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딸 주애가 오랜만에 다시 공개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지난 5월 17일 김정은의 ‘정찰위성발사 준비위원회 사업 현지지도’ 보도 이후 1백여 일 만입니다. 주애가 모습을 보이지 않던 때에도 7월 27일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열병식에 주애의 백마가 등장하는 등 주애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는 없었지만, 주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주애 잠적을 둘러싼 세간의 의문을 불식시키게 됐습니다.

주애는 김정은이 해군절을 맞아 해군사령부를 방문하는 자리에 동행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동지께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함께” 해군사령부에 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주애는 김정은 옆에 서서 해군 간부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김정은 옆에 서서 해군 명예위병대의 행진도 지켜봤습니다. 또, 김정은이 해군절을 맞아 마련한 경축연회에서도 주애는 김정은 바로 옆 리설주와의 사이에 앉았습니다.

예전과는 달라진 주애의 행동들
그런데, 주애의 행동에서 예전과는 달리 눈여겨볼 만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해군사령부에 도착해 도열해 있는 간부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할 때입니다. 김정은이 악수를 하면서 지나가자 주애는 김정은을 뒤따라가며 간부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해군 간부들은 주애에게도 거수경례를 한 뒤 악수를 했습니다. 조선중앙TV 화면으로 볼 때 주애가 도열해 있는 간부들과 모두 악수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지도자에 이어 간부들의 경례를 받으며 악수했다는 것은 김주애가 단순히 김정은의 뒤를 따라다니는 차원을 넘어섰음을 의미합니다.

주목할 만한 장면은 또 있었습니다.

환영행사를 마친 김정은이 부대 군인회관에서 해군장병들과 만났을 때입니다. 김정은은 이곳에서 장병들에게 꽃바구니를 전하고 연설을 했는데 주애가 주석단에 앉았습니다. 김주애가 등장한 뒤 김정은의 많은 행사를 따라다녔고 지난 2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때 주석단에 오르기는 했지만, 실내에서 단상에 탁자를 놓고 진행되는 정치행사에서 주애가 주석단에 앉은 것은 처음입니다.

주석단은 가운데와 왼쪽 오른쪽 크게 세 부분의 탁자로 나뉘어져 있었고, 가운데 탁자에는 네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주애는 가운데 탁자의 가장 중앙자리에 김정은과 함께 앉았습니다. 김정은 부녀 양 옆으로 앉은 사람은 박정천 원수와 김명식 해군사령관이었고, 리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강순남 국방상은 양 옆 사이드에 위치한 별도의 탁자에 앉았습니다. 북한의 군부 실세들이 주애보다 가장자리에 앉은 채 행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물론, 이날 행사가 당의 공식회의는 아닌 만큼 착석 위치가 반드시 서열과 연결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주애가 김정은을 따라간 만큼 편의상 김정은의 옆 자리에 주애를 앉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군장병들을 모아놓고 공식적으로 진행된 정치행사에서 주애가 군부실세들보다 중앙에 앉아있는 모습은 주애의 정치적 위상이 어떤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더구나 이 모습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 전역에 전해진 만큼,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교육 효과도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김주애 등장으로 확실해진 ‘4대 세습’의 의지
김주애의 등장과 지난 2월 열병식에서 북한군이 외친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에서 김정은의 4대 세습 의지는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김정은의 다음 권력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직계자녀에게 갈 것이니 미리부터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범주에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도 들어갑니다.

김주애의 등장과 함께 견제를 받는 듯했던 김여정은 지난 2월 체육경기 관람 당시 뒤편의 가장 구석자리로 밀렸지만 4월 같은 경기장에서 열린 체육경기 관람에서는 뒤편 중앙자리에 위치해 입지가 회복됐음을 시사했습니다. ▶ 관련기사 : ‘김정은의 여동생 길들이기? 주목해야 할 것은’

김여정은 해군절을 맞아 이번에 열린 경축연회에서도 김정은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김정은 부부 사이에 앉은 주애에 비해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지만 말입니다. 김여정이 김정은 직계자녀로의 4대 세습 방침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입지를 회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가족 간 불화의 가능성을 사전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대 세습과 관련해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인 김주애 오빠의 존재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당초 국정원은 김주애 위로 2010년생 첫째 아들이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판단에서 후퇴했습니다. 김주애가 첫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 관련기사 “김정은에게 첫째 아들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4대 세습의 당사자가 김주애가 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최근 들어 김주애에게 행해지는 각종 의전과 주애의 행동을 보면 ‘김주애 후계자설’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후계자가 공식화되기까지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고 본다면, 4대 세습의 당사자가 누가 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일러 보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변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벌써 ‘4대 세습’ 메시지를?
이 시점에 생각해 볼 부분은 김정은이 어린 딸을 데리고 나오면서 4대 세습의 메시지를 왜 이렇게 빨리 던졌느냐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1984년생으로 아직 39살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후계에 대한 고민은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당 규약을 개정했는데 개정된 당 규약에는 '제1비서'라는 직책이 신설됐습니다.

개정된 당 규약 제26조에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는 규정이 신설된 것입니다. 제1비서가 북한 최고지도자인 노동당 총비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북한 역사에서 최고지도자 유고 사태에 대비한 규정을 당 규약에 만들어놓은 것은 처음입니다. ▶ 관련기사 : 우리는 왜 ‘김정은 다이어트’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이후 김정은은 20kg 정도를 감량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집권 이후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실패했고 김정은은 원래 몸무게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주애가 공개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김정은이 후계구도에 대해 이렇게 빨리 가닥을 잡은 것은 본인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정보당국은 김정은을 신장 170㎝에 몸무게 140㎏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다 수시로 담배를 피우고 있고 술도 마시는 것으로 보이니 건강이 좋을 리 없습니다. 김정은의 건강에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김주애의 등장과 김정은의 건강은 함께 지켜봐야 할 북한 미래의 중요한 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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