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냉장고 찾기, 의외로 쉽지 않더라

스무 살, 첫 자취 생활을 '고시원'에서 시작했다. 그 고시원은 냉장고를 공용으로 사용했는데, 몇 번의 분실 사건이 있었던지라 사람들은 색색의 포스트-잇에 본인 이름을 붙여 음식물을 보관하거나, 플라스틱 목욕 바구니 안에 담아 보관했다. 그 이후로, 내 주소지가 신축 오피스텔, 고시촌의 원룸, 복층 빌라, 옥탑 빌라, 재건축 아파트 등으로 바쁘게 변경되는 동안, 다양한 냉장고를 만났다. 때로는 냉동실이 없었고, 있어도 작았고, 빌트인으로 제작되어 냉장고가 어디 있는지 헤매기도 했고, 덩치(리터)가 작기도, 크기도 했다.

2013년에 처음으로 '옵션'이나, '중고 가전'이 아닌 새 냉장고를 살 수 있었다. 당시엔 대형(900리터) 양문형 냉장고가 인기가 있었다. 특히 "칸마다 독립 냉장" 또는 "수박도 자르지 않고 들어 간다"는 광고로 살림꾼들의 마음을 훔쳤다. 유행과는 별도로 내가 세운 우선순위는 '깊이', '냉장고·냉동고 별도 구입', '서랍식 수납'이었다. 우선순위를 감안해 그동안 숱한 이사로 터득한 노하우로 심혈을 기울여 내 맘에 쏙 드는 냉장고를 구매했는데,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우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내가 겪은 답답함을 남들은 겪지 않도록, 냉장고를 구매할 계획이 있거나, 남이 고른 작은 냉장고 수납에 고민하는 독립 가구에게 몇 가지 팁을 전한다.

이런 냉장고 추천합니다

우선, 냉장고는 깊이(D)가 깊은 것(보통 900cm 이상)과 얕은 것(680~705cm 사이)이 있다. 고를 수 있다면 깊이가 얕은 것을 추천한다. 내 냉장고는 깊이가 684cm다.

넓이가 넓은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 팔 길이(암 리치)가 650cm 정도이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물건이 적어 한눈에 파악이 쉽고, 애써 팔을 늘려가며 용을 쓰지 않고도 내용물을 쉽게 꺼내볼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이렇게 앞뒤가 짧으면 생기는 이점은 다이소, 무인양품 등에서 나오는 수납 모듈 제품이 딱 맞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서랍식 수납의 장점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요즘은 다행히 옆으로 넓적한 예쁜 신제품들이 많아져서 선택의 폭이 넓다.

다음으로는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야 한다. 자주 장을 보고, 소량씩 구매해 신선한 상태에서 조리하는 스타일인지, 장 볼 시간도 아까운 "바쁘다 바빠" 현대인이라 식자재를 한 번에 대량 구입해 냉동하는지 본인의 소비 행태를 생각해 냉장고와 냉동고의 비중을 결정하자.

나는 당시 냉동고가 큰 게 좋았기 때문에, 냉장고와 냉동고를 각각 280리터짜리로 구매했다. 조금쯤 식당 주방 분위기가 나는 스테인리스 제품이었지만 문 손잡이가 양방향으로 상황에 맞게 사용 가능해 나란히 놓으면 마치 양문형 냉장고처럼 보였다.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감안해 냉장고와 냉동고의 비중이나, 총용량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대용량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생각에 많은 살림꾼들이 동의했는지, 다행히 현재 나오는 많은 제품들은 가구 형태에 따라, 냉장고, 냉동고, 경우에 따라서는 와인냉장고나 김치 냉장고를 모듈화시켜서 블록처럼 조립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냉장고와 냉동고는 꼭 함께 위아래든, 옆으로든 붙어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의 탈피이다. 나는 깨닫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무엇보다도 공간이 부족한 독립 가구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사실이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꼭 나란히 있지 않아도, 꼭 부엌에 있지 않아도 된다. 작은 집일수록 사실상 부엌이든 거실이든 큰 차이가 없다. 내가 살았던 42제곱미터(13평) 아파트의 부엌은 너무 좁아서 도저히 냉장고와 냉동고를 나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부엌 안 창고에 냉동고를 넣었고(기존 세입자는 이 자리에 세탁기를 놓았었다), 냉장고는 거실과 부엌 사이에 책상과 책장 옆에 놓았다. 제 자리를 양보한 세탁기는 부엌 벽을 따라 놓은 뒤 상판에 두꺼운 나무를 올려 간이 아일랜드로 사용했다. 나처럼 극단적일 필요까지는 없어도, '냉장고가 마땅히 자리 잡아야 할 곳'이라는 정해진 위치에 대한 고정된 생각만 버려도,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냉장고에 어떻게 보관할지를 얘기하고 싶다. 내가 전파하고 싶은 팁은 바로, 서랍식 수납의 위대함이다. 사실 대부분의 독립가구의 냉(장)동고가 칸 구분 없이 뻥 뚫린 제품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칸칸이 분리되어 서랍식으로 된 냉(장)동고를 추천한다. 이렇게 되면, 한 칸은 '냉동식품', 또 다른 칸은 '육류, 어류', '빵, 떡류', '곡물류' 등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해 저장할 수 있고, 지퍼락이나 포장으로 수납해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

이때 라벨지를 부착해 사용의 편의성을 높일 수도 있다. 본인이 가진 제품이 서랍식이 아니라면, 서랍을 만들면 된다. 쌓아 올리거나, 칸을 구분할 수 있는 다양한 냉장고, 냉동고 수납용품을 이용해 구역을 지정하면 된다. 지난날의 고시원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차용해, 여러 가지 '바구니'로 공간을 만들어도 된다. 심지어 나는 이미 서랍식으로 분리된 '과일 칸' 안에도 플라스틱으로 된 바구니를 넣어 칸 구분을 해 사용한다.

정리의 달인들은 정리의 기본으로 "놨던 자리에 그대로 놓기"를 꼽는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각자의 '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치 냉장고에 강제적으로 부여된 '계란 칸', '얼음 칸'과 같다. 각 음식물의 카테고리에 지정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정석엔 해당 음식물이 있든 없든, 무조건 비워 놓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이, 해당 '자리'를 기억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수납법은 음식물을 찾는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어떤 식재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어떤 것이 적은 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장보고 정리하는 시간까지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비어 있는 냉장고'

그동안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다닌 이사 덕분에 어떤 냉장고가 편하고 좋은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냉장고는 '비어 있는 냉장고'다.

'비워야 편하다'는 인생의 격언은 냉장고 수납에서도 통한다. '2+1 상품'에 마음이 혹하고, '오늘만 특가'라는 말에 지갑이 열리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신선한 식품을 필요한 만큼만 적당량 산 뒤, 오래지 않아 먹는 삶을 연습한다. 이번 주 당장,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냉장고를 비워보는 것은 어떨까?

► 구입 제품 정보:
삼성 컬렉션 시리즈(RR35H61007F, RZ28H61507F)- 냉장고 냉동고 별도 구매(전자랜드) : 할인 구입가 1,834,000원
다이소 냉장고 정리함 : 1,000~3,000원대
무인양품 철제 와이어 바스켓(37 x 26 x 12): 21,900원

디자인: 채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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