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 북한에 가기 어려워졌지만, 남북 간 교류가 진행돼 북한 방문이 가능했을 때에는 처음 북한에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북교육이라는 것이 이뤄졌습니다. 북한은 우리와 상당히 다른 체제인 만큼 북한에 가서 의도치 않은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차원이었습니다.

북한에 갔을 때 주의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것은 김일성 일가를 비하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이를 모욕하거나 비하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은 상당한 분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방북교육에서 강조되는 내용 중의 하나는 북한에 가서는 ‘북한’이라는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남한, 북한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국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한(大韓)의 나라에서 남쪽이 남한(南韓), 북쪽이 북한(北韓)인 만큼, ‘북한’이라는 말은 한반도의 북쪽 영토가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와 일맥상통합니다.

북한으로서는 ‘북한’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북한에 가면 ‘북한’이라는 말 대신 ‘북측’이라는 말을 쓰도록 사전에 교육을 받았습니다.

북, 남한을 ‘남조선’으로 불러
그렇다면, 북한은 보통 남한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요?

말을 험하게 쓰기로는 둘째 가면 서러워할 만한 북한인지라 각종 대남 비방문구에서는 갖가지 욕설들로 남한을 비방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남한의 국호를 표기해야 할 때 북한이 대내적으로 통상 사용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남조선’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북한의 국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이것을 줄여 약칭으로 ‘조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조선’이라는 말은 ‘조선’의 남쪽 즉 남한이 북한이라는 나라의 일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남조선’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남북의 관계자들이 만날 때에는 북한 사람들도 ‘남조선’ 대신 ‘남측’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북측’ ‘남측’이라는 말은 남북이 상대를 지칭하는 말로 서로 양해한 용어인 셈입니다.

올해 들어 남한을 ‘괴뢰’로 지칭
그런데, 북한이 올해 들어 남한을 ‘괴뢰’로 지칭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남조선 괴뢰’, ‘괴뢰 역적패당’처럼 남한을 비방할 때 ‘괴뢰’라는 말을 안 써온 것은 아니지만, 올해 중반부터 북한 매체들이 남한을 지칭할 때 ‘남조선’ 대신 ‘괴뢰’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남조선 대통령실’, ‘남조선 정부청사’ 대신 ‘괴뢰 대통령실’, ‘괴뢰 정부청사’와 같이 언급하는 식입니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검색해 보면 ‘괴뢰’라는 말의 빈도수가 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괴뢰’라는 말은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를 지칭하는 말로, 북한에서는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민족 반역자라는 의미를 담아 사용합니다. 남한이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방인데, 주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이 한반도의 정통성 있는 정부라는 시각이 깔려 있습니다.

급기야 북한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보도에서까지 남한을 ‘괴뢰’라고 표기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일 밤 8시 메인뉴스에서 이틀 전 치러진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준준결승 남북 경기 결과를 보도하면서 남한을 '괴뢰'로 표기한 것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대개 그 나라의 국호를 그대로 표기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괴뢰’라는 비속어를 국가 명칭으로 버젓이 박아 사용한 것은 북한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통일부에 전례를 물어보니 1982년 조선중앙통신 자료를 찾아주는 것으로 봐서, 최근 들어서는 북한이 남한을 ‘괴뢰’로 지칭한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조선’이라는 명칭마저 붙여주기 싫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 지칭도
그런데, 이와 함께 북한이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지칭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김여정 담화에서부터 본격화됐는데, 김정은 연설이나 열병식 연설 같은 공식행사와 연설에서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남한의 정식국호를 언급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한을 ‘괴뢰’로 지칭하는 것은 ‘남조선’보다도 격하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데,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일단,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사용이 남한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족속” “대한민국의 군부깡패” “대한민국 졸개” “대한민국의 역적”처럼 북한이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맥락을 보면 남한을 존중한다는 취지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통해 북한이 2국가 체제를 상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라고 했던 김여정 담화(2022년 8월)처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이 아예 남한을 다른 나라처럼 취급하고 따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후의 북한 행태를 보면 그렇게 보기 힘든 면도 존재합니다.

첫째, 김정은은 지속적으로 전쟁 준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난 8월 27일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혁명전쟁 준비”를 언급했고, 8월 29일 총참모부 훈련지휘소 방문에서도 “전쟁준비를 확고히 완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당시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할 멸적의 의지가 용암처럼 끓어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언급들이 군부대 방문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나라처럼 살자는 2국가 체제를 지향하면서 적화통일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둘째, 북한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 중반부터 남한을 ‘괴뢰’로 바꿔 부르는 경우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괴뢰’라는 말은 남한을 비하하며 북한이 한반도의 정통성 있는 정부라는 시각을 담고 있는데, 이는 북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2국가 체제로 따로 살자는 것과는 상반된 움직임인 것입니다.

셋째,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남한 내 반정부시위를 끊임없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따로따로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북한이 남한 내 반정부시위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 이유가 없습니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단어 하나로 남쪽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했다는 면에서 가성비가 큰 선전선동인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용어 사용으로 북한이 2국가 체제를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남한에서 제기되고 있고,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남북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진보-보수 간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이 이를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취지입니다.

북한은 남한에 무관심한가
북한은 그동안 통상적으로 사용해 오던 ‘남조선’이라는 명칭을 얼마 전부터 ‘괴뢰’와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괴뢰’와 ‘대한민국’은 언뜻 보면 상반된 시각의 용어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이 그 해석을 둘러싸고 남한 내에 혼란과 갈등을 유도하려는 북한 대남전략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을 드러내는 차원에서는 비슷한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발과 거부감도 관심의 표현이죠. 여기서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자”며 겉으로는 무관심한 것처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대해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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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이 ‘괴뢰’와 ‘대한민국’으로 바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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