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동결된 이란 자금은 대체 뭐고, 여기에 국내 기업의 수출대금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동결된 이란 자금은 간단히 말하면 ‘이란 원유 수입 대금’입니다. 우리나라 정유사 중에서 현대 오일뱅크와 sk 이노베이션은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해 왔습니다. 이란은 당연히 원유값을 달러나 유로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2010년부터 미국은 이란에 대해 제재를 해왔습니다. 이란과 교역하거나 사업을 하는 기업들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특히, 미국 달러를 금융기관을 통해 이란 측에 주는 것을 강력하게 제재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와 이란은 독특한 거래 방식을 도입하기로 합의합니다.

2010년 10월 1일, 이란과 우리나라는 ‘원화 결제 계좌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달러’를 거치치 않고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란은 석유가 국유화돼 있습니다. 석유를 파는 회사인 ‘내셔널 이란’도 국영기업입니다. 수입 대금도 이란 중앙은행이 일괄 관리합니다. 그래서 이란은 국내 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를 열고 이 계좌를 통해 대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당시 정부 지분이 있던 우리은행과 IBK 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가 열렸고 이 계좌에 우리 정유사들이 이란에 줘야 할 대금이 ‘원화’로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원화’로 계좌에 있는 돈이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달러나 유로로 바꿔서 이란으로 송금받아야 하는데 미국 제재 때문에 여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이란 수출 대금을 이 계좌 돈으로 처리하자는 방안입니다. 국내 은행에 이란 정부의 돈이 쌓여 있으니, 이란이 국내 기업에게 수입하는 물품의 대금을 이 계좌 돈으로 지불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란 바이어가 국내에 있는 무역회사로부터 휴대폰 10억 원 어치를 수입하기로 합니다. 그럼, 이란 바이어는 국내 무역회사에게 지급할 10억 원을 자국 화폐로 이란 은행에 입금합니다. 이란 원유 대금 계좌를 가지고 있는 국내 은행은 이란 은행에 돈이 입금된 걸 확인합니다. 국내 은행은 국내 기업에게 수출대금 10억 원을 원유 수입 계좌에서 빼서 지급합니다. 원유 수입 대금이 있는 국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서 국내 기업에게 주는 겁니다.

양국 모두에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한국에서 전자제품과 철강 등을 수입해 왔습니다. 수입하는 데 드는 돈을 원유를 판 돈에서 지급하니 손해 볼 일이 없었습니다. 미국 제재를 피해서 원유도 수출하고, 국내 전자제품 등도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원유는 꼭 수입해야 하는 품목인 데다, 국내 계좌에 국내 기업들의 수출 대금이 쌓여 있는 셈이니 수출대금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인식됐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2
2019년 5월 문제가 터졌습니다. 먼저, 지난 2018년 5월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 전면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란은 물론 이란을 도우려는 나라에게 경제적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미국은 2018년 11월까지 이란의 핵을 국제사회가 검증하고 사찰한다는 조건으로 제재를 풀어줬던 유예조치들을 파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 여파가 미쳤습니다. 2019년 5월, 국내에 있던 이란 자금이 동결됐습니다. 국내 은행에 있는 이란의 원유 수입 대금 계좌의 거래가 중지된 겁니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이 계좌에 있는 원유 수임 대금에서 수출 대금을 받아왔는데,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갑자기 막혀 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들은 수천 억 원에 달하는 이란 수출 대금을 몇 년째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더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 규모를 파악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했듯이 5천 억 원 이상을 남겨두고, 이란 자금을 이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국내 기업들이 받을 수출 대금 5천 억 원 이상이 아직 국내 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모든 게 해결된 걸까요. 아닙니다. 아직 기업들이 미수금을 받을 때까지는 적잖은 절차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의 이란 제재는 유효합니다. 이번 동결 자금 해제는 수감자 석방 협상과 연계된 특별한 케이스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국내 은행입장에서는 이란 제재로 동결되어 있는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서 거래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지 않으면 돈을 인출해 주는 걸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를 용인해 줘야 합니다. 미국 재무부의 해외자산통제국에게 해당 자금은 동결 해제된 것이고, 이란에게 돈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출해도 문제없다는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해당 은행에서 어떤 이유로 미수금이 생겼다는 근거들, 계약서, 인보이스 등 서류를 제출해서 은행이 심사를 하는 과정도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국내 기업들이 이란과 교역을 하면서 미국의 제재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우리 정부도 수출 대금을 남겨둔 걸 보면 이런 생각은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럼, 후속 조치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을 거 같습니다. 우선, 미국 국무부를 통해 미국 재무부가 국내 은행에 있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대금 지급에 문제가 없다는 확인 조치를 빨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직 미국 수감자들이 완전한 자유를 찾지 못한 만큼 이 협상이 막판에 잘못되면, 모든 것들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외교라인에서는 미국과 이란과의 수감자 협상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수감자들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미국땅을 밟아야지만 모든 게 끝난다는 겁니다.

지난 2021년, 한국케미호가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공해에서 이란 혁명 수비대에게 나포당해 억류됐습니다. 이란이 국내에 동결된 이란 자금을 돌려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한국이 미국의 명령에 따라 이란의 자산을 압류했다”며 “이란 국민의 음식과 약을 빼앗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란과의 관계에서 국내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이 사실상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수감자 협상을 통해 국내에 동결된 이란 자금 문제가 해소되는 건, 이런 측면에서는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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