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삐걱거리는 이유

저는 치약을 욕실장 안에 보관합니다. 물건을 보이지 않게 보관하면 여행지의 숙소에 온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칫솔, 양치 컵, 비누도 모두 장 속에 넣어버리고 싶지만 그것들은 물기가 남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세면대 근처에 둡니다. 수건이나 헤어드라이어 외에도 머리 끈, 빗, 로션 등 자주 쓰는 물건들이 몽땅 욕실장 안에 들어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을 여닫습니다.

무리한 운동을 하면 관절이 손상되어 염증이 생기잖아요. 많이 걸은 날 무릎에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요. 많이 쓰면 닳는다는 사실은 인간이건 물건이건 다 해당하는 말이겠네요. 저의 집 욕실장 문이 삐걱대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네요. 매번 칠판을 긁는 분필 소리처럼 끼익 대니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문틀에 문짝을 연결하는 철물을 경첩이라고 부르는데요, 뼈와 뼈를 연결해 움직임을 주는 관절처럼 경첩은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여닫이 방식의 문이라면 방문이나 창문에도 사용하고, 각종 수납장의 입구에도 사용합니다. 문이 삐걱거릴 땐 경첩에 녹이 슬었거나, 마찰을 줄여주는 윤활제가 부족하거나, 회전하는 부분에 때가 끼어서 뻑뻑해졌거나, 마모나 충격으로 결합 부위가 약간 어긋났거나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요. 모두 경첩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계의 '빨간약', WD-40

이럴 때 윤활제, 또는 윤활 방청제, 방청 윤활제라고 부르는 제품을 사용하면 됩니다. 윤활제는 반질반질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약품, 방청제는 금속 표면에 녹이 슬지 않도록 방지하는 약품을 칭하는데 시중에 판매하는 제품은 두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 저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실은 제품명인 포스트잇이 접착 메모지를 통칭하는 보통명사가 된 것처럼 이 제품군의 대표주자는 WD-40입니다. 기계의 빨간약이라고도 불린다는군요. 여기저기 기계가 다치고 아플 때 두루두루 쓰이고 뚜껑도 빨간색입니다. 좁은 틈새에 뿌릴 수 있도록 빨간 빨대까지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트나 철물점에서 꽤 큰 제품만 봤었는데 다이소에서는 딱풀 크기만 한 76ml 귀여운 제품도 팔더라고요.

입구에 빨대를 꽂아 경첩의 회전 부위에 대고 뿌려보세요. 감쪽같이 소음이 사라집니다. 어디에 뿌려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위치가 아니더라도 적당히 알아서 흘러 들어갑니다. 너무 많이 뿌려서 막 흐른다고요? 닦으면 됩니다. 큰일 안 나요. 저도 대충 경첩의 홈 부분에 뿌렸어요. 이제 욕실장 문은 조용해졌습니다. 앞으로 수백 번 여닫아도 거뜬합니다.

디자인 : 채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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