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 미 채권금리 급등세, 왜? 어떤 의미?
‘연준 비공식 대변인’ 월스트리트저널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지금 금리 상승세의 정확한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더더욱 경기 연착륙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즉, 이렇게까지 오를 일은 아니다, 시장에서 ‘불안’이 플레이어로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이런 불안은 어디서 촉발됐을까요? 지난달 21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왜 시장금리는 오히려 그때부터 치솟은 것일까요.

그날 FOMC 위원들은 금리를 동결시키면서, 앞으로의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와 경제전망을 함께 내놨습니다. 그리고 그 전망이 기존에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팍팍’했습니다. 올해 한 번 더 금리인상이 단행될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시장에 충격을 던졌던 부분은 내년 금리전망이었습니다. FOMC 위원들이 저마다 금리에 대한 전망을 찍어서 내놓는 점도표 (말 그대로 19명의 생각이 담긴 19개의 점이 찍혀있는 표)의 중앙값이 내년에도 5.1%에 머무른 겁니다.

지금 미국 기준금리의 상단이 5.5%인데, 내년에도 5.1% 수준으로 5%를 넘는 곳에 머물러 있다? 그전까지 시장에서는 대체로 ‘늦어도 내년 5, 6월 정도 안에는, 2분기 안에는 금리인하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만연했습니다. 인하가 2번이냐, 3번이냐, 횟수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년 연간 금리가 5%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상반기 금리 인하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반기에 인하가 시작된다고 해도 그 인하폭 역시 작을 것입니다.

함께 나온 경제전망이 이 실망을 부추겼습니다. FOMC 위원들은 대체로 미국 경기가 계속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좋은 게 아닌가? 금리가 문제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전망이 낙관적인 편이라는 것은 FOMC 위원들이 미국 경제에 대해서 ‘금리가 높아 힘들어도 좀 더 버틸 수 있지?’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인플레를 잡는 게 먼저다, 웬만해서는 금리가 내려오기 힘들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한 걸음 더 - 파월 의장 발언의 충격
게다가 결정적으로 파월 의장이 ‘중립금리’ 상향 조짐을 다소 긍정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놓습니다. 이게 컸습니다. 중립금리란 참 어려운 개념인데, 금리 그 자체가 경기와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적당한 ‘이상적인 금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중앙은행들의 물가 목표치인 ‘2%’에 0.5%P를 더한 정도인 ‘2.5%’ 정도를 중립금리로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 ‘중립금리’의 기준 자체가 올라갈 수 있다? 중립금리가 2.5%가 아니라 3%,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파월 의장이 시장의 그런 관측에 대해서 살짝 긍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내놓은 게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3분기 들어서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표현 중에 하나는 ‘Higher for Longer’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래갈 것이다, 는 뜻입니다.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훨씬 더 ‘매파적인’ 금리전망과 경제전망이 나온 9월 FOMC 정례회의 결과는 시장 참여자들이 “Higher for Longer.. 진짠가 본데…”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월스트리트의 ‘연준 비공식 대변인’ 닉 티미라오스 기자의 기사는 ‘연준이 이 정도의 혼란은 바라지 않아요. 너무 패닉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또 물가 들썩이게 금리 인하를 섣부르게 기대하지도 말고,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도 읽힙니다. 연준이 원하는 것은 경기 연착륙이지, 시장금리가 불안 속에 치솟아서 상반기의 실리콘밸리뱅크 사태 같은 사고를 내는 게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건 연준 마음이지, 시장이 그런 모범생 같은 존재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 그럼 계속 걱정해야 하나?

적어도 단기 충격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당분간 우리 돈도 약세를 면하지 못할 거고, 자산시장의 출렁임도 좀 더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계속 저렇게 오르진 못할 거란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숫자가 ‘5%’입니다. 미국 경제가 아무리 지금 세계에서 나 홀로 탄탄하다지만, 4.8% 안팎을 맴돌고 있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돌파하게 되면 미국도 부담스러워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그 마지노선입니다.

다음 주부터 미국인들의 학자금 대출 상환이 재개됩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40대 될 때까지 이거 갚느라 힘들었다고 회고한 그 대출입니다. 최근 미국의 캐주얼 브랜드들이 다소 고전하고 있는데, 학자금 대출 갚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서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미국인들에겐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시장금리가 이렇게 치솟는 것이 미국이라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준이 원하는 것은 물가를 잡는 것이지, 경기를 훼손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아무리 미국의 경제가 지금 나 홀로 좋다지만,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뉴욕증시가 다시 상승하고 채권금리가 진정된 것은 이런 조짐들 덕분입니다.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게 오히려 지금으로선 반가운 뉴스인 것입니다. (정확성은 좀 떨어지지만) 민간의 고용지표인 ADP 고용지표에서 최근 임금상승률도 좀 낮아진 걸로 나왔고 구인도 줄어들었습니다. 서비스 구매관리자지수(PMI)들도 경기 둔화 쪽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저축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연체율은 올라갑니다. 이제 일터를 떠나 저축해 둔 걸 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고, 근로소득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기 은퇴를 생각하던 사람이라도 한 번 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임금을 가파르게 올리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좀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근로자들이 빠듯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물가를 가장 장기적으로,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인 임금상승률이 둔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인플레가 꺾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연준이 물가를 자극할 걱정을 덜면서 서서히 금리를 다시 낮추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시장금리도 점차 진정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윱니다.

그러나 우리가 2년 전까지 10년 넘게 익숙했던 저금리는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히 전보다는 높다고 느껴지는 금리를 앞으로도 한동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는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경제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경제위기가 오면, ‘사건사고’가 잇따르면, ‘Higher for Longer’ 같은 얘기는 단숨에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기가 하반기에 둔화되는 모습이 좀 더 확실해지고 인플레가 꺾이는 모습이 나타나면, 그리고 그 사이에 지금처럼 단기적으로 금리가 튀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익숙했던 것보다는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지금 걱정하는 정도는 아닌 ‘중금리’가 논의되는 분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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