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부 소속 김혜민 기잡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책임감으로, 역사에 기억되는 기자가 되자는 거창한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야, 늙은 페미 아줌마.” 임산부 배려석 기사를 쓰고 받은 메일들 중 일부 내용입니다. 기자는 기사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반응을 실시간, 여러 통로로 받고 있어서 욕설이나, 무차별 비방에 많이 무뎌져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쓴 기사이기도 했고, ‘임산부 배려’에 대해, 일부이지만 대중의 인식이 어떤지 다시 한번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서서 가는 임산부들의 심정도 비슷할 겁니다. 대부분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가 괜히 해코지당할까 봐, 뱃속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두려워 차라리 서서 가는 방법을 택합니다. 사실 임산부가 되기 전에는 이 심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매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일상인 기자 역시, 임산부가 돼서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임산부들은 임산부라는 사실을 드러내기조차 꺼려하고, 오늘도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그래도 이런 임산부들의 마음을 알아준 고마운 배려들이 있습니다. 광주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누구나 앉으면 “임산부가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음성이 자동으로 흘러나옵니다. 부산과 대전 지하철은 임산부에게 발신기를 배부했는데, 전동차 안에서 발신기를 누르거나 배려석 근처에만 가도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임산부 대신 ‘발신기’가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목소리’ 역할을 하는 겁니다. 공공장소에서 주위의 시선을 끄는 걸 꺼려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음성이 흘러나오는 임산부 배려석에 계속 앉아있는 건 사실상 어렵겠죠. 그런데 이런 시스템, 서울교통공사 즉 서울을 달리는 지하철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니, 서울교통공사 측은 “실효성에 대한 통계가 없고, 보수 민원이 많다, 임산부 착석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불투명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통계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광주교통공사에서 올해 2월에서 4월 690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중에 517명(74.9%)이 ‘임산부 배려석 음성안내시스템 전 열차 확대 설치’를 찬성했습니다. 대전교통공사 역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민원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조사해 보니, 해외는 이렇다 할 특별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임산부에게 노약자석 자리를 잘 양보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추가적인 장치를 더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취재 당시엔 모두들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지만, 일상생활에선 따뜻한 배려를 받은 경우도 많습니다. 임산부석에 일반인이 앉아있어서 포기하고 서서 가고 있을 때, 비어있는 자리를 알려주면서 앉으라고 하셨던 청년, 가방 안으로 들어가 있던 임산부 배지를 유심히 보시다가 꺼내주시면서 “잘 보이게 꺼내놔야죠” 말하던 아주머니. 그런 분들을 만난 날이면 감사하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서서 가는 임산부를 만난다면, 임산부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용기를 내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유기견 보호소'로 둔갑한 '신종 펫숍'이 8뉴스 리포트와 비디오머그 '일단가봐'에 나간 지 일주일이 됐습니다.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과 제가 받은 메일을 보면서 공감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신종 펫숍'의 수법은 간단하지만 악랄합니다. 유기견이 있다고 속인 뒤 파양견이 있다고 말을 바꾸고, 파양견의 문제점을 나열합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펫숍의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안겨줍니다. 어디서 많이 본 수법이죠. 없는 매물을 있다고 속이는 중고차, 부동산 업자들과 비슷합니다. 어떻게 '신종 펫숍'이라는 괴물이 생겨났을까? '신종 펫숍'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려주는 현직 직원들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제보자들의 말을 빌려보겠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확산하던 시기, 강아지 입양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펫숍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됐죠. 특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포털 광고 검색어 순위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 펫숍 업체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었습니다." 포털의 키워드 노출 순위는 입찰 경쟁 방식입니다. 높은 금액을 써서 내는 업체가 상위에 노출되는 형식이라서 서로서로 더 높은 금액을 쓰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가 특정 견종을 검색해 업체 홈페이지로 들어올 때마다 업체는 포털에게 1회에 몇 만원씩 지불하고, 이게 쌓이면서 한 달 광고 비용으로 수억 원을 쓰는 사태까지 갔습니다. 출혈 경쟁이 심해지자 일부 업체가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비딩 가격이 저렴한 '유기견 보호소'를 검색어로 넣은 거예요. 그렇게 하니까 광고비는 저렴해지고, 유입량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제 '유기견 보호소' 검색해서 온 사람들을 잘 구슬리기만 하면 된 건데, 그것 역시 너무 쉬웠습니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방법'은 앞선 기사에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우선 '유기견 보호소'가 되기 위해선 그럴 듯한 '유기견'이 필요하겠죠. 강아지를 파양 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이를 잘 돌봐주겠다"면서 관리비와 함께 강아지를 받습니다. 이 강아지는 '미끼'가 됩니다. '유기견 보호소'를 검색한 뒤 매장으로 전화를 걸거나 카카오톡으로 문의 메시지를 보내면 "무조건 매장으로 와라"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렇게 현장에 온 사람들에겐 파양견을 소개하면서, '유기견' 대신 '파양견'이 있다고 말합니다. '유기견'과 '파양견'은 모두 버림받은 불쌍한 강아지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물어보지도 않은 파양견의 문제점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펫숍의 귀여운 강아지를 안겨줍니다. 아이와 함께 간 가족이라면 작고 귀여운 펫숍 강아지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걸 노린 거죠.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얼떨결에 '펫숍 강아지'를 사가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에서 '신종 펫숍'은 언제나 돈을 법니다. 사람들이 못 키우겠다고 보내는 강아지는 관리비를 받고 '파양견'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파양견'을 '유기견'이라고 속여서 보낼 때도 '책임비'와 '물품 구입비'를 요구합니다. 게다가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고 밝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펫숍 강아지를 판매할 땐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사기'에 가까운 이 수법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매출은 수직 상승했고, 이 업체는 여러 지점까지 늘리며 사업을 확장합니다. 지점에서 수법을 배운 직원들은 새로 펫숍을 내서 같은 방법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다른 업체들까지 이 수법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제보를 했던 현직 직원은 "괴물이 탄생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지옥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최근 파양 동물들을 방치해 1,200마리를 떼죽음에 이르게 한 업체가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동물농장과 SBS 뉴스에도 보도됐죠. 이곳도 '신종 펫숍' 중 한 곳인데, 동물들을 임시로 맡아주고, 입양도 보내주겠다고 관리비를 받아놓고서도 파양견을 방치한 겁니다. 해당 업체가 이름만 바꿔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주인이 필요한, 지자체와 동물단체의 진짜 유기견 보호소의 유기견들은 아직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일주일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포털에 '유기견 보호소'를 검색하면 '신종 펫숍'이 뜹니다. 특정 포털 한 곳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곳이 마찬가집니다. 포털에 '유기견 보호소'를 검색하면 '펫숍'으로 연결되는 구조부터 끊어내야 합니다. 동물판매업자는 동물보호시설로 오인하게 하는 '보호소' 명칭으로 게시하거나 광고해서는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펫숍이나 번식장에서 노화·질병 동물을 처리할 경우, 농림축산식품부령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 최근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인데, 현재로선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죠. 신종 펫숍들은 분명히 교묘하게 수법을 바꿔가면서 장사할 겁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반려사업을 포기하긴 쉽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나 키우다가 쉽게 버리는 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외국처럼 입양 전에 시험을 보는 등 제도를 까다롭게 해야 하고, 파양이나 유기를 하면 과태료를 많이 물게 하는 거죠. 책임감 있게 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생겨야 생명을 물건으로 여기는 펫숍과 보호자들이 사라집니다." 동물판매업자의 조언입니다. 그 역시 반려견을 판매하지만 구매를 어렵게 하는 게 맞다고 말합니다. 판매업자들도 규제를 말하는데,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요?
해맑음센터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0년 4월. 성수여중의 한 학생이 동급생들에게 집단폭력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해 아이는 40일간 입원 치료까지 받았는데 가해 학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젓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보다 못한 피해 학생 어머니가 탄원서를 썼고 이 내용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이후 비슷한 피해를 겪은 학생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모여서 얘기해 보니, 학폭 피해 학생들은 '가해 학생을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공통된 고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해맑음센터입니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만 받는 전국 유일한 시설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현재 센터장이 성수여중 학폭 피해 학생의 어머니입니다. 학폭 피해 가족들의 노력 끝에 이곳은 현재 아이들이 심리 치유를 받으면서 교과 과정도 이수할 수 있는 시도교육청 위탁 지정 센터까지 됐습니다. 센터 재학생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아들이 처음에 학폭을 당했을 때 정말 둘다 이렇게 숨도 못 쉬었었어요. 집안이 엉망진창이 됐을 때 그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알려줘서 겨우겨우 찾아간 곳이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알음알음 알아봐가지고 갔는데 거기는 그냥 피해자 센터가 아니라 일단 가족이 돼 주더라고요." 수없이 호소했는데... 결국 문 닫는다 그런데 이곳이 내일(19일) 문을 닫습니다. 2013년 대전의 한 폐교에 자리를 잡았는데, 4년 전부터 건물 붕괴 우려가 있었고 최근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건물을 새로 짓거나 이전을 하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요? 센터 학생들과 교사들은 보수나 이전을 끊임없이 요청했습니다. 교육부에도 교육청에도 정치권에도 수도 없이 호소했습니다. 현재 세 들어 있는 건물은 그린벨트 지역이라 신축은 할 수 없고 이전 밖에 방법이 없는데 문 닫는 시점까지도 이전 장소를 확정 짓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후보지는 있다"고 해명합니다. 또 다른 폐교 3곳입니다. 학부모들과 센터 측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무려 1948년 지어진 곳도 있고요, 건물 상태는 지금보다 더 안 좋았습니다. 깊은 산골에 위치해 버스는 2시간에 하나씩 오고 인적까지 드뭅니다. 도저히 옮겨갈 만한 곳들이 아니라는 게 학생과 교사들의 설명입니다. 물론 정부에서 운영하는 비슷한 기관인 Wee센터나 Wee스쿨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곳들은 '위기 학생'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모두 모인다는 겁니다. 해맑음센터 학생들은 또 한 번 버림받았다고 느낍니다. 해맑음센터 재학생1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일 너네 나가라 이거는 그냥 저희를 가해자들 속에 다시 던져놓거나 그냥 버려두는 거 아닌가요. 해맑음센터 재학생2 '교육부가 학생들을 버렸다.' 이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다 가능할 것 같고 또 입교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입교 절차가 하루 만에 끝, (그렇게) 되는 게 아닌데. 여기 있으니까 한번 봐라. 이거는 그냥 버려두고서 너희가 알아서 해... 너희가 재주껏 살아보라는 말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대안이 없는 건 아니라는데... 최근 경기도는 비어있는 '경기도평생대학' 건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협의하고 있었습니다. 교통은 좀 불편하지만 건물이 오래되지 않았고, 공간도 넓어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주호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서 이곳이 "유력한 후보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곳은 어떤 이유에선지 후보지에서 배제됐고, 경기도와 교육부 어디서도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폭 피해 학생들이 잘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죠. 우리는 어쩌다 절망과 좌절을 겪은 이 아이들이게 또 한 번의 큰 상처를 주게 됐을까요. 재학생 어머니 해맑음센터를 그냥 정말 살려만 주셨으면 좋겠어요. 거기를 없애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다 갖고 계시잖아요, 교육청에서는. 근데 애들한테는 해맑음센터 밖에 없어요. 어떻게든 살리려고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표준 몸무게인데도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줄까?” 이 물음에서부터 취재는 시작됐습니다. 병원 줄서기부터 약을 손에 넣기까지 모든 과정을 기자가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단호한 말투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느껴지는 이 문자 내용. 서울 구로구의 한 다이어트 병원 줄서기 대행업체에 연락하자 온 답변입니다. 인기 있는 다이어트 병원들은 진료를 받으려면 하루 전날부터 밤새 줄을 서야 합니다. 그래서 줄서기 대행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하루 전날에는 이런 문자도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대신 줄선 게 들키면 안 된다면서 옷까지 맞춰 입으라고 합니다. 건물 복도 불이 켜지는 게 오전 7시. 아직 어두컴컴한 오전 6시 40분에 알바생과 교대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는 알바생이 알려준대로 약속한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척하면서 알바생과 자리를 바꿨고, 오전 8시에 대기번호 6번이 적힌 접수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키와 몸무게를 재라고 합니다. 162cm, 50kg. 잠시 뒤 진료실에서 호명합니다. “이렇게 체중 적게 나가는 분들은 치료 기간을 아주 짧게 해야 돼요. 그래서 더 노력 많이 하셔야 되고.” 먹지 말라는 말이 아닌,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탄수화물과 지방을 빼주는 약을 추가로 줍니다. 간단한 진료를 끝내고 나오자 접수대에선 5분 만에 처방전을 줍니다. 목록에 적힌 약만 14종류, 허무할 정도로 쉽게 다이어트 약 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특정 약국을 알려줍니다. 다른 약국 말고 꼭 여길 가라고 말합니다. 식욕억제제·항우울제·항경련제 등 약 종류만 14가지 실제로 이 처방전을 다른 약국에 가져가봤더니 조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방전에 쓰여진 약들이 뭔지 모르겠다, 이런 약은 약국에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이어트 약을 잘 아는 약사를 찾아가봤습니다. “이 처방전이 ‘암호’ 같다”고 말합니다. 다른 약국에선 조제할 수 없도록 알아볼 수 없는 용어로 썼다는 말입니다. 추정되는 약품들을 함께 하나하나 찾아봤습니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식욕억제제부터 항우울제, 항경련제, 약물중독 치료제, 위장약, 당뇨약 등. 살을 빼기 위해 환각, 환청,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있는 약을 먹고, 이 약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약을 먹습니다. 인터뷰를 한 김정은 약사는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부작용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방이 권고된 초고도 비만이 아닌, 정상 체중인 사람이 먹으면 그 부작용이 더 심각해집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자의 체질량 지수는 19.05. 기자가 처방받은 마약류 성분인 필로폰 유도체 ‘디에틸프로피온’의 처방 가이드라인은 체질량 지수 30 이상입니다. 사실상 먹어선 안 되는 약품입니다. 그런데 표준 체중의 기자가 진료를 보고 이 처방전을 받는 시간은 10분도 안 걸렸습니다. 마약류 오남용 권하는 병원... 바뀔 수 있을까 기자가 갔었던 다이어트 병원이 이렇게 영업을 한 건 꽤 오래 전부텁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런 제재 없이 누구에게나 약 처방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처방에 의사의 ‘재량’이 많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처벌도 약합니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을 어겨도 식약처는 의사에게 서면 경고만 하는 게 보통입니다. 올해 초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의심되는 병의원 10여 곳을 경찰에 수사의뢰했습니다. 여기에 기자가 다녀온 병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마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번엔 변화가 있길 기대해봅니다. 기자가 갔던 병원 중 한 곳은 기자에게 처방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약은요, 말랐어도 한 번 먹으면 절대 못 끊어요. 내 가족이었으면 (당신한테) 욕했을 겁니다.”
한국에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 사람을 치료·보호하는 곳입니다. 다른 외상이나 질병 없이, 심하게 취하기만 했더라도 '치료'를 받을 필요는 있으니까요. 이런 곳이 서울에 4곳, 전국엔 무려 19곳이나 됩니다.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요? 말이 응급의료센터지, 장소가 따로 마련된 것은 아닙니다.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치료하다가 주취자들이 실려오면 이들도 같이 케어해 주는 겁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경찰관이 한 명이나 두 명쯤 항상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주취자가 난동을 부릴 때를 대비해서죠. 당연하게도 의료진과 경찰, 구급대원은 모두 한 목소리로 주취자는 일반 환자보다 케어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는 단순 주취자'를 어디로 보낼지에 대한 겁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는 주취자까지 받을 수 없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한 주취자응급의료센터의 의사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습니다. 만취상태로 쓰러져 있는 환자의 경우,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신 것일 수도 있지만 뇌출혈 등의 의학적 문제가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에 머리 CT 등의 검사가 필요하기에 병원진료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다친 곳도 없고 의식도 떨어지지 않는데, 난폭행동을 보이는 주취자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문제들은 병원 현장에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보호자라도 바로 확보가 된다면 경찰이 보호자를 통해 집으로 귀가시킬 수 있지만 보호자가 연락이 안 되거나 신원조회가 안 되는 경우(외국인 등) 경찰이 단순 주취자를 병원으로 데려오면 의료진과도 마찰이 생기고, 병원에서도 매우 난감합니다. 심지어 경찰이 신원 조회나 보호자 확보 등에 소극적인 경우도 많아, 병원 의료진들 입장에서는 '경찰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며 경찰들과 자주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겪은 어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경찰은 의식은 있지만 난폭한 행동을 하고, 신원이나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말하지 않는 주취자들을 병원으로 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경찰이 단순히 무책임해서일까요? 애매하고 어려운 '주취자 보호조치' 규정 경찰의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보겠습니다. 단순 주취자는 의료기관 보호조치 대상이 아니며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를 구분하고, 의식이 없는 경우 호흡이나 심장박동을 확인해 의료기관에 후송하라 주취자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 또 의식이 없는 경우 호흡과 심장 박동까지 확인해서 주취자를 어디로 보낼지 구분해야 합니다. 의료인이 아닌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현장에서 주취자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경찰이 술 취한 사람을 집 앞에까지 데려다줬다가 동사하는 등 주취자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이 판단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려워졌습니다. 혹시 몰라 병원 응급실로 호송하면 응급실에선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다"라며 안 받아주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거절당한 주취자가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구대나 파출소뿐입니다. 경찰들은 이들의 난동을 받아주며 술이 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단순 주취자가 갈 곳이 없게 된 걸까요? 주취자 보호의 역사 아주 예전엔 경찰서 안에 주취자 안정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주취자를 한꺼번에 관리했는데, 외관이 유치장과 거의 흡사했고, 주취자에게도 이동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인권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그러면서 2009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12년 응급실에서 주취자도 보호하는 지금의 '주취자응급의료센터'가 만들어진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폭도 아닌, 치료가 필요한 주취자도 아닌, '단순 주취자'가 갈 곳이 사라진 겁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경찰서에 보호시설이 마련돼 있고, 영국도 '간이 주취자해소센터'와 '이동식 주취자 보호소'가 있습니다. 프랑스 역시 의사가 확인한 뒤에 경찰서 보호시설로 이동합니다. 단순 주취자가 갈 곳을 마련하라 다행히 최근 경찰청에 주취자보호조치개선 TF가 꾸려졌습니다. 이곳에서 단순 주취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길 기대해 봅니다. 또 한 가지, 이런 시설이 마련된다면 이용한 주취자들에게 사용한 만큼의 이용 금액을 물도록 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어떤 시청자는 기자 메일로 이런 의견도 주셨습니다. “...자의로 과음해서 이송될 경우 사회적 봉사활동 시간을 의무로 부과하면 좋겠습니다. 이때 그 봉사 활동 내용을 경찰, 구조대원을 따라다니거나 응급실에서 주취자 상대로 한다면 더욱 좋겠네요.”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이 참에 함께 바꿔야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최근 전통시장에 가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시장 안에 있는 상가 2층에 올라가 본 기억은요? 대형마트도 귀찮아서 2, 3시간만에 집 앞까지 배달오는 온라인 마트를 이용하는 마당에 요즘 시장에 직접 가려는 사람들, 흔치 않습니다. 지난 2016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인, '청년몰'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당시 중기부의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전통시장 빈 점포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해 전통시장 내 지역문화와 참신한 감각이 융합된 청년 상인 집합 쇼핑몰, '청년몰'을 조성하겠다’. 시장 안에서도 장사가 안되는 곳이라 비어있었을 곳인데, 하필이면 그곳에 청년몰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중기부 입장에선 월세가 저렴한 빈 점포를 빌려서 예산을 아끼면서도, '생색'은 낼 수 있는 장소였겠지만, 청년들이 처음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하기엔 매우 까다로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청년몰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전통시장에 42개의 청년몰이 생겼고, 들어간 예산만 600억 원이 넘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청년몰 4곳이 완전 폐점했고, 영업률은 66%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