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근처 주민이 선관위에 민원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대개 "문제없다"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주민들로서는 황당할 따름입니다. 너무 시끄럽고 못 견딜 것 같아서 전화를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니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관위가 차량 유세 현장에서 직접 소음을 측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관위는 선거운동 시작 전, 각 후보들로부터 차량 유세 확성장치의 정보를 제공받고 일종의 '합격 스티커'를 나눠줍니다. 확성장치가 127데시벨을 넘지 못한다는 시험성적서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현장 소음은 들어보지 않고 "문제없다"는 답변만 하는 겁니다.

문제없는 게 맞을까요? 127데시벨이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취재진은 차량 유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음을 측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서울 김포공항 근처에서 비행기 착륙 소음으로 악명 높은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소음을 측정해 보겠다고 하니 관리사무소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옥상 문 열쇠 뭉치를 취재진에게 건네줍니다. 그만큼 비행기 착륙 소음을 재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겠지요. 비행기 착륙 굉음은 최고 95데시벨 정도였습니다. 경인고속도로 바로 옆에서 잰 차량 소음도 최고 90데시벨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차량 유세 소음의 최고치는 105데시벨. 비행기 착륙 굉음보다 더 컸습니다. 그런데 기준치 127데시벨 이내라서 문제없다는 게 선관위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 기준치는 어떻게 정해진 걸까요? 공직선거법에 원래 이런 기준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준치가 없으면 귀를 때리는 유세 소음이 국민들의 쾌적한 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국회가 2022년 기준을 신설한 것입니다. 그렇게 공직선거법 79조 8항에 "자동차에 부착된 확성장치는 음압 수준 127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이 처음 생겼습니다.

기준 신설 당시의 국회 속기록을 찾아봤습니다. 2021년 12월 28일 국회 정개특위 회의록에 따르면 중앙선관위 관계자가 출석해 이렇게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 기준에 따르면 사람이 외부 소음으로부터 자기를 견뎌낼 수 있는 마지노선이 127데시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습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인간의 마지노선'을 차량 유세 소음 기준치로 제안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WHO 기준으로 최대치를 적용한 것이므로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차원"이라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중앙선관위는 대체 어떤 WHO 기준을 근거로 든 것일까요? 선관위에 요청해 WHO 자료를 받아 검토했습니다. 2000년에 발간된 WHO 소음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가이드라인에는 특정 환경의 소음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와 있습니다. 대중 연설의 경우 중앙선관위가 언급한 127데시벨은 사람에게 '청각 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김도헌 대림대 방송음향영상학부 겸임교수는 "127데시벨은 일반인들이 별로 겪어보지 못할 정도로 큰 소리"라고 했고, 임기정 고려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110데시벨에서 1분 정도만 있어도 청력 손실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국민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게 소음 기준치를 신설하라고 결정했더니, 국회가 '인간 마지노선'을 기준치로 만든 것입니다. 차량 유세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 표를 호소하며 100데시벨 넘는 쩌렁쩌렁한 소음이 울리고, 일부 유권자는 청력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선관위는 "문제없다"고만 하는 현실.

기준치를 초과하면 최고 1,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과태료가 부과된 건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너무 높은 기준치는 사실상 기준치가 아닙니다. 공직선거법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바 있는 김광재 변호사는 "현재 소음 기준이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역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기준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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