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이팅>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만나 느끼는 인사이트, 구독자분도 함께 느끼는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요청 의견 언제나 환영합니다!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열두 번째 손님은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야 미니언즈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중저음의 ‘꿀 보이스’ 뿐만이 아니야. 국내 인지심리학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경일 교수의 진짜 매력,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귀 기울이게 만든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혜로운 인간 생활 그동안 만나온 ‘지식인싸’들 중 시간을 빼기 쉬운 분들은 없었지만 특히 만나기 어려운 분이었어. 약속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 이동시간까지 고려해 분 단위로 짜인 스케줄을 듣고 궁금해졌지. 이분, 대체 얼마나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걸까.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는데 1년에 강연이 100번은 넘는 것 같고요, 사실 회의를 더 많이 해요. 대학에서 하는 회의도 있지만 기업에서 광고를 어떻게 만들까, 회사 퇴사자들을 어떻게 줄여볼 수 있을까, 신제품이 나올 때 색깔은 뭐로 할까, 크고 작은 회의들이 많아요.” 이외에도 대학 수업, 방송, 유튜브까지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게 결국엔 인지심리학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 그래서일까.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는 강연을 할 때 특히 얻어지는 ‘인사이트’가 있다는 거야. “자기 손으로 직접 직원 다섯 명씩 해고시킨 부장님들이 100분 정도 앉아계신 기업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할당하는 기업들이 있거든요. 대단히 안 좋은 방식이에요. 동의하기도 어렵고. 그 사실을 모르고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느끼는 거죠. 마음이 그냥 너덜너덜해진 사람들, 전쟁 영화 보면 백병전 치르고 부하 많이 잃은 소대장들처럼 멍해져 가지고, 그 부장님들도 어마어마하게 다친 사람이거든요. 성인 대상으로 강연하고 몸이 다 젖어서 나온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별을 당했던 사람과 남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뇌과학에서 몸을 다친 사람, 교통사고 당한 사람, 칼에 찔린 사람, 뼈가 부러진 사람이랑 똑같구나 하는 연구들이 그때부터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대상으로 강의할 때도 몸이 다 젖어서 나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5번, 6번 정도는 해요. 꼭. 억지로라도. 그 강의를 갔다 오면 제가 강해져 있어요. 지옥 훈련을 마친 것처럼.”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지혜로운 인간관계 지침서? 지적 유희? ‘너’는 ‘너’, ‘나’는 ‘나’인데 왜 우리는 굳이 ‘너’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고 알아야 할까. “우리가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죠. 왜 인간은 유난히 한 부모 밑에서 나온 형제자매의 성격이 가장 동떨어져 있나? 진짜 다르거든요. 아직은 완전한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는 거예요. 다산하지 않잖아요, 인간은. 그리고 태아로 열 달이나 어머니가 품어야 되고, 사람 구실 하려면 10년, 20년씩 걸리고. 한 개체 한 개체를 잃으면 안 돼요. 이 대목에서 어떤 식으로 진화했을까 저희들이 상상하는 거예요. 아마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똑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게 만든 거죠. 저쪽에서 뭐가 날아오면 형은 앞쪽으로 도망가지만 동생은 뒤쪽으로 도망가요, 그러면 최소 절반은 사니까. 이토록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개인 차, 다양함. 똑같은 걸 보고도 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하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한번 추정해 보는 능력. 그게 없으면 세상이 평화롭지가 못해요. 저 사람은 그냥 그렇구나 라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틀렸어, 공존할 수 없어. 그래서 인간 역사를 보면 다른 종교, 다른 신념들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잖아요.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 그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사회나 국가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시기죠. 그런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심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거죠.” 인간 사회의 갈등 없는 세상을 위해, 그래, 타인을 이해해야지. 그런데 놀랍지 않아?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걸 ‘능력’이라고 보는 게. “하다못해 새로 스마트폰을 하나 사도 매뉴얼이 나오는데 사람 설명서에 대한 매뉴얼을 우리가 한 번도 공부를 안 한다는 건 좀...” 인지심리학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 오늘 만남에서도 뜨거운 걸.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마인드셋 상대방의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서 던지는 논쟁거리가 있대. ‘깻잎 논쟁’만큼 뜨거운 그것은, 고기를 굽지 않고 먹기만 하는 후배 불편하게 느낀다면 꼰대일까, 아닐까 하는 것. “저는 제가 먼저 구워서 제가 다 먹기 때문에, 하하하. 꼰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고기 구우러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음? 그럼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는 후배 불편하게 느낀다면 꼰대일까, 아닐까. “제 수업 듣는 데 이어폰 끼고 있는 학생을 본 적이 있어요. 수업 듣기 싫은 걸 티 내나? 생각했는데 끝나고 제가 몇 번 쳐다보니까 그 학생이 다가왔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이나 다른 학생들이 뒤에서 끄적거리고 작게 말하는 게 듣기 싫어서 이걸 꽂고 있는 거고, 이거 꽂으면 교수님 얘기밖에 안 들려요 그러더라고요. 무슨 얘기냐.” “제가 만약에 그 부서의 부서장이라면 그걸 끼고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나 시간대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 그걸로 음악을 듣고 있거나 다른 걸 하고 있다면 중요한 작업들은 실제로 안 되거든요. 인간이 음악 들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처럼 거짓말이 없어요. 멀티태스킹 절대 못 하거든요. 집중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는 일, 꼼꼼하게 해야 되는 일, 이렇게 정해놓고 이거 할 때는 다른 거 하지 마 그렇게 얘기할 것 같아요. 실제로 요즘 운전하거나 통화하거나 라디오 듣고 있을 때 주차하려고 후진 기어 넣으면 볼륨이 확 줄어들죠? 그거 집중하라고. 멀티태스킹 하지 말라고 뇌에 암시를 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기업 자문 가면 심지어 저는 다른 창도 열지 말라고 해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에 창 열다섯 개쯤 여는 날 있죠? 그날은 대부분 아무것도 못 하고 퇴근하는 날이에요. 창 사이에서 허둥지둥 대다가 끝나거든요. 보통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사람한테 되게 불편한 요구인데요, 뭐 할 때 뭐뭐 하지 말아라는 꽤 괜찮은, 들어줄 수 있는 요구예요. 그냥 ‘직장에서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되게 모호한 얘기예요.” 밑도 끝도 없이, 심리학자라면 말야. 어떠한 타인의 행동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것만 같아. 혹시 인간관계가 힘들다 싶을 때가 있을까. “인지심리학이든 또 다른 심리학이든 공부한다고 내 감정이 안 나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을 보고 불쾌한 거, 어떤 사람을 보면 어? 놀라는 거 똑같아요. 심리학에 되게 유명한 말이 있죠. 심리학자가 한 말은 아닌데 반응과 결정을 구분하는 거예요.” “공포를 안 느끼면 그건 이상한 거죠. 뭔가 딱 봤을 때 무서운 건 정상이에요. 느끼는 거. 그다음에 도망갈까? 그래도 맞설까? 혹은 그대로 놔둘까? 이 모든 것들이 결정이죠. 가끔 동료 심리학자들 중에서도 그 병에 빠진 친구들이 있어요, 너그러움 병. 어떤 사람을 보고 이해하는 건, 내가 불쾌감을 안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된다 이렇게 착각하는 심리학자들이 가끔 있어요. 저는 명백한 착각이라 봐요. 본인만 더 괴로워지는 거예요.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 감정 자체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너그럽고 이해한다? 계속 자기감정을 누르고 자기만 힘들어지거든요.” “누가 날 짜증 나게 해? 짜증 내세요. 그리고 행동으로는 응원하세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행동과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이도 저도 못하게 되거든요. 양자택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탔는데 급해서 닫힘 버튼 누르고 있는데 밖에서 열림 버튼 누르고 누군가 타요. 급해 죽겠는데. 그러면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 누구나 하시죠. 짜증 나게. 그런데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사람? 안되죠. 감정은 이거지만 결정은 이거야. 몇 번씩 해보면, 돼요. 짜증 나는 건 솔직히 얘기하고 하지만 응원한다 혹은 굉장히 섭섭하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해 보면 후련해져요. 해볼 필요가 있어요.”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 같기도 한데, 정말 후련해질까. 검증해 본 분 있다면 댓글 부탁해. 적정한 삶을 찾아 이번엔 누군가 ‘꼰대 대처법’을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슬기롭게 상황을 풀어가는 해답이 있을까. “내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너만의 정의가 있어야 된다. ‘라떼는 말이야’ 100번 해도 괜찮아, 하지만 당일 회식 잡는 건 정말 못 참아.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이것도 참고, 저것도 참고, 참고 참고 참다 보면 정말 못 참는 데서 터지게 돼 있거든요. 그러면 상대방은 나는 어차피 다 똑같은 강도로 그 사람을 대했는데 얘가 펑 하고 터져버리니까 얘가 뭐 하는 놈이지? 라고 나올 수가 있어요. 더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 견디고 있던 젊은 세대에게 충동적이다라는 얘기를 결과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어야 돼요. 나는 다 참아도 이건 못 참습니다 라는 걸.” 나만의 정의를 세웠다 한들, 막상 밖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을.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평상시에 분위기 좋을 때 그런 얘기들을 해놓는 건 되게 괜찮아요. 그 사람한테 ‘나 사용 설명서’를 자꾸 넣어주는 건 되게 중요하거든요. 실제로 연구가 많이 됐던 사례인데 하나 더 붙여주는 게 좋아요. ‘부장님께 백 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농담을 하시는 건 되게 좋아요. 이 말의 핵심은 뭐냐면 난 당신을 오래 볼 거다 선배한테 그것만큼 좋은 말이 없거든요. 제가 농담으로 총장님 임기는 4년이고 벌써 2년 하셨는데 2년밖에 안 남았잖아요. 내가 총장님이 되면 30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이런 농담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선배에게 나는 당신을 오래 볼 거다라는 안심, 그런 느낌의 덕담들을 하시는 게 좋아요. 무조건 너는 나랑 오래 있을 거야도 피하셔야 하고, 나는 당신과 오래 안 볼 거야라고 하는 지나치게 객관적인 얘기도 좀 피하면서. 생각해 보세요. 연애할 때도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서로 하잖아요. 우리는 사람에게 기능적인 언어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인 언어들을 조금씩 하잖아요. 상대방을 위한 언어들을 조금씩 해주는 것도 좋죠.” 유머러스하면서도 단정함이 느껴지는 말투, ‘스마일 방패’를 장착한 듯 흐트러지지 않는 얼굴. 교수님도 ‘멘붕’이란 걸 겪을까. “저는 사실 멘털이 절대 강하지 않아요. 심리학자들이 멘털이 약해서 심리학을 하는 거죠. 다른 심리학자들도 많이 얘기하는데 얼마나 소심하면 심리학을 하겠느냐. 예민한 사람들이 심리학을 하죠. 예민하다와 멘털이 약하다가 꼭 일치하지는 않고, 저도 막 많이 무너지고 많이 힘들고 그런데 잘게 잘게 썰어서 징검다리 여러 개 놔서 건너오는 거죠. 무너진 상태에서. 무너진 상태가 여기고 극복한 상태가 거기라면 사람들은 두두두두 하면서 뛰어넘어 간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아니라 징검다리를 빨리 놓고 놓고 해서 종종걸음으로 가는 거. 그런 방법이 더 나은데 그런 방법을 좀 아는 거죠.” “인지심리학 연구도 그렇지만 다른 심리학 연구들도 그 징검다리가 많아야 해요. 우울증 빠진 사람을 뷔페 데리고 가면 큰일 나요. 음식이 너무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엄두가 안 나요. 더 힘들어져요. 우울증에 빠져 있는 분에게 뭐 좋아해요? 떡볶이 좋아해요. 그럼 떡볶이 한 판, 큰일 나요. 떡볶이 종이컵에 세 개 담아서 쑥 밀어줘. 그럼 이 사람이 뭐야 이거 하고 후루룩 먹어요. 그다음에 이런 얘기하죠. 더 없냐? 빠져나오는 징검다리가 하나 나온 거예요.” 우울증은 평생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반가운 이야기였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어렸을 때 쓰던 식기 있으면 엄마한테 달라고 해 그래요. 가지고 다니라고. 어렸을 때 먹은 식기에 밥 담아 먹어 보라고. 확 먹어버린다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징검다리죠. 화도 마찬가지, 우울도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훅 뛰어넘는, 그러니까 극복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계속 나아가는 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어. 마지막까지 알차게, 출퇴근할 때 한번 해봄 직한 꿀팁을 듣게 됐지 뭐야. “제가 앉고 싶잖아요. 저를 쳐다보면 내릴 사람이에요. 사람이 자기가 내릴 때쯤 되면 내 자리에 누가 앉았으면 좋겠느냐 순간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참 많이 앉고 싶어 하면 저랑 눈을 마주치는 그 사람이 내리는 사람이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시험 감독을 하잖아요. 저 쳐다보는 사람이 커닝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말이 있었어. “제가 못난 부분들이 있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될 때 제일 좋아요. 제가 정말 잘 삐치거든요. 성격이 급해요. 잘 삐치는 사람의 장점은 뭘까. 성격 급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걸 가져갈까. 타고난 성격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걸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 성격으로 뭘 해야 더 좋은 일을 하게 될까.” “같은 걸 보고도 다름을 느끼는 거죠. 예전에는 좋아 싫어로 봤다면 조금 좋아, 많이 좋아, 별로 안 좋아, 눈금이 더 촘촘해지는 거예요. 1 아니면 2가 아니라 1.5, 1.48 같은? 그게 성장이 아닌가. 성숙한 사람들은 네 편 내 편 막 매몰되지 않잖아요. 눈금 개수가 많은 분들이거든요.” 듣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며 인지심리학적 위로와 통찰을 전해 온 그 바탕에 바로 이것이 있었던 것 같아.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오상빈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열한 번째 손님은 ‘국내 1호 수레이너’로 불리는 설채현 수의사야. 사람들에게 지금껏 없던 ‘새로운 수식어’로 불릴 수 있다는 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낸 사람만이 얻어낼 수 있는 훈장이 아닐까.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는 수의사로도, 동물의 마음을 읽고 행동을 교정하는 트레이너로도,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는 설 ‘수레이너’.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거머쥔 그의 성장 키워드, 지금부터 추리해보자고~! 개과천선에 '매직'은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 나도 ‘주드로’라는 반려견을 키우는 인간으로서, 오늘 대화가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어. 일주일 중 1시간도 가족과 떨어져 있지 않는 ‘주드로’, 함께 있는데도 불안해하는 그 견(犬)심부터 좀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왜 시험 볼 때 불안할까요? 답을 모르니까 그래요. 답을 알면 안 불안하거든요. 보호자가 언제 나갈지, 언제 들어올지 답을 몰라서 그래요.”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동물 행동학회에서 분리불안이 큰 이슈가 됐다고 해. ‘주드로’ 뿐만 아니라 온종일 반려인과 같이 있는데도 불안해하는 반려견이 많다는 거야. “이전에 보호자들이 출퇴근할 때는 이때 나가면 이때 들어온다, 이걸 냄새로 알았어요. 출근하면 집에서 보호자의 냄새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줄어들면 보호자들이 돌아온다는 예측을 할 수 있어서 안 불안해했는데, 지금은 재택근무를 해버리니까 이제는 예측이 안 되는 거죠. 보호자가 언제 나갈지, 언제 들어올지.” 그러면서 되물었어. “강아지들이 보는 세상과 가장 비슷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는 것 중 하나인데 자폐인이에요.” “작년에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설명하기가 조금 편해졌어요. 우영우 캐릭터가 길거리를 다닐 때 헤드폰을 끼고 다녀요. 바깥소리 자극에 너무 예민하니까. 문에서 문으로 이동할 때, 갑작스러운 스킨십 이런 것들이 똑같이 강아지들도 힘들어하거든요. 우리는 문밖을 나서면서 어디 가는지 모르고 나오지 않아요. 바깥에서 소리가 나도 이 소리가 왜 나는지 대부분 알아요. 그런데 개들은 경험해보지 못하고 뭔지 모르는 소리가 들리고 위협인지 아닌지 모를 자극들이 가득한 거죠. 사람이 사는 사회가. 모든 게 스트레스 요인인 거죠.” 때문에, 때로 반려견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반려인에게조차 '팩트폭격기'가 돼야 할 때가 있다고 해. 반려견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변화만 성급하게 기대할 때 말이야. “많은 보호자분들이 금방 개선된다고 생각할 때 힘들죠. 쉽게 예를 들면 아직 더하기 빼기도 못 하는 아이를 데려와서 미적분을 풀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기계가 아닌 반려견의 감정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저는 보통 짧으면 3개월, 길게는 6개월. 심각한 아이들은 1년 정도 계획을 짜서 차근차근 가보자고 말씀을 드려요. 방송 프로그램에선 마법처럼 쉽게 고쳐지는 걸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상당히 많아요.” 반려견은 감정이 있다는 것, 감정이 변해야 행동도 변한다는 것. 그 감정이 바뀌도록 보호자가 시간을 들여 바뀌는 노력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설 ‘수레이너’의 지론이었어. 결단은 칼처럼 견(犬)심이라면 속속들이 다 알 것 같은 이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반려동물의 마음을 읽기 위해 어떤 것까지 해봤을까. “일부러 조카 집에 많이 갔어요. 이게 학문적으로 정립된 건 아니지만 상대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요. 강아지를 키우는 건 연애와 같거든요. 제가 아내와 11년 연애했는데 한 반년을 미친 듯이 싸웠어요. 싸우면서 왜 사귀는지 모를 정도로. 그래서 알아보자, 강아지들 감정 나이가 30개월 아이와 비슷하거든요. 에너지가 끊임없고, 좋고 싫음을 다 표현하는, 기초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있어요. 재밌는 놀이는 반복해서 해도 계속 재밌어하는 것도 똑같죠. 30개월의 감정 나이로 15년~20년을 사는 거예요. 성견이라고 하면 다 컸다고 생각해서 사람처럼 대할 때가 있는데 저는 ‘개는 개다’라고 자주 말해요. 개를 사람처럼 대하면 함께 행복하기 어려워요.” 그런 노력에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던 걸까. 원하던 수의사의 꿈을 이루고 나서 동물행동학까지 배우게 된 것은. “동물행동학을 처음 접한 건 아내가 예전에 키우던 버블이라는 반려견 때문이었어요. 분리불안이 심했는데, 당시 훈련 교본에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봤는데도 안 나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해외 원서를 찾아보다가 동물행동학 개념을 알게 됐죠.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동물행동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힘들어하는 강아지에게 꽤 오래전부터 정신과 약물을 처방해왔더라고요. 그래서 미국 대학의 교수님들한테 직접 메일을 보냈어요. 잠깐이라도 교수님들한테 배우고 진료하는 것도 보고 싶다고요. 그중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락이 와서 연수를 가게 됐죠.” 그동안 만나온 지식인싸와의 공통점을 발견했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심,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려는 노력. 그런데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미국KPA(강아지 훈련사 과정)에서 트레이너 자격까지 취득한 이유가 뭘까. “동물행동학 연수하고 귀국하려는데 담당 교수님이 ‘한국에 칭찬을 통해 교육하는 트레이너들이 있어? 없다면 네가 배워야 돼’ 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 국내엔 생소한 이론이라 또 주저 없이 했어요.” 여기까지 듣다 보면, 지금의 자리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듯 막힘없이 왔을 것 같아. 하지만 주변 반대는 있었다고 해. 그럴 때마다 하지 말라는 걸 더 해내고 싶은 반골 기질이 고개를 들었다네. “수의사가 되는 것부터 트레이너가 되는 것까지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대학 시험에서 처음엔 수의학과는 떨어지고 카이스트 대학에 붙었는데, OT를 다녀오는 차 안에서 수의학과에 추가로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카이스트 대학이라고 하면 주변에서도 와~ 했는데 수의학과 반응은 그렇게까진 아니었고, 등록금도 비싸니까 반대하셨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다녔어요. 대학 내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29살이 되기 전까지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었죠.” “대학 졸업 후에도 병원 그냥 다니면서 일하면 되지, 왜 또 동물행동학 공부를 하려고 하냐며 엄마가 펑펑 우셨어요. 그래서 지금 저를 소개하는 표현 중 하나가 ‘결정적인 순간에 부모님 말씀 안 들어서 성공한 사람’이에요.” 선택의 순간에 꼭 필요한 건, 어떤 내가 되길 바라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후에 그 답을 정답으로 채점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자신’이기 때문 아닐까. 완벽한 이해는 없다 반려인 1천만 시대, 각종 SNS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웬만한 상식들은 많이 알려져 있어. 혹시 견(犬) 관상학에 도가 텄다 자신한다? 섣부른 판단은 경계해주길 당부하고 싶다고 해. “갖고 있는 불안을 표현하면 나쁜 개, 표현하지 못하면 착한 개가 돼요. 동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견종에 따라서 다르고, 같은 종이라도 유전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요. 또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그래서 동물의 마음을 읽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온전히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 카밍시그널 : 개가 불안할 때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행동 “카밍 시그널 중에 대표적인 스트레스 시그널이 ‘립리킹(자신의 입 주변을 핥는 것)’인데요. 나는 예쁘다고 쓰다듬었는데 반려견이 립리킹을 한다면 싫다는 뜻이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맥락’을 잘 봐야 한다는 거죠. 이때 등장하는 게 ‘5 Second Rule’. 강아지에게 스킨십 할 때 5초에 한 번씩 손을 떼보는 거예요. 그때 강아지가 손에 코나 머리를 밀어 넣는다면 더 해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강아지의 마음을 알려면 카밍 시그널에 집중하고 ‘5 Second Rule’로 맥락을 읽는 연습을 하는 게 도움이 되죠.” 전문가들이 반려견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해온 정보들조차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반려견에게 존경받는 보호자가 되려면 리더십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첫 번째는 칭찬을 많이 하는 거예요. 우스갯소리로 많은 강아지들이 자기 이름이 ‘안 돼’ 인 줄 안다고 해요.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 하면 무조건 ‘안 돼!’라고 하니까요. 칭찬을 많이 하다가 한 번 ‘안 돼!’라고 했을 때 보호자를 따르는 효과가 더 클 거예요. 두 번째는 공짜를 없애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NILIF (‘Nothing in Life Is Free’), 우리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건데 뭔가 했을 때, 원하는 걸 얻게 하는 거예요. 반려견들이 나한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보호자라는 걸 알게 되는 거고, 존경심과 비슷한 감정이 생기는 거죠.” 이 ‘콘트라프리로딩 이론’에 따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쉽게 먹는 것보다 뭔가를 수행한 후 먹는 것에 개들이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 해. 개들에게도 성취를 경험하는 즐거운 일이라는 거지. “보호자분들이 반려견에게 뭐 물어볼 수 있으면 행복한지 물어보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항상 아픈 데 없니? 묻고 싶어요. 얘네들은 숨기거든요. 못 참을 때야 표현을 하기 때문에 증상들을 예민하게 봐야 될 필요가 있어요. 반려견들이 행동 문제 때문에 버려지고 안락사까지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행동 문제 원인이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행동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시킬수록 안락사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심한 공격성을 보인 한 반려견을 관찰했더니 간질 증상 때문이었다고 해. 반려견의 마음 상태든 몸 상태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문득, 생명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아끼는 마음만큼 인간을 근원적으로 성장케 하는 마음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해. 우리는 사랑하는가 “저는 보호자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보호자라고 하는 건 자신의 반려견을 보호해야 하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비반려인한테 피해를 주는 것으로부터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주인이라고 하면 반려견을 소유하는 물건으로 취급되는 거잖아요. 그런 인식이 강아지들이 쉽게 사고 버리는 잘못된 반려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여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 함양에 이바지하기 위한’ 취지로 제정한 동물보호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려견을 보호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어.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동물을 인간이 소유한 물건, 재산’ 정도로 규정하고 있거든. “불법 번식장에 가보면 정말 지옥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올 수가 없어요. 주인 소유물이니까 주인 허락 없이는 못 데리고 나오는 거예요. 단속 나가서 할 수 있는 건 과태료 부과 또는 벌금밖에 없어요. 저도 2018년에 불법 번식장에서 세상이라는 아이를 구조해서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요. 세상이도 구청 직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설득으로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해서 데려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동물에게 제3의 지위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나 물건이 아닌, 제3의 지위요.” “일본에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종(異種)끼리 눈을 마주쳤을 때 사랑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서로에게서 다 나오는 동물은 개와 사람의 관계밖에 없대요. 사람이 개를 보면 사랑스러워서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개들은 후각이 예민해서 그 냄새를 알아요. 그러면 개들에게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죠.” 눈빛으로 반려인의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존재, 이들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설 ‘수레이너’가 세상에 던지고 있는 질문이라고 해. 이미 30여 년 전부터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프랑스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두어 동물에게 제3의 지위를 부여해왔어. 우리나라도 지난해 민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지만 1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야. “솔직히 저는 제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어요. 내가 이런 일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하나... 봉사활동이나 제가 동물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얘기했는데 많은 분들이 올바른 반려 문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기대해주시는 것 같아요. 부응을 못 할 수도 있지만 노력은 해봐야 된다.” ‘애완견’ 대신 ‘반려견’으로, ‘주인’ 대신 ‘보호자’로, ‘행동 교정’ 대신 ‘행동 수정’으로 가장 쉬운 변화를 시작으로 ‘블랙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번식장, 펫샵, 소비자 3자의 고리가 끊길 때까지 그의 행보는 앞으로도 거침이 없을 예정이야. 국내 최초 ‘수레이더’에서 ‘동물보호 운동가’까지, 그를 지금에 이르게 한 힘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오상빈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열 번째 손님을 반겨줘. 김원석 작가야. 우리는 모두 판타지가 필요해 방영 첫 주부터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롭게 항해를 시작한 <법쩐>의 김원석 작가. 대체로 호평 일색인 댓글 반응, 그는 보았을까. “감사하죠. 그런데 마냥 댓글 반응에 기분이 좋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섣부른 것 같네요.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법쩐>은 [‘법’과 ‘쩐’의 카르텔에 맞서 싸우는 ‘돈장사꾼’ 은용과 ‘법률기술자’ 준경의 통쾌한 복수극]이야. 이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처음에는 심플하게 정의로운 검사들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취재하고 이야기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기댈 수 있는 캐릭터들이 애매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전 버전 이야기를 뒤집고 돈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했어요. 돈과 권력이 멀리 있어 주면 참 좋겠으나, 이 둘이 같이 있는 현실, 그것들이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선한 사람들을 해쳤을 때 그것에 대해서 갚아주는 이야기 그런 걸 하고 싶었어요.” 나 주우재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답답한 일이 많이 있을 거 아니겠니. 그런데 그걸 푸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먼치킨 물을 보는 거야. 속이 뻥 뚫리게. 그걸 기대해 봐도 된다는 걸까. <태양의 후예> 때도 ‘우리 마음속 진짜 영웅을 만나고 싶다’는 기획 의도가 있었지. <법쩐>의 주인공들도 그런 영웅의 모습일까. “제가 좋아하는 저의 주인공들은 다들 유능한 사람들이고 영리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사실 진짜 영웅은 그냥 평범한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어떤 편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악당이라고 생각할까. 그게 사실 별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엄청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상식적인 사람의 마음? 그냥 고마워한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고, 미안함에 대해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강자한테는 물러섬 없이 맞서고. 은용(이선균 役), 박준경(문채원 役), 정태춘(강유석 役) 같은 우리 편의 인물들은, 때로는 부딪혀서 깨지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거예요. 보는 사람들이 그래서 응원하고. 그게 현실에 없으니까.” 작품을 쓸 때 취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3년여 동안 일선에서 일하는 수사관, 변호사, 판사 등을 많이 만났다고 해. 그중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만남이 있었다지. “어떤 수사관 분이 정말로 열심히 사건을 수사했대요. 권력형 비리. 젊은 검사님 하고. 갑자기 검사님이 위에 다녀오시더니 다른 사건 합시다, 그래서 높으신 검사님 방에 직접 찾아갔는데 5분 만에 후회를 하셨대요.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되게 똑똑하네 저 사람? 그런데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 정도로 뭐가 다 있으면 기소를 해서 수갑을 채우지, 수사를 하는 이유는 사실 그걸 찾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직 그게 없으니까 하지 마,라는 건 사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대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그러고 나서부터 이런 수사를 안 하는 부서로 그냥 가버리셨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제가 법쩐을 시작하게 되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도 그런 거예요.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면 어? 저 사람 나쁜 사람이네, 그럼 벌을 받아야지. 돈도 추징해서 다 갖고 와야지 했는데 며칠 있다가 신문에 나는 거 보면 복잡한 얘기들을 막 하면서, 풀려났대. 피해 금액은 이만큼~ 크다 얘기해 놓고서는 막상 찾으니까 없다, 판결도 쉽게 납득이 안 되고. 그때마다 되게 좀 이상하고 슬펐거든요. 우리 상식에 맞는 그런 복수를 하게 해주고 싶다, 죄지은 만큼만 벌 받자.” 부디 선한 자의 복수가 성공하는 이야기길, 그 과정이 얼마나 통쾌하게 그려질지는 지켜봐야겠어.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태양의 후예>라는 소위 ‘흥행대박’ 작품 이후 그의 다음 행보는 <맨투맨>이라는 작품이었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전작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어. 그리고 지금, <법쩐>이야.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있진 않을까. “이번 작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걸린 건 나한테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태양의 후예>하고 겁없이 막 달려들어서 <맨투맨>까지 하고 나니까 마치 프로야구선수 2년 차 징크스처럼, <법쩐> 쓸 때 그 과정에서 작업한 걸 두 번을 뒤엎기도 하고.” 그 불안을 이겨내는 마법의 문장을 찾았다고 해. “제가 흥행했던 작품의 작가이기는 했었죠. 운이 좋았던 거 같고.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이쪽도 경험해 보고 이쪽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작품을 쓰느냐가 중요하구나, 내가 만약에 그런 걸 몰랐으면 어설프게 욕망을 계속 갖고 있었을 텐데 사실은 그런 면에 있어서 되게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는 좀 더 내가 할 수 있는, 내 영역에서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좀 하고 싶다?” 햇수로는 7년여 동안의 공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믿음을 쌓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작가에게 ‘내 이야기가 세상에 통할까’ 고민은 숙명, 오랜 시간 <법쩐>을 집필하면서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하니까. “저도 젊었을 때 헤비메탈을 들었는데 요즘 랩을 들으면 그게 왜 인기가 있는지 그 감각을 모르겠어요. 섣불리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는 척할 수도 없고 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존해야 한다, 각자의 시절에 맞는 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기획을 시절에 맞춰서, 어떤 타깃 세대에 맞춰서, 트렌드에 맞춰서, 이런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과론적인 얘기고 스스로가 얼마큼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거지, 때로는 정말로 시절을 잘 만나서 더 성공하거나 혹은 아쉽게 묻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석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오묘한 일 같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여야 하면서도 그 본질은 내가 재밌어야 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다른 무엇 여차저차 막론하고 전 국민이 알 정도의 흥행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감, 분명 남다를 거 같아. 소재를 찾는 눈이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선이랄까.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 그는 무엇을 했을까.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드라마를 잘 쓰기 위해서는 드라마를 잘 써야 되는데요,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말로 많이 떠들어요. 어제 봤던 드라마 얘기하듯이 뭔가 떠오르면 말로 떠들어서 정리가 되면 글쓰기 시작해요. 그래서 언제나 동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나름 힘든 게 없었겠어요? 오랜 동료이자 제작자였던 사람이 옆에 있어 줬고 대본 얘기한 게 많은 도움이 됐죠.” 말이 나온 김에 혹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 “지망생 작가님들도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라는 게 물리 공학 논문을 쓰는 거랑 달라서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어제 봤던 드라마 얘기하면 듣는 사람이 그 드라마 뭔데, 재밌겠네? 하고 보든가 내 취향은 아니네 안 보든가 하잖아요. 그렇게 얘기를 했을 때 재밌어야지 재밌는 거지, 난 대본으로 쓰면 재밌을 거야, 이건 사실 다음 문제고. 드라마는 어쨌든 조금 더 대중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실제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되거든요. 배우도 설득해야 되고 제작자도 설득해야 되고 방송국도 설득해야 되고 그러니까 많이 떠드시라. 자기 아이템 30자를 누가 훔쳐 갔으면 그건 내 거 아닌 거야 생각하시고, 내 이야기를 10명 중에 8명은 좋아해야 돼, 그래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원석 작가는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던 인물이야. 곽경택, 류승완 감독 사단이었다가 드라마 작가가 되었지. 입문이 쉽지 않은 드라마 작가의 길, 어떻게 발 담그게 됐을까. “맞아요,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곽경택 감독님 <닥터k> 연출부를 했었고 감독님이 드라마 <친구>를 하는데 작가를 누굴 하지 고민하시길래 ‘저요’ 했던 게 시작이었죠. B팀 연출도 맡기시길래 연출도 했었고 그러고 나서 <여왕의 교실>, <국경 없는 의사회(태양의 후예 원작)>를 썼죠. 경제적인 부분도 있고 기회가 이쪽에 계속 있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 작가 김원석’에 만족하고 있을까. 언젠가 업을 바꿀 수도 있을까. “경제적인 이유로 전향했다 했지만, 사실 드라마 작가도 돈을 좇으면 못할 일이죠. 효율을 따지면 하기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야 수입이 더 불안정했던 영화를 하다가 드라마로 전향했던 거지만 안정적인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면 어려워요. 대외적으로 드라마 작가가 많은 돈을 버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한 작품을 온에어하기까지 최소 2~3년 작업을 하니까, 그마저도 작품을 꼭 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내가 만드는 이야기를 내가 풀어가는 게 재밌어요. 지금은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죠.” 완벽한 동그라미 ‘작가’ 김원석이 종국에 닿고 싶은 지점이 어딜까,라는 질문에 수수께끼 같은 답이 돌아왔어. ‘완벽한 동그라미’는 뭘 뜻하는 걸까. 완벽한 작품, 완벽한 인생? “자세한 건 숨겨둘게요, 누구든 ‘완벽한 동그라미’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이어서 뜬금없는 얘기를 들었어. 물론 반가운 얘기였지. “주우재 씨,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 이후에 살아남은 의사 캐릭터로 좋겠어요. 엘리트 의사가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좀비 시대를 겪었어. 그리고 살아남았어. 그래서 얼굴에 흉터도 몇 개 있어.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사이에 이 사람은 되게 뜨거운 심장을 갖게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작품에서 보이는 캐릭터 사이에 되게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 언젠가 방영된다면 기대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의사 주우재’. 그나저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작품 구상이라니, 천생 작가구나 싶었어. “저도 한 줄을 못 쓸 때가 있었어요. <여왕의 교실> 쓸 때 처음 쓰다 보니까 9부, 10부쯤 가니까 어쨌든 원작도 있는데 구성안을 써서 주기로 했는데 한 줄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때 밤을 새웠는데. 왜지? 나도 이해가 안 가. 도망가거나 잠수타는 거는 좀 쪽팔린다. 어. 죽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럴 순 없으니까 감독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형, 하나도 못 썼어. 알았어. 나 촬영 나가야 되니까 자고 저녁때 보자 이러는 거예요. 그때 CP 하셨던 감독님이랑 감독형이랑 셋이 카페에서 얘기하고 어떻게 그 부를 넘어갔는지는 또 기억이 없어요. 그냥 어떻게 썼을 거야, 아마. 그 이후로 늘 하는 생각은 괜찮다. 죽고 살 일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고 먹고 그리고 좀 걷고.” 일하면서 느끼는 막막함,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 겪는 일이라는 거야. “뻔한 얘기 같지만 꿈은 실패해도 괜찮아요. 목숨 걸지 말고 행복하게, 해야겠다 싶은 걸 하세요. 목숨 걸지 말고 행복하게, 해야겠다 싶은 걸 하세요. 인생이 어느 쪽으로 풀릴 지는 아무도 모르죠. 예측되는 결과를 정해놓고 시작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어. <법쩐>, <태양의 후예>보다 잘될 것 같은지. “시청률 잘 나왔으면 좋겠죠. 그건 당연한 거고, 지금의 내가 최선을 다했고 또 지금의 내 동료들이 열심히 만들어줬기 때문에 저는 잘될 거라고 생각해요.”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오상빈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아홉 번째 손님은 브랜드 컨설턴트 박준영 크로스IMC 대표야 앞으로 펼쳐질 3년, 5년 후의 세상이 궁금하다? 국내 최고 브랜드 기획자라 할 수 있는 이력을 쌓아온 박준영 대표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고~ Z세대의 진심, 모르면 비즈니스도 없다 애플코리아 국내시장 론칭부터 헤지스, SK텔레콤, 한화그룹 등 다양한 브랜드를 컨설팅해오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표창에 대한민국 건설문화대상 마케팅 부문을 수상한 박 대표. 그의 행보에 뜨거운 시선이 모아졌어. 그가 ‘Z세대’ 앱 지도라는 걸 세상에 내놓았거든. “개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내밀한 일상과 개인적인 공간을 들여다봐야 되잖아요. Z세대들이 스마트폰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앱을 사용하는지 300명의 Z세대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해서 앱 지도를 만들었어요. 마케팅 또는 사업기획 하시는 분들, Z세대 유저 페르소나를 그려야 되는 분들 이런 분들이 많이 봐주고 계세요.” 상대적으로 소비 구매력(*소비자가 갖는 경제력) 지수가 높은 세대는 3040세대 아닐까. 박준영 대표는 왜 Z세대, 1020세대의 관심사에 주목했고 기업은 왜 이런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총소비 규모는 3040이 훨씬 높은 건 맞고요, 그런데 저희가 봐야 되는 게 Z세대가 미래 소비의 주역이라는 것, 그래서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업의 미래가 없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스푼 라디오>는 Z세대 친구들이 라디오 DJ로 활동하고 있는 앱이고 <채티>는 채팅형 소설을 읽는 방식의 앱이에요. 여기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작가들이 Z세대 일반 유저들이에요. 그들이 그렇게 콘텐츠를 잘 창작하고 그 안에서 놀고 있거든요.” Z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앱이 무엇인지 파악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을 주도하는 Z세대의 파워가 보이게 됐다고 해. “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생존력과 경쟁력이 가장 앞서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본인이 놀 판을 스스로 정해요. 기업이 내놓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탈바꿈시키죠. 리뷰와 추천 방식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주도적으로 서비스와 시장을 이끌어 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Z세대가 시장의 열쇠다, 시장을 움직인다고 하는 이유죠. 그래서 팬덤 마케팅이 요즘 많이 얘기되고 있잖아요. 새로운 소비 권력을 ‘찐 팬’으로 만드는 커뮤니티를 알아야 해요.” 마케팅 신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과 트렌드 생겨. ‘팬덤 마케팅’은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해 충성 고객을 확보해내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탄탄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찾아줄 고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 실제로 주요 글로벌 브랜드는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고 브랜드가 팬덤을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라고 해. “애플이 팬덤 문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국내 론칭을 했었어요.” ‘애플’ 브랜드의 국내 첫 상륙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경험, 그것이 시작이었어. “애플도 사실 대기업이잖아요? 그런데 당시 썼던 전략이 뭐였냐면 ‘IBM’이라는 빅브라더에 대항하는 2인자, 도전자 콘셉트를 잡은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영(YOUNG)한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저에게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 디자인하는 사람, 미술하는 사람들을 컨택해주고 그들이 사용하는 브랜드로서 포지셔닝하게 해 달라는 게 애플코리아의 첫 번째 주문이었어요. 그때 제가 뽑았던 키워드가 서브컬처. 지금은 애플이 쓰고 있지 않지만 그때부터 저는 이게 앞으로의 시장 흐름에 중요한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브랜딩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다윗(=애플)이 골리앗(=IBM)에 대항해 이기는 구도를 브랜드에 입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애플은 벌써 그때부터 ‘팬덤 마케팅’이라는 걸 하고 있었구나, 국내에서 아직 ‘팬덤 마케팅’이 대중적 키워드가 되기 전부터 박 대표는 자신이 발견한 이 ‘팬덤 마케팅’을 착안해 이후 성공적인 브랜딩 컨설팅을 해왔다고 해. “앱 생태계 속 구글이 앱스토어에서 30퍼센트 수수료 받는다고 난리가 났었거든요. 그런데 애플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애플은 욕하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인사이트예요. 더 나아가 내가 어떤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아이덴티티라는, 표현하는 관점에서 브랜드 커뮤니티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유저 페르소나’를 만들었고 그 브랜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콘셉트로 접근을 했었죠.” 지금은 업종을 막론하고 너도나도 마케팅의 기조로 삼는 키워드 ‘팬덤’과 ‘커뮤니티’. 박 대표가 이 거대한 흐름의 선두에 있었다 할 수 있겠어. 우리는 모두 직업인 “궁금했죠. 재기발랄하게 자기만의 판을 만들고 개인의 시대를 주도하는 Z세대들이 왜 회사에서만은 속을 알 수 없는 방어적인 직장인이 되는 걸까. 기업을 다니면 이해가 안 된다고 해요, 리더들이. 저들은 뭐지? 왜 사원들이 ‘회사 밖의 나’를 추구하느냐 물어요.” 박 대표는 2006년 국내 최초로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 전문 회사를 설립했고, 브랜드 컨설팅은 물론 강연, 해외투자 애널리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의 임원들을 만나면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을 흘려듣지 않는다고 해. “개인이 가진 가치 발견이 중요한 시대예요. 국민템도 없고 마이크로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Z세대를 보면서 이제 나를 브랜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지 생각하게 돼요. 국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연봉이 제일 높은 모 변호사 법률사무소를 예로 들면, 오래 근무해 파트너까지 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변호사들이 나간다는 거예요. 어디 갈 건데? 그러면 이름도 못 들어본 스타트업을 간다는 거예요. 이름도 못 들어본. 이제는 직장이 곧 나의 정체성으로 표현되는 걸 원하지 않는 시대예요. 개인이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어가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해지는 거죠.” 대체 ‘퍼스널 브랜딩’이 뭐길래. 그걸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업의 의미를 세우는 것, 워크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그러려면 세상에 ‘드러낼 나’를 잘 알아야겠죠? MBTI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MBTI는 내가 보는 나, 그러니까 남이 보는 객관적인 나는 없어요. 내가 보는 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한테는 이게 맞는 거죠. 아마 결과를 보면 공감되실 걸요?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나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만 있어선 안 되고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보는 나’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나’ 이 세 가지가 가깝게 만나지게 접점을 넓히는 것, 이것이 퍼스널 브랜딩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를 계속 낯선 환경과 낯선 자극에 자꾸 노출시켜서 이 과정 중에서 내가 모르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해봤으면 좋겠어요.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이런 것들이 계속 쌓이게 될 텐데 그러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나만의 퍼스널브랜딩을 세우는 작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지. 박 대표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퍼스널 브랜딩’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모든 것이 출발해요. 마케팅이든 브랜딩이든 본질이 뭐냐 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경험인 거예요.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NFT가 자주 회자되는 것 같다? 그러면 그 현장에 들어가요. 네다섯 개의 커뮤니티에 가입해요. 관찰하는 거죠. 호기심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의도적으로 계속 그런 상황에 던져놓아요. 안테나를 열고 계속 감지하는 거예요.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한 일이 되지만 저는 따라가지 않아요, 이미 현재에 와 있는 미래를 잘 감지하는 거예요. 왜 이런 시그널이 올라왔을까. 그 원인을 생각하고 그게 사람의 어떤 본성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봐요. 그걸 보면 이게 계속 가는 흐름이 되겠구나, 그러면 그런 것들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고 확장해 나가며 작업을 그리고 데이터로 확인을 하는 거죠. 그게 저의 일하는 방식이에요.” 이제까지 만나온 모든 ‘지식인싸’들이 하나같이 언급했던 ‘일에 대한 열정’, 이것만큼은 이분도 다르지 않았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얘기를 그동안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스마트폰이라는 도구가 일과 여가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게 해요. 이제는 놀 때 일하듯이 놀고, 놀 듯이 일하고 있거든요. 이게 워라블. 워크 앤 라이프 블랜딩, 저는 이렇게 삽니다.” 나만의 별★은 반드시 빛난다 그래도 말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칠 때가 있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아. “저도 일과 좀 떨어져 있을 때가 있어요. 크리에이티브가 튀어나오려면 적당한 텐션과 내적 여유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내공인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누구나 오르락내리락하잖아요. 스스로 지치지 않게 내적 공간을 만드는 힘이 곧 자기를 지키는 힘이 되거든요.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라고 하고 싶네요.” 직장인이라면 개인이 주도적으로 일과 여가를 두고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저는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내 관점에서 이건 이래서 재밌다 흥미롭다 재정의를 내려요. 그럼 그 일은 주어진 일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일이 되는 거예요. 오너십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주어진 스케줄 안에서도 자기만의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성공 가도를 밟아온 브랜드 컨설턴트인 만큼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탁월할 거 같았어. 국내 유수의 프로젝트를 따낸 비법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는데 딱 한 가지만 생각한다는 거야. “내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그 사람들에게 뭘 남길지 질문해요. 뭐가 남을까. 그걸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지? 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죠.” 결과가 좋다고 그 모든 과정까지 아름다웠을까. 맡은 프로젝트가 매번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았을 텐데. “저는 안 풀리면 일단 자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샤워를 하는데 머리를 굉장히 오래 감아요. 그때 그 전날 갖고 있던 고민이 한순간에 다 풀려요. 누구나 다 그런 타이밍이 있을걸요? 자기 자신을 믿어보세요. 그냥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정도로 고민하고 고통스럽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이야기. 꿈을 품은 청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라,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저는 그 상대를 인정해주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마음이 열리고 그의 얘기를 듣게 되어 있거든요. 일터에서 만난 여러 세대와 소통하는 능력이 높게 요구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거예요.” “낯선 환경에 자신을 계속 노출시켜서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시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시도를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패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이때 잘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실패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스스로 회복하고 올라오는 힘이 다시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잖아요. 점(Dot)을 만드는 거예요. 경험이 여러 점을 찍는 작업들인데 이 점들이 연결되어 어느 순간 반짝 떠오르는 시점이 누구에게나 오거든요. 그 점의 연결이 곧 나만의 고유한 별이 만들어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준영 대표는 아직도 일을 할 때면 가슴이 띈다고 해. 이미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 게 아닐까 싶은데 이렇게 말했어. 자신의 별을 빛나게 하기 위해 여전히, 열심히, 점(Dot)을 찍고 있다고. “전성기? 아직 안 왔죠. 앞으로 제가 재미난 일들 많이 벌일 거예요.”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여덟 번째 손님은 MZ세대들에게 ‘도도새 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선우 작가야. 김춘수 시인은 말했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예술작품은 어쩌면,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건지도 몰라. 영컬렉터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마침내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 소망을 마침내 이뤄낸 김선우 작가를 만나보자고~ 바보 ‘도도새’가 세상에 알려지다 지난해 9월 한 경매에서 그림값이 폭등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끈 작품이 있었어. <모리셔스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었지.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오마주한 이 작품의 그림값 폭등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해. 이후 프린트 에디션(작가가 직접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닌 찍어낸 그림) 작품도 1천만 원을 호가할 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고 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뿌듯할 것 같은데. “내 가치를 평가받는구나 생각이 드는 동시에 무서운 거예요. 대체 앞으로 뭘 그려야 되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그림을 계속 그려야 된다는 얘기잖아요. 그 중압감이 되게 오랫동안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되게 좋은 자극이었더라고요. 좀 더 좋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고민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지금은 부담감보다 더 큰 성장을 생각하게 되었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영컬렉터들은 그림의 어떤 매력을 알아보고 호응한 것일까,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제가 88년생이거든요. 부모님 세대는 하나만 보고 나가셨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저희 세대는 어떻게 보면 선택권이 너무 많아진 세대인 거예요. 뭘 선택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고민들을 같이 해보게 하는 그림을 그려서 아마 애정을 주시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김선우 작가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등장하는 게 있어. 바로 ‘도도새’야. 이 ‘도도새’에 담겨진 의미에 가치를 높게 매겨준 것이 아닐까 싶다는 거야. “도도새가 원래는 날 수 있었던 새라고 해요. 섬이 무인도고 천적도 없고 먹을 것도 많다 보니까 애들이 게을러져서 스스로 날기를 포기한 거죠.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했는데 장난으로 때려죽이고 이웃 나라에 선물 보내고, 그런데도 얘네들 못 도망가잖아요. 그러다가 멸종이 된 거예요. 도도라는 이름이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하거든요.” “도도새를 그리기 전에는 새 머리를 한 인간을 그렸어요. 현대인들이 자유를 잃어간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예를 들면 사회에서 제시한 어떤 기준 속에서 맞춰가다 보면 자기가 어떤 걸 원했는지조차 망각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 수 있었는데 스스로 포기해서 멸종한 거잖아요. 이 새로 내 얘기를 전달해보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우리도 현실에 안주하면 이 새들처럼 결국에는 스스로 진정한 자신만의 어떤 가치라든가 자유를 잃게 되지 않을까” 세상이 알아봐 준 작가의 이야기. 그의 염원. 그가 그려낸 것은, 애초에 가졌으나 쓰지 않아 날개를 잃어버리고 결국 멸종한 바보 ‘도도새’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또한 우리가 저마다 가진 ‘날개’로 날아보려는 시도도 않고 꿈을 포기하지 말자는 작가의 주문 같은 거였어. ‘도도새’도 날아오를 수, 있다 그래 너다! ‘도도새’를 발견한 건 어느 날, 어느 순간에서였을까. “친구들이 ‘동국대 윤무부 교수’라고 놀렸거든요. 새만 맨날 그렸어요. 원래 새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부러웠거든요.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가.” “실제로 도도새가 멸종한 모리셔스섬도 다녀왔어요, 2015년에 한 달 동안. 미술관에서 작가를 여행 보내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판단해서 직접 여행 계획을 하게 해요. 전 제가 원래 그려오던 새 머리 인간을 도도새로 발전시켜보겠다는 제안을 했죠.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그 여행이 아니었으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인생을 바꿔 놓을 만한 어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아. “도도새가 멸종된 지 300년이 지나서 사진이 남아 있지가 않아요. 모리셔스에 가면 뼈다귀가 있어요, 박물관에. 이게 100퍼센트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더 재밌는 부분인 것 같아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렇게 탄생하게 된 750여편의 '도도새' 작품들(드로잉을 제외한) 중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뭘까. “도도새의 다양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드리려고 한 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도도새 행위 중 하나가 횃불을 들고 있는 거예요. 횃불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보면 탐험, 개척의 이미지를 담고 있잖아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길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담고 있어서.”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이 있었어. “도도새는 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제 그림에서 도도새는 날고 있거든요. 풍선을 통해서. 제 그림 속에서는 다른 수단으로 도도새도 날고 있어요.” 이미 날개를 잃어버렸다 해도 괜찮아, 날아오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단다, 그렇게 작가님이 속삭여주는 것만 같지 뭐야. 그냥 볼 때와 그 의미를 알고 볼 때, 한 그림이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다가오는 경험이었어. ‘도도새’가 되지 않으려 ‘도도새’를 그리다 ‘도도새’만으로 다양한 작품을 표현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본인만의 습관 같은 것도 있을까. 그림을 그리는 작업 방식도 뭔가 남다르지 않을까 궁금했어. “스케치 단계에서 모든 게 결정 난다고 생각해요. 스케치를 하는 순간 머릿속에 완성작이 있어서 그다음부터는 거의 순수한 노동이에요. 그래서 들인 습관이 작업하면서 책을 읽는 거예요. 정확히는 오디오 북을 듣죠. 작업시간이 곧 독서 시간이어서 1년에 100~200권 정도 읽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린다니 의외였어. 더 놀라운 건 ‘너무 자유롭고 싶어서 새를 좋아했다’는 말과 상반되는 일상이었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한다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새벽이 너무 좋아요. 아무런 연락도 안 오고 진짜 온전히 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거든요, 새벽이. 그렇다고 밤새고 싶지는 않고요. 그 시간이 뭔가... 집중이 가장 잘되는 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제 직업에 대한 존중이랄까 예의 같은 것들?” 정해진 시간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스스로 지켜야 할 시간에 묶여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가능한 걸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승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이 변웅필 작가님, 다른 한 분이 오원배 교수님이에요. 은사님인 변웅필 작가님께는 자기 신념을 이미지로 표현하며 살아간다는 게 멋있다는 것, 작가의 삶을 배운 것 같고요. 오 교수님께는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실한 태도에 대해 배웠죠. 일주일에 드로잉 200장씩 그리라고 시키셨어요. 그때 드로잉을 많이 하는 습관이 잡힌 것 같아요. 완결된 작품을 만드는 건 마음속에 떠다니는 문장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는 것 같은 과정이거든요.” “루틴을 지키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을 안 했거든요. 옛날부터. 그러니까 미술대학도 그림 못 그려서 한 번 떨어지고 미술대학 내내 나는 왜 이렇게 그림 못 그리지? 생각을 매일 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거는 성실하게 루틴을 지키는 거구나, 할 수 있는 걸 한 거죠.” 영혼은 자유롭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성실하고 꾸준히 매일 작품을 그리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누구든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해내고 있는 단단함이 느껴졌어. 나라도 끝까지 내 편 “취준생분들도 매년 입사 지원하시잖아요. 포트폴리오 만들고 자소서 쓰셔가지고. 작가들도 똑같아요. 1년에 수십 번씩 그렇게 지원을 해요. 공모전에. 제가 돈이 많으면 좋은 갤러리 대관해서 전시할 텐데 여건이 안 되니까 공모전밖에 없었던 거예요. 승률을 제가 다 정리를 해놨어요. 탈락한 거, 합격한 거. 했더니 100전 99패 정도 되더라고요.” 성공은 오래 기억하고 실패는 빨리 잊어야 좌절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왜 실패를 기록했을까. “패배한 기록을 봐야, 운동도 그렇잖아요. 모든 승부가 그렇잖아요. 복기를 해야 반면교사를 하니까. 똑같은 걸로 승부를 보지는 않잖아요. 이걸 떨어지면 또 다르게 승부를 보는데 저는 그렇게 약간 스스로를 시험하는 게 너무 재밌었던 거 같아요.” 아무리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해도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하다 보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일 듯한데 작가의 인생 사전에 ‘꿈을 포기한다’는 건 없는 문구였단다. “저는 그게 제일 강했던 것 같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이걸로 내 인생을 어떻게 보면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의지가 제일 강했던 것 같아요. 100번 중에 99번 떨어져도 그 와중에 그 한번이 너무 좋은 거예요.”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있을까. 유명세를 얻기 전 ‘작가 김선우’는 매년 연말 미술대학 졸업식 날 용달차를 빌려서 미술대학을 돌았다는데 그 이유가 다른 학생들이 졸업할 때 버린 그림의 캔버스 틀을 수거하기 위해서였다는 거야. 천을 떼고 다시 천을 씌워서 그림을 그렸던 거지.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무엇도 꿈을 좇지 못하게 할 장벽이 되지 못했어. “체 게바라가 했던 말인데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런데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라는 말이거든요. 불가능한 꿈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현실적인 면을 항상 생각해야 된다는, 그래서 저도 무작정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항상 플랜 b, c, d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림 이외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그걸로 작업할 수 있는 비용을 충당하면서 뭔가 거기서도 가능성을 계속 발견했었어요.”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체는 마냥 나쁜 것이 아니다, 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작가님은 다음 말을 이어갔어. “끊임없이 자신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성장이니까요. 99번 졌어도, 져보는 것도 이기는 거예요.” 혹시, 계속된 실패로 날개깃을 뽑히고 있는 현실에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르길 포기하지 않겠다면 다음 두 가지를 준비하면 되겠다.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나’와 ‘날개를 대신할 풍선’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일곱 번째 손님은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권일용 교수야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내는 전문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 권일용 교수의 성장키워드는 뭘지, 우리가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고~ 뭣이 중한디~ 계획은 없었다 ‘흉악범죄의 프로파일링을 맡아 대한민국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현장에 정착시킨 인물’.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무색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 “종교가 가톨릭이라 신부가 되어서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차분한 말투와 근엄한 몸가짐, 지금 모습이 익숙해서일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청년 권일용’의 꿈이었어. 그럼 어떻게 하다가 프로파일러가 된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결심해서 된 일이 아니에요. 집도 어려웠고 2대 독자에 장남이라 경찰이 되려고 했죠.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을 때 강력계 형사로 시작을 했어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던 무렵이어서 시경 소속의 형사 기동대가 있었는데 현재 광역수사대의 전신이에요.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CSI가 됐어요. 자원이 아니라 발령이 난 거죠.” 원한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고 해. 그게 시작이었어. “처음엔 막막했죠. CSI(현장감식요원)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해보니까 재밌고 잘 되는 거예요. 정말 운이 좋게도 가는 곳마다 지문 채취나 DNA 채취를 해내서 실적이 너무 좋았어요.” 증거 수집에 필요한 재능은 어떤 걸까 궁금했어. 남모를 노하우라도 있었던 걸까. “예를 들면 CSI 처음 시작했을 때 지문이 현장에 가니까 딱 보여, 눈에. 그런데 붓으로 싹싹 해봤더니 이게 지워져 버렸어요.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이놈을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능력도 없고 실수해서 채취를 못 했구나, 그래서 한 달 동안 똑같은 재질의 나무를 구입해서 내 지문을 찍어놓고 연습을 했어요. 다른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으로 그 범인을 잡았는데 그때 놓쳤던 범인이더라고요.” 오기(傲氣). 사전적 의미는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지만 노력(努力: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과 같은 말처럼 들렸어. “그래서 이게 어떤 오기는 결국은 내가 이놈, 범죄자와 내가 싸우는 오기지만 그 배경에는 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 때문에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이 눈에 보이잖아요.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이런 감정을 유지하게 되는 힘이 되는 거죠.”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낳고 “그러고 보니까 거기서 특진을 했어요. 다른 부서에 가겠다고 그랬더니 그냥 해. 그렇게 한 8년 정도 했죠. 그때 다른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야, 이 범죄자들이 똑같이 절도범인데 사람에 따라서 행동하는 게 다르구나.” 눈앞에 놓인 일에 진심을 쏟다 보니 물 흐르듯, 어느새 새로운 수사 방법을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야. “프로파일링은 원래 행동분석이예요. 침입의 방법도 다르고 물색하는 방법도 다르고 도망갈 때 증거인멸 방법도 다 달라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비슷한 애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거 흥미로운데? 만약에 지문이 안 나와도 행동만 보면 어떤 애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프로파일링(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경향 등을 특정 지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수사법)이 지금에야 상식이 됐지만 당시 국내에선 용어조차 생소한 낯선 수사기법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의 직감은 남달랐던 듯해. “현장에 증거물이 줄어들고 계획범죄가 생기고 나쁜 놈들이 이렇게 막 변화하니까 그러면 한국 경찰도 FBI처럼 만들어 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누군가 해야됐어요. 원하지 않게 또 발령이 난 거죠. 너는 오늘부터 한국 경찰의 프로파일러야. 경험도 없고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어 고민이라 했더니 한 달간 스토킹처럼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등 떠밀려 ‘1호 프로파일러’가 되었어. 조금 김빠지는 스토리라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정표 없는 길을 묵묵히 내딛는 그 한 걸음,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어볼 사람이 없고 이 업무 자체가 물어봐서 될 일도 아닌 거 같고, 그래서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느냐 두려움 이것도 굉장히 힘들었었죠. 두렵고 막막해서 FBI자료들을 찾아보는데 그마저도 안 맞아요. 한국의 범죄 유형하고. 국가별로 문화도 다르고 범죄 동기가 되는 것도 다르고 특히 범행 도구가 다르잖아요. 그냥 총 쏘고 가버리는 현장들이고 한국은 굉장히 많은 다량의 피가 있고. 그래서 분석을 하는 기법도 달라요.”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목표한 바 없는데 국내 손꼽히는 프로파일러로 인정받게 된 건 특별히 프로파일링을 ‘잘하는’, 어떤 ‘프로파일러 재질’을 타고난 탓일까. “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동기가 형성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범죄자를 만나는, 어떤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건 피해자의 고통을 내가 공감할 때 목표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상황을 지배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잔혹한 현장을 어떻게 보느냐 그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반드시 밝혀야되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잔혹함보다는 행동이 보이기 시작해요.” 냉철한 시각으로 사건 현장을 분석하는데 ‘미친다’면 결국 범인을 잡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 일념으로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 전부였다고 해.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프로파일러 17년, 경찰 생활 합쳐 28년 6개월여의 근무. 십수 년 잔혹한 현장을 보다 보면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동료들하고 같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극복이 됐어요.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어디 가서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인데 우리는 같이 겪었잖아요. 나 혼자 있었던 거 아니야, 차를 마시면서 너도 같이 있었지 수다를 떨면서 그 마음을 공감하는 거예요. 그래, 너 힘들 때 나 힘들 때 있잖아. 니가 되게 고마웠다.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세토닌이 분비가 돼요. 행복한 물결처럼.”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사회적 유대관계가 실제 마음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해. 경험해 본 바 믿고 있었어. 그리고 이건 본인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천 명이 넘는 범죄자를 만나보니까 가족들과 살고 있어도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어요. 사회 유대관계를 단절해요.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내가 사는 사회에 같이 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유대관계가 단절돼 버리면 화났을 땐 내가 누굴 때렸어, 왜 미안해 해야 되지? 내가 사는 세상과 네가 사는 세상은 다르잖아. 다 고립된 상태에서 나오는 거라서 저는 주의 깊게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자주, 우리 사회 안에서 괴물이 만들어진다는 걸 잊는 거 같아요. 불안에 흔들리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누구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꼭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풀어야지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나는 갈 데가 있고 난 업무가 끝나도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라는 생각만 있어도 이게 조정이 돼요. 감정이 나의 고립감을 벗어나게 하는 건데 똑같은 역할을 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어도 그것을 극복하는 건 내가 누구와 함께 있다는 공동체 의식, 이것이 있다면 당혹스럽고 힘든 상황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악인’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 내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랐어. 한 치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함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프로파일러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없을까. “사실 저는 어느 순간 갑자기 결과물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젊은 시절은 불안하고 두렵고 미래가 불분명하고 항상 내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발목을 잡는 건 생기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목표로 한 게 뭔지 자기가 잘 모를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순경이 되고 CSI를 하면서 특진을 하고 범인을 많이 잡아서 유명한 경찰이 될 거야, 이런 게 아니었어요. 현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이놈을 잡는 게 쌓이고 쌓여서 CSI로 인정을 받았잖아요.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내 발밑을 믿어야 돼요. 그런데 내 발밑을 내가 못 믿어. 이걸 디딜까 말까 되게 고민을 해요. 인생은 그냥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내가 간 길이 선택의 결과이지.” 원대한 포부나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청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목표를 가지라고 하고 싶은 거죠. 어디에 있든 필요한 사람으로 내가 인정받는다, 그게 목표여야 돼요. 나는 이 부서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거야. 나이가 얼마쯤 되면 정말 성공하고 돈이 많아질 거야, 이런 목표도 좋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이 너무 지쳐갈 것 같고요.” “성장은 스스로가 끝없이 어떤 경험들을 쌓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주어진 것들이 쌓여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반드시 옵니다. 기회와 행운은 다르다고 한 분이 계셨어요. 저는 지금도 믿어요.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사람들이 노력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 기회고 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때로 얻는 하나의 행복이 행운일 뿐이에요.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열심히 미래를 가꿔가는 학생들이 저처럼 되고 싶다고 하면 왜 나같이 돼? 나보다 훨씬 잘 되는 길이 충분히 있어, 현직에 있는 프로파일러 후배들에게도 나는 그냥 1호일 뿐이지 최고는 아니야, 최고는 너희들 중에 나와야 돼. 내가 살아온 인생일 뿐이지 롤모델이 될 내용은 아니니까 그저 저 사람처럼 용기 있게 한번 걸어가자 정도의 마음만 생겼다면 의미있다 생각합니다.” 인생 후반전, 또 계획은 없다 벌써 퇴직 5년 차. 애초 삶의 목표는 아니었다 해도 너무나 열심히 걸어온 길, 프로파일러가 아닌 삶은 상상해본 적도 없을 것 같은데 어째서 현직을 떠난 걸까. “오랫동안 범죄자를 만나다 보니 그런 건지 온몸이 망가졌어요. 퇴직할 때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심각했어요. 위험한 고혈압, 식도염 등 온갖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들이 있었죠. 퇴직할 무렵에 10개 정도 약을 먹었다면 지금 3개 정도 먹고 있어요. 과거엔 새벽 2시, 3시에도 휴대전화를 베고 잤었어요. 새벽에 사건이 발생하니까 언제든 깨어날 각오로 그랬죠. 지금은 꺼놓기도 하고 사실 전화가 안 와요. 선배님 이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으면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을 보내기도 하죠.” 대학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방송 활동, 범죄심리 강연까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지난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있진 않을까.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감정 중 어떤 감정을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불안과 두려움이에요.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될까, 이런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50대 중반의 나이로 퇴직을 결심하면서 많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한창 일할 나인데... 아이들 학비는?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가족들과 대화도 없었어. 뭔가를 극복해나간다는 건 어떤 계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더라고요. 일상 속에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서서히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국내 현직 프로파일러는 32명이야. 그 시작과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권위자로 인정받게 된 동력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여섯 번째 손님은 웹 콘텐츠 제작사 와이낫미디어 이민석 대표야 이민석 대표가 수장으로 있는 <와이낫미디어>의 콘텐츠는 시청자의 97.5%가 MZ세대야. 소위 ‘요즘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비결이 뭘까. ‘와이낫표’ 웹드라마를 성공시키고 창립 7년 만에 다양한 웹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연예 매니지먼트까지 사세를 확장시킨 이민석 대표의 성장 키워드, 함께 추리해볼까~ ‘요즘 세대’의 공감 폭발, 그 시작 지금의 <와이낫미디어>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작품이 있어.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리즈로 업계에서 2010년대 중반 웹 드라마 초창기 시장 형성을 주도한 제작사 중 한 곳으로 알려졌고, <일진에게 찍혔을 때> 시리즈로 2010년대 후반 및 2020년대 초반 명성과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웹드라마 시장의 강자 중 한 곳으로 올라서게 되었어. 그렇다면 먼저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무엇이 달랐을까. “원씬 원테이크(One-Scene, One-Take)가 인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일단 그걸 채택하게 된 배경은 예산이 적어서예요. 하지만 원씬 원테이크 기법이 배우에게도, 전문가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촬영 기법이거든요. 스티븐 스필버그나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감독님들이 주로 쓰는 촬영 기법인데 역발상을 한 거예요. 영상 퀄리티가 좋진 않아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서사가 강한. 해보니 반응이 좋았던 거죠.” 출연했던 배우 변우석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기억났어. ‘촬영 자체가 재밌었는데 결과물도 좋았다’고 했었거든. 새로운 방식의 촬영도 신선했지만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몰입하기 쉬웠다는 거야. “<전지적 짝사랑 시점>도 거의 하이퍼 리얼 장르예요. 최근 인기를 끄는 <숏박스>나 <너덜트>도 하이퍼리얼이잖아요. 기획에 뭔가 양념을 치면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TV 토크쇼만 해도 재미로 뭔가 덧붙이면 스스로 ‘MSG 친다’는 말을 하잖아요. 요즘 우재 씨가 핫한데 이유가 우재 씨의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1835세대(*18세~35세의 연령대)가 소비하는 주된 맥락이 ‘사실’인 것 같아요.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가장 가깝게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 우재 씨가 뱉는 말, 행위가 포장되지 않은 거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우재 씨에게 공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TV에 등장하는 호스트나 배우들은 판타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판타지가 사라진 거죠. 그래서 이런 제작 방식이 먹히지 않았을까...”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나름의 제작 노하우가 생긴 탓일까.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어떻게 <전지적 짝사랑 시점>보다도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성공작이 된 걸까. “경쟁사이기도 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만든 <에이틴> 작품이 있었어요. 그 작품과는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연출할 친구에게 어떤 형태로 만들 건지 물어보니까 자기는 진짜 그 나이 또래 애들이 겪는 우정에 대해서 다루고 싶다, 치정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10대 물이 아니라 조금 심심해 보여도 그 나이 때는 친구가 제일 중요하다면서요. 나의 우주인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리얼하게 그리겠다는 거죠. 40대인 제가 봤을 때는 이렇게 잔잔하게 만들어도 되나 걱정이 됐어요. 그만큼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철저하게 10대들을 위한 이야기였던 거죠. 전 세대를 겨냥하겠다면 작품 안에 다른 세대를 대변해주는 조연들을 넣겠지만 결국 의도적으로 그건 다 철저히 배제해버렸어요.” 10대가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만한 대형 사건이나 극적인 요소 없는 에피소드들로 얼마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혹여 타깃이었던 10대들에게조차 외면받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고 해. 그런데, 결과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랐어. “조회 수가 진짜 폭발적으로, 전 작품인 <전지적 짝사랑 시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조회 수가 쌓였어요. 그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 10대들은 다 봤다고 봐야 될 조회수인데, 작품을 돌려본 거죠. 그런데, 10대들끼리만. 아이돌 팬덤처럼 10대 위의 다른 세대에겐 진입장벽을 쌓아버렸어요.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주된 고객의 타점이 놀랍게도 20대 남성이었어요. 군대에서 보더라고요. 연애할 때 여성들이 상대 남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는 남성들이 많이 봤는데 일진 시리즈는 굉장히 타깃에 충실했던 작품이었고 그게 조회 수를 쌓는 데 도움이 됐지만 확장성은 좀 없었다? 그래서 조회 수가 엄청나게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MBC의 <연애미수>처럼 확장이 됐고 장편으로도 나올 예정인데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딱 거기, 10대들. 거기에만 머물렀다는 게 조금 아쉬움이 있죠.” 쉽게 이루지 못할 성공을 거둔 작품에서도 반면교사 삼을 부분을 찾다니, 맨땅에서 업계 최고로 회사를 키워낸 대표구나 싶었달까. 창작자와 사업가, 그 어디쯤 사실 <와이낫미디어>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 그 인연을 잊지 않고 무척 반가워해주더라고. “창립작품이죠. <미스터 츄>라는 작품 같이 했었잖아요.” 2015년에 참여했던 작품이었어. <와이낫미디어>가 창립되기도 전, 평소 호흡이 잘 맞는 모델 친구 3명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었지. 반응이 좋아서 시즌 3까지 제작되었어. “우재 씨와 다른 출연자분들끼리 케미가 너무 좋아서 네이버에서 상도 줬어요. 우수 콘텐츠.” 재밌게 참여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상까지 받았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회사 창립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뿌듯했어. “당시에 주우재 씨가 앞으로 예능 쪽으로 블루칩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셔서 오히려 제가 우재 씨를 섭외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하하.” 이쯤 되니 궁금해졌어. 이민석 대표가 웹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 무렵엔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은 방송 매체였어. 방송국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피디에서 웹 콘텐츠 제작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뭘까.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했던 걸까. “제가 방송 피디 일만 경험한 건 아니에요. <인간극장>이라는 교양 프로그램, 예능 드라마 기획, 방송 관련 기술 개발, 다양한 진로를 겪었는데 제가 가고자 했던 핵심 방향은 뭐냐 하면요, 일단은 콘텐츠로 성과가 날 좋은 시장을 찾아 나섰던 것 같아요. <인간극장>을 했을 때는 <인간극장>이 당시 국민 프로그램이었고, 예능의 시대가 됐을 땐 예능을 했고, 하다 보니까 제가 TV에 매여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TV에서 이탈해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하던 차에 해외에 ‘밉티비(MIPTV)라는 방송 콘텐츠 마켓에서 콘퍼런스를 듣게 됐는데 발상이 너무 신선한 거예요. 콘텐츠들도 재밌고. 그런데 그 콘텐츠들이 당시엔 UCC였어요. 기술이 받쳐주지 않아 아마추어틱했지만 화질이나 스트리밍 서비스가 점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할 거다 생각을 하니까 무서운 거죠. 눈을 돌려보니 이런 콘텐츠가 너무 많은 거예요. 와... 이걸 당해낼 수 있을까 TV가? TV는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인프라가 엄청 비싸잖아요. 그래서 유튜브를 공략해야겠다 시작하게 된 거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다 하더라도, 막상 뛰어들어 이상적인 미래를 손에 쥐는 건 또 다른 얘기. 게다가 처음 뭔가를 시작할 때 꿈을 크게 가져야 뭐라도 된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목표 최대치를 낮게 잡았다고 들었어. “공대 출신이라 그런가, 가설이 성립이 돼야 움직여지는데 시스테믹하잖아요. 이게 전문적으로 린 스타트업 전략이에요. 가설 한 번 검증해보고 실현해 보고 다음 단계로 가는 거를 제가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은 여러 번 실패 경험을 겪었던 친구들이 잘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본을 되게 많이 모아서 운영할 때 안전하게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투자도 계속 열심히 받았던 거고 가능한 모든 전략을 다 썼어요. 그렇게 안전판을 마련한 다음에 제작을 할 때는 예산을 작게 둬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 기회를 늘렸죠.” “타석을 많이 만드는 거예요. 타자들한테 충분한 타석을 주면 타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뭐가 되든지 간에 좀 많이 해봐야 결과가 돌아오니까 최대한 쪼개서 많이 만드는 쪽을 선택했고 그 결과 와이낫이 IP도 많고 콘텐츠도 많고 그걸 만드는 친구들도 많아진 거죠. 우리 회사 정규직이 현재 90명 정도, 자회사를 제외한 본사 인력만 그런데 대부분이 93, 94년생이에요. 창업할 당시엔 스물여섯 일곱 정도 나이대였죠. 그 친구들에게 직접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어요”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다 <와이낫미디어> 직원 연령대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대부분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 “TV 방송계는 좀 레거시 쪽에 가깝기 때문에 그 나이 또래가 많지 않지만, 콘텐츠 업계 전반적으로 보면 90년대생, 90년대 초반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농담처럼 '무한도전 세대'라고 부르는데 TV쇼 황금시대에 TV를 보면서 컸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영상에 대한 이해도도 빠르고 본인들이 누구한테 배우기도 전에 유튜브에서 배워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경력이 없는 친구를 들여도 6개월이면 거의 전문가가 되어있어요, 편집 속도가. 그 층이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의 황금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장기근속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직원들도 나이가 들 텐데. “베테랑이 되는 거죠. 그런 친구들이 숏폼 시리즈를 성공해서 중편을 성공하고 장편 드라마까지 하는, 그만큼 회사도 같이 성장해나가는 거겠죠. 우리 회사에서 커온 크리에이터들을 계속 배출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창작자를 계속 길러내 우리 나름대로 얻어낸 IP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고 여기서 길러진 인력들이 앞으로 시장에 좋은 활력소가 되고... 그런 형태의 회사로 길러나가기 위해서 회사 규모도 키워가는 거고요.” 실제로 <전지적 짝사랑 시점>을 연출했던 이나은 피디는 SBS에서 올해 초 방영한 <그해 우리는>을 쓴 드라마 작가가 되었어. 회사와 함께 성장한 인재가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게 조금 서운하진 않았을까. “그런 사례들이 한 두 건 계속 쌓여가고 있는데요, 창립 이념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직원은 회사의 소유물이 아니잖아요. 비즈니스적인 약속을 잘 지키는 관계이면 되는 거죠. 직원이 갖고 있는 재능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파이프라인, 우리 회사 제작 방식이 조금 다른 면이 있어요. 작품을 만들 때 감독이 조연출이 되고 조연출이 감독이 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연출 한 편 했다고 해서 계속 감독이 되는 건 아니고 다른 작품의 조연출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제작과정에서는 공동의 작업물을 내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나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분명한 규율을 둬요. 같이 창업했던 부대표가 되게 수평적인 것 같으면서도 수직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떤 작업을 할 때 감독보다 연출 경험이 많은 조연출과 작업하게 되더라도, 무조건 후배 감독이 의사결정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다르다 싶었던 부분은 또 있었어. 회의를 할 때 ‘브레인스토밍’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브레인스토밍은 기본적으로 결정을 뒤로 미루게 해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묻는데 회의 때 남한테 욕먹기 싫잖아요. 좋은 말 해줘야 되고 서로 상처가 안 되게 말을 하고. 그러다 보면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하지만 좋은 말들만 하게 되고 겉치레 말들만 하게 돼 있어요. 결국엔 각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거기 대장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게 시간 낭비란 말이죠. 차라리 유닛을 작게 주고 유닛의 장이 다 결정하게 만드는 게 훨씬 빠른 거죠.”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꼭 정답은 아니에요. 콘텐츠를 만드는 시장은 전쟁터예요. 만드는 과정 자체는 굉장히 치열하게 해야 돼요. 전쟁터 같아야 되는 거예요. 전쟁에서 이겨야 되기 때문에 장이 책임을 져야 되고 장이 결정을 빨리 내려줘야 돼요.” 결정은 빠르게, 하지만 ‘성공할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민석 대표가 꼭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부분은 따로 있었어. “창작하는 과정을 통제하란 얘기는 아니에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영화감독이 있어요. 대본을 본 배우들이 감독의 디렉팅을 보고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하잖아요. 그러면 그분이 하는 말이 있대요. 자네 뜻대로 하게. 현장에서 보면 디렉팅하는 사람들은 계획이 있어요. 그런데 그 플랜에서 위배되는 얘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의견들에 맞춰서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저는 연출자가 궁극적으로 닿아야 될 곳은 되게 자율적으로 흩트려 놓은 상태에서 그걸 딱 매치해내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창작의 과정에 함께하는 팀원들에게는 자유를 주는 거예요. 그냥 마음대로 하게끔 하는 거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을까 물었더니,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로 답했어. “제가 1996학번인데 그때 대학을 입학했을 때 그런 말이 돌았어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는 말. 실제 산업의 쌀이 됐죠. 저는 앞으로 콘텐츠가 우리나라 산업의 쌀이 될 것 같아요. 많은 젊은 인재들이 이 산업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렵고 힘든 일이고 결과가 빨리 도래하진 않아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게 견뎌내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계속 깎아서 그 형태를 만들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란 말이죠. 자신의 재능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의 규모가 크든 작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보내려고 하는 타깃 시청자, 타깃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적절하게’ 닿느냐, 그 ‘적절’한 걸 볼 줄 아는 능력은 많이 해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하고 싶다면 당장 해도 돼요. 하고 싶다면 자기 재능을 믿고 하라고 말하고 싶고요, 그리고 오래 걸린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와이낫미디어>만의 독자적인 장편 서사 장르를 개척하고 싶다는 이민석 대표. 그가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던 젊은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하며 웹드라마 시장의 부흥기를 주도할 제작사를 키워낼 수 있었던 건 ‘이것’ 때문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다섯 번째 손님 더핑크퐁컴퍼니 권빛나·주혜민 이사야. 이분들로 말할 것 같으면~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글자로만 봐도 흥얼거리게 되는 <아기상어체조(Baby Shark Dance)>, 혹시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사람 있을까. 유튜브 역사상 최초로 단일 영상 100억 뷰를 기록, 세계 인구가 약 80억 명(*2022년 11월 기준)이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번씩은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 이 영상을 제작한 <더핑크퐁컴퍼니> 전체 채널 누적 조회수는 무려 600억 뷰(2022년 12월 12일 기준)를 넘고 있어. 역대급 기록을 탄생시킨 주역 권빛나 · 주혜민 이사, 오늘은 이 어마어마한 90년대생 리더들의 [성장 키워드]를 찾아볼까.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찾다 2015년 이후 고공행진해온 기록 덕분일까. <더핑크퐁컴퍼니>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어. 국내 기업으로는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와 함께 유일해.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 이제 구글이나 디즈니, 넷플릭스 같은 거대한 콘텐츠 기업과 같이 선정됐다는 점에 많이들 놀라주시더라고요. 사실 저희도 놀랐어요.” (주혜민 사업개발 이사) “기업의 성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잘 나아가고 있구나 확인하는 기회가 됐죠. 뿌듯해요.” (권빛나 사업전략 이사) 각각 2014년, 2015년에 인턴으로 입사한 주혜민 & 권빛나 이사. 개인의 역량을 펼쳐 회사의 성장을 만들어 나가며 치프(Chief) 레벨까지 올라간 인재들이야. 두 사람은 혹시 <아기상어체조(Baby Shark Dance)>의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했던 걸까. “봉준호 감독 말씀 중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데 동의를 해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을 작품으로 승화했을 때 전에 없던 새로운 작품이 나오고 사람들이 정말 열광하는 대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감이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선호할 때 요즘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하는 건지 그 방향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권빛나 이사) “누구도 완벽한 예측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하는 게, 일을 즐기다 보니 치열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마침 핑크퐁이랑 아기상어가 저희가 쏟아붓는 열정만큼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전 세계 최초 같은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너무 교과서적인가요?” (주혜민 이사) 작년 ‘핑크퐁’ 공식 유튜브 영어 채널이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하이브레이블’와 함께 구독자 50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지. 대형 스타를 만들어낸 셈이니 그 삶이 이전과는 뭔가 달라진 게 있을 것 같았어. “저희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서 삶이 변하지는 않았고요,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너무 고맙다, 이렇게까지 대단한 건 줄 몰랐다면서 연락을 많이 주고 있어요.” (주혜민 이사) “일은 더 많아졌죠... (웃음)” (권빛나 이사) 기업의 빠른 성장을 이끌고 있는 리더가 90년대생이라는 것이 놀랍다는 시선들도 있는데, 정작 본인들은 어떨까. “실제로 저희 회사가 평균 나이가 만 29세라서 젊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90년대생 리더가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은?” (주혜민 이사) “저희 회사가 성장을 많이 이루어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좀 뿌듯한 건 있어요. 제가 회사에 좀 이르게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해봤고 계속해서 성공의 경험을 쌓다 보니까 그런 걸 더 자양분 삼아서 이제 앞으로 더 성취해 낼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 사실 지금은 원래 목표했던 거에 한 20%도 안 왔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 해나갈 게 많기 때문에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권빛나 이사)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아기상어체조(Baby Shark Dance)>에 그치지 않고, 차세대 IP ‘베베핀(Bebefinn)’ 유튜브 영문 채널이 3개월 만에 100만 구독자를 돌파했어. 월평균 구독자 증가율이 매월 2배 가까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비결이 뭘까. “유튜브가 예전에는 동영상 플랫폼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냥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유튜브를 켜고 보세요. 그런 것처럼 이제 틱톡도 지금 막 시작됐지만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에 우리 IP를 노출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권빛나 이사) ‘틱톡 트래픽을 활용해 유튜브 채널 성장을 견인한다’, 고객의 시간 점유율을 많이 갖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해. 그 전략이 늘 성공의 결과로 이어졌을까 궁금해졌어. “그렇진 않죠. 저희도 그다음을 너무 알고 싶어요. 변하는 속도가 빠른 게 놀라울 정도예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한 게 1차 밈의 시대, 그다음이 베이비샤크 챌린지였던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챌린지에 어느 정도 포맷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틱톡에서 유행하는 챌린지는 포맷조차 없어요. 밈의 밈을 따라 하는 밈의 밈의 밈이 생길 정도로 빠른 시간에 변하니까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최대한 빠르게 캐치해서 사업적으로 녹여낼 수 있냐 판단하는 거죠.” (권빛나 이사) “일을 재밌어하는 게 중요해요. 빠르게 실패했을 때도 내가 실패를 하더라도 재미있었으니 됐다, 다음에는 이렇게 했던 거를 다르게 해 봐야지. 다행히 회사가 거기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실패를 여러 번 하는 것에 대해서 용인하는 분위기여서.” (주혜민 이사) “저희 회사 DNA에는 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빠르게 시도하고 과감하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무도 두려움이 없거든요. 시도를 하고 일단 그 시도한 걸 바탕으로 데이터로 분석을 해요. 그래서 이게 성공이다. 실패다. 더 가져가야 될 것인지 포기를 할 것인지 선택하고 그다음에 또 다음 챌린지로 빠르게 넘어가는 유연함이 있는 것 같아요.” (권빛나 이사) 막연한 감으로 무한반복 도전을 할 수는 없는 일, 프로젝트의 성공의 열쇠가 될 사람들의 관심사 그러니까 빠른 속도로 변하는 트렌드를 읽어내기 위해 일상에서 하는 본인들만의 특별한 루틴이 있을 것 같았어. “너무 별 게 아니어서 실망하실 수도 있는데, 올빼미형 루틴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기 전에 여러 가지 콘텐츠를 많이 시청하는 거? 별 게 없어요. 시간이 있을 때는 현대 건축물을 보러 가죠. 기존의 건축 양식의 틀을 깨고 좀 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그 공간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그 공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유튜브나 틱톡이나 이런 플랫폼과도 비슷한 것 같아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권빛나 이사) “일상은 저도 비슷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웹툰을 보고요. 출근을 하면서 스트리밍 탑100 듣고 인스타랑 유튜브 챙겨보고 저녁에 와서 넷플릭스랑 티빙 보고. 중요한 건 거기서 얼마나 많은 인사이트를 캐치하냐인 것 같아서 콘텐츠를 보면서 어떤 게 잘 되고 있지? 어떻게 잘 되고 있지? 왜 잘 되고 있지? 지켜보는 게 재밌어요. 장르 불문하지 않고 그 트렌드를 찾아낸 다음에 핑크퐁이나 아기상어에 적용해보려고 해요.” (주혜민 이사) 일과 일상이 교집합 되어 있는 삶에서 피곤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즐거움을 느낀다고 해.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인 것 같아. 이쯤에서 조금 짓궂은 질문을 해봤어. <아기상어체조(Baby Shark Dance)>의 국내 인지도가 해외에서 쌓은 위상에는 못 미치지 않나 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어. “초대박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권빛나 이사) 준비하는 자에게 꿈은 허상이 아니다 ‘<아기상어체조(Baby Shark Dance)> 100억 뷰 달성, 내가 없었으면 절대 못했다?’ 질문에 입을 모아 ‘아니’라는 두 이사. 문득, 함께 일하며 혹시 서로를 견제한 적은 없었을까. “있다” (주혜민 이사) VS “없다” (권빛나 이사) “성향이 너무 반대예요. 제가 못하는 부분들을 반대로 (권빛나 이사가) 잘하는 게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항상 훔쳐봤죠.” (주혜민 이사) “견제한 적 없다고 했지만 이유는 같아요. 저랑 가지고 있는 역량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권빛나 이사) 두 사람을 롤모델로 성장을 꿈꾸는 청년이 있다면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휩쓸리기 쉬운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성과를 확인하고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본인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면 그 영역에서 최대한 해보고 뭔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끝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만약 제가 처음에 여기에 입사해서 2-3년 다니다가 대기업으로 이직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는 내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권빛나 이사) “쉽진 않겠지만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았으면 해요. 저는 지금도 꿈을 꿉니다. <더핑크퐁컴퍼니>를 디즈니같이 100년 넘게 사랑받는 콘텐츠 패밀리 기업으로 키우고 싶고요. 언젠가 디즈니랜드 같은 핑크퐁 테마파크도 세우고 싶어요.” (주혜민 이사) 일 얘기를 할 때마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눈을 반짝이는 권빛나 & 주혜민 이사.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당장은 ‘핑크퐁 시네마 콘서트 : 원더스타 콘서트 대작전’의 흥행에 주력하고 있어요. 여기 나오는 동요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데이터를 참고해서 유튜브에 인기가 많았던 곡들을 선별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핑크퐁 IP의 정수가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인데, 그걸 가장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극장판 형식의 콘서트라 많은 분들이 즐기실 수 있도록 알리려고 하고요.” (주혜민 이사) “앞으로는 키즈 타깃에 갇히지 않고 보다 다양한 연령의 타깃을 가진 IP를 많이 내놓으려 해요. 지금 준비 중인 IP 중 하나가 '문샤크'인데 판타지 로맨스물 웹툰이나 웹소설로 제작해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그 IP 외에도 전체 연령을 타깃으로 한 귀여운 물범 캐릭터도 있어요. 이게 키즈를 벗어난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모두가 좋아할 만한 IP를 만들자는 목표를 바탕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권빛나 이사) 한 기업을 최고의 자리로 견인한 핵심 인재가 될 수 있었던 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네 번째 손님은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야. 젊은 세대들에겐 친숙한 얼굴이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 ‘김영세’를 검색해보면 그의 이름에 붙은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업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그의 [성장 키워드], 지금부터 추리해보자고~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다 김영세 대표의 대표작 아이리버의 ‘삼각형 MP3’. 이 제품이 출시될 2002년 당시만 해도 ‘MP3’는 육중하거나 네모 모양을 한 ‘MP3’가 대부분이었어. 때문에 2000년대 학번 젊은 세대들 중에 아이리버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킨 그 시작이 궁금했어. “자기는 작은 회사라 지금 우리 이노디자인이 하는 레벨의 디자인을 사 갈 돈은 없다, 그렇게 제안을 했어요. 하지만 덥석 잡았죠. 제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산업은 평범한 식의 이런 계산법을 넘어야 된다, 리스크를 분담하고 서로 투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이분이 딱 찾아왔으니까.” 김영세 대표에게 디자인을 제안한 ‘작은 회사’ 아이리버(설립 당시 레인콤)는 삼성전자 출신 양덕준 대표가 1999년 설립한 회사였어. 약속된 보상을 제시하는 대기업이 아닌 위험부담을 같이 떠안아야 했던 회사를 택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만큼 자신이 디자인을 맡는 제품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걸까. “그렇다기보다 그걸(삼각형 MP3) 디자인할 때 마인드가, 얘는 시장에 나가서 대박을 쳐야 된다, 아니면 우리도 제로. More exciting, 더 흥미가 있다는 거죠. 내가 잘해야 결국 다 잘 되는 일, 아니면 같이 망하는 상황. 모험이 오히려 더 잘 해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어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내몰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니.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마음도 들었어. 하지만 분명한 건, 제품 디자인이라고 할 게 없는 시대 덕분이라거나 운이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성과였어. 50억 매출하던 아이리버가 3년 만에 4500억 원 매출을 올리게 되었으니까. ‘디자인 by 이노’라고 새겨진 아이리버 제품. 러닝개런티를 약속받은 그가 얼마를 벌어들였는지는 상상에 맡길게. ‘관심’이 곧 재능이다? 김영세 대표는 무엇이 달랐을까.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생소하던 60~70년대 어떻게 산업디자이너가 될 생각을 했던 걸까. “16살 때로 기억하는데 똘똘 뭉친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중에 자주 가서 노는 집이 굉장히 큰 집이었어요. 골프연습장과 당구장이 있던. 여섯 명이서 당구를 치다가 재미가 없어서 다른 방으로 갔는데 엄청나게 책이 많은 서재였어요. 책벌레도 아닌데 그날 따라 책장에 꽂힌 책을 만지다가 아무거나 뽑아서 봤어요. 그런데 이 책이 진짜 환상이에요.” 별 생각 없이 뽑은 책이었는데 ‘인생의 잭팟’을 만난 순간이었다는 거야. “스포츠카, 뉴욕 거리, 유명 건축물, 예쁜 가구와 조명들. 디자인 책이었어요. 디자인이 뭔지도 모를 때, 뽑아 든 그 매거진 타이틀이 ‘Industrial Design’이었죠. 5분 정도의 모멘트, 찰나에서 미래를 찾은 거죠. 대학이고 뭐고 바로 디자인을 해야겠다. 뒤져서 찾는 게 아니라 모멘텀(Momentum)이라는 게 가끔씩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를 깨닫느냐, 그걸 내 거로 만드느냐 아니냐. 이거 내가 할 일이다라는 느낌, 해야겠다, 내가 제일 먼저 빨리 배워와야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만난 그 순간이 첫사랑을 만난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혁신’이라 불리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결국은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람과의 대화, 만남, 또는 내가 본 사람. 내가 본 주변 내지는 환경. 그래서 우리가 디자인하는 거의 모티브는 결국은 생활과 사람이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많은데 어떤 제품을 디자인할 때 이게 어떤 사람이 되게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게 필요하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얘기하다가 이런 거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딱! 그림으로 그려질 때도 있고” 새로운 디자인의 출발이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해 보이는 것을 상상할 때 떠오른다는 이야기. “커피숍에 앉아 혼자 쉬면서 오후에 창밖을 내다봤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눈이 따라갔는데 보다 보니까 뭐 이상해. 뭐가 이상한가 봤더니 멋있는 차림에 MP3 플레이어는 되게 무겁고 시커먼 걸 목에 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그 커피숍에서 냅킨 갖다가 그린 그림이 이제 N10이 된 거죠. 그 여자분에게 무거운 MP3보다 목걸이처럼 만들어주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능적인 측면이 중요했던 전자제품이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결국 제품을 구매하는 구매자들의 만족도는 자연스레 높아지게 되었지. “그만한 무게가 나가는 이유가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줄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건 엔지니어가 아닌 이 무식한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제품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엔지니어한테서 탄생하기 쉽지 않을 수 있죠. 비즈니스는 그걸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내 목에 무거운 것 걸지 않고 가벼운 것, 목에 목걸이처럼 걸 수 있게 하는 제품, 엔지니어에게는 도전이죠. 고민해보지 못했을 뿐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결국 크기를 줄인다거나 무게를 줄여내는 방법을 찾아요.” Design is everything ‘디자인이 곧 모든 것’ 김영세 대표는 ‘디자인이 곧 전부’라는 이야기를 재차 강조했어. “<에어비앤비>라는 회사 창업자 두 사람 다 디자이너예요. 두 사람 다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이라고 미국에 있는 유명한 디자인 스쿨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이에요. 졸업하고 나서 샌프란시스코에 콘퍼런스에 왔다가 호텔을 찾다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딱 깨달은 게 이거는 호텔 인테리어를 할 게 아니라 숙박이라는 걸 디자인하자.” ‘디자인’의 개념이 단순히 제품 디자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창업 구상 역시 디자인의 영역으로 이해한 발상이야. “연예, 문화, 스포츠, 제조, 기술 이 속에 디자인이 안 들어가는 게 거의 없죠. 기술적인 creator가 만드는 것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좋은 아이디어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창업을 하고. 그러니까 제품을 디자인해가지고 많이 파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산업인데 이제는 산업 자체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자인의 개념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는 힘, ‘프로 상상러’ “외국 다녀가면서 공항에서 딜레이되거나 이럴 때 있잖아요. 4시간 막 이럴 때. 저는 하나도 안 지루해요. 라운지에 앉아서 혼자 상상하다가 그리기 시작해요. 그러면 그게 제일 재밌어요. 상상하기가 하나의 놀음이죠. 젊은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상상하기(Imagining)'처럼 영양가 있는 습관은 없을 것 같아요. 아인슈타인이 뭐라고 했죠? 지식은 사람을 달리게 한다. 그런데 상상은 사람을 날게 한다. 그걸 믿어요. 가능성은 모든 분들한테 있어요.” 이토록 ‘프로상상러’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는 이유가 뭘까. “근데 모든 일을 처음에는 진짜 노는 것처럼 시작할 수 있죠. 점점 시간이 지나고 결국 사람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일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는 건데 일을 일로만 한다? 일을 아직 덜 한 거예요. 더 빠져봐요. 10배 100배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죠. 가치(Value)를 스스로 만들어내요.” 취미 no.1이 일이라고 얘기하는 김영세 대표 “생산직 근로자들은 ‘블루칼라 워크’라 그러고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무직 직장에 있는 사람은 ‘화이트칼라 워크’라고 불렸었잖아요? 그런데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기업인들을 만나고 저도 크리에이티브한 사업을 하고 이런 새 모델도 만들고 하다 보니까 주위에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 ‘블루칼라’도 없고 ‘화이트칼라’도 없더라고요. 스티브 잡스가 ‘블루칼라’도 아니고 ‘화이트칼라’도 아닌 것처럼. 어디에서 일하냐. 그냥 상상의 세계 속에서 일하는 거죠. 일상에서. 뭔가 없는 것을 찾아내는 일,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일상인 사람들인 거예요. 그들이 세상을 바꾸더라고요.”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노는 것처럼, 일이 재미있고 즐거우면 일하는 게 즐거워지고 끝내 결과도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 어쩔 수 없이 ‘반드시 그러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 “당신은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나의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 나의 꿈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그러면 그 기간 동안 내가 행복한 거예요, 그 도전하는 기간 동안. 이루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목표한 게 있어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김영세 대표가 젊은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미국 데이터를 보면 2017년도를 기점으로 프리랜서의 숫자가 정규직 직원보다 많아져요. 그건 팩트예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좀 많지만. 그리고 불과 앞으로 5년만 있으면 반반이 되고, 직장이 점점 줄고 자기가 만들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가는데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거예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이겨요.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에. 레이스예요. 5년 남은 기간 동안에 누가 자기 길을 멋지게 만들어 내느냐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우리나라도 똑같다고 봐요, 저는.” 새로운 도전, 그가 예견하는 새로운 시대 “제 생각에는 회복력 같아요. 예를 들면 실패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넘어서 실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시 회복하는 것. 실패해도 원점보다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믿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경험을 통해서. 예를 들면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어요. 그럼 일단 좌절은 하지만 그때 나의 자세는 그래? 그럼 나 이렇게 할 거야. 그런 게 늘 생겨요. 그게 나의 자신감이죠. 실패가 곧 세상의 끝이 아니라 도전할 수 있는 다른 기회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은 리스크를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위기는 늘 느끼고 있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지금도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가장 좋다는 김영세 대표,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데. 그가 지금 꿈꾸고 있는 미래는 뭘까. “전기차에 꽂혀 있어요. 우리가 한 3년 전부터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을 하나 또 해가지고 거기서 굉장히 작은 차를 디자인하고 있어요, 전기차를. 전기차 분야의 디자인 컴퍼니로 가장 성공하고 싶어요. 제 다음 프로젝트.” 3년째 전기차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는 김영세 대표. 내년 출시 예정이라는 ‘디자인 by 이노’ 새겨진 전기차는 어떤 신박한 디자인일지 응원하고 싶어졌어. “성취감을 느끼면서 하려고 해요. 해낸 것이 잘 되면 박수치고 다음에 뭘 할까를 찾는 거죠. Why not? 저의 비즈니스에 굉장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고 방향을 줬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 열정도 재능이라는 그의 성장 동력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 있다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세 번째 손님은 ‘호통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판사님이야. ‘존경받는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천종호 판사’, 그의 [성장 키워드]는 뭘까. ‘천종호’라는 사람이 가진 세계관을 탐험해보자고~! 어쩌다‘소년재판’, 그렇게 8년 후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귀를 의심했어. 비행 청소년들을 바로잡고자 재판을 받으러 온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며 소년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을 많이 선고하면서도, 전국 20곳에 이르는 비행 청소년을 돌보는 대안 가정인 청소년 회복센터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소년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분이?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원래는 변호사가 되려고 했었어요. 적녹색 색약자라서 이공계를 갈 수 없었어요. 문과만 가야 된다고 하니까 당시에 가장 사람들이 선호하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됐고, 동기들보다 3살 늦게 합격을 했었습니다. 판사 고위직을 갈 생각은 없었고 어느 정도 몸 담다가 부장 판사가 될 때쯤이면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려고 했었죠.” 어렸을 때부터 드높은 사명감으로 소년 법정에 서는 판사가 되고자 목표했던 건 아니었다는 거야. “창원(지법)으로 나가게 됐어요. 가보니까 다른 사건은 할 수 없고 우리 기수에게 형사 재판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형사 재판 중에 판결문을 안 쓰는 소년재판이 있어서 이걸 하겠다, 그렇게 시작됐죠. 주어진 일이니까 편한 일을 하자. 판결문 쓰는 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좀 더 쉬운 일일까 싶어 법조계에서 한직으로 여겨지는 소년재판을 자진해 맡았다고 해. 그것이 인생을 영영 바꿔놓을 선택일 줄 그땐 예상하지 못했던 거지. 편하게 판사 ‘일’을 하다가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마음이 어느 때에 바뀌게 된 걸까. “처음엔 그저 주어진 일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제 동생들, 선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재판을 해야 되겠다 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니 소년재판 제도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봐야겠다 꿈을 가지게 됐죠.” 가랑비에 옷 젖듯, 소년 법정에 서는 아이들의 재비행을 막아야겠다는 ‘진심’이 지난 8년간 차곡차곡 쌓였다고 해. 그런데, 또 한 번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 지난 2018년, 부산 가정법원에서 대구 지방법원으로 인사 발령이 난 거야. 소년 법정 ‘호통판사’로 알려졌던 천종호 판사가 지금은 일반 법정에서 성인 재판을 하고 있을 줄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천종호 판사 스스로 정년 때까지 소년재판을 할 거라고 공언했었거든. 어찌 된 일일까. “사실은 연속해서 소년재판을 한 분들은 없습니다, 판사 중에. 인사발령 상 어렵거든요.” 8년간 소년재판을 맡을 수 있었던 건,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처음 소년재판을 맡고 3년 뒤 사법부에 전문 법관을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해. 한 판사가 소년재판만 8년 간 지속해온 건, 법조 세계에서는 이례적인 기록이자 천종호 판사가 유일한 사례야. “2018년 2월이었어요. 부산 가정법원에서 대구 지방법원으로 인사발령이 났을 때 사실 사직서를 제출했었습니다. 아직도 가정법원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신청서를 내고 있는데 아직까지 못 돌아가고 있어요.” 뜻을 품었더니 정작 더 이상 ‘소년재판’을 맡을 수 없게 된 상황. 하지만 의욕을 꺾는 대신 다른 곳에서 자신이 세운 뜻을 실현할 방법을 찾았어. 축구와 돼지국밥, 그리고 진심 “2016년 12월부터 축구단을 만들었어요. 만사에 소년만 생각하는 ‘만사소년’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는데 축구단도 만들어서 매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합니다. 6년간 빠진 적 없이 해오고 있어요. 금요일은 가족 행사도 약속도 안 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법정에 섰던 아이들이 과연 ‘천종호 판사’를 만나러 모일까 싶지만, 60여 명의 아이들이 매주 금요일이면 ‘축구하고 밥 먹으러’ 만사소년 축구단을 찾는다고 해. “구장을 빌려서 11대 11 축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같이 축구화도 씻어놓고 축구복도 씻어놓고 뛰고 나서 돼지국밥 먹고. 아이들이 신이 내린 음식이라고 할 정도로 잘 먹어요.”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의 약속을 꾸준히 지켜온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 “한 번은 골을 넣었어요. 수비하던 아이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내가 골을 막을 수 있었는데 판사님 공이라서 안 막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6년 동안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거든요. 아이들이 피해주는 거 같더라고요. 17세에서 18세 정도 되는 아이들과 50대 후반의 제가 몸싸움하다 보면 다칠 수 있으니까. 거기에서부터 아이들 인성 교육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경험으로 체득한 단단한 믿음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마산에 있는 한 아이가 학교에서 굉장히 폭력적이었는데 축구단 2,3개월 활동하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그때 그 아이가 맞냐,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는 겁니다. 축구는 혼자 플레이하면 안 되는데 그 아이가 처음 축구할 때 그랬어요. 많이 혼났는데, 몇 번 지적당하고 나서는 팀플레이를 잘하게 되더라고요.” 사단법인 ‘만사소년’은 천종호 판사와 지인들이 만든 법인이라고 해. 천종호 판사가 출간한 책 인쇄 수익 전액과 기부금 등으로 축구단 활동 및 단체 여행 등 아이들이 재밌어할 활동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고 해.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바뀌는 게 눈에 보여 축구단만큼은 어떻게든 계속해나갈 거라며 눈을 반짝이시더라고.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하니까 아이들이 이 패턴으로 살아가더라고요. 아이들한테 꾸준하게 뭔가를 시키면 재비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생각이 일상이 되도록, 습관화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리지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축구단을 오래 하는 게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계속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나중에 뭔가를 이뤄낼 수 있으니까요.” ‘이것 해라, 하지 말아라’ 조언만 하는 건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지 몰라. 방황하던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고, ‘밥정’을 쌓고, 그네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단언하긴 어렵지만, 천종호 판사 역시 ‘어른다운’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게 아닐까. “3, 4년 전에 왔던 아이인데요, 성인이 돼서 직장생활 열심히 하는데 가끔은 공 차고 싶으면 와요. 그리고 비행 청소년들이 아닌 보육원 출신 아이들도 있거든요. 한 10명 가까이. 아이들도 성인들이 된 후에도 계속 매주 와요. 감사하는 게 저도 처음 시작할 때는 5분도 못 뛰었는데 지금은 2시간 뛰어도 괜찮아요. 아내가 하는 말이 ‘내성적인 사람이 규칙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는 게, 그 아이들이 끼워준다는 것만 해도 당신이 아이들한테 감사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시대에 필요한 관용에 대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생각이 있었어. 성인 못지않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 흉악범’ 사례가 언론에 집중 소개될 때면 이런 아이들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소년 처분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이런 아이들은 함께 모여 축구를 하거나 밥을 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아. “선처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엄벌과 비난이 가장 쉬운 미봉책이라는 거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 건 하되 처벌 이후에 이 아이가 재비행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처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소년범이 아닌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더니,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라며 숨을 고르시더라고. 나직한 목소리로 다음 말이 이어졌지. “인생이라는 게 어떤 단계가 있습니다. 이 계단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어느 순간 도약을 할 때예요. 예를 들어서 컵에 물이 담겨 있습니다.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데요.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졌을 때 이 컵에 물이 흘러넘치거든요. 그걸 티핑 포인트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을 아무리 떨어뜨려도 이 물에 있는 컵에 있는 물이 흘러넘치지 않는데 어느 순간 되면 그게 흘러넘칩니다. 그 순간이 되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만 반드시 옵니다.” 우리가 쉽게 소년범들에 대해 비난과 무관심으로 일갈할 때 새로 삶을 틔울 작은 싹을 발견하기 위해 운동장을 달리는 천종호 판사, 그가 ‘존경받는 어른’이 된 힘의 원천은 이것이 아닐까. 글 : 남작 디자인 : 박수민 인턴 : 최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