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SBS 공채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권영인 기자는 사회부 사건팀, 선거기획팀과 정치부, 경제부, 8뉴스부를 거쳐 지금은 세종취재본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항상 끈기있고 심도있는 취재로 뉴스 소비자들에게 한발짝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됐습니다. 총 677.4조 원입니다. 올해 예산보다 20.8조 원, 3.2% 늘었습니다. 올해보다 돈을 더 쓰긴 하는데 3.2%는 많이 늘어난 건 아닙니다. 무슨 상황인데? "국가 재정 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이 훌쩍 넘어 미래 세대의 부담이 한층 더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책임감을 갖고 재정을 효율적·전략적으로 운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산안을 짜는 기획재정부 수장 최상목 부총리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대목입니다. 쉽게 말하면 '쓸 돈이 많지 않다'입니다. 작년에 56조 4,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났습니다. 올해도 최소 10조 원 이상 펑크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 곳간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금이 덜 들어왔다는 건데, 그냥 덜 들어온 게 아니라 '역대급'으로 덜 들어온 겁니다. 이렇게 세금이 덜 걷히면 정부는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을 찍어내서 쓸 돈을 채운다. 두 번째는 덜 들어온 만큼 안 쓰고 아껴 쓴다. 첫 번째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운영 기조와 가깝고, 두 번째는 지금 정부와 가깝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 때 나랏빚이 너무 늘었다면서 건전 재정을 나라 살림 운영 제1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예 GDP 대비 재정 적자를 '-3%' 이상 늘리지 않도록 재정준칙을 법으로 정하려고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찍어내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그래서, 쓸 돈이 없는 겁니다. 내년 예산을 짜는 입장에선 돈 달라고 하는 곳은 많지만, 세금은 덜 들어오는데 어디서 돈을 만들어 내겠습니까. 여기에 저출생대응기획부 곧 출범합니다. 인구 문제는 돈이 없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내년에 관련 예산이 20조 원입니다. 3.6조 원 더 늘렸습니다. 3.6조 원이 적은 돈은 결코 아닙니다만, 인구 절벽에 직면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써야 하는 것 아니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당장 내년에 의대 정원 늘린 것 대응도 해야 합니다. 교수도 더 뽑아야 하고, 교육시설도 확충해야 합니다. 나랏돈만 5년간 10조 원 투입할 예정인데 일단 내년에 2조 원 씁니다. 게다가 공급 부족해서 집값 뛴다 하고, 빌라 시장 무너져서 아파트 전셋값 폭등한다 하니 공공주택 25.2만 호 만드는 데만 내년에 14.9조 원을 씁니다. 그래도 600조 원 넘는 돈이 남는 거 아니냐 생각하실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산은 크게 의무 지출과 재량 지출이란 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의무 지출은 공무원 월급 같이 꼭 의무적으로 나가는 돈을 말합니다. 이게 365.6조 원입니다. 677.4조 원 중에 55.6%를 차지합니다. 그나마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돈을 더 투입할 수 있는 게 재량 지출인데 311.8조 원입니다. 벌써 저출생+의대 증원+공공주택으로만 10% 넘게 쓴 겁니다. 그래서 돈을 아낄 곳을 찾아야 했는데 찾긴 찾았습니다. SOC입니다. 사회간접자본이라 불리는 SOC는 대표적 선심성 예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도로 깔고, 철도 놓고, 다리 놓는 사업입니다. 예산 항목 12개 가운데 유일하게 SOC만 내년에 3.6%. 9,000억 원 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막힌 묘수가 하나 등장합니다. 대한민국 2025년 예산안 최고의 히트 상품 '1/3'은 여기서 탄생합니다. 한 걸음 더 SOC 예산에서 주택처럼 건설 기간이 있는 예산은 원래 사업이 잡히면 사업 시작 연도에 예산을 100%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앞으로 공공주택을 짓는 데 3년간 1,000억 원이 든다고 하면 첫해에 1,000억 원을 잡는 겁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런 계산법으로 운영해 왔는데 이걸 내년부터는 100%를 반영하지 않고 3년간 1/3씩 나눠서 잡기로 한 겁니다. 정확한 수치는 33.4%입니다. 1,000억 원 예산으로 잡아야 할 사업이 갑자기 334억 원짜리로 바뀐 겁니다. 이 마법과 같은 효과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다른 데 쓸 돈이 생깁니다. 없는 살림 쪼개서 살고 있는데 당장 1,000억 원 묶여 있어야 하는 돈 가운데 2/3, 666억 원의 '공돈'이 생긴 겁니다. 2년 연속 세금 펑크가 나서 곳간도 말랐는데 SOC 계산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 돈줄이 터진 겁니다. '1/3'만 반영해서 얼마나 많은 여윳돈이 생겼는지 총량은 알지 못합니다. 그건 기재부도 밝히진 않습니다. 하지만 SOC 예산이 전체 25.5조 원이면 여윳돈의 규모는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돈을 덜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 기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재정준칙 GDP 대비 재정 적자 '-3%'를 지키는 걸 지상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재정 적자 전망치는 '-2.9%'입니다. -3%에서 딱 0.1% 더 내려왔습니다. 만약 SOC 사업에서 첫해 1/3만 반영하지 않고 원래 하던 대로 100%를 다 반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선 당연히 SOC 사업 예산은 -3.6% 감소가 아니라 플러스로 돌아섰을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GDP 대비 재정 적자 전망도 -3%를 넘어섰을 겁니다.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고지 '-3%'가 더 멀어지는 겁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 '1/3' '1/3' 이 계산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나라 곳간에 돈이 들어차고, 건전 재정으로 맞춘다고 쥐어 짜내는 예산에도 숨통이 트인 겁니다. 정말 '신의 한 수'입니다. 그렇다고 이 계산법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정부 설명대로 100% 다 첫해 반영됐더니 돈을 깔고 앉아 있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해 쓰는 돈만큼 반영하겠다는 건 명분이나 실리나 다 불합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신의 한 수를 누가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럴 때를 위해서 남겨둔 건가 싶을 정도로 결정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만약 GDP 대비 재정 적자를 '-3%'로 정말 끼워 맞추려고 온갖 궁리를 다 하던 끝에 찾아낸 묘수라면 이 신의 한 수 '1/3'도 씁쓸한 뒷맛을 지우긴 어려워 보입니다.
"작년 4월에 꽃필 때 딱 이틀 동안 영하 2도 아래로 내려갔더니 벌어진 일이여." 무슨 말이냐고요? 1년 만에 103% 상승, 통계 작성 후 전년 동기 대비 최고치 상승. 각종 물가 상승 기록을 갈아치운 배 이야기입니다. 배가 왜 이렇게 비싸진 건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년 봄까지 간 겁니다. 사과도 마찬가지, 복숭아도 마찬가지. 그때 이틀간 냉해를 입었더니 가을에 배가 30% 이상 줄어들었던 겁니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습니다. 당연히 물가는 올라갔습니다. 배 하나가 지난달 물가지수를 0.06%p나 끌어올렸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도대체 날씨가 물가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거야?" 사실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과일값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비싸고, 날씨 조금 나빴다 하면 채소들도 여지없이 가격이 치솟곤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연구자료 같은데 이번에 한국개발연구원, KDI 이승희 연구위원이 내놓은 자료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기상 여건 중에 가장 물가에 영향이 큰 건, 강수량이었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 연구위원은 강수량과 기온을 중심으로 날씨 충격과 물가 변동을 분석했는데, 2003년부터 20년 치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에 비가 평균치보다 100mm 더 내리면 물가는 0.07%p 오르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물가는 전체 물가를 뜻하는 소비자물가지수입니다. 당연히 농산물이 영향을 더 받겠죠. 과일 같은 신선식품을 따로 모은 신선식품지수는 100mm 비가 더 내리면 0.93%p 더 올랐습니다. 거의 1%p와 다름없습니다. 요즘 날씨 때문에 가격이 두 배, 세 배 올라가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던데 고작 1%p밖에 안 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여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변수가 있습니다. 우선 100mm란 숫자입니다. 한 달에 평균 강수량보다 100mm가 더 왔을 때 신선식품지수는 1%p 오릅니다. 여기서 한 달이 아니라 두 달, 석 달 이렇게 더 내렸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봤더니 구체적인 숫자는 나오진 않았지만 거의 정비례해서 물가는 오르는 것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1년 중 석 달만 평균 강수량보다 100mm 이상 비가 오면 3%p 정도 신선식품지수가 오르는 겁니다. 또, 100mm가 아닌 200, 300mm가 오면 어떻게 되나 봤더니 이 역시 양의 관계로 정비례해서 올라가는 패턴을 보인다는 게 연구위원의 말이었습니다. 결국, 평균 강수량보다 200mm 이상 더 내린 게 1년 중 석 달이면 이젠 신선식품지수는 6%p 정도 치솟게 됩니다. 개별 품목이 아닌 한 지수가 6%p 상승하면 전체 물가 상승에 끼치는 영향은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단순히 대입해 보면 신선식품지수가 6%p 정도 더 오르게 되면 소비자물가지수는 0.4%p 정도 올라갑니다. 정부가 1,000억 원을 넘게 투입해서 대응을 해도 0.1%p가 내려갈까 말까 하는데 0.4%p는 어마어마한 상승치인 겁니다. 한 걸음 더 또 하나 눈길 가는 건, 똑같이 100mm가 더 내렸을 때,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때가 가장 영향을 크게 받을까요. 답은 여름입니다. 100mm가 더 왔을 때 평균적인 물가 상승치는 말씀드린 0.07%p입니다. 그런데 이게 여름철에는 0.09%p로 30%쯤 더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비가 내리더라도 여름이 물가 충격이 더 크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금방 수긍이 갔습니다. 다른 계절보다 여름에 나오는 과일과 채소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시설에서 재배하는 채소나 과일이 많기 때문에 날씨 충격에 덜 노출된다는 겁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한 가지 좀 의아했던 건 기온이었습니다. 이상 기온이 농산물 물가에 꽤 영향을 줄 것 같은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월 평균 기온보다 1도가 더 높거나 낮을 때 신선식품물가는 0.04%p 올랐습니다. 그리고 전체 소비자물가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봄 단 이틀간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더니 사과꽃이며 배꽃이 얼어붙어서 지금까지도 과일 대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0.04%p밖에 안 된다는 건 납득이 잘 되진 않았습니다. 연구위원의 설명은 단위 기간을 한 달 단위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틀, 사흘 단위의 급작스러운 이상 저온이나 고온 현상은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 결론도 '이상 기온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영향은 강수량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다'였습니다. 기온이 미치는 영향은 좀 다른 연구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구체적으로 조사했다는 것 자체는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후 변동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온과 비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보다 이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아마도 2024년이 이 조사에 들어갔더라면 기후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그래프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통계청이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3>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보도자료의 맨 처음을 장식한 그래프입니다. 무슨 상황인데? 대한민국이 얼마나 안전한지 관련 지표와 통계를 모은 자료에서 첫머리를 차지한 건 <(형법상) 범죄 발생률>입니다. 가장 위에 있는 게 대표치인데 지난 2022년은 1,952건이 나왔습니다. 10만 명당 발생률이니 인구 5,000만 명이라고 할 때 1,952건에 500배를 곱하면 전체 발생수와 비슷하게 나옵니다. 지난 10년과 비교하면 딱 중간인 5번째입니다. 많이 발생한 순서로도 가운데, 덜 발생한 순서로도 가운데인 셈입니다. 의미를 부여하면 2022년은 지난 10년 중에 범죄 발생으로는 "중간쯤 안전했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안전보고서'라는 제목임을 감안하면 가장 대표성이 있는 지표를 앞에 뒀을 텐데, 성적은 중간으로 나왔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다른 '안전 지표'들은 얼마나 안전할까요? 두 번째로 등장한 지표는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입니다. 한눈에 드러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0년 중 2022년에 성폭력 범죄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왔습니다. 적어도 성폭력 범죄에선 지난 10년 중 2022년이 가장 심각했고, 그래프도 점점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더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통신 매체를 이용한 음란 범죄가 크게 늘었는데 디지털 성범죄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적어도 성범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더 안전하지 않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등장한 지표는 <사이버 침해 사고 경험률>인데 흔히 해킹 피해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다행스럽게도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보안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사악한 창'보다 '건실한 방패'가 강해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또 하나 반가운 지표는 <아동학대 피해 경험률>입니다. 지난 2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꾸준히 올라가기만 하던 아동 학대 피해 경험률이 지난 2022년 확 줄어들었습니다. 21년과 20년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2019년에 가까울 정도로 확연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성범죄처럼 피해자가 더 늘어나고 있는 분야와 비교하면 아동학대는 참 다행스러운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병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 가해로 인한 사망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10만 명당 사망자 수인데 사고나 폭력 등으로 숨진 피해자가 10만 명당 0.6명 수준이라는 겁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 걸음 더 정말 안타까운 통계는 바로 이겁니다. <사회적 재난>. 위 표를 보면 지난 10년간 사회적 재난으로 인명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숫자가 나옵니다. 평소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지표인데 2014년 100명 단위로 크게 늘었다가, 2020년부터 1,000명 단위로 갑자기 늘어나더니 2022년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26,576명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도대체 어떤 천재지변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입니다. 모두 304명의 귀한 생명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2014년은 여느 해와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21년과 22년은 코로나19 사망자가 포함된 해입니다. 국가적 전염병 사태는 사회적 재난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코로나19 사망자 2만 6,373명이 인명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022년은 159명이 목숨을 잃었던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해입니다. 코로나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2022년은 203명이 사회적 재난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발병이 없었더라도 2022년의 대한민국은 결코 안전하지 못했던 겁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위 그래프는 경찰 공무원 수입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어서 경찰 1명당 담당하는 주민 수는 처음으로 400명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경찰 공무원이 늘어나면 치안이 강화되고 사회도 안전하게 진보할 것이라고 기대되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10년의 대한민국 성적은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년 대한민국 안전보고서는 부디 한 발 더 안전해져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디자인 : 권민재
88과 18. 오늘은 두 숫자로 시작합니다. 88은 정확히 말하면 88.2%입니다. 통계청이 2일에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된 사과값 상승치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해서 88.2%가 올랐다는 말입니다. 88.2%라는 숫자는 사과값이 통계로 잡히기 시작한 1980년 1월 이후 처음 나온 숫자입니다. 사상 최고 전년 동월 대비 상승치입니다. 금사과가 된 지 이미 오래 전인데 여전히 사과값이 오를 천정이 더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발표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똑같은 기준, 전년 동월 대비로 사과값이 18.2%가 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똑같은 사과이고, 똑같은 기준인데 통계청은 88.2%, aT는 18.2%라고 한 겁니다. 한 자릿수 차이도 아니고 70%p나 차이가 납니다. 이건 서로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하고 같을 정도로 서로 정반대에 있는 상황입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걸까요. 어디가 잘못 조사한 걸까요. 무슨 상황인데? 이유는 '할인' 때문입니다. 지금 사과를 비롯해서 과일값이 무섭게 비싸졌습니다. 숫자가 무지막지합니다. 신선 과실은 2월엔 전년 동월 대비 41.2%, 3월엔 40.9% 올랐습니다. 과일이 포함된 신선식품지수는 6개월 연속 두 자릿수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서 농산물 상승분이 물가 상승분 전체의 1/4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흔히 장바구니 물가라고 불릴 정도로 농산물 가격은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줍니다. 사람들의 물가 불만도 크게 나타납니다. 결국 정부가 돈을 풀고 있습니다. 과일 생산이 갑자기 한겨울에 늘어날 턱이 없으니 햇과일 나오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돈을 풀어 값을 낮추겠다는 겁니다. 그게 200억 원에서 800억 원대로 늘더니 선거를 앞두고 1,500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수입 과일 가격 낮추고, 사과와 배 가격 할인 행사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트에 가보면 사과나 배는 20~30%씩 할인 행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2,000. 이 숫자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해 1년 동안 늘어난 혼인 건수입니다. 12년 동안 내리 줄어만 들었던 혼인 건수가 지난해 반등한 겁니다. 집값, 양육 부담 등으로 결혼 안 하려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는데 2천 쌍의 부부가 더 늘었다는 건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전체 결혼 건수는 19만 4천 건으로 3년째 20만 건을 밑돌았습니다. 신혼부부가 20만 쌍이 나오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2천 쌍의 부부가 더 늘어났지만, 20만 건 벽을 넘진 못했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참 답이 안 나오는 인구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해서 첫째 아이를 낳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년입니다. 아이를 안 낳으면 안 낳았지, 낳으면 2.5년 안에 아이를 가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 늘어난 2천 쌍의 부부가 정말 바람직하게 모두 아이 한 명씩 낳으면 어떻게 될까요. 2천 명의 신생아가 2.5년 안에 새로 태어나는 셈입니다. 1년으로 계산하면 어림잡아 8.9백 명의 아이가 출생아로 더 잡히게 됩니다. 이건 2천 쌍의 신혼부부가 모두 한 명씩을 낳는다는 희망에 기반한 숫자일 뿐이고,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생률 0.7명으로 보면 2천 쌍이 1천4백 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것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2천 명보다 훨씬 더 적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사장님~ 좋은 땅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이따금씩 받게 되는 '좋은 땅' 투자 권유 전화. 어차피 지킬 수 없는 내 번호지만 그들에게 전화번호가 알려진 게 일단 별로 기분 좋지 않고, 느닷없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탐탁지 않고, 욱 하고 순간 뭔가 치밀어 오르다가 갑자기 그런 좋은 땅 한 조각 없다는 현실에 난데없는 허탈함이 몰려오는 그 전화. 이른바 투기꾼들의 온상, 기획부동산 광고 전화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사유 재산 개념이 생긴 이후의 인류 역사와 맞먹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치 없는 물건을 거짓으로 속여서 비싸게 팔고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국세청이 이 기획부동산들을 조사했더니 역시나 탈세로 의심되는 건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23개 부동산 업체, 96명이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개발정보를 흘려서 사람들 눈멀게 하고 자기들이 사들인 땅을 몇 배, 몇십 배 더 비싸게 팔아버린 사람들이 세금을 제대로 낼 생각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 무슨 상황인데? 이번에 드러난 곳은 경기 남부권이 많았습니다. 서울 주변 웬만한 땅은 이미 건물이 올라섰고, 최근에 GTX나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이슈로 들썩이고 있는 게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기획부동산 일당이 손댄 곳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땅인데 철길이 지나가는 논이었습니다. 철길 주변에 역이 들어서고, 개발이 될 거라면서 그 땅을 산 지 한 달 만에 6명에게 쪼개서 되팔았습니다. 한 달 만에 뻥튀긴 돈은 3배. 그 땅은 개발 자체가 어려운 하천부지고, 개발 계획은 당연히 될 턱이 없는 안이었습니다. 이 땅을 산 사람 중에는 일용직으로 돈을 모은 70대 할머니도 있었는데, 어렵사리 모은 수천만 원을 여기에 묻었다고 합니다. 기획부동산이 할머니를 비롯해 6명에게 쪼개서 팔았기 때문에 이 땅은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 땅이 돼 버렸습니다. 그 기획부동산은 그 땅 주변에서만 수십 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땅을 팔았고, 마찬가지로 쪼개팔기로 재산권 행사도 어렵게 돼 버렸습니다. 세금은 어떻게 안 냈을까요? 가장 쉬운 건 없는 비용을 있는 것처럼 만든 겁니다. 기획부동산은 법인으로 돼 있고, 텔레마케팅이란 마케팅 영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하지도 않는 텔레마케터를 허위로 잔뜩 고용해 놓고 월급을 준 것처럼 '비용' 처리하면 세금을 손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조사에 막 들어간 단계라 정확한 숫자를 말해주진 않지만, 경기 남부권에서만 이런 기획부동산이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혔고, 피해자는 6, 7백 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일용직 70대 할머니 말고도, 연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주변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쿠팡입니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업자들이 불공정행위를 더 못하도록 규제하는 이른바 플랫폼법 때문에 쿠팡과 공정위는 패키지처럼 묶여 다니고 있습니다. 쿠팡을 플랫폼법 적용 대상으로 넣느냐 마느냐, 쿠팡이 빠진 플랫폼법은 무의미하다, 아니다…등등의 주제로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이번에 또, 쿠팡이 등장했습니다. 쿠팡은 하도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1억 7천 8백만 원을 부과받았습니다. 이유는 쿠팡PB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에게 제대로 된 납품단가를 써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슨 상황인데? 물건을 거래할 때 사는 쪽이나 파는 쪽이나 당사자들은 당연히 실제 가격을 적어 놓고 거래를 하게 돼 있습니다. 부동산 계약서를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겁니다. 실거래 가격을 꼭 쓰도록 합니다. 세금 덜 내려고 다운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고, 시세 조종을 위해 뻥튀긴 계약서를 쓰기도 하는 등 진짜 실거래 가격을 쓰지 않을 때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서면으로 작성한 계약서는 꼭 실거래가를 쓰도록 합니다. 원청과 하청 관계도 똑같습니다. 납품하고 거래할 때 진짜 가격을 적어 놓지 않으면 세금 문제부터 여러 구멍이 생기기도 하고, 실제보다 낮게 적어 놓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하청업체들이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하도급법에는 실제로 거래한 가격을 발주서에 적어 놓지 않은 계약은 아예 서면 계약을 작성하지 않은 것과 같이 봅니다. 다시 쿠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공정위가 이번에 문제삼은 건 쿠팡PB 상품입니다. 자체 브랜드가 없거나 있어도 약한 PB 납품업체들에게 발주자인 쿠팡은 누가 뭐라 해도 갑입니다. 브랜드 파워가 있는 CJ햇반은 쿠팡이 싫으면 나가서 직접 장사를 해도 되지만, PB제품 업체들은 쿠팡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9년 3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쿠팡은 218개 업체들과 거래하면서 발주서에 단가를 실제 거래가로 쓰지 않고 거래를 해왔습니다. 3만 1천405건이 이렇게 거래됐고, 거래금액은 1천134억 원입니다. 공정위는 이건 발주서를 서면으로 주고받지 않은 것과 같다고 간주하고 과징금을 때렸습니다.
오늘은 숫자 56%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어디 내 주식계좌 수익률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과값입니다. 그러고 보니 상승률은 상승률입니다. 지난 1월 사과값이 1년 전보다 56%나 더 비싸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과가 비싸다는 말은 지난해 가을부터 줄기차게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사과만 따로 볼까요. 아래 그래프를 한번 보시죠. 지난해 12월은 1년 전보다 54%, 11월은 57%, 10월은 무려 75%나 더 비쌌습니다. 10월에 피크를 찍고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착시입니다. 전월 대비가 아니라 전년동월 대비이기 때문에 딱 1년 전 ‘이맘때보다’ 최소한 50% 이상씩 비쌌던 겁니다. 요즘은 사과를 ‘박스’로 산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 됐습니다. 사과를 무슨 수박 사듯 해야 하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과는 왜 이렇게 비싸진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사과가 덜 생산돼서 그렇습니다.
오늘은 썩 반갑지 않은 숫자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12%입니다. 이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이동률입니다. 알듯 말듯한 개념인데 대한민국 인구 100명 중 사는 곳을 옮긴 이들의 비율입니다. 적어도 읍면동은 벗어나야 합니다. 2023년에 100명 중 12명이 읍면동 경계를 넘어서 사는 곳을 옮겼단 뜻입니다. 왜 중요한데? 언뜻 보면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100명 중 12명이 이사를 갔다? 어찌 보면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비교해 보면 별로 반갑지 않은 숫자라는 답이 나옵니다. 이건 1972년 이후 최저치입니다. 50년 만에 대한민국 인구이동이 가장 적었던 게 지난 2023년이라는 겁니다.
“더 늦어지면 공정위가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좀 놀랐습니다. 공무원이 잘 쓰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늦어지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책임이란 단어와 비슷한 말만 나와도 긴장하는 게 어쩔 수 없는 공무원의 DNA입니다. 본능적으로 조심하게 됩니다. “책임지십시오”라는 말이 범람하는 정치판에서는 흔한 화법이지만, 공무원 유니버스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30년 경력의 베테랑 고위 공무원이 그렇게 말하는 장면은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낯선 장면이 등장하게 된 건 이른바 '플랫폼법' 때문입니다. 지금 공정위는 구글이나 메타, 그리고 쿠팡과 카카오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한판 싸움을 걸었습니다. 내용은 조금 복잡하지만 아주 간단히 말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갖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불공정 행위를 못하도록 감시를 더 강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원래 그 일을 하는 게 공정위입니다. 이미 공정거래법으로 각종 불공정행위를 규제해 왔고, 플랫폼 사업자들이 각종 처벌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에 카카오도 카카오택시에 콜을 몰아주는 게 걸려서 공정위 제재를 받았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걸 하겠다는데 왜 ‘역사의 죄인’까지 등장하게 됐느냐,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