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곧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부모들은 6주가 넘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 부모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런던 극장가의 제도가 있다. 7월 중순부터 8월 한 달간 운영되는 <아이들 주간 (Kids Week)>이다.

“아이들은 최고의 런던 공연에 공짜로 갑니다.”

<아이들 주간>의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아이들 주간>에 참여하는 공연 티켓 한 장을 성인이 구매하면 동반하는 17세 이하의 아이에게 같은 공연의 티켓 한 장이 무료로 주어진다. 추가로 두 명의 아이까지 정상가의 반값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고, 흔히 4, 5천 원에 달하는 예매 수수료도 면제된다. 즉, 성인 티켓 한 장 가격이 1만 원이라면 2만 원에 성인 한 명과 아이 세 명이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아이들은 최고의 런던 공연에 공짜로 간다’는 홍보 문구는 과장이 아니다. <위키드>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이제는 고전이라 불릴 만한 명작 뮤지컬뿐 아니라 매튜 본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극장의 연극 <시련 The Crucible> 등 비교적 신작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이 올해 <아이들 주간>에 포함되었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 유아들을 위한 공연 또한 풍성하다. 에릭 칼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주아주 배고픈 애벌레 The Very Hungry Caterpillar>,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국인들에게 사랑받은 동화책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The Tiger Who Came to Tea> 등 명작 동화를 기반으로 한 연극과 뮤지컬들이 어린이들을 기다린다.

셰익스피어 글로브는 <한여름 밤의 꿈>을 소재로 한 코미디 <한여름의 기계공>을 다섯 살 이상의 관객에게 선보인다. 올리비에 시상식 후보까지 올랐던 이 코미디는 샘 워너메이커 극장 무대에서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건축 방식을 재현해 지은 이 극장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기만 해도 살아있는 역사 공부가 된다.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경험하고, 묻는다.

뿐만 아니다. 많은 극장들이 각자의 공연 성격에 맞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함께 제공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관람에 앞서 제작 스태프나 출연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마틸다>는 웨스트엔드의 현역 베테랑에게 직접 음악과, 연기, 춤을 배워볼 수 있는 드라마 워크숍을 제공한다. <레 미제라블>처럼 조명, 음향, 무대 기계 장치 등의 시범을 선보여 백스테이지의 메커니즘을 체험하도록 돕는 극장도 있다.

이렇듯 공연은 아이들의 여흥거리뿐 아니라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그 교육은 현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 주간>의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는 공연을 교과서 삼아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교육 자료 또한 제공한다. 공연 전후로 어른과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 <위키드>는 연령 별, 주제 별로 상세하게 나눈 자료를 제공한다. ‘집단 괴롭힘’, ‘다양성과 포용’, ‘가짜 뉴스’ 같이 작품과 긴밀히 연관된 주제를 다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질문 목록, <위키드>에 영감을 준 다양한 판타지 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리한 계보도, 무대와 조명, 의상 등 시각 디자인 관련 이미지 모음 등 다각도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문서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극장 인근 식당들과 연계해 <아이들 주간> 공연 티켓을 소지한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 혹은 무료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어린이 전용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그야말로 공연 앞뒤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가득 채워 놓은 셈이다.

<아이들 주간>에 숨어있는 런던 극장협회의 큰 그림
7-8월은 명실상부 런던 극장가의 ‘대목’이다. 휴가철을 맞아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그래도 런던에 왔으면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한 편 정도는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찾고, 아이들 방학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모처럼 다 함께 공연 한 편 보려 마음먹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다이내믹 프라이싱 제도’, 즉 비행기나 호텔처럼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티켓 가격을 조정하는 영국 공연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관람을 적극 독려하는 건 이 모든 사업을 주관하는 런던 극장협회(Society of London Theatre)에게 크고 원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런던 극장협회는 1908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런던 무대에 오른 공연들의 우열을 가리는 올리비에 시상식을 주관하는 바로 그 단체다.) 극장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일하는 한편, 관객 저변 확대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 주간>은 관객 저변 확대를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서 1998년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라이브 공연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초창기에는 일주일자리 짧은 주간 행사였지만, 이후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 달짜리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가, 올해부터는 여름방학 기간 전체로 확장되었다. 그럼에도 티켓 개시와 동시에 판매 웹사이트 온라인상의 대기 줄은 수만 명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 아이와 왔고, 그 아이들이 큰 후에는 손주들과 왔었는데 그 애들마저 다 커버렸어요. 이제 우리 옆집 꼬마를 빌려 올까 생각 중이에요.”

한 관객의 농담 섞인 말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아이들 주간>은 이렇듯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공연을 접한 아이들이 성장하여 스스로 공연을 찾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공연을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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