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주요 가해기업인 애경산업과 옥시가 피해자 치료비 등 피해 회복에 쓰이는 재원인 피해구제분담금 납부를 둘러싸고 또다시 책임 회피에 나선 사실이 지난주 SBS 8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피해구제분담금이란 지난 2017년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 병원비와 생활수당, 간병비 등 최우선 소요 비용 지원을 위해 관련기업 18곳이 책임 비율에 따라 납부한 1,250억 원을 말합니다.

특별법에선 이 돈이 75% 이상 고갈될 경우 추가로 분담금을 거둘 수 있도록 돼 있고요. 실제로 지난해 4월 기준으로 982억 원(78%)이 고갈돼 환경부가 추가 분담금 징수를 위한 절차 추진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올해 2월 1차 때와 마찬가지 규모 1,250억 원에 대해 18개 기업들에게 분담 징수액을 확정해 고지했습니다. 총액 가운데 각 기업들의 분담 비중은 옥시가 54%, SK 27%(SK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 합계), 애경 7.4% 등입니다.

이때 옥시와 애경이 2차 분담금 납부를 문제 삼아 이의신청을 냈습니다. 옥시의 경우 지난 5월 SBS의 관련 보도 이후 이의신청을 취소하며 704억 원을 뒤늦게 납부했습니다. 당시 보도 내용은 영국 본사가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대비해 7,700만 파운드, 우리 돈 1천2백억 원 넘게 예비금으로 쌓아놨으면서도 추가 분담금 704억 납부를 거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애경은 분담금 100억 원은 납부하되 이의신청을 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애경, 2차 분담금 취소 소송
그런데 당시 이의신청 기각 직후 애경산업이 2차 분담금 처분 취소 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낸 사실이 지난주 SBS 보도로 확인된 겁니다. 이와 더불어 애경은 행정소송과 더불어 추가 분담금 징수 규정을 둔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경부는 애경 측이 현재 기소돼 진행 중인 과실치사 등 혐의에 대한 항소심 형사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는 만큼 위헌 심판 제청 여부를 머뭇거리고 있지만, 항소심 선고 이후에는 애경이 헌법재판소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라고 관측하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옥시 역시 지난 5월 환경부에 공문을 보내 2차 분담금 납부가 마지막이라며, 향후 추가로 분담금을 거둘 경우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했습니다.

2차 분담금 납부로 마무리된 줄 알았던 기업들의 반격이 멈추지 않은 셈입니다. 애경산업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정부 과징금 처분에 대해 불복 소송을 낸 바가 이미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구제분담금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병원비, 생활수당, 간병비 등 최우선 지원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위로금이나 피해 배보상금은 둘째 치고라도 분담금이 고갈될 경우 수많은 피해자들의 치료비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문제인 만큼 이걸 거부하겠다는 가해 기업들의 행태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청회서 드러난 가해기업의 분담금 거부 논리는?

대체 옥시와 애경의 추가 분담금 거부 논리는 뭘까요. 해당 기업들이 외부에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만 지난달 26일 국회 환노위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공청회에서 이들의 거부 논리가 드러났습니다.

안식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공청회 진술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특별법에 따라 추가 분담금을 회수에 상관없이 매번 1,250억 원 한도로 얼마든지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관련 조항을 달리 보고 있다. 분담금의 누적 총액이 당초 분담금 1,250억 원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때 이미 1,250억 원 납부했기 때문에 2차 분담금부터는 법률상 거둘 수 없다고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특별법 제35조2(분담금의 추가 징수) 조항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추가분담금의 징수 여부 및 액수는 과거 사용 내역 및 향후 필요한 규모 등을 고려해 환경부장관이 구제자금위 심의 의결을 거쳐 정한다. 이 경우 추가분담금의 총액은 제34조 및 35조에 따라 부과 징수한 분담금의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

즉 1,250억 원이라는 분담금 총액은 누적 기준의 총액이냐 아니면 추가 분담 시 회당 총액이냐 이런 논란인 셈입니다. 해당 조항 해석을 둘러싸고 소송으로 비화된 만큼 공은 재판부 판단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로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옥시와 애경은 지난해 민간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에 대해서도 최종 합의를 무산시킨 핵심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조정안 무산에 이어 피해구제 분담금 납부마저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며 과연 사태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는 건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총액 논란 의미 있나... 분담금 회피 명분 없어
위 조항에서 말하는 분담금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문장이 매번 그렇다는 건지 아니면 모든 분담금을 통틀어 그렇다는 건지 불분명할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분담금이 쓰이는 용도가 피해자 치료비 등 최우선 소요 비용인만큼 가해기업이든 정부든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져야 할 돈입니다. 그 1차적인 책임이 가해기업에게 있다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고요.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성상 장기간 누적적으로 병원비와 생활수당 등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규정 조문을 탓할 게 아닙니다. 책임을 통감하는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추가 분담을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불필요한 소송으로 불신의 골을 더 깊게 해 문제 해결만 더 더뎌질 것 같아 우려됩니다.

이 와중에 '분담금 면제' 주장한 조정위
또 하나 걱정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는 오히려 최근 국회 환노위에 특별법 개정 필요성을 밝히며 '분담금 면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조정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피해자들에게 구제급여에 상당한 금원을 지급한 경우 해당 금원에 상응하는 금원은 추가 분담금 납부금액에서 면제한다"라고 명시하자는 겁니다. 과연 지금 가해기업들의 분담금 면제가 우선 논의될 사안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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