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다른 그래프 하나 보실까요.

2000년부터 매년 사과 생산량을 모아본 건데 오른쪽 끝에 뚝 떨어진 게 지난해입니다. 숫자로 보면 2022년은 57만 톤이 생산됐는데, 23년은 39만 톤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30%가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30만 톤대로 생산된 건 역사상 최저는 아닙니다. 2011년, 2012년 모두 30만 톤대 사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완만하게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작년처럼 급격하게 우하향해서 꺾이진 않았습니다. 2000년 이후로는 지난해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사과 생산량이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사과가 왜 줄었냐... 이건 아는 것만 말씀드리면, 봄에 사과꽃이 필 무렵에 이상 한파가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꽃이 피고 벌이 수분을 해줘야 과일이 영그는데 너무 추워서 꽃들이 시들어버렸다는 겁니다. 그게 전국적으로 장기간 지속돼서 사과와 비슷한 시기에 수분을 해야 하는 과수농가는 죄다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사과 작황은 30% 줄었는데 왜 사과는 30%만 비싸야지 50%, 60% 막 이렇게 비싸진 걸까요. 30% 작황 감소는 사과 값 상승의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30% 상승요인이 있고, 여기에 플러스 물류비, 또 플러스 인건비, 또또 플러스 수수료 등등이 얹어지다 보니 전년동월 대비 70% 상승이라는 숨이 턱 막히는 가격을 보게 되는 겁니다. 쉴새없이 과일 값이 오르면서 시장에서 불만이 쌓이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보니 정부도 사과나 배 값을 한 푼이라도 깎겠다고 690억 원을 설 명절 앞두고 풀었습니다. 모두 농산물 할인 지원에 쓴 돈입니다.

한 걸음 더
한 가지 이상한 건, 왜 사과는 수입하지 않을 걸까요? 한우가 부담되면 호주산, 미국산 얼마든지 골라 먹을 수 있는데 왜 과일은 그게 안 될까요? 수입 과일이 들어오면 우리 과일 값도 좀 싸지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엔 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간단히 말씀드리면, 수입은 가능한데 엄청, 정말 엄청 오래 걸립니다. 미국은 지난 1993년에 한국에 사과를 수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1993년이라.. 그때 신청한 당사자가 미국에 남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까마득한 30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미국산 사과는 ‘수입 검토 중’입니다. 미국만이 아닙니다. 독일, 뉴질랜드, 일본 등 11개 나라가 자기 사과를 한국에 수출하겠다고 신청했지만 모두 다 ‘수입 검토 중’입니다.

왜냐면, 외국 과일은 함부로 수입하지 않기 때문이죠. 가장 큰 이유는 병충해입니다. 외국 과일에 있는 병충해가 우리나라 과수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검역을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게 합니다. 그 절차가 총 8단계인데 <1. 접수 2. 착수 통보 3. 예비위험평가 4. 개별 병해충 위험 평가 5. 위험관리 방안 평가 6. 검역 요건 초안 작성 7. 입안 예고 8. 고시> 이렇습니다.

30년 전에 신청한 미국 사과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8단계에 임박했을까요. 아닙니다. 이제 겨우 3단계 예비위험평가 ‘중’입니다. 3단계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렸는데 남은 5단계는 언제쯤 끝날까요. 4단계 병해충 위험 평가만 해도 1년, 2년으로는 해결될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사실상 사과를 수입한다는 건 ‘우리 생’엔 없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과일 수입을 엄격하게 하는 건 진짜 검역을 철저히 해서 병충해로부터 농산물을 지키는 취지도 있습니다만,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검역을 실제로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게 맞다 보니 국내 농업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외국 과일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어막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농민들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싶은데 요즘 하도 사과 값이 무지막지하게 올라가다 보니 그래도 잠깐이라도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수입되지 않을 겁니다. 함부로 예외를 만들었다가는 어디서 둑이 터질지도 모르는 예민한 무역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사과는 1년에 한 번 수확합니다. 지금 사과는 미우나 고우나 올 가을까진 이대로 금사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가을이 오기 전까진 오늘 먹은 그 사과가 아마 가장 싼 사과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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