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세스 리트윈 교수는 코넬대학교에서 산업과 노동의 관계를 연구한다.

미국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이 이번 주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잠정 합의한 내용을 보면, 영화 업계에만 적용될 법한 조항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작가들이 일하는 작업실의 넓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한 해외 판권 계약 가운데 작가들의 몫을 늘리는 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사실 자동차 노조부터 화이트칼라 중간 관리자를 포함한 사무직 노동자들까지 이번 작가조합의 파업이 어떻게 타결됐는지 그 합의안을 아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파업과 쟁의 끝에 나온 합의안은 디지털 세계의 노사 관계에 기념비적인 선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임금이나 고용 조건, 복리 후생 등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는 사측이 노동자와의 협상에 성실하게(in good faith) 임해야 한다고 노동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기술에 관한 문제는 마치 사업 전략처럼 사측, 경영진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고유 권한으로 여겨진다. 즉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사업에 어떤 식으로 어떻게 도입하고 적용할지는 노동자와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 경영진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는 뜻이다. 노동조합이 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사측이 협상에 임해준다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의제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제외하더라도 노동자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렇지만 미국작가조합은 기어이 인공지능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매우 인상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과거에는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경영진이 기술과 관련된 결정을 다 내려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술에 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초기 단계 논의에서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런데 이런 기술 가운데는 도입됐을 때 고용주는 물론이고 노동자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나마 사측이 협상에 임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부분은 기술이 임금이나 고용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때였다. 이런 관행 탓에 작가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고 협상이 시작됐을 때도 많은 사람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작가조합이 관철해 내는 건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들은 꿈같은 일을 현실에서 구현했다. 작가조합은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벌인 협상에서 고용주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고 도입할지를 협상의 핵심 주제로 삼을 수 있다는 굉장한 선례를 남겼다. 작가조합은 심지어 일터에서 인공지능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와 관련해 노동자들도 사측에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는 선례까지 세웠다.

작가조합이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반 도구를 전면 금지하는 조항을 넣자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놀라시는 분도 있을 거다. 대신 작가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장받고자 했다. 바로 인공지능이 작가의 생산성이나 대본 등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활용하되, 그 작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 가운데 작가들이 인간의 노동으로 기여한 부분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미국작가조합이 쟁취한 가장 큰 결과물이 바로 이 점을 보장받은 거다.

과연 어떻게 해낸 걸까? 우선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인공지능은 작가가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즉, 제작사들은 작가조합에 소속된 작가들을 대신해 인공지능을 고용해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제작사들이 작품 초고를 쓰는 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각본의 저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한 초고를 다듬고 최종본을 탈고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때 작가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작품을 썼을 때처럼 약정된 임금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건 작가들이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 물론 제작사가 이를 허용한다고 계약에 명시한 경우에 한해서다. 반대로 제작사가 계약서에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각본을 써야 한다고 명시하는 건 금지됐다.

이번 협상이 타결된 데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제작사들도 인공지능에 어느 정도 우려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저작권을 명확하게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통 제작사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작가들이 쓴 대본을 토대로 만든 작품에 대한 배타적인 저작권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돈을 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더라도 반드시 사람(작가)이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건 제작사 스스로 저작권을 침해당할 우려를 해소하는 조치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무조건 저항하거나 기술 변화를 가로막으려던 노동자들의 시도는 늘 참담한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1986년 루퍼트 머독이 단칼에 해고해 버렸던 뉴스인터내셔널의 주조 활자 조판사, 식자공 등 노동자 6천여 명에게 물어보라. 당시 머독은 비밀리에 런던의 오래된 언론사 거리 플릿 스트리트에 있던 인쇄소를 닫고, 도크랜드에 마련한 최첨단 기계를 활용한 인쇄소로 신문 생산 공정을 이전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6천여 명이 해고됐는데, 당시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계, 기술을 이용한 재교육과 점진적인 업무 전환, 재배치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는 파업에 모든 걸 걸었고, 결과적으로 패배해 모든 걸 잃었다. 머독은 결국, 신문 발행과 배달에 단 하루도 차질을 빚지 않으면서 인쇄 공정을 바꾸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냄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미국작가조합은 좀 더 성공적인 노동자들의 쟁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1960년에 있었던 국제항만창고노조의 파업이 그렇다. 당시 해리 브릿지스 노조위원장은 변화에 거부감을 보이던 일선 노동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즉, 항만의 물류가 컨테이너화와 컨테이너 관리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 과정에서 항만 물류 부문의 일자리 자체가 많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추세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브릿지스 위원장은 컨테이너화 자체에 반대하는 싸움 대신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해고되는 노동자에게는 퇴직금이나 해고 수당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짜서 협상에 임했다.

브릿지스 위원장도 이런 전략을 혼자서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앞선 사례에서 배웠다. 바로 1950년에 전국 광산노조가 협상에 임한 전략이었다. 당시 광산노조는 대형 탄광의 기계화를 수용하는 대신 그로 인해 늘어난 수익을 사측, 즉 광산 소유주가 독점하지 않고, 현장에서 일하는 광부들과 은퇴한 광부들의 연금에도 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협상을 벌여 원하는 걸 얻어냈다.

미국작가조합 내 협상위원회는 인공지능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중요한 협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만약 계약서에 인공지능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면, 사측은 거리낌 없이 챗GPT나 거대언어모델을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제작사들이 작가들에게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더 빨리, 많이 대본, 각본을 쓰도록 권장해 놓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을 쓰는 데 든 작가들의 품과 노동에는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아예 작가들을 배제한 채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시도도 충분히 했을 거다. 미국작가조합은 협상을 통해 인공지능을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늘어나는 수익 중에도 더 공정한 몫을 배분받을 수 있도록 한 계약이었다.

기술 변화로 야기되는 문제를 노조가 단체 교섭을 통해 협상하는 건 대개 중공업 분야에서의 사례와 경험이다. 결국, 기존의 노동조합은 통상 산업화 이후 주로 블루칼라,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과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됐다. 미국 노동자의 85%는 블루칼라 노동자가 아니며, 대부분 서비스직 노동자다. 노동조합이 내게 가져다주는 혜택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술이 변화하면서 대학 학위를 받거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어야 하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게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사는 법이라는 인식도 널리 퍼졌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인공지능이 초래한 거대한 변화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옷을 입고 일하느냐에도 물론 관계없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번 미국작가조합의 협상은 앞으로 사측과 협상에 나설 모든 노조에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이들은 기술을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정면으로 직시하고 이를 둘러싼 협상에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고,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들도 연대를 통해 동료 노동자들은 물론 경영진과도 이윤과 혜택을 적절히 나눠 갖는 법을 협상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앞으로 노조 협상가들은 사측이 기술 변화를 둘러싼 논의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려 할 때 미국작가조합의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협상에 사용된 언어와 여러 용어는 인공지능을 전면 금지하거나 아무런 규제 없이 사용하게 하는 양극단의 접근법을 배제하고 최적의 절충점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즉 노동자와 고용주, 노동조합과 비조합원 모두에게 참고할 만한 모범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인간의 노동이 생산에 기여하는 방식과 비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집중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생산성 자체가 늘었다는 점, 즉 파이가 커졌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고용주에게 새로운 기술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노동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쓰도록 요구할 수 있다.

미국작가조합의 이번 협상은 좀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다른 노동조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 Workers)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시장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전환점에서 한창 파업을 벌이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GM이나 포드, 스텔란티스(구 크라이슬러) 같은 대형 제조사들이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제작했고, 이 안에서 자연히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면, 전기차는 다른 교육을 받고 새로운 기술을 지닌 노동자들이 더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곧 전미자동차노조의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자동차의 비중이 작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노조는 전기차로의 전환 자체를 막아서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전기차로 전환한 뒤 거둘 막대한 수익의 일부를 공정하게 나누자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임금 인상과 기존 노동자들에 대한 재교육 강화, 해고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가르친 뒤 새로운 일자리로 인력 재배치를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미국작가조합이 사측과 합의한 새로운 계약이 정확히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고용주들이 이번 합의문을 좋은 선례로 삼아 연구한다면,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작가조합도 전미자동차노조와 같은 대형 노조에 일정 부분 진 빚이 있다. 바로 이들 전통적인 노조가 여러 번 시행착오 끝에 설립한 단체 교섭이라는 전략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단체 교섭은 물론 비효율적일 때도 있지만, 효과적일 때도 있다. 이번 협상을 통해 작가들은 시장의 원칙과 기준을 다시 쓰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겼다. 인공지능에 관해 이들이 타결한 협상은 조합원으로서 작가의 삶 이상으로 훨씬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쨌든 작가들은 동화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원문 : Hollywood’s Deal With Screenwriters Just Rewrote the Rules Around A.I.

(c) 2023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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