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승현 의학기자입니다. 의학이 어렵게만 느껴지시나요? 진료실에서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 재미있게, 생생하게 들려드리겠습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3차 흡연의 위험! 담배연기 회피 만으론 벗어날 수 없다 귀로 듣는 스브스 프리미엄 《3분 스프》입니다. 최신 이슈와 트렌드를 간결하게 정리해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셔서 내가 흡연한 것과 같은 영향을 받는 '간접흡연'은 이제 많이들 알고 계시는 개념이죠. 그런데 '3차 흡연'도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담배의 유해물질이 흡연자의 근처에 달라붙어 있다가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되어 피해를 끼치는 3차 흡연은 특히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3차 흡연의 개념과 위험성을 3분 안에 설명해드립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낭독 : 김선재 아나운서 녹음·편집 : 하지윤 유승현 의학기자의 밤의 해바라기 전문 보기 ► '담배 연기 회피'만으론 벗어날 수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왜 일찍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묻는 어린 딸의 질문에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담배를 많이 피우셨거든. 해소병으로 돌아가셨단다.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워서 벽지가 이렇게 노랗게 변한 거야.” 도배를 새로 하지 않은 옛 한옥집 안방 벽지는 정말 노랗게 색이 바래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소병이 뭔지 몰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병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아닌 색이 바래 버린 벽지마저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더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간접흡연(secondhand smoke)의 위험 흡연이 많은 질병과 사망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흡연은 흡연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셔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영향을 받는 것을 간접흡연(secondhand smoke)이라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 사용으로 매년 800만 명 이상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중 700만 명이 직접흡연, 약 120만 명의 비흡연자가 간접흡연에 노출되어 사망한다고 합니다. 간접흡연에 의해 노출되는 유해물질은 수천 가지인데 이 중에는 비소, 벤젠, 크롬 같은 발암성 물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물질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비흡연자도 폐암, 후두암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공중보건위생국 보고서에서는 비흡연자들이 흡연자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 폐암 위험이 20~30% 높아진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소아에서는 천식이 악화되거나 폐렴이 생길 수 있고 성인에서는 심뇌혈관질환의 위험도 높입니다. 이러한 간접흡연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개념이고 많은 사람들에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기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간접흡연뿐만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담배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됐습니다. 직접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아도 흡연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개념이 등장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흡연으로 발생하는 유해물질 가운데 많은 가스 형태의 물질이 흡연자의 몸이나 옷, 집안의 벽, 가구, 차의 시트, 천장 같은 곳에 달라붙게 되는데요. 이렇게 흡착된 화학물질이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과정을 통해 흡연의 영향에 노출되는 것을 ‘3차 흡연(thirdhand smoke)’이라고 합니다. 흡착은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이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다시 배출되는 데는 수시간에서 수개월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또 흡연을 통해 생성되는 미세먼지도 표면에 흡착되었다가 다시 떠다니거나 기체 형태의 화학물질과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흡연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흡연에 의한 오염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겁니다. ‘3차 흡연’이라는 단어 자체는 하버드 암센터에서 근무하는 위니코프라는 소아과 의사가 2009년에 ‘Pediatrics(소아과학)’이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전부터 담배를 피웠던 공간에 있거나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온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3차 흡연, 얼마나 위험할까 2004년에 시행한 한 연구에서는 생후 1년 미만의 아기가 있는 가정에서 3차 흡연의 영향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① 가족이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 ② 흡연자가 있지만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 ③ 흡연자가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가정 세 군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먼지, 실내 공기, 실내 표면의 니코틴 농도와 신생아 소변에서 코티닌(니코틴의 주요 대사산물, 담배 연기 노출의 생체 표지자로 사용)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흡연자가 있지만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에서 간접흡연의 노출 정도는 비흡연자 가정에 비해 5~7배 높았고,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3~8배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소변의 코티닌은 가족이 모두 비흡연자인 가정의 아기에서는 0.33ng/ml, 집 밖에서 흡연하는 가정의 아기에서 2.47ng/ml, 집에서 흡연하는 가정의 아기에서 15.47ng/ml가 검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흡연자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실내 먼지, 표면, 공기 등을 통해 흡연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2011년에는 흡연자가 이사를 나간 집에 비흡연자가 이사를 왔을 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흡연자가 살았던 집의 먼지, 바닥 표면, 공기 속 니코틴 농도는 비흡연자가 이사 오면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흡연자가 거주했던 집이 비흡연자가 거주했던 집보다 높았고, 새로 이사 온 비흡연자의 손가락 니코틴 농도는 흡연자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한 경우가 비흡연자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한 경우보다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흡연자가 이사를 나가면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을 위해 2달간 집을 비워두고 청소한 경우에도 이 영향은 지속됐습니다. 이후 2013년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250개의 렌터카를 조사했더니 흡연 차량이 금연 차량보다 차량 내부 니코틴 농도가 2-4배 높았고, 발암물질 농도까지 더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미국 연구진은 3차 흡연에 의해 호흡기 세포 유전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비흡연 여성들의 비강 상피세포를 채취해서 각각 3시간 동안 깨끗한 공기와 접촉 후 3차 흡연 상태에 노출시킨 뒤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단 3시간의 3차 흡연 환경 노출만으로도 건강한 비흡연자의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관찰됐습니다. 장기간 노출되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산화 스트레스 현상도 관찰됐습니다. 3차 흡연에 노출된 사람 코 표피에서의 유전자 영향 (출처: Thirdhand Smoke Exposure and Changes in the Human Nasal Epithelial Transcriptome, JAMA 2019.) 3차 흡연으로 인해 니코틴 같은 물질이 다시 방출되는 것 외에도 실내 표면에 흡착된 니코틴이 공기 중의 아질산과 반응해 발암성이 높은 담배 특이 니트로사민(TSNA)을 만들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유해 물질들은 오랫동안 실내에 잔류할 수 있는 걸로 알려졌는데 흡연자가 거주하는 가정에서 금연 후 6개월이 지나도 오염물질이 존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에서, 특히 바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성인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는 아이들에게 3차 흡연은 특히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연구팀이 6~11세 어린이 3만여 명을 조사했더니 3차 흡연에 노출된 경우 부모가 비흡연자인 경우에 비해 야간 기침, 만성 기침, 발작적 연속 기침 위험이 20%가량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3차 흡연의 장기적 노출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3차 흡연 자체가 해로운 물질에의 노출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분명히 입증됐습니다. 환기나 일반적인 청소를 통해서도 이 위험을 100% 제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해물질은 피부, 머리카락, 의류에도 흡착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흡연이 이뤄지지 않은 공간으로 위험이 옮겨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새해맞이 결심에 금연을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담배를 끊은 사람들과는 상종하지도 말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금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속칭 ‘독해야’ 하고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본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3차 흡연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건강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막연히 ‘밖에서 피우고 들어오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늦었지만 새해 다짐에 금연을 추가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참고자료 1.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The Health Consequences of Smoking—50 Years of Progress: A Report of the Surgeon General. Atlanta: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National Center for Chronic Disease Prevention and Health Promotion, Office on Smoking and Health, 2014. 2. Beliefs about the health effects of "thirdhand" smoke and home smoking bans. Pediatrics 2009; 123:e74-9. 3. Households contaminated by environmental tobacco smoke: sources of infant exposures. Tobacco Control, 13, 29-37, 2004. 4. Towards smoke-free rental cars: an evaluation of voluntary smoking restrictions in California. Tobacco Control 2013;22:201–207. 5. When smokers move out and non-smokers move in: residential thirdhand smoke pollution and exposure. Tobacco Control 2011; 20: e1. 6. Formation of carcinogens indoors by surface-mediated reactions of nicotine with nitrous acid, leading to potential thirdhand smoke hazards. Proc Natl Acad Sci U S A. 2010 Apr 13;107(15):6576-81.
즐거운 설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분도 계실 것 같고, 휴식을 취하며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맛있는 음식들인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맛과 음식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다섯 가지 맛... 떫음은 맛이 아니라고? 인간의 혀는 오미(五味)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느낍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또 어떤 맛이 있을까요? 매운맛, 떫은맛, 느끼함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매운맛은 통각, 떫은맛은 압각으로 분류됩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칠맛입니다. 미각은 생명 유지와 직결된 감각인데 어떤 것을 먹고 마실 것인가를 평가하는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 영양소는 섭취하고 독성 물질은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을 선택하는 쪽으로도 진화해 왔습니다. 단맛은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탄수화물을 적절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신맛은 익지 않은 과일, 상한 음식을 인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짠맛은 적절한 염분을 섭취함으로써 체내의 적절한 수분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쓴맛은 독성이 있는 물질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감칠맛은 성장과 신체의 유지를 위해 적절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감칠맛은 어떤 맛일까 출처: Ajinomoto 그림에 쓰여있는 다섯 가지 맛의 단어 중 맨 오른쪽의 umami(うま味)라는 단어가 보이시나요? 맛있다는 뜻의 ‘우마이(うまい)’와 ‘맛(味)’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흔히 우리가 맛있는 뜻으로 알고 있는 ‘오이시이(おいしい)’가 좀 더 점잖은 표현이라면 ‘우마이’는 더 1차원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우마미는 우리말로 감칠맛이라고 번역되는데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감칠맛은 1.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2.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영어로는 savory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1. 맛 좋은, 향긋한, 풍미 있는, 2. 즐거운, 기분 좋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칠맛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07년 일본 도쿄대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는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국물을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내에게 물었는데 다시마 국물이라는 답을 들었답니다. 그는 그 맛을 ‘우마미’라 칭했고 국물의 성분을 분석한 끝에 1908년에 마침내 그 맛의 근원이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glutamic acid)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치즈, 절인 고기, 토마토, 버섯, 연어, 스테이크, 멸치 같은 음식과 모유에도 글루탐산이 들어있습니다.) 1년 뒤 글루탐산과 나트륨을 결합하는 방법을 통해 '글루탐산나트륨(MSGㆍmonosodium glutamate)’이라는 조미료를 발견해 이를 '아지노모토(味の素)'라고 이름 붙여 상품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맛의 실체는 있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감칠맛을 발견한 지 90년이 넘게 지난 2002년이 되어서야 미국의 연구진에 의해 연구진이 혀에서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가 발견됐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 감칠맛이 정말로 혀를 통해 느끼는 하나의 또 다른 맛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맛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출처: Oxford University Press 혀 표면에 있는 작은 돌기들인 유두(papilla)에는 미각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 세포(taste cell)가 있습니다. 이 세포 50~150개가 장미꽃 모양으로 모여서 미뢰(taste bud)를 만듭니다. 미각 수용체 세포는 신경세포가 아니지만 신경세포와 거의 비슷합니다. 파란색 꽃봉오리 모양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미세융모(microvilli)인데 여기에 미각 수용체들이 분포해서 미각을 자극하는 물질과 만나게 됩니다. 하나의 미뢰 안에서 어떤 수용체 세포는 단맛을 감지하고, 다른 세포들은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에 대한 수용체를 가지고 각각의 맛을 받아들입니다. 이 세포의 평균 수명은 10일 정도로 아주 짧습니다. 놀랍게도 감칠맛보다 역사가 유구한 쓴맛(2000년), 단맛(2001년), 신맛(2006년), 짠맛(2010년) 수용체가 발견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감칠맛 수용체를 발견한 찰스 주커 교수(Charles S. Zuker) 연구팀을 통해 발견됐습니다. 연구팀은 1999년에 혀의 미뢰 세포에서 발현되는 두 가지 수용체를 발견해 각각 T1R1, T1R2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때는 이것이 미각 수용체라고는 추정했지만 어떤 맛을 감지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논문: Putative Mammalian Taste Receptors: A Class of Taste-Specific GPCRs with Distinct Topographic Selectivity, Cell, Vol. 96, 541–551, February 19, 1999 다른 연구팀이 쓴맛을 내는 PROP(6-n-propyl-2-thiouracil)라는 성분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은 5번 염색체의 특정한 위치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주커 박사팀이 발견한 T1R1과 T1R2의 유전자는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고 결국 T2R이라는 수용체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또 이것들이 쓴맛을 감지한다는 것까지 밝혔습니다. 쓴맛을 내는 분자는 수천 가지인데 쓴맛 수용체인 T2R은 30여 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쓴맛 분자들이 결합해 쓴맛이 감지됩니다. 5가지 맛수용체와 맛의 전달 (출처: Gustatory Signaling in the Periphery: Detection, Transmission, and Modulation of Taste Information, Biol. Pharm. Bull. 33(11) 1772—1777 (2010) 맛을 내는 분자들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미각 수용체의 수는 거기에 비해 적습니다. 각각의 미각 수용체 세포는 한 가지 종류의 맛에 대한 수용체를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1년 쓴맛에 이어 단맛 수용체가 밝혀졌고 2002년에는 위에서 말했던 감칠맛 수용체가 밝혀졌습니다. T1R2와 T1R3가 결합되면 단맛을 감지하고, T1R1와 T1R3가 결합되면 감칠맛이 감지됩니다. 단맛과 감칠맛 모두 좋은 느낌을 줍니다. 두 수용체는 모두 T1R3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세포에서 T1R1과 T1R2가 동시에 발현하지는 않았는데 단맛과 감칠맛은 각기 다른 경로로 뇌에 전달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맛, 혀에서 뇌까지 시간이 흘러 2015년에 주커 교수 연구팀은 중추신경계에도 개별적인 맛에 각각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쥐의 중추신경계에 있는 미각 뉴런이 활성화될 때 형광으로 표시되도록 해놓고 5가지 맛이 나는 먹이를 준 뒤 내시경으로 관찰했더니 각각의 맛에 대해 각기 다른 중추신경세포가 반응했습니다. 맛을 감지하는 혀와 느끼는 중추신경계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혀의 맛 지도 혀의 맛 지도 이것과 비슷한 그림, 기억나시나요? 학창 시절 혀의 어떤 부분에서 맛을 느끼는지 보여주었던 일명 ‘맛 지도’입니다. 그림을 보고 매우 신기해하며 단맛이 정말 혀끝에서 잘 느껴지는지 사탕을 입안에서 여기저기로 굴려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지도는 1901년 독일의 헤니히 교수가 혀의 영역에 따라 맛을 느끼는 민감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을 1942년에 에드윈 보링이라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가 번역하면서 특정 맛을 느끼는 혀의 위치가 따로 있다고 해 와전된 결과입니다. 혀 전체에 고르게 흩어져 있는 약 8천 개의 미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5가지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제6의 맛, 제7의 맛? 맛과 관련해 계속되는 연구들 5가지 맛 외에도 지방 맛, 금속 맛, 탄수화물 맛, 깊은 맛, 물맛 등이 ‘제6의 미각’ 후보로 논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제6의, 제7의 미각도 밝혀질 것인가 기대가 됩니다.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너무 좋아했던 음식인 순대의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물컹한 질감만 느껴졌을 때의 충격과 슬픔이 생각납니다. 다행히 지금은 미각이 회복되어 맛있는 음식들을 잘 즐기고 있는데요. 주커 교수팀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연구를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방을 감지하는 센서가 내장에도 있어서 혀에서 지방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도 지방이 내장에 들어가면 이 센서가 활성화되고 뇌에 기름진 음식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맛있다고 너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또다시 기름진 음식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순환고리가 생길 수 있으니 과식하지는 말되, 미각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연휴를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참고자료 1. Sensorial Perception of Astringency: Oral Mechanisms and Current Analysis Methods, Foods. (2020 Aug; 9(8): 1124.) 2. 감칠맛의 발견 영상 (출처 : Ajinomoto) 3. An amino-acid taste receptor(Nature volume 416, (pages199–202 (2002)) 4. Putative Mammalian Taste Receptors: A Class of Taste-Specific GPCRs with Distinct Topographic Selectivity, (Cell, Vol. 96, 541–551, February 19, 1999) 5. A Novel Family of Mammalian Taste Receptors, (Cell, Vol. 100, 693–702, March 17, 2000) 6. T2Rs Function as Bitter Taste Receptors, (Cell, Vol. 100, 703–711, March 17, 2000) 7. Gustatory Signaling in the Periphery: Detection, Transmission, and Modulation of Taste Information, Biol. Pharm. Bull. (33(11) 1772—1777 (2010)) 8. Mammalian Sweet Taste Receptors, (Cell, Vol. 106, 381–390, August 10, 2001) 9. The neural representation of taste quality at the periphery, Nature. 2015 Jan 15; (517(7534): 373–376.) 10. Taste receptor function, Handb Clin Neurol. 2019; (164:173-185.) 11. Gut–brain circuits for fat preference. Nature volume 610, (pages722–730 (2022))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마무리하셨는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것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로 건강검진입니다. 저도 12월의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미루고 미뤄왔던 검진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할 때 검진받으러 오는 분들도 많이 만났고 검진 결과도 수없이 봐왔지만 막상 저의 일이 되니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모릅니다. 제 마음이 흔들리는 눈빛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는지 내시경 검사 전 간호사님이 제 손을 잡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떨리시죠? 마음 편히 먹고 하시면 금방 지나갈 거예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친구가 술자리에서 검진 결과지를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 수치가 높게 나왔는데 나 설마 암은 아니겠지? 너무 무서워.” 확인해보니 감마 지티피(r-GTP)라는 혈액검사 수치가 약간 올라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간에 독성이 있는 알코올이나 약물 등이 간세포를 파괴할 때나 결석, 암 등으로 담관이 막힐 때 상승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술을 안 마시면 내려갈 거니까 걱정 마. 이제부터는 술을 끊자.”고 웃으며 말했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공포가 친구 입장에서는 얼마나 컸을지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보다 직접적인 단어로 더욱 긴장감을 주는 검사 항목이 있는데요. 바로 종양표지자, 암표지자라고도 불리는 검사입니다. 나도 모르게 종합검진 항목에 들어가 있거나 직접 선택해서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다른 검사는 받지 않고 종양 표지자만을 검사해달라고 하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또 명칭이 이렇다 보니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많이 불안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종양표지자는 무엇? 종양표지자(tumor marker)는 종양세포에서 생성되어 분비되거나 종양 조직에 대한 반응으로 정상조직에서 생성되는 물질인데 혈액이나 체액, 조직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종양표지자는 1847년 다발골수종 환자의 소변에서 얻은 ‘벤스-존스 단백’입니다. 1965년에는 캐나다의 Gold 박사가 대장암 샘플에서 종양특이항원을 발견했는데 훗날 이것이 CEA(carcinoembryonic antigen, 암배아항원)로 명명됐고 현재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수백 종류가 넘는 종양표지자가 알려져 있는데 단백질, 호르몬, 효소, 수용체, 유전자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최근 종양 진단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액체 생검 같은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종양표지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종양표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① 특정한 하나의 암에 대해 높은 특이도(specificity, 질병이 실제로 없을 때 검사 결과에서도 질병이 없다고 나오는 비율)를 갖고, ② 증상에 의한 암 진단보다 종양표지자 상승이 치료 결과를 바꿀 정도로 의미 있게 빨라야 하며, ③ 높은 민감도(sensitivity, 질병이 실제로 있을 때 검사 결과에서도 질병이 있다고 나오는 비율)를 가져야 합니다. 그 외에도 비용이 저렴하여 대중적인 선별 검사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이상적이겠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이상적인 종양표지자는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합 검진에서 흔하게 포함되는 종양표지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선별검사’는 증상이 없을 때 병을 조기에 발견할 목적으로 시행합니다. 우리가 건강 검진을 받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혈청 종양표지자의 역할은 암을 진단할 때 보조적인 도구로서 또는 암을 치료하는 과정을 모니터링할 때, 치료 후 예후를 예측하는 데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선별 검사로서 역할이 있는 종양표지자는 전립선암에서 PSA와 간세포암에서의 AFP 정도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종양표지자들이 특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인데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암이 아닌 다른 질환이나 상황에서도 종양표지자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증상도 없는데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선별검사 목적으로 종양표지자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 해석에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사례처럼 종양표지자의 유용성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이해하여 과신하는 경우 암선별검사에 대한 필수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검사에 한계가 있다 또 이 APF와 PSA가 선별검사로서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모든 일반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AFP의 경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검사로는 추천되지 않고 ‘간암 고위험군’에서 주기적인 복부 초음파검사와 함께 간암 선별 검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전립선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PSA 선별 검사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에서는 2012년 PSA 검사는 전립선암 사망률 감소에 미치는 효과는 작거나 없기 때문에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검사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결국 6년 후에는 의사와 상의한 뒤 득과 실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지침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럼에도 70세 이후에는 여전히 PSA 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유지되었습니다.(Screening for Prostate Cancer: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Recommendation Statement) 국내 많은 검진 기관들에서 종양표지자 검사를 선별 검사로 널리 시행하고 있는데, 종양표지자 검사의 목적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54%에서 의심되는 종양을 선별하기 위해 혹은 발견된 종양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종양표지자 검사를 시행하며 32%에서만 기존 종양의 추적검사를 위해 시행한다고 합니다. (Tumor markers in the laboratory: closing the guideline-practice gap) 암 환자가 줄었다고?.. 조기검진의 중요성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 수명인 83.5세까지 생존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6.9%로, 남자는 5명 중 2명, 여자는 3명 중 1명에서 암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만큼 암이 우리에게 아주 먼 질병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신규 암 환자 수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에서 분석을 해봤더니 2020년 처음 진단받은 암환자 수가 24만 7,952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9천 218명 감소했습니다. 과다 진단 논란이 있었던 갑상선암을 제외한 암 발생자는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계속 증가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줄어든 겁니다. 실제로 코로나 때문에 암이 줄어든 걸까요? 아닙니다.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의료 기관 이용이 줄어 진단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2020년 암 검진 수검률은 2019년 55.8%보다 6.2%p 낮은 49.6%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조기 발견이 늦어지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인 위암, 대장암, 폐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은 조기 발견을 통해 발견할 수 있고 실제로 5년 생존율도 미국, 영국보다도 대체로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국가 암 검진은 미루지 말고 잘 챙겨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라도 불안해하고 있을 당신에게 종양표지자의 이상 수치만으로는 암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진단은 진찰과 함께 영상 검사, 조직검사 등을 함께 활용해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시행한 다른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면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고 부족한 검사가 있다면 확인하고, 추적관찰하면 됩니다. 새해를 맞아 어떤 다짐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새해 소망을 물었더니 ‘건강’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혹시라도 검진 결과지를 보고 남모르게 긴장하고 계셨을 한 분이라도 이 글을 통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의 건강만큼이나 마음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올 한 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더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 : 장지혜
코로나19와 함께 한 시간도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 마스크처럼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 우리 생활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버렸습니다. 마스크 벗을 날이 다가오는 게 어색하기까지한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설마 또 코로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피로감에 '뒤로가기'를 누르려고 하셨다면 잠시 멈추고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해진 것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RNA 바이러스', 'mRNA' 같은 단어들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정보를 DNA 구조로 가지고 있지만 일부 바이러스들은 RNA 구조로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NA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보다 유전 정보 복제 과정에서 변이가 더 많이 생겨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걸로 알려졌습니다. 코로나19 외에도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메르스와 사스, 인플루엔자,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에볼라 등이 RNA 바이러스에 속합니다. C형 간염? 어디서 들어봤는데 2016년 2월, 의료계를 뒤흔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주사기를 재사용하여 집단 감염이 발생한 '다나 의원 사태'입니다. 이때 집단 감염을 일으킨 것이 바로 C형 간염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도 RNA 바이러스에 속합니다. 예방 주사도 챙겨 맞고, 건강 검진을 하면 항원∙항체가 있는지 결과지를 받아보기도 해서 비교적 익숙한 A, B형 간염에 비해 C형 간염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인턴 생활을 할 때는 새벽부터 입원 병동을 돌며 환자들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채혈을 마치고 난 뒤 주삿바늘들을 전용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새벽 어두운 조명 속에서 채혈하다 보면 종종 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럴 때면 치료가 제한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환자 혈액에 해당 바이러스가 있을 경우 예방주사나 약물 복용으로 예방 조치가 가능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추적 관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혈액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에는 매독, HIV, B형 간염뿐만 아니라 C형 간염도 포함됩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감염됩니다. 예전에는 수혈을 통해 주로 감염됐지만 1991년부터 선별검사가 적용되면서 수혈 감염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만성 C형 간염은 급성기가 지나고 일정 시간 경과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처음 감염 당시 감염경로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감염 위험인자에 관한 연구들이 보고됐는데, 최근 연구에서는 정맥주사 약물남용, 주사침 찔림 손상, 비위생적 침 시술, 문신, 다수 상대자들과의 성 경험, 과거 수혈 이력이 위험인자로 나타났습니다. (관련 논문: Current status of hepatitis C virus infection and countermeasures in South Korea) 급성 C형 간염은 침술, 수술, 주사침 찔림 등 오염 혈액에 노출된 이력이 있는 경우가 절반, 나머지 절반은 원인이 불분명했습니다. (관련 논문: Acute hepatitis C in Korea: Different modes of infection, high rate of spontaneous recovery, and low rate of seroconversion) 그래서, 감염이 되면 어떻게 되냐고요? 급성 C형 간염은 무증상 감염인 경우가 70~80%로 대부분이지만, 경미한 감기 몸살 증상, 메스꺼움, 구역질, 식욕부진, 우상복부 통증 등이 감염 2~12주 사이에 생길 수 있고 4~6개월 이내에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감염자의 54~86%는 만성간염으로 진행하고, 그중 15~51%가 간경화로 진행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경화가 발생하면 간암 발생 위험도가 연간 1~5%로 높아집니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에 이어 간암의 주된 원인 질환이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감염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자발적으로 감염을 의심하고 진단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국내 C형 간염 환자는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치료 받은 환자는 약 20%에 불과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4년에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며 봤던 책을 꺼내 넘겨보게 되었습니다. 8년 사이에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C형 간염 치료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치료법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1989년 인터페론이 만성 C형 간염 치료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치료 성공률은 6~16%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인터페론에 리바비린이라는 약을 추가하면서 치료 성공률은 34~42%로 높아졌고, 2000년대 초 출시된 페그인터페론을 인터페론 대신 사용했더니 치료 성공률이 더 높아졌습니다. 유전자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서양에서 40~80%, 우리나라에서는 60~90%의 성공률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치료 기간이 6~12개월로 길고 주사를 맞아야 하며 환자의 80~90%가 발열, 우울증, 백혈구 감소, 빈혈 같은 부작용을 경험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관련 논문: Treatment of chronic hepatitis C. J Korean Med Assoc 2012 November; 55(11): 1113-1120.) 완치율이 높아졌음에도 100%는 아니라는 점, 높은 치료 비용과 부작용으로 의사가 치료를 권유하기도, 환자가 치료받기를 결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 대학병원에서 C형 간염을 진단받고도 치료받은 환자가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새로운 약들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효과와 안전성이 크게 개선된 먹는 항바이러스제(direct acting antivirals, DAA)들이 등장한 건데 가장 최근에 도입된 경구 항바이러스제들은 2~3개월 단기간 치료가 가능하고 치료 중 심각한 부작용이 거의 없이 치료 성공률이 98~99%에 달합니다. 또 새로운 약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간암 발생이 60~80% 이상 줄어들고 간질환 사망도 현저히 줄이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관련 논문: HCC risk post-SVR with DAAs in East Asians: findings from the REAL-C cohort) 이런 발전으로 심지어 보험에 가입할 때 이전에는 C형 간염이 있던 사람은 가입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이제는 치료 성공을 증명하면 훨씬 완화된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의사들조차 잘 모른다? 문제는 이렇게 치료 방법이 발전하고 완치율이 거의 100%에 달함에도 아직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인조차 C형 간염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겁니다. 2020년에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C형 간염을 알고 있는 비율은 49%에 불과했고 완치 가능하다는 건 오직 22%만이 안다고 답했습니다. 전파 경로, 검사 방법이나 예방법에 대해서도 인지도가 아직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같은 해 의사들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8.8%만이 정확한 치료 기간을 알고 있었고, 여전히 C형 간염을 완치가 어려운 질환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겁니다. 대부분 완치된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40.9%에 그쳤습니다. 2030년 C형 간염 퇴치 목표… 걸림돌은? 세계 보건기구는 2030년까지 C형 간염 퇴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완치율이 높으니 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하지만, 완치율이 높아지면서 또 다른 과제가 생겼습니다. C형 간염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찾아내야 치료도 시작할 수 있고, 그래야 완치 환자 수가 늘어납니다. 하지만 처음 감염됐을 때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고 국가 검진에 포함 안 돼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6년 조사에 따르면 C형 간염 검진율은 12.2%, B형 간염 검진율 49%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혈액검사를 통해 C형 간염 항체를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양성이 나오면 RNA를 직접 검사해서 현재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약물의 등장으로 치료 비율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진단 당시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되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선별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과 치료가 더 중요합니다. 선별검사가 이환율과 사망률을 의미 있게 감소시키고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게 연구를 통해 확인된 만큼 일부 연령에서 건강보험의 검진 항목에 C형 간염 선별검사를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됐지만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 등으로 아직 정책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B형 간염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C형 간염에 효과적인 백신은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복제할 때 다양한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에 백신이 표적 항원을 정하기 어렵고, 백신이 유도하는 면역반응을 바이러스가 회피할 수 있어서 백신 개발은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걸릴 가능성은 낮지만 나도 모르게 감염되었을 수도 있는 질환인 C형 간염. 한 번쯤 관심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긴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C형 간염뿐 아니라 에이즈 치료제, 항암제 등 약물 개발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과는 질병의 인식 자체를 달리해야 하는 경우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병들은 여전히 많고, 치료제가 개발됐어도 넘어야 할 산들은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그 발걸음을 함께 살펴 가고 여러분과 공유하는 데 '밤의 해바라기'도 함께 하겠습니다.
“이 약 정말 다 먹어도 되는지 봐줄 수 있어?” 지인들이 종종 묻는 질문입니다. 흔하게는 감기로 병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좀 과해 보이는 약들을 보고 드는 의문이죠. 물론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의 소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섣불리 특정 약은 빼고 먹어도 된다고 답해 주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급성 질병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여러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부담이 조금은 덜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기존에 만성질환으로 꾸준히 먹는 약들이 있다면, 특히 환자 나이가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시절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나이 지긋한 환자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어지럽고 숨차고 붓는 증상이 심해져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의 종합병원까지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복용 중인 약을 가져와 보라고 했더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근골격계 통증에 대한 약, 신경안정제 등이 따로따로 가득한 봉지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이걸 다 드신다고요?” 했더니 “약만 먹어도 배불러요.”라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결국 각종 검사와 다른 진료과들과의 협진을 통해 새로 약을 추가할 만한 상태는 아닌 걸로 판단해 우선 심장과 신장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약들을 찾아 필요하지 않다면 빼고, 이상이 있는 부분들은 살펴 꼭 필요한 약만 드실 수 있도록 정리해드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증상이 빠르게 좋아졌고 검사 결과 모두 호전되어 몇 번의 외래 관찰 후 다시 근처 병원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우리나라 고령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수가 집계 이후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 대비로는 17.5%인데, 3년 뒤인 2025년에는 이 연령대 인구 비중이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높아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만성질환 부담도 커집니다. 2020년 기준 노인의 84%가 평균 1.9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경우도 27.8%나 됐습니다. 동시에 여러 약을 복용해도 될까 질환 개수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에 다니는 65세 이상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인환자 80명을 살펴봤더니,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의 개수가 평균 7.23개였고, 약을 27가지나 복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82.0%가 의사 처방 약을 3개월 이상 복용하는 걸로 나타났는데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 한약까지 고려하면 실제 먹는 약은 더 많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노인들은 간이나 신장 기능 등이 떨어지면서 건강한 젊은 사람보다 약 종류 증가에 따른 부작용에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근육량 감소, 체지방 증가 등 다른 신체 변화들이 함께 작용하게 되어 약물이 흡수되어 몸에 퍼지고, 대사를 거쳐 배설되는 과정도 달라집니다. ‘여러 약을 동시에 투여하는 것’ 또는 ‘지나치게 많은 약을 투여하는 것’을 일컬어 ‘다약제 복용(polypharmacy)’이라고 합니다. 몇 개의 약을 얼마만큼 복용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지 명확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만 많은 연구들에서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불가피하게 많은 약을 ‘적절하게’ 복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과 ‘부적절한’ 다약제 복용을 분류해서 살펴보고, 꼭 필요하지 않은데 과도한 처방이 이뤄진 경우를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관련 논문: What is polypharmacy? A systematic review of definitions.) 약물 상호작용(drug interaction) 따져보기 약물의 효능이나 독성이 다른 약물이나 음식 등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약물 상호작용(drug interaction)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이상 약물을 함께 복용할 경우 인체에서 약물이 다르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보통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도,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효과가 너무 크게 나타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약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상호작용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2가지 약물을 환자가 복용하게 되면 약물 부작용 위험이 13% 증가하고, 5가지 이상 복용하는 경우 58%, 7가지 이상을 복용하면 82%까지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고 합니다. (관련 논문: Polypharmacy in the elderly: Clinical challenges in emergency practice: Part 1: Overview, etiology, and drug interactions.) 하나의 약으로 부작용이 생기면 이것을 다른 질병인 것으로 오해하고 다른 약을 투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여러 약을 복용할 때 더 많이 생기는데 이것을 ‘처방 폭포(연쇄 처방, prescribing cascade)’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구역, 구토에 사용하는 특정 약을 복용하면 부작용으로 ‘파킨슨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파킨슨병과 파킨슨증은 다른 말입니다. 다른 원인에 의해 파킨슨병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통틀어 ‘파킨슨증’이라고 합니다.)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못하고 ‘파킨슨병’으로 잘못 진단해 약을 쓰게 되면 변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또다시 새로운 약을 추가 복용하게 될 수 있죠. 반대로, 복용 약을 확인한 후 파킨슨 증상을 약물 부작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 판단하고 기존 약을 중단해보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파킨슨병은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약으로 인해 생긴 파킨슨증은 약을 중단하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방폭포'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특정 고혈압 약은 몸을 붓게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종 부작용이 덜한 다른 약으로의 교체를 고려하지 않고 바로 이뇨제를 쓰게 되면 특히 고령층에서 위험한 신장 손상, 낙상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관련 논문: Evaluation of a Common Prescribing Cascade of Calcium Channel Blockers and Diuretics in Older Adults With Hypertension.) 반대로 약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환자 스스로 약을 중단하게 되면 꼭 필요한 치료약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환자가 특정 약을 빼고 먹었다는 사실을 의사가 몰랐을 경우, 의사는 기존 질환이 악화됐다고 생각하고 처음 사용한 약의 용량을 높이거나 또 다른 약을 처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약의 개수가 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고령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 치료란 일차적으로 노인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약을 적절하게 처방하는 것은 의료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성상 의료 접근성이 높아 여러 병원을 동시에 이용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각 병원에서 다른 병원의 약까지 챙기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고령 환자가 늘고 여러 약을 무분별하게 복용해 부작용을 겪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와 약사들 사이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환자가 복용하는 약을 모두 가져오게 하여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중복된 처방은 없는지, 이 약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한지, 용량 조절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이 의료진의 몫임은 분명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바쁘다는 이유로 눈 마주치고 함께 이야기할 시간도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살고 있다면 일 년에 몇 번만 뵙는 경우도 적지 않겠죠. 모처럼 뵈었을 때 부모나 조부모의 두꺼운 약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면 자주 다니는 병원의 주치의를 찾아 어떤 약들을 먹고 계신지 한 번 점검받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신: 전문가의 조언 없이 섣불리 약을 끊어서 꼭 필요한 치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 참고 문헌 1. What is polypharmacy? A systematic review of definitions. 2. Polypharmacy in the elderly: Clinical challenges in emergency practice: Part 1: Overview, etiology, and drug interactions. 3. Evaluation of a Common Prescribing Cascade of Calcium Channel Blockers and Diuretics in Older Adults With Hyperten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