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공룡 엔터 그룹들의 피 튀기는 'SM 인수 쩐의 전쟁'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9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위원장을 불러 20시간 넘게 조사했습니다.

카카오가 지난해 2월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지분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 엔터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고 보고 있는데, 김범수 위원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보고 받았다고 판단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한 겁니다.

검찰은 늦어도 다음 주에는 김범수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신병 처리에 대한 결론을 낼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해 초 'SM 인수 전쟁'에서 촉발된 수사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보아'에서 시작해 '에스파'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K팝 아티스트들을 숱하게 배출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습니다.

창업자인 이수만 씨와 SM 이사진 사이 분쟁에서 하이브는 이수만 측의 우호세력으로, 카카오 그룹은 SM엔터 이사진의 우호세력으로 참전했습니다.

초반 상황은 카카오와 SM엔터 이사진 측에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2023년 2월 7일, SM엔터 이사진은 카카오에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 즉 새 주식과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카오가 2,171억 원을 들여 SM엔터 지분 9%를 취득해 단독 2대 주주로 등극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법은 기존 주주를 배제하고 다른 누구를 콕 집어 신규 주식을 발행해 주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제 멋대로 기존 주주를 제외하고 제3자에게 새 주식을 발행해 버리면, 기존 주주들은 새 주식을 인수할 기회를 박탈당할 뿐 아니라,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불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SM엔터 이사진은 당시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나름대로 논리를 마련했습니다.

'신사업 전략인 SM 3.0 실현을 위해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자 카카오에게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수만 씨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수만 씨는 SM이 카카오를 콕 찍어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내는 한편, 또 다른 공룡 엔터기업 <하이브>와 손을 잡습니다.

2월 10일, 하이브는 SM 지분 14.8%를 4,228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SM 주식을 주당 12만 원에 '공개매수'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거대 기업들 간에 이른바 '쩐의 전쟁'이 개막한 겁니다.

카카오는 재반격을 고심합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맞불을 놓는 '대항 공개매수'를 선언할 거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카카오가 SM엔터로부터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받을 당시 제한 요건을 피해가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들었는데, 대항 공개매수를 실행해버리면 '결국 카카오의 진짜 속셈은 SM 경영권을 노렸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SM의 경영권은 공개매수를 선언한 하이브가 가져가게 되는 건가 싶던 중, 변수가 발생합니다.

2월 초 9만 원대에 머물던 SM엔터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이브는 주당 12만 원에 주식을 장외에서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주가가 12만 원 보다 싼 환경이어야만 하이브가 '비싸게' 주식을 사 주는 셈이 되고, 공개 매수에 응하는 지분도 많아져서 하이브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SM 주가가 폭등하면서 하이브는 계획했던 공개 매수 규모를 달성하지 못하는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이브가 이 주가 폭등 과정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지난해 2월 16일과 17일, 27일에 '원 아시아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 자금 1,100억 원이 SM 주식을 매입하고, 2월 28일엔 카카오그룹 자금 1,300억 원이 SM 주식을 매수하는데, 이게 SM 주가를 올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겁니다.

하이브는 금감원에 신고했고, 금감원은 곧장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금감원은 카카오 측의 부정한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가 하이브의 SM 공개 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시세 조종을 실행했다고 보고 그를 구속기소했습니다.

올 4월엔 1,100억 원을 들여 SM 주식을 매입한 사모펀드 원 아시아 파트너스의 지창배 대표도 구속기소했습니다.

카카오가 해당 사모펀드 측과 공모해 공개 매수 저지를 위한 시세조종을 실행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들 재판에서는 검찰이 확보한 시세조종 공모 증거들이 여럿 공개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28일 오전 카카오 투자심의위원회 구성원들의 단체 대화방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이 대화방에서 김기홍 카카오 재무그룹장은 "오늘 공개매수 꼭 저지해 주세요~ㅎ"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배재현 대표도 "위험해 보일지라도 도와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긴 겁니다.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증언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카카오 내부자인 이준호 부문장은 지난 5일 재판에 나와 "배재현 전 총괄이 지창배 원아시아 대표에게 1,000억 원 정도 SM엔터 주식을 사달라고 얘기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원아시아가 SM 주식을 사서 주가를 끌어올려주면, 즉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해 주면 SM의 굿즈 사업을 주겠다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김범수 위원장이 이러한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특히 (A)"위험해 보일지라도 도와달라", (B)"오늘 공개매수 꼭 저지해 주세요~ㅎ" 등의 메시지가 오간 지난해 2월 28일 아침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카카오그룹이 1,300억 원 이상을 동원해 SM엔터 주식을 매수한 날인데, 이날 아침 8시 반에는 김범수 위원장, 배재현 대표 등 카카오그룹 핵심 멤버들이 참석한 투자심의위 회의가 열렸습니다.

검찰은 (A) 메시지가 이 회의 개최 직전, (B) 메시지가 이 회의가 끝난 직후 전송됐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런데도 과연 김범수 위원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시세조종 관련 내용이 일절 논의되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검찰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공개매수'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사실상 첫 법적 판단이 이뤄지는 사건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공개매수제도'의 도입 취지가 "모든 주주에게 동등한 매도 기회를 부여하여
주주평등을 도모하고, 지배권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카카오 측은 "하이브나 SM엔터 소액 주주 등 어느 누구도 실질적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검찰이 도그마에 빠져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샘표식품 주식을 장내 매수한 풀무원의 사례나, 제일화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장내 매수에 나선 한화그룹 사례 등 경쟁 기업의 공개 매수에 장내 매수로 대응한 사례는 많았다는 반박도 제시합니다.

원문 : 원종진 기자 / 낭독 : 이현경 아나운서 / 녹음·편집 : 홍예진

원종진 기자의 <취재파일> 기사 전문 보기
►카카오 정점에 이른 검찰 칼날…그날 아침엔 무슨 일이?

최신 콘텐츠

공룡 엔터들의 피 튀기는 '쩐의 전쟁'…검찰이 주목한 그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