2건을 수사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송 씨는 견디다 못해 SBS에 제보를 해왔습니다. 검찰이 송 씨만 기소를 한 겁니다. 송 씨가 보험대리점을 공익신고 한 사건은 담당 검사가 3차례나 바뀌며 10개월째 수사에 진전이 없었고, 보복 고소 사건만 재빠르게 수사해 재판장에 혼자 서게 됐습니다. SBS는 검찰이 같은 사건을 병합 처리도 하지 않고, 공익신고자를 보호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보도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공익신고 사건도 바로 기소되면서 보험대리점 대표도 함께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보복 소송당했는데...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 기각 "그냥 모르는 척했으면 좋았을까요? 보험사의 눈먼 사업비를 윗선에서 현금으로 가져가고 호의호식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요?" - 전직 보험설계사 송 모 씨 결과적으로 송 씨의 제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보험 대납 사기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올해 6월, 금감원도 뒤늦게 보험대리점의 대납 행위 등을 적발했다며 어떤 조치를 내릴지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송 씨가 금감원에 첫 공익신고를 한 지 무려 4년 만입니다. 그러나 그사이 송 씨는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불법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 했는데 국가기관은 도와주지를 않았고, 그사이에 역고소를 당하며 혼자 보험대리점과 싸워야 했습니다. 또 업계 비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퇴출까지 당하며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찾아왔습니다. 송 씨는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어쩌면 정말 '버림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송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책임 감면)를 요청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는 부정부패 등을 신고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신변 보호를 하고, 형벌이나 징계 등 불리한 행정 처분을 감경해 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올해 9월, 권익위는 책임 감면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사기 행위는 공익신고자보호법상 불이익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송 씨가 받는 혐의는 보험업법 위반과 사기였는데, 형법상 사기는 현행법상 책임 감면을 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보험업법 위반은 감면 대상이 맞지만, 수사가 늦어지면서 공소시효도 만료된 상황이었습니다. 송 씨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송 씨의 법률 대리인 박은선 변호사는 "권익위 결정은 말이 안 되는 판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은선 변호사는 "공익신고자가 통상적으로 보복 고소를 당하는 경우는 업무방해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모두 형법상 범죄다"라며 "보복 고소된 범죄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 침해 행위 대상 법률에 해당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익신고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건 제도에 구멍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에 대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참여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9월 '공익신고자 대상 보복 소송,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박상현 의원은 "보복적 형사 고소가 부패방지법상 불이익 조치로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보복적 조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민병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익신고 보호 신청 사건 접수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지만, 인용률은 66%에서 21%로 3분의 1토막이 난 상황입니다. 사실 오랜 시간 걸쳐서 진행되는 보복 소송은 공익제보자를 정신적,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불이익 조치 중 하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의 방법도 다변화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당신이 사회를 지킬 때 법은 당신을 지킵니다. 안심하고 신고하세요!" 출처 : 국민권익위원회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송 씨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는지 공개 질의가 나왔습니다. 민병덕 의원은 이복현 금감원장과 차수환 전 생명보험 검사국 국장에게 "감사원의 지시로 금감원이 결국 보험대리점 보험업법 위반 혐의를 밝혀냈지만, 4년 동안 송 씨의 삶은 망가졌다"며 "또 결국 보험대리점 대표는 보험업법 위반 혐의가 공소시효 5년을 도과해서 처벌할 수 없게 됐다"며 사과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에 "생명보험협회 조사 문제 등 다양한 지점이 있어서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송 씨는 "사과도 사과지만, 공익신고자가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송 씨가 지난 4년간 걸어온 길을 보면 공익신고자 보호 측면에서 여러 미비점이 나타납니다. 첫 신고부터 수사 착수까지 무려 2년 3개월이 걸렸고, 공익신고자를 먼저 기소하는 아이러니한 수사 진행에, "안심하고 제보하라"던 권익위는 보복 고소를 당한 송 씨에게 보호 조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회를 지킬 때 법은 당신을 지킵니다. 안심하고 신고하세요!"라는 권익위 홍보 캠페인 문구가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번에 재판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익신고한 신고자는 경제적 파탄으로 힘들게 부패 행위를 한 기업과 싸우는데, 정작 기업은 신고 후에도 엄청난 금전을 취하며 결론이 날 때까지 부를 취할 걸로 보입니다. 왜 공익신고자가 싸워야 하나요? 부패 행위를 못하도록 신고한 것이지 독립투사처럼 직접 싸우며 척결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부와 수사하는 기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과연 소중한 인생에서 이 5년이 무엇으로 보상이 될까요? 어느 누가 소중한 인생을 날리면서까지 이렇게 결론 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공익신고를 할까요? 부패를 알고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과연 승자인 건가요? 저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전직 보험설계사 송 모 씨 디자인 : 안준석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인간관계에 있어 신뢰가 갖는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상대방과 소통할 때 즐거운 감정을 배로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조직을 성장하게 하는 데도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신뢰가 견고해질수록 경계심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깊어진 신뢰는 '이 사람이 설마 그럴까?', '에이 아닐 거야'라는 현실 부정을 낳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신뢰가 지닌 힘을 악용한 범죄들이 등장하고 있고, 신뢰가 지닌 힘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이번 <더 스피커>에서는 신뢰를 가장한 악(惡), '그루밍 성범죄' 실태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제가 떳떳해도 될까요?"... 스스로를 가두는 피해자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또다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성범죄가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히데팸'이라 불리는 성인 남성 집단이 어린 여학생들을 상대로 폭행, 갈취, 성범죄 등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만 16세 미만의 어린 여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 관련 기사 [단독] "맛있는 거 먹자" 친절한 연락…상상도 못한 일 펼쳐졌다 (끝까지 판다) 그런데 기자님, 제가 떳떳하게 인터뷰를 할 사람이 될까요? 어떻게 보면 걔네가 피해를 줄 걸 알면서도, 계속 연락을 이어갔던 건 저였거든요. - 피해 학생 A 양 피해 학생 A 양이 인터뷰 직전 저에게 건넨 메시지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죄 피해를 겪은 후에도, 가해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의심하고 스스로를 탓해왔는지 말입니다. A 양은 15세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임신과 불법 낙태를 겪어야 했습니다. 상대는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알게 된 성인 남성들이었습니다. 당시 A 양은 가정 환경 문제로 우울감과 불안함을 느껴 기댈 곳을 필요로 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이 남성들이 손을 건넸습니다. 결핍되어 있던 '사랑'과 '공감'을 채워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남성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성관계까지 강요했지만, A 양은 이런 상황이 헷갈렸습니다. 한창 우울증도 심했고 의지할 데도 없었고 다른 애들은 친구 만나고 그러는데 저는 그런 것도 잘 못해서 그냥 걔(가해자)만 연락하고... 저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계속 만났어요. '내가 사랑해서 때리는 거다 안 맞을 거냐' 이런 식으로 계속 안 맞아주면 뭐 '연락 그만한다' 이런 식으로 해버려서 계속 그렇게 맞았던 것 같아요. - 피해 학생 A 양 A 양은 남성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에 멍이 들도록 때리고, 자해를 시키는 등 끔찍한 폭력을 가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믿음'을 깨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A 양을 비롯해 취재 중에 만났던 피해자들 대부분 자신이 범죄 피해를 입은 것이란 걸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통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가해 남성들은 이런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척하며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다가왔습니다. 폭력을 가하거나 성적인 행위 등 부적절한 요구를 할 때도, 대놓고 위협적인 협박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늘 친절의 탈을 쓴 채로 행동하며,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따르게끔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은 피해를 겪으면서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애정이고, 어디서부터 폭력인지 구별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루밍 범죄'의 전형적인 피해 형태입니다. '믿음'을 이용한 교묘한 범죄 그루밍(Grooming) 범죄는 말 그대로 '길들이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성인인 가해자가 아동인 피해자와 친분을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취약한 아동·청소년 피해자에게 성적인 착취·가해 행위를 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학자들은 그루밍 범죄가 6단계를 거쳐 완성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범행 단계는 이렇습니다. 먼저 가출을 한다거나 방임 상태에 놓인 취약한 어린 청소년을 가해 대상으로 고릅니다. 이후 친절을 베풀면서 안심하게끔 행동하며 신뢰를 쌓아갑니다. 밥을 사준다거나 잘 곳을 제공해 준다거나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충족시켜 주고, 자신에게 의존하게끔 만듭니다. 서서히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이후에 피해자에게 '우리 둘의 비밀'이라는 식으로 외부에 알리지 않게끔 회유나 협박을 합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경계심을 무너뜨린 후, 성착취 관계를 완성시키는 겁니다. 광범위하게 번져가는 '온라인 그루밍' 그루밍은 최근 새롭게 등장한 범죄 형태는 아닙니다. 이전에는 원래 알고 지내던 관계에서 친분을 악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범죄로 규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지난 2014년에는 15세 여중생이 연예기획사 대표인 가해자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을 했는데,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돼 무죄를 받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30대 남성이 10대인 조카와 성관계를 맺고 '연인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루밍'이란 개념이 생소하고, 오히려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치부되던 엄혹한 시절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그루밍 범죄'의 존재를 부각시켰습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면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취약한 상태의 아이들을 범죄 대상으로 물색하기가 한층 쉬워졌습니다. 이번 우울증 갤러리 '히데팸' 사건이 그 사례입니다. 가해 남성들은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를 매개로 전국에 있는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했고, '밥 사주겠다', '재워주겠다'고 유인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오피스텔까지 찾아갔다가 범죄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이렇듯 최근 들어 피해 사례가 많이 나오자, 우리 사회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온라인 그루밍'을 하나의 범죄 유형으로 규정해 입법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기폭제가 됐습니다.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온라인 대화를 이어가는 행위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됐습니다. 또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 위장수사도 가능하게끔 했습니다. 최근 경찰은 법 개정 후 지난 3년간 515건의 위장수사를 실시해 피의자 1,41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가 77%로 가장 많았고, 성착취 목적의 대화, 즉 온라인 그루밍은 4%를 차지했습니다. '진짜 신뢰'를 불어넣어 주는 사회 다행히 처벌은 한층 강화됐지만, 그렇다고 적발이 쉬워진 건 아닙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루밍 범죄는 피해자에게 위력을 가하지 않고도 범행이 이뤄집니다. 그렇다 보니 범죄 행위가 수면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번 '히데팸' 사건의 경우, 일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과 관계를 끊어내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계속되는 설득에도 신고를 꺼려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부모님에게 알릴 수가 없어서, 가해자와의 친분 관계 때문에, 혹은 스스로 피해라고 생각을 안 해서 등의 이유였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남성들에게 은연중에 위협을 받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너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 해서 제가 '너 설마 영상 가지고 협박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똑똑하네?' 이러면서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듯이 말을 한 적이 있어요. - 피해 학생 A 양 '자기 죽을 거다 나는 너한테 진심이었다' 막 그런 말들 하면서 죽을 거라고 했고, 가해자 지인이 저한테 '네가 고소 취하 좀 해봐라'고 말하면서 (취하 안 하면) 자기도 죽겠다면서 협박했어요. - 피해 학생 B 양 이런 상황에서 피해 학생들은 '나섰다가 혹시나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오진 않을까?', '내가 우울하고 불안정해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라며 오랜 시간 스스로를 탓하며 속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현재 경찰이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을 설득해 가해 남성들의 혐의를 상당 부분 밝혀내 일부 구속 송치시켰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계속 피해자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다루기 까다로운 범죄입니다. 전문가들은 가장 어려운 과제이지만, 사회 전체의 의식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송이 성동구청소년성상담센터장은 "결국은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직 피해자를 비난하는 시선들이 존재해 아이들이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걸 어려워하고, 도움을 청할 기관들이 꽤 있지만 이용하지를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루밍 범죄는 주변인들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 스스로 피해 여부를 식별하기 어려운 만큼, 주변인들의 개입이 범죄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번 '히데팸' 사건도 과거 비슷한 성범죄를 경험했던 피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피해 학생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건네고 외부 보호 기관에 연계해 주면서 피해 사실들이 외부로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없앰과 동시에 사회적 감시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악의로 상처받은 어린 피해자들에게 '진짜 신뢰'를 채워넣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디자인 : 안준석
최근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또다시 집단성범죄가 발생했다는 내용, 지난 편에서 전해드렸습니다. 가해 남성들의 행위 자체도 문제지만, 이번 편에서는 범죄를 더 수월하게 했던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범죄자들한테는 최적의 공간" 취재 중에 만난 익명의 유저들과 피해자들은 우울증갤러리를 '범죄자들에게 최적의 공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말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경찰에서 유동 IP라 특정 못 한다. 그리고 그냥 수사 중지가 나버렸어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3년 전부터 우울증갤러리에 자신의 불법 촬영물과 능욕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피해자 A 씨, 이때부터 '지옥의 삶'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나 또 본인의 사진이 올라오지 않을까 매일매일 밤을 지새우며 게시판을 모니터링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몇몇 닉네임을 특정했고 직접 증거물까지 채증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글 게시자를 잡아낼 수 없었습니다. "보니까 통신사 IP였거든요.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변호인 선임해서 고소했는데 결국 특정이 안 되고 수사 중지가 나버렸어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이유가 뭐였을까요? 먼저 해당 커뮤니티의 운영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디시인사이드는 1999년도에 생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입니다. 그동안 '익명성'을 내세워 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았죠. 초기에는 가입할 때 이메일을 기입했지만, 2021년도부터는 아예 이메일 정보도 폐기하며 완전한 익명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고정닉', '유동닉'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고정닉'은 고정된 닉네임이란 뜻인데, 사이트에 정식 가입해서 하나의 닉네임으로만 활동하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판다'라는 닉네임으로 가입했다면, 특정 식별코드를 부여받고 쭉 '판다'로 글을 올리게 되는 겁니다. 같은 닉네임으로 활동하니 게시판 안에서 어느 정도 정체성은 드러나는 셈이죠. 반면 '유동닉'은 가입 자체를 하지 않고, 글을 쓸 때마다 새롭게 닉네임을 정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글을 쓰면 옆에 IP 주소가 남습니다. '판다(211.251)' 이런 식으로 말이죠. 글을 쓸 때마다 닉네임을 바꾸어도 같은 장소에서 글을 게시하면 '아빠 판다(211.251)', '엄마 판다(211.251)' 이런 식으로 IP는 동일하게 뜨는 겁니다. IP가 기록되는데 왜 못 잡는단 얘기가 나올까요? 문제는 유동 IP입니다. IP는 크게 고정 IP와 유동 IP로 나뉩니다. 고정 IP는 말 그대로 딱 고정된 IP 주소 한 개를 할당받아 쭉 사용하는 것이고, 유동 IP는 고정적이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다른 IP 주소를 할당받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사용하는 건 대부분 유동 IP입니다. 쉽게 설명해 보자면, 300세대가 사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300세대 모두 다른 고정 IP 주소를 할당받는 게 아니라 300개보다 적은 IP를 가지고 공유합니다. 예로, 내가 노트북을 쓰다가 끄고 나면 내가 쓰던 IP를 옆집에서 그 IP를 받아서 컴퓨터를 할 수도 있는 식입니다. IP를 돌려쓰게 되는 것이죠. 수사기관이 특정 IP를 잡아냈다고 해도, 어느 집에서 글을 올린 건지 특정하려면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한 겁니다. 더군다나 만약 피시방이나 카페 등 외부 장소를 옮겨가며 글을 올리거나, VPN을 통해서 우회를 했다면 수사는 더욱 어려워지겠죠. 특히 수사기관에서 골머리를 앓는 부분은 통신사 IP입니다. 통신사 IP는 개개인마다 다른 게 아니라, 동시간대 같은 지역이면 같은 IP 주소를 배당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 관계자는 "통신사 IP는 잡기가 까다로운 편인데, 같은 시간대 같은 지역에서 같은 IP를 쓴 사람이 수백, 수천 명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 선별해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다른 증거나 수사기법을 더해서 용의자를 검거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악의적인 애들은 '15초 뒤에 삭제', '10초 뒤 삭제', '5초 뒤에 삭제' 이런 식으로 글을 올려요." - 디시인사이드 이용자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디시인사이드는 3개월 동안 IP 로그 기록을 보관합니다. 3개월이 지나버리면 누가 어떤 IP 주소로 글을 올렸는지 삭제돼 수사기관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 A 씨는 "3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촉박하다. 예전에 올라온 글을 뒤늦게 발견해버리면, 삭제 요청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작성자가 자신의 글을 지워버리면, 기간과 관계없이 IP 주소 등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악용해 몇몇 이용자들은 불법 촬영물이나 능욕글을 잠깐 올렸다가 삭제해 버리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힙니다. 익명의 유저는 "갤러리 안에서 이렇게 하면 잡히고 이렇게 하면 안 잡힌다는 글들이 공유될 정도"라면서, "살짝만 글을 올려놔도 피해 여성들은 자기 닉네임이 이 갤러리에 언급됐다는 알림이 뜨는데,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걸 원하는 거기 때문에 이런 행위들을 반복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게시판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취약한 미성년 여학생들이 많이 오고, 일부 성인 남성들이 다른 목적으로 오고 있다 보니까 너무 문제가 많아요.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강력범죄란 말이죠. 그에 비해 사이트는 너무 접근성이 좋아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범행 대상이 된 피해자는 모두 미성년자 여학생들로, 대부분 우울감을 극심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위안을 얻고 싶어서 우울증갤러리를 찾게 되었던 경우였습니다. 피해 당시 나이가 만 12세도 있었는데, 성적 판단력이 미숙한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갤러리에서 알게 남성들이 친구 혹은 연인으로 친근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 과정에서 범행이 일어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지 않길 바라야겠지만, 정신적으로 취약한 어린 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으려면 이만한 공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폐쇄해도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가"... 근본적인 대책은? 지난해 경찰은 이미 한 차례 디시인사이드에 우울증갤러리 폐쇄 요청을 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폐지가 아닌 '자율규제 강화' 의결에 그쳤습니다. "해당 게시판이 자살 유발 정보 등 범죄를 목적으로 개설됐거나 운영됐다고 보기 어렵고, 대다수 게시물이 단순 우울감 호소 및 도움을 주는 내용 등이 혼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불법 정보에 대한 삭제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게시판 전체에 대해 시정 요구를 조치하는 것은 과잉규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취재진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증갤러리란 공간을 통해 여전히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는 데에 대해 디시인사이드 측에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은 "방심위의 의결에 따라 그동안 베트남과 중국 현지에 모니터링 요원 40여 명을 고용해 삭제 조치를 강화해 왔고, 문제가 되는 VPN 우회 IP 등은 적극 차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우울증갤러리 폐쇄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선택의 문제인데 저희가 봤을 때는 풍선 효과거든요. 우울증갤러리를 그렇게 막아버리면 이분들 다른 데로 가거든요. 어쨌든 저희는 지금 제도권 하에서 운영이 되는 거잖아요. 그걸 이용자들도 인식을 하고 있고." -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 우울증갤러리를 폐쇄한다 해도 결국엔 또 다른 커뮤니티로 옮겨가거나 오히려 제도권 밖 음지의 공간이 새롭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겁니다.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디시 측의 입장처럼 강제 폐쇄를 하면 일시적으로 범죄 재발을 막을 수 있겠지만, 되레 뿔뿔이 흩어져 '점 조직화' 되어 범죄 예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폐쇄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존중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하지만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면 적절한 통제와 규제가 필요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늘 어느 정도까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지 논의해 왔습니다. 음란물이 대부분이던 '소라넷'이나 일부 도박 사이트들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엔 혐오와 유해 정보들로 논란을 빚은 일간베스트도 폐쇄해달라는 국민청원이 빗발쳐 청와대가 답변을 하기도 했지만, 폐쇄 요건에는 충족이 안 된다고 판단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일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우울증갤러리를 찾는 건 우울한 감정을 어른들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익명의 누군가가 더 위안이 되는 거겠죠. 근본적으로 청소년 회복을 돕기 위해 심리적인 위안을 도울 수 있는 상담기관이나 프로그램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너무나 중요하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유아기 때부터 휴대전화를 쓰는 세상입니다. 연령 제한 등 접근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익명의 커뮤니티 공간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반복된다면, 자율규제에 맡겨놓는 건 우리 사회가 무책임한 건 아닐까요? 단순 삭제 조치뿐만 아니라 한층 강화된 대안을 마련하거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스프 글 (1편)> '우울증 갤러리'서 또 터진 집단 성범죄...이번엔 '히데팸'? <SBS 8뉴스 '끝까지 판다' 관련 리포트> 경찰도 "디시? 그거 못 잡아요"…추적 못 하는 '유동IP' 디자인 : 안준석
지난해 4월, 한 여중생이 강남 고층 빌딩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SNS 라이브를 하던 상황에 벌어진 일이라 큰 충격을 자아냈습니다. 그 후, 여중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습니다. 그 중심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가 있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안에는 스포츠, 연예 등 여러 주제의 갤러리가 있는데, 그중 우울증갤러리는 우울증을 주제로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우울증갤러리에서 해당 여학생이 성인 남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여학생은 사망 한 달 전, 우울증갤러리를 통해 알게 된 20대 남성으로부터 성착취물 제작 등 성범죄 피해를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내막이 알려지자, 경찰은 TF를 꾸렸고 여러 제보를 토대로 이른바 '신대방팸', '신림팸'이라 불린 집단을 찾아내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밝혀냈습니다. 모두 우울증갤러리에서 만나 일종의 '팸'을 꾸리고,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술과 약을 같이 먹는 '약술'을 하며 향정신성 약물을 오남용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변한 게 없어요"... 또 터진 집단성범죄 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비슷한 집단성범죄가 발생했습니다. 신대방팸, 신림팸에 이어 '히데팸'이라 불리는 새로운 집단이 문제가 된 겁니다. 닉네임 '히데'라는 20대 남성을 주축으로 2-30대 성인 남성들이 미성년 여학생들을 상대로 의제강간, 폭행, 갈취 등을 해왔다는 증언들이 쏟아졌습니다. 더 나아가 정신을 잃거나 환각 효과를 느끼게 한다고 알려진 이른바 '술피뎀'(술과 졸피뎀을 함께 복용하는 행위)을 강요했다는 의혹들도 제기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우울증갤러리에 대한 반짝 수사가 있고 난 후인 지난해 말에 결성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우울증갤러리에서도 활동을 하지만, 주로 '울스타'라고 불리는 다른 SNS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 친분을 쌓아갔습니다. '히데'라는 남성의 자취방인 인천의 한 오피스텔, 이른바 '히데하우스'라 불리는 공간이 아지트였습니다. 몇몇 멤버들은 이곳에서 한동안 숙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이 지목한 가해 남성들은 5명 이상으로, 가출을 하거나 갈곳 없는 10대 여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겠다', '재워주겠다'며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이들 중 4명은 피해자들로부터 의제강간과 폭행 등의 혐의로 피소된 상태입니다. "보복할까 두려워"... 초등학생 피해자까지 "우울증이 있어서 검색하다가 우울증갤러리를 알게 됐어요." "친구도 많이 없어서 친구를 사귀려고 갔다가…."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었는데 '재워주겠다', '밥 사주겠다' 해서…." 취재진이 파악한 피해자들은 최소 5명 이상으로 대부분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입니다. 가장 어린 피해자로는 12세 초등학생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정 환경이나 진학 스트레스 등으로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기댈 곳을 필요로 하던 취약한 학생들이었는데, 모두 가해 남성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범죄 피해를 당했습니다. 사건 당시 16세였던 A 양은 "진학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던 참에 지난해 뉴스가 떴을 때 궁금해서 우울증갤러리에 들어갔다가 가해 남성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는 말에 친구와 방문했다가 술을 한 잔 먹고 정신을 잃었고 그사이에 한 남성으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토로했습니다. 14세 B 양은 더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히데팸' 멤버 중 한 명과 알고 지내던 중에 '히데하우스'를 방문했다가 두 남성으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당했고, 그 이후에 임신과 불법 낙태까지 겪어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16세 C 양도 "30대 남성이 자주 술을 먹고 폭행을 했고, 문제 제기를 하면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며 무마하려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수사기관 등 외부에 알리려는 피해자도 있었지만, 혹시나 가족이나 학교에 알려질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숨기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가해 남성들이 성 관련 촬영물을 소지한 경우도 있어 유포나 보복을 할까 봐 침묵을 지키려는 피해자도 여럿입니다. 최근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히데팸' 멤버들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일부 유저들은 '우울증갤러리는 범죄자에게 최적의 공간'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왜 우울증갤러리에서 이런 범죄가 반복되는지, 디시인사이드 운영 측면에서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SBS 8뉴스 '끝까지 판다' 관련 리포트> [단독] "친구랑 집으로 오라더니"…우울증 갤러리서 성착취 (풀영상) 주변에 알릴 수 없었다…"그루밍 범죄 전형" (풀영상)
침묵 속에는 많은 것들이 말없이 자리 잡습니다. 존중과 배려, 억측과 오해 등 여러 감정과 의미가 내포돼 있죠. 하지만 누구의 침묵인지에 따라 달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가해자의 침묵과 피해자의 침묵은 엄연히 다릅니다. 전자의 침묵은 은폐이자 또 다른 가해를 의미할 수 있겠고, 후자의 침묵은 '강요에 의한 침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건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되는 행위, 즉 자살 행위와 같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침묵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조직 안에 불합리함이 존재하는데 다수가 침묵하는 상황은 어떨까요. 두려움, 눈치, 포기, 무관심 등 저마다 다양한 감정이 모여 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선 누구든 혼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공고한 조직일수록 더욱 어렵겠죠. 침묵이 침묵을 낳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 침묵을 깨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고발자들입니다. 이번 '더 스피커'에서는 한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침묵을 깨고 나온 사람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김 모 씨는 7년 동안 경기도에 소재한 약재 유통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한 결과 차장직을 달았죠. 그런데 어느 날 김 씨는 자신의 고용주를 고발하기로 결심합니다. 업체 대표가 직원들에게 중국산과 국산 약재를 섞어서 원산지를 속이도록, 이른바 '포대갈이'를 하란 지시를 했던 겁니다. 김 씨는 그동안 불법 행위란 걸 알았지만 늘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김 씨의 눈앞엔 아내와 세 아이가 자꾸만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꽤 됐는데 날이 갈수록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이제 더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우리나라 회사 문화가 수평적인 곳보다는 아직도 수직적인 곳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까라면 까야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저도 월급쟁이라서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이건 명백한 사기이고 기망 행위입니다." <제보 내용 중> 장고 끝에 김 씨는 SBS에 이렇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취재진은 곧바로 김 씨와 논의하며 중국산-국산 약재를 섞는 장면을 촬영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고, 농림부 특별사법경찰과 함께 문제가 된 약재를 현장에서 적발했습니다. 해당 약재들은 유명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등 100여 개 업체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업체 대표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드러난 범죄 금액만 22억 원이 넘습니다. 취재를 하며 김 씨에게 고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해당 업체는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고는 정직원이 10명이 안 되는 소규모 회사입니다. 제보자가 누구인지 특정되기가 쉬운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눈을 가리고 침묵하는 가운데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무엇이 김 씨를 움직이게 했을까요. "사실 매일 느꼈어요. 매일 출근할 때 알람 울리거든요. 그 알람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거예요. '오늘도 나가서 뭐 얼마나 이거를 해야 되나 이 섞는 작업을...' 직장인이어서 지시대로 한다고 하긴 하지만, 오늘은 또 몇 톤을 섞을 것이며, 또 몇백 킬로그램을 섞어서 어느 업체에 납품할 것이며, 또 그 업체에서 생산한 물건은 어느 소비자에게로 전달될 것이며... 참 그런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들어서 더 이상은 이렇게는 안 될 것 같다..." - 김 씨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 신념을 더 이상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소극적으로 지시를 이행하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일을 못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순적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김 씨는 고발을 택했습니다. 해고에 처벌까지…혹독한 내부고발의 대가 고발 후 김 씨의 삶은 어땠을까요. 2년 만에 다시 만난 김 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내부고발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듯했습니다. 보도가 나간 직후, 해당 업체는 제보자 색출에 들어갔습니다. 김 씨는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자연스레 퇴사 수순을 밟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생활고가 찾아오고, 평화로웠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회사 다닐 때는 집에 생활비는 부족하지 않게 갖다줬었어요. 그런데 해고되고는 일당 6만 원짜리 하면서 140만 원? 막 이렇게 갖다주니까 계속 마이너스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아내가 그랬대요. 카드값이 계속 연체가 되니까 고민을 하다가 장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장모님이 적금을 깨서 300만 원을 줬대요. 그거 받고 아내가 엄청 울었다고..." - 김 씨 특히나 그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법에 대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사실 김 씨는 최근까지 취재진에게 간간이 연락을 취하며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내부고발과 동시에 김 씨도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불법 행위를 지시대로 이행한 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사실 취재진도 이 부분이 가장 염려됐습니다. 농림부 특사경이 수사에 돌입하면서, 당초 김 씨에게 '함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 바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위축되고 제보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겠죠. 사회·경제적 지위를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 씨는 달랐습니다. 덤덤히 계속 협조해 나갔고, 결국 수사에 큰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심에서 검찰은 김 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 재판부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제야 숨을 돌릴까 싶었지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내부고발자에 대해 감형 또는 형을 면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형량이 낮다며 항소에 나섰습니다.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그런 감정도 좀 있었어요.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내부고발을 했는데, 그냥 여기서 끝내주지 왜 항소를 했나. 이미 내부고발자가 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뭐 어떨 때는 위협도 받고. 제 친구가 저한테 그랬어요. '야 너 조심해 밤에 칼 맞을 수도 있어.' 검찰이든 법원이든 어디서든 보호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는..." - 김 씨 내부고발자의 보호 울타리는 어디에 사실 이런 상황은 김 씨만 겪는 게 아닙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수많은 제보자들은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함께 앞으로 잃을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회사에서 잘릴 각오도 해야 돼. 주변의 시선도 감당해야 돼.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 내가 수사기관 가서 나도 똑같이 피의자 신분으로 돼서 감당을 해야 되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해야 되는데. 이런 상황이면 내부고발을 하고 싶어도 안 나타나지 않을까, 꺼려하지 않을까." - 김 씨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많은 사건의 중심에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추린 <세상을 바꾼 10대 공익신고(2021년 기준)>를 보면 '2016년 자동차 결함 은폐 의혹', '나눔의집 운영진 후원금-보조금 관리 부적정 신고' 등 큰 사회 변혁을 일으킨 사건들이 많습니다. 현재 뜨거운 감자인 채해병 순직 관련 수사 외압 의혹도 수사 담당자였던 박정훈 대령의 폭로로 시작됐죠. 정부는 생활밀착 부패부터 권력형 비리를 없앨 수 있도록 공익신고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보호해 줄 튼튼한 울타리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아보입니다. 법무법인 지향 이상희 변호사는 "제보자들이 '내가 제보한 내용이 사실대로 규명되고 합당한 처분이 이뤄질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관할 행정기관에 알렸을 때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안 되다 보니 하루하루 피 말리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말했습니다. 공익신고자 지원단체 호루라기재단 이영기 변호사는 "어떻게 보면 내부고발자는 비리에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련 자료를 빼낼 수 있기에 범행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데 임의적 면책 규정이다 보니 수사·사법기관에선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상도 중요합니다. 자기희생만 강요하고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그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제보자에게 포상금을 파격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미국에서 현대차 엔진 결함을 제보한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은 2,430만 달러, 원화로 약 285억 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상이 적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공익신고 포상금 상한액을 2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또 공익신고로 인사상, 경제적 불이익 조치를 받았을 경우에 보상금이 최대 30억 원까지 지급됐는데, 올해 8월 7일부터는 한도 없이 환수 금액의 30% 이내에서 지급됩니다. 세상에 도려내야 할 부정부패는 많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모든 제보자들이 이 법의 보호 하에 있지는 못합니다. '고발한다고 해서 정말 변화가 올까?', '나만 불이익 얻는 게 아닌가?'라는 망설임이 들지 않도록 신뢰가 갖춰진 환경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내부고발을 후회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김 씨가 최근 제게 보냈던 메시지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현재 카드값 100만 원이 없어서 장기 연체 중이고 저는 집행유예 처벌을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합니다. 언젠가 이때를 회상하며 '그때 어려웠지만 그래도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지 않을까요?" - 김 씨 디자인: 안준석
“공짜로 아우디, 벤츠, 제네시스, 레인지로버를 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차 아닌 중고차지만 상태도 좋다고 합니다. 차량 구입비와 이전비 등은 낼 필요 없고, 자동차 보험이나 세금 같은 유지비만 내면 된다고 합니다. 단, 조건은 하나. 해당 차에 명의 이전해서 대출을 새로 실행시켜야 합니다. 기존 차량에 엮여있던 할부금 처리 등의 문제 때문이랍니다. 타는 동안 청구되는 할부금만큼 입금을 시켜준다고 합니다. 무슨 상황인데? 솔깃하지만 의심스럽기도 하죠. 하지만 주변에서 “실제로 내가 2년 정도 문제없이 타고 다녔다”, “OO 연예인도 타고 다닌다” 라며 거듭니다. ‘사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머뭇거리면, 해당 차를 넘기려는 딜러가 자필 각서에 자신의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까지 제시합니다. 이런 제안에 넘어간 사람들이 파악된 것만 100여 명,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들은 수천만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