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박하정 기자입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열심히 공부해 딴 국가자격증이 하루아침에 종잇장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요. 자격증이 효력을 잃는 건 아닌지 설왕설래가 오가면서 자격증을 바탕으로 취업한 곳에서도 권고사직을 받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말입니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하고 해당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공부를 해 오던 사람이, 곧 있을 시험에 응시원서를 접수해 놓았는데 일방적으로 접수 취소를 당한다면 어떨까요. 지난달 '언어재활사' 국가자격증과 그 시험을 둘러싸고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사이버대' 응시 제한한 판결 언어재활사는 장애인복지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국가자격증입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서 그 시험을 주관합니다. 병원이나 사설기관, 복지관 등에 있는 언어치료실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 언어습득이나 언어처리 과정에 부족한 점이 있어 다른 사람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진단과 훈련을 실시하는 전문가를 가리킵니다. 이 국가자격증 시험을 두고 이전과 다른 일이 생긴 건 지난 2022년, 언어재활사협회가 국시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였습니다. '2022년도 하반기 및 2023년도 상반기 보건의료인국가시험 시행계획 공고 가운데 언어재활사 2급 시행계획' 부분을 취소해 달라며, 언어재활사 자격 보유자와 시험 응시자 등이 함께 국시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해당 시행계획 부분이 무엇이길래 이들은 그 부분을 직접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을까요. 해당 시행계획상에 함께 공지된 언어재활사 응시자격, 국가시험 동일과목 인정 현황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소송을 건 원고들은 이런 공고 내용들이 위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등교육법상 대학원·대학·전문대학에 '원격대학'이 해당하지 않는데, '원격대학'에서 언어재활 관련 학과 학위를 취득하거나 언어재활 관련 교과목을 이수한 사람에 대해서까지 2급 언어재활사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건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일,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응시공고에서 '대구사이버대' 부분을 모두 취소하기로 한 겁니다. 구체적인 판결 이유가 명시돼 있는 항소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법원이 이렇게 판단을 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대학원·대학·전문대학이라고 문구가 명시돼 특정돼 있는데, 별개의 '원격대학'이 앞선 대학원·대학·전문대학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단 겁니다. 또, 2급 언어재활사 자격요건을 위해서 규정하고 있는 실습 및 관찰 수업 시간이 있는데, 대학원·대학·전문대학에서는 교내에 실습실을 갖추고 실습, 실기과목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 원격대학은 대면수업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대학·전문대학에서 실시되는 수준의 교육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동안 원격대학에 개설됐던 관련 학과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나, 관련 교과목을 이수한 사람은 언어재활사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한 경우 자격증을 받아 왔는데, 이 판결로 인해 응시자격이 제한되게 됐습니다. "불법으로 응시한 것도 아닌데" 11월 1일 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상황, 약 한 달의 시간을 남겨둔 11월 30일에 바로 언어재활사 다음 시험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이 시험에 응시하려던 지원자들은 두 달 전인 9월에 이미 응시원서를 접수한 상태였습니다. A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시가 되게 가까워지는데 어떠한 (판결에 따른 국시원의) 결과가 안 나왔었어요." 그리고 11월 22일, 시험을 겨우 일주일 남짓 남긴 상황에서, 국시원은 원격대학에서 언어재활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고 학위를 취득한 시험 응시자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며 일괄적으로 응시원서 접수를 취소했습니다. 이는 불가피한 조치라며, 법률개정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통해 원격대학 졸업생 및 재학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였습니다. A 씨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3년 정도를 공부를 했고 근데 지금 이게 무산이 되고 다시 시작해야 되는 시점이 돼서, 그렇게 되면 내가 언어 치료 공부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혼란스러웠어요)" 원격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자격을 취득해 언어재활사로 일하고 있는 B 씨도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저희가 민간에서 자격증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저희 자격을 다 확인하고 응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히 확인했어요. 저희가 불법으로 (응시)한 것도 아니고, 제 자격증을 누구한테 빌려줘서 취소당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그런 판결이 나오면서 '너네는 이제 (자격을) 취소해야 해' 이렇게 하면서 저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드는 거거든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저희가) 자격이 없으면 지금까지 저를 믿고 치료해 주셨던 2년간의 부모님들이며 아이들, 제가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인데 치료를 한 것처럼 밖에 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잖아요." B 씨는 언어치료 현장에서 원격대학 출신으로 자격을 취득한 언어재활사들을 상대로 이미 권고사직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2022년 하반기 및 2023년 상반기 시험에 있어서 원격대학 지원 부분이 취소가 됐으니, 이때 자격을 취득한 언어재활사들에게 자격 일괄 취소와 같은 어떤 행정처분이 뒤따를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이미 퇴사 권고를 받으신 분도 있어요. (일하고 있는) 센터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이렇게 났으니까 불안하니까 퇴사해 달라고 요구를 받으셔서. 그 입장도 이해는 해요. 제가 오늘 하루아침에 만약에 자격이 박탈되면 저한테 수업을 받던 친구들을 인수인계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언어재활사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구하기도 힘들어요. 그러면 고용주 입장에서는 저처럼 불안한 사람을 고용할 이유가 없는 거죠." 국회 법안 상황 지켜보는 복지부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장애인복지법상 언어재활사 응시자격 등을 규정한 문구에서 명확하게 '원격대학'이라는 학교명을 집어넣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원격대학에서 언어재활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고 관련 학과의 석사학위·학사학위·전문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언어재활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부칙 조항도 마련됐습니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되기 전에 원격대학에서 언어재활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고 관련 학과의 석사학위·학사학위·전문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언어재활사 국가시험의 응시자격을 갖춘 것으로 본다는 내용입니다. 기취득자의 경우에 대해서도, 원격대학에서 석사학위·학사학위·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언어재활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이 법에 따라 언어재활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을 넣어 기취득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언어재활사 국가시험은 도입 이래 10여 년 간 원격대학 언어치료학과 재학생과 졸업생에 대해 응시자격을 부여해 왔으며, 현장에서 문제없이 발달장애 및 발달지연 아동의 언어 재활에 기여해 왔던 점을 고려하여 응시자격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입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향해 해당 시험 응시생 등은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부터 시험 응시에 대한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을 포함한 특례 조치를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험 응시 자격은 취소됐고 현재 보건복지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응시원서를 접수했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취소를 당한 사람이 현재 450여 명 정도로 파악된다면서, "이들에 대한 특례 조치 등을 법에 근거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재 발의돼 있는 주호영 의원안을 국회에서 빠르게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은 보건복지부와 국시원이 현행 고등교육법상 원격대학도 시험을 볼 수 있는 대상으로 유권해석을 해 왔는데 대법원 판결이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나왔으니, 법안이 명확하게 개정돼야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다만 원격대학 출신으로서 이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 대해서는 판결에 따른 자격 취소 등을 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주호영 의원안이 통과될 경우 미리 자격 취소를 했을 때 그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결국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통과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갑작스럽게 시험 접수를 취소당했던 응시생들, 그리고 문제가 된 2022년 하반기 및 2023년 상반기에 시험을 응시해 자격을 이미 취득했던 언어재활사들은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어야 하는 상황, 전례에 따라 시험을 성실히 준비해 왔던 응시생들이나 자격을 이미 취득한 언어재활사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지난해 6월 21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에 있던 냉장고 안에서 영아 시신 두 구가 발견됐다는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해당 아파트를 압수수색했던 경찰이, 아이들의 친모에게 아기를 출산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자신의 집 냉동실에 숨긴 혐의를 적용하고 있단 사실 역시 알려졌습니다. 그날 수원 현장에서 해당 사건 취재를 했던 제게 놀라웠던 사실 중의 하나는, 경찰이 이 사실을 파악하게 된 경위였습니다.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예방접종을 하게 되면서 질병관리청에 의해 임시신생아번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렇게 임시신생아번호는 부여받았지만 이후 출생 신고는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발견되었고, 그래서 이 아이들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가 이뤄지게 됐던 겁니다. 경위를 듣고 난 뒤 수원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 담당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찾고 있는 아이들이 더 있나요?" 지난해 6월 30일 검찰에 송치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의 친모 조사에서 빠져 있던 '외국인' 아동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경찰은 '이런 아이들'이 더 있는지 전수 조사에 나선 바 있습니다. 수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일주일이 2023년 6월 28일, 보건복지부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에 태어난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에 대해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는 전수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복지 담당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시작된 조사는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식으로도 진행됐습니다. 이후 조사는 2023년에 태어난 아동 등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수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전수 조사가 시행된다는 소식을 보면서도, 당시 조사 대상이 된 아동의 '국적'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은 제게 없습니다. 국내에서 태어난 아이 가운데에는 친모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국적이 인정되는, 우리 국민인 '내국인' 아동도 있지만, 친모가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이 확인돼(친부의 국적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으로 여겨지는 아동도 있기 마련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경찰은 '내국인' 아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것이었고, 그렇게 이 조사에 빠져 있었던 5,183명의 '외국인' 아동들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서 2023년 사이, 보호자가 외국인으로 입력된 신생아, 즉 외국인 아동에 대한 조사는 이후 보건복지부가 아닌 법무부에서 담당했습니다. 지난해 8월 14일,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신생아 5,183명의 정보를 넘겨받은 법무부는 전국 출입국‧외국인청에 보호자 주소지 관할을 기준으로 아동들을 배정했습니다. 그리고 8월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먼저 절반 가까운 2,557명(49.3%)은 부모나 친인척과 함께 동반해 출국한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2,249명(43.4%)은 결혼 이민자의 자녀로서 우리 국민임이 확인된 아동 등으로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양육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친모는 외국인이라 조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친부가 한국인인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소재와 안전이 파악된 아동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동도 있었습니다. 친모가 병원에서 출산을 할 때, 존재하지 않는 외국인등록번호나 이름을 기재하는 등 이유로 애초부터 조사 대상을 특정하지 못한 경우가 49명(0.9%) 존재했던 겁니다. 조사 대상을 특정하기는 했지만 법무부 차원 조사에서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를 모아 법무부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아동 253명에 해당하는 사건에 대해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지금까지 76명에 대해 친모를 특정할 단서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 중지 및 조사 중지를 한 상태입니다. 또 22명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현재까지 진행 중입니다. 즉, 애초부터 조사 대상을 특정하지 못한 49명과 조사가 중단된 76명, 현재까지 수사 중인 22명, 도합 아동 147명은 현재까지 태어난 사실은 있지만 그 소재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사 중인 22명 가운데 아동 1명은 사망한 상태라고 밝혔는데, 그 자세한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법무부는 해당 조사 결과를 보건복지부 주관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 체계 개선 추진단'에 통보했고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실무 담당자들은 해당 전수 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도 열었습니다. 법무부에서는 중, 장기적으로 외국인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제도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질 경우 이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며, 필요할 경우 실태 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하는 방안 등에 대해 복지부와 협의를 했고, 복지부는 추가 조사가 이뤄진다면 아동 학대 조사 등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이를 지원할 방침임을 전했다고 복지부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가 도입됐지만 보건복지부의 전수 조사와 경찰의 수사가 잇따른 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아동'의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탄 바 있습니다. 법제화가 속도를 내면서 탄생한 제도가 바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입니다. 부모에게만 맡겨져 있었던 출생 신고의 의무를 다른 이들에게도 확대한 게 핵심입니다.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실이 통보되고 출생 등록이 이뤄집니다. 태어난 모든 아동을 공적 체계 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 셈입니다. 이와 짝을 이루는 제도가 보호출산제입니다. 출생통보제만이 시행될 경우 사회경제적, 심리적 이유 등으로 출산이나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들이 애초에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럴 경우 임산부와 아이의 안전 모두 담보할 수 없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상담 이후 그 제도를 선택하는 위기 임산부들이 '비실명화'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담보합니다.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물론 보호출산제의 궁극적 목적은 원 가정 양육에 있습니다. 사전 상담을 통해 여러 지원책을 소개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임산부가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제도 모두 '내국인' 아동만이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생 신고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인데, 이 법 제1조에서는 적용 대상을 '국민'이라고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아동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출생 신고 대상조차 아닌 상황. 국회에서는 이런 외국인 아동들도 출생 등록을 가능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고,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왜 '보편적 출생 등록'인가 외국인 아동에게도 출생 등록을 가능하게 하자는 움직임은 '보편적 출생 등록'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국적에 관계없이, 체류 자격에 관계없이, 출생을 했다면 출생 등록을 가능하게 하자는 겁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어디에 있는지, 소재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외국인 아동이 147명에 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건국대학교 이주·사회통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서 지난달 27일 열린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안) 심포지엄'에서, "아동은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할 수 없는 사회적 미성숙 상태이며, 인권 침해 상황이 발생할 때 그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가 아동이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하고 후견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건데, 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출생 등록이라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 출생했는지부터 시작해 존재 자체에 대한 정보를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동이라면, 그들이 '보호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최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 존재와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출발점이 없어 체류 자격에 대한 논의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의료 서비스나 보육 서비스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고,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에서도 누락될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그래서 '보편적 출생 등록'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부터 우리나라에 "부모의 법적 지위와 관계없는 모든 아동에 대한 출생 신고를 보장하라"는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 도입 권고를 8차례 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우리나라로서는 이 권고를 수용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까지 외국인 아동을 포함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본격 도입하진 않은 상태입니다. 다만 이 보편적 출생 등록 논의는 체류 자격 논의와는 무관합니다. 즉, 외국인 아동이 국내에서 태어났을 때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한다고 해서 그 아동에게 국내에 머물 수 있는 체류 자격을 무조건 부여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단법인 두루 소속으로서 '보편적 출생 신고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 뉴질랜드 변호사는 보편적 출생 신고에 대해, "한국에 해가 될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은 이 아동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국가가 파악하지 못하는 게 더 큰 위험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적 부여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어찌 보면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단 겁니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출생 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한 국가 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국가의 국적을 얻게 되는 속지주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속인주의와 보편적 출생 등록이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이런 속인주의 원칙을 채택한 국가 가운데서도 영국과 일본은 이미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국회 심포지엄에서 최윤철 교수는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아동이 태어나면 의료기관 등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관련 당국에 통보하고, 국가 인구 통계 서비스에 자동적으로 저장 및 관리되며, 추후 의료보험번호도 부여됩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출생 신고를 규정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법과 유사한 일본의 호적법은, 우리나라처럼 그 적용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14일 이내에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외국인인 경우도 부모가 여권 같은 국적 정보가 담긴 서류를 지참해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출생 등록', 어디까지 왔나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이미 이런 보편적 출생 등록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법안 발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 소병철 의원이 각각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던 겁니다. 두 의원의 발의안 모두,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국민'이 아닌 외국인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새롭게 외국인 아동들만을 위한 출생등록부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한 채 두 법안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9월 27일 국회 심포지엄을 통해 이번 22대 국회에서 준비되고 있는 관련 법안의 개괄적인 모습도 처음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 주도로 준비되고 있는 법안 역시 '제정안'의 형태입니다. 이전의 권인숙, 소병철 의원안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차이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 사무 관장을 법무부가 아니라 대법원이 하도록 규정했단 점입니다. 법무부는 출입국 업무 전담 부서이고,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법 사무를 이미 맡아보고 있기 때문이란 게 의원실 담당자 설명입니다. 이미 이런 보편적 출생 등록의 시발점이 될 만한 실천을 해나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경기 시흥시입니다. 시흥시의회는 지난해 7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한 조례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이름은 '시흥시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해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조례에 근거해, 미등록 아동 확인 신청을 부모 외에 누구나 할 수 있고, 시장이 직권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세대 방문을 통해 상담을 실시해 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는지, 학대가 있었던 건 아닌지 관찰을 합니다. 이후엔 양육수당이나 부모급여, 아동수당, 국가예방접종 등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강구합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이 주민조례제정운동을 벌인 끝에 통과된 이 조례 제정 이후,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출생 미등록 아동 38명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시흥시 관계자는 이 가운데 30명이 외국인 미등록 아동이었다면서, "어디 가도 아이들이 이름을 말하기가 곤란하거나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부모가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의 인권 "모든 아동이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흥시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 제1조입니다. 체류 자격 등 법률적인 논의 이전에, 더 이상 아이들이 유령으로 떠돌지 않도록 그 존재를 인정하고, '어른'들에 의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출생 미등록 아동 논의입니다. 국회 심포지엄에서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태어나 이주 경험이 없는 아동을 '이주 아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문제적"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에서 다루고 있는 출생 등록 사안은 국적이나 이주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을 법적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는 인권의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출생 미신고 외국인 아동에 대한 논의가 이번 실태 조사 등을 계기로 좀 더 진전되길 하는 바람입니다.
홍성주(21세) 씨를 만난 건 그의 집 근처에 마련한 작은 인터뷰 공간이었습니다. 편한 차림에 카메라 앞에 선 홍 씨는 으레 인터뷰를 목전에 둔 사람 같지 않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질문에도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담담하게 기자에게 털어놨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홍 씨는 뉴스에 직접 출연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시간 인터뷰를 해도 일부가 정제돼 뉴스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만큼, 직접 뉴스에 출연해 자연스럽게 앵커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은 길게 풀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도 응한 바 있었던 홍 씨가 또다시, 거듭해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홍성주 씨가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부모 찾는 데 쏟은 1년이라는 시간 홍 씨는 태어난 직후부터 영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2004년 어머니가 홍 씨를 낳은 뒤 친권을 포기하고 시설에 입소시키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영아원에서 자라던 홍 씨는 성장하며 아동복지센터로 거처를 옮겼고 그렇게 자라는 과정에서 선천성 심장 기형을 발견해 수술도 받았습니다. 원래 살던 지역에는 이 질환을 상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와 병원이 없어 다른 지역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갑작스럽게 과호흡이 오는 증상이 발생했을 때 응급헬기를 타고 수술받았던 지역으로 이송되는 일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 차례 겪은 뒤 홍 씨는 수술을 받았던 지역 근처로 시설을 옮겨 지내게 됐습니다. 홍 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모님 찾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있고 없고에 따라 (기관에서) 아동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달라져요. 저는 안 좋았죠. 다른 애들은 학원 보내거나 공부 같은 걸 시킨다고 하면 저는 학원 같은 데 안 보내고. 형들한테도 많이 맞고. (부모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중학교 1, 2학년 때부터 있었죠.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서류나 뭐나 다 떼어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시절 때는 많이 어려움이 있었고 성인이 되자마자 서류를 떼러 돌아다녔죠. 그래서 1년 동안 취업 안 하고 그냥 그거 부모님 찾는 데만 연연했던 것 같아요." 홍 씨가 어렵게 구한, 영아원 당시 입소 의뢰서. 홍 씨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담겨 있다. 머물렀던 기관부터, 경찰서, 시청, 법원까지. 수차례 오가기를 1년 반이 가까워져 오던 시점에야 홍 씨는 어머니를 찾고 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처음, 경찰서에서 제공하는 '헤어진 가족 찾기'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어머니는 만남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기관과 시청 등 관계된 곳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고 어렵게 자신이 시설에 입소할 때 작성된 기록 한 장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입소 의뢰서'에는 어머니의 상담 내용과 함께 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담겨 있었습니다. "2004년 11월 9일 위 아동을 출산하였으나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 친권 포기 및 시설 입소를 희망하는바, 위 아동의 건전한 성장과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시설 입소를 의뢰함."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홍 씨는 어머니를 다시금 찾아 나섰습니다. 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는 어머니에게 각종 서류를 송달할 수 있게끔 주소 보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확인한 어머니의 현재 주소지에서 수소문을 한 끝에 결국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고 마침내 지난 3월 홍 씨는 어머니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침묵을 한 시간이 5분 정도 있었습니다. 첫마디가 소송 좀 취하해 주면 안 되겠냐, 그 얘기가 첫마디였어요, 저한테. 본인이 좀 먹고살기도 힘들었고, 많이 좀 어려움이 있어가지고 키울 수 없어서 좀 미안하다는 얘기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렵게 만난 어머니, 그 후 토론회에 서기까지 1년 3개월 남짓 어머니를 찾아 이 모든 과정을 거쳤던 홍 씨는 지난 5월, 국회의 한 토론회에 참석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취재진이 연락하게 된 것도 토론회 참석자로 이름을 올린 홍 씨를 보고서였습니다.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 홍 씨는 '출생 후 보호출산 허용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져올 재난'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토론했습니다. 과연 보호출산제가 무엇이기에 홍 씨는 이것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 걸까요. '보호출산제'라는 제도를 말하기에 앞서 '출생통보제'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제도는 서로에 대한 보완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이 그 시발점이 됐습니다. 한 여성이 2018년과 2019년 딸과 아들을 병원에서 출산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봉지에 넣어 집 안 냉장고에 보관한 사건이었는데, 범행은 뜻밖에도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를 거치며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가 2천여 명에 달했고, 이 아기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행이 확인된 겁니다. 아기의 부모는 출생 1개월 이내에 아이의 출생을 신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긴다고 해도 과태료 처분만을 받고, 의료기관은 행정기관에 출생 사실을 굳이 통보할 의무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출생통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의료기관의 장이 출생 14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아기의 출생을 통보하고, 심평원은 다시 시, 읍, 면장에게 이를 통보합니다. 통보하게 되는 정보는 어머니의 성명과 주민번호, 아기의 성별과 수, 출생연월일시 등입니다. 시, 읍, 면장은 출생 신고 기간, 즉 1개월 이내에 출생이 신고되지 않으면 신고 의무자(부모)에게 이를 독촉하는 통지를 보내게 되고, 7일 동안 또 신고가 이뤄지지 않고 신고 의무자(부모) 특정도 불가능한 경우에는 직권으로 출생을 기록하게 됩니다. 즉,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 및 지자체가 출생 신고를 해, 태어난 아기는 '그림자 아동'으로 남지 않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보호출산 기본 체계 '보호출산제'는 이런 '출생통보제'가 가져올지 모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생모의 신분이 자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생모 본인이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심평원을 거쳐 시, 읍, 면의 장에게 생모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포함한 출생정보가 통보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위기 임산부가 애초에 병원을 찾는 것을 꺼릴 거라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림자 아동'을 줄이기 위한 대책인데 도리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 오히려 '그림자 아동'을 더 늘릴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보호출산제'입니다. 위기 임산부가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익명(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태어난 아이는 출생을 등록하게 해 보호하는 겁니다. 출생증서에 남겨진 생모와 생부의 정보는, 성인이 된 자녀가 요청을 해도 생모와 생부가 동의해야 공개됩니다. 출산 이전에도 상담 서비스를 받아 보호출산에 이를 수 있고, 보호출산을 규정한 법률인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 14조에 따라 출산 이전에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출산 이후 1개월 이내에 지역 상담기관에의 신청을 통해 보호출산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태어났지' 홍 씨는 이런 '보호출산제'가,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제도라고 말합니다. "아프다거나 장애가 있다거나 이런 아이들은 더 좀 많이 버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병원비에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게 감당이 안 돼서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홍 씨는, 비록 자신의 어머니는 출산 직후 자신이 선천성 심장 기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했지만,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더 많은 '아픈 아이'들이 버려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특히 출산 이후 1개월 이내에 지역 상담기관에 신청을 하며 사실상 보호출산과 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열어놓은 법 조항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을 뜯어본 김민지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비슷한 우려를 내놨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그런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한다든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이 보호출산제는 장애 아동을 이제 합법적으로 유기할 수 있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조항은 특히 미성년자 등 신체 변화가 크지 않아 출산이 임박한 경우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던 위기 임산부들을 포괄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그런 경우가 꽤 많다고 하는데, 갑작스레 출산에 이르게 돼 사전에 위기 상황과 양육에 대한 상담을 충분하게 하지 못했던 경우 이를 출산 후에라도 가능하게 해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취지라는 겁니다. 보호출산제가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제도라고 홍 씨가 보는 이유에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1년 3개월여 동안 홍 씨가 최선을 다해 하고 싶었던 것, 즉 부모 찾기를 보호출산제는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행 보호출산제에 따르면, 위기 임산부는 자신을 비식별화(즉 가명으로)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에 이 비식별화된 가명과 관리번호를 적습니다. 이 위기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신청한 지역 상담기관에서는 신청한 위기임산부에 대해 출생증서를 작성하는데, 거기에는 신청인, 즉 생모 및 생부의 이름, 본, 주민등록번호, 생모 및 생부의 유전적 질환이나 건강 상태, 생모가 보호출산을 선택하기까지의 사회경제적, 심리적 상황 등이 담깁니다. 이 출생증서는 봉투에 넣어 밀봉되고 생모의 가명과 지역 상담기관의 명칭 등을 적은 뒤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됩니다. 나중에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돼 생모 또는 생부를 찾고 싶다면 이 출생증서를 넘겨받은 아동권리보장원장에게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생모나 생부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인적사항은 제외한 채 출생증서가 공개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차단되는 겁니다. "부모님을 찾고 싶은데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기관들에서 다 거절을 하면, 자기는 누구 밑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태어났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심적이나 정신적으로 좀 더 피해가 더 클 것 같고." 홍 씨가 답답함을 토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신처럼, 부모가, 뿌리가 궁금한 아이들이 자라서도 모든 기회를 차단당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보호출산제 도입을 알리는 브리핑 자리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생모의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할수록 익명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산모가 제도를 회피할 우려가 있다"면서 "아동의 알 권리를 두텁게 보호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아동 생명을 위협할 우려와 함께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아동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위기 임산부의 익명성 보장을 더 낮은 수준으로 보장하게 한다면 도리어 자신이 드러날 것을 걱정해 아동의 생명을 위협할 우려가 있으니 현재의 수준에서 당장 변화를 주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0년 전 시작된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지난 19일부터 출생통보제 및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우리보다, 꼭 10년 앞서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입니다. 지난 2014년, '신뢰출산' 혹은 '비밀출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상담이 이뤄졌고 그 결과 출산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담아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2017년 처음 나온 결과 보고를 살펴보면, 상담을 거친 위기 임산부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임산부들인 24.2%가 아이를 낳아 함께 사는 것을 택했습니다. '원 가정 양육'이라는, 우리가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면서 내세운 첫 번째 목표이기도 한 방향을 일정 부분 달성해 낸 겁니다. 뒤를 이은 두 번째 답(21.8%)은 '신뢰출산'이었고, 세 번째(14.8%)는 '결과를 알 수 없음', 네 번째(13.7%)는 '입양'이었습니다. 2019년 나온 보고서는 2014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신뢰출산 건수가 모두 570건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매해 평균 110건 정도로,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서에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뢰출산제 시행 이후 독일 당국은 원 가정 양육, 신뢰출산 등 그 사전 상담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공개했다. 이런 독일의 신뢰출산제도엔 우리의 보호출산과 다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먼저, 앞서 홍 씨가 언급했던 아동의 알 권리 측면입니다. 독일의 신뢰출산제를 규정하고 있는 '임신갈등법'에 따르면, 아동이 16세가 되면 출생증명서를 열람하거나 사본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15세가 되었을 때 생모는 그런 권리와 상충하는 점(즉 자신의 신원을 비공개하고 싶다면)이 있다면 상담센터에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상담센터에서 생모의 뜻을 따라 아동에게 출생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되면, 그다음 절차는 가정법원으로 넘어갑니다. 가정법원이 직접, 생모가 자신의 신원을 비공개로 둠으로써 얻는 권익이 아동이 자신의 출생을 알고자 하는 권익보다 더 중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겁니다. 이 모든 절차가 법률에 규정돼 있는 만큼,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아동의 알 권리가, 명문화된 법률에 의해 조금 더 보장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위헌법률심판이나 관련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현행 보호출산제를 규정한 법률에는 이렇게 독일의 상담센터에 해당하는 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이 생모의 뜻에 따라 그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때, 그 이후 아동이 다시 한번 밟을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앞서 우리가 위기 임산부들에게 한 달의 시간을 더 주는 것과 같은, 출산 후의 임산부들에게 명시적인 시한을 두고 신뢰출산 절차를 밟게 하는 조항은 독일 임신갈등법에 존재하진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생모에게 신뢰출산 절차에 대해 조언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있습니다. 한명진 한성대학교 교수의 '「위기임신보호출산법」상의 보호출산제 규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독일 「임신갈등법」상의 신뢰출산제에 대한 규정과의 비교법적 검토를 중심으로 – '에 따르면, 신뢰출산을 결정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해 이렇듯 법 자체에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일의 신분등록법상 출생 신고를 출생 1주일 이내에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시한이 1주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기를 수 있게 현행 보호출산제가 놓치고 있을지 모를 아동의 권익 측면에서 보호출산제를 주로 짚어봤습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중앙 상담기관으로 역할을 하게 될 아동권리보장원 모두는 보호출산제가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인 동시에 원 가정 양육을 목표로 하는 정책, 또 임산부와 아동 모두를 빈틈없이 보호하고 또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합니다. '위기 임산부'도 '그림자 아이'도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통해 모두 우리가 보호해 내야 할 존재들인 건 분명하다는 사실을 제도 시행 초기 다시금 분명히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사회경제적 위기에 놓인 임산부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고 직접 양육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 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청한 위기 임산부에게 내실 있는 상담이 전제돼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부모 양육이 사회적 편견 없이, 현실적 어려움 없이 가능하게 될 때야말로 보호출산제가 의도한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며, 아동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겁니다. 디자인 : 안준석
정하윤(가명)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이었습니다. 26살 때부터 손을 댄 마약, 29살이 된 지금 단약을 11개월째 이어가고 있단 정 씨를 중독 재활 치료가 진행되는 인천 참사랑병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손에 쥔 채 병원을 찾았던 정 씨는 계속해서 재판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필로폰 투약으로 인해 두 번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상황, 이번 재판의 결과가 어떨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법원을 오가던 정 씨에게 물었습니다. “집행유예가 나오고 나서, 어쨌든 이 (형사) 절차를 한 번 하는 게 고생스럽고 힘든 일이니까 ‘참아야지, 안 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요, 친구도 없었고 생각도 안 났어요. 그때는 계속 달렸죠.” 여러 차례 투약을 거듭하고서 조현병과 비슷한 증세가 너무 심해져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게 됐고, 마약퇴치운동본부의 상담을 거쳐 인천 참사랑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는 정 씨는 이제야 후회 섞인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많이 후회되죠. 미리 못 가서. 이런 데가 있었으면 진작에 가서 사건이 생기기 전에 끝냈어야 하는데, 나중에 알아서 후회가 돼요.” 마약 투약 혐의로 형사절차를 세 번째 밟고 있는 정 씨의 이야기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적발, 형사처벌이 이들을 재범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완전히 충분하진 않다는 걸 보여 줍니다. “화장실까지 같이”... 보호관찰소 직접 가 보니 마약사범이 유죄를 인정받는다면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또는 실형을 선고받을 겁니다. 전자들의 경우 사회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이들을 관리하는 체계는 보호관찰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교도소 등에 구금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도록 하되, 보호관찰관이 지도하고 감독하도록 하는 겁니다.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등이 함께 내려지기도 합니다. 흔히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들을 감독하는 역할로 보호관찰관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마약사범 가운데도 집행유예 등 판결 당시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경우 보호관찰관으로부터 지도와 감독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보호관찰이 이뤄지는지, 지난달 26일 울산보호관찰소를 직접 찾았습니다. 보호관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정세라 울산보호관찰소 주임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차에 올랐습니다. 관내 마약사범에 대해 말 그대로 ‘불시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재범률이 상당한 마약사범들의 경우 언제 다시 마약에 손을 댈지 모르기에, 집 혹은 직장으로 불시에 보호관찰관이 찾아가 마약 재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소변검사를 시행하는 겁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2인 1조로 움직인다는 불시검사, 마약사범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보호관찰관이 전화를 걸어 지금 집 앞에 왔다는 걸 알리자 문이 열렸습니다. 불시검사는 이전에 해당 마약사범이 투약했던 마약 종류와 함께, 불시로 다른 마약 종류까지 추가로 검사할 수 있는 키트까지 가져가 이뤄집니다. 이날 찾은 집에선 대상자가 투약했던 마약 두 종류, 거기에 또 보호관찰관이 임의로 택한 다른 한 종류의 마약을 검사할 수 있는 키트 모두 3가지를 가지고 검사가 이뤄졌습니다. 대상자의 소변을 키트 위에 떨어뜨려 두 줄이 나오면 음성, 결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여나 소변을 바꿔치기할 수 있어 보호관찰관은 검사 대상자와 화장실까지 함께 들어갔습니다. “뒤돌아 있을 테니까 소변 받으시면 돼요.” 이후 나온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 ‘잘하고 계신다’는 말을 대상자에게 건네며 보호관찰관은 집을 나왔습니다. 이런 불시검사는 대상자에 따라 그 빈도도 서로 다릅니다. 재투약 위험성이 더 높다고 판단되는 대상자의 경우엔 좀 더 자주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이외에도 월 1회에 걸쳐 시행되는 정기검사가 있습니다. 보호관찰 대상자가 직접 보호관찰소를 찾아 소변검사를 하고 보호관찰관과 면담도 하는 겁니다. 이날도 30대 남성 마약투약자가 김현준 울산보호관찰소 성인보호관찰계장과의 정기검사 및 면담을 위해 보호관찰소를 찾았습니다. 대마를 투약했던 이 남성은 정기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보호관찰관은 면담에서도 꼼꼼하게 현재 환경 등을 확인했습니다. 김현준 계장이 맡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모두 102명입니다. 이 가운데 마약사범은 모두 6명입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호관찰관 1명이 평균적으로 맡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106명, OECD 국가 평균인 37.6명의 2.8배 수준입니다. 조사대상국인 31개국 가운데 29위 수준입니다. 대상자 밀착 관리를 하면서 재범을 막으려면 보호관찰관 인력이 늘어날수록 도움이 되겠죠. 보호관찰소에서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약물검사 횟수가 2018년엔 1만 2천102건이었는데 올해는 5월까지의 통계만 1만 683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업무량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만큼 인력도 보강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현장에서 제기됩니다. 또 마약사범의 경우 보호관찰관이 집중면담을 하기도 하고, 중독전문가나 임상심리사 등 외부 전문가와의 연계상담을 통해 치료적 개입도 함께 합니다. 마약사범만을 전담으로 관리하는 전담 보호관찰관이 있으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마약류 투약 사범을 대상으로 ‘사법-치료-재활을 연계하는 맞춤형 치료‧사회재활 조건부 기소유예’ 모델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약사범의 건강한 사회복귀에 중점을 둔 제도인데 그 핵심은 ‘보호관찰소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입니다. 마약류 사범에 대해 치료와 재범 예방 교육을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약물 모니터링 및 상담을 통해 6개월 간 선도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마약류 투약 사범 중 참여 대상자를 검찰이 선별하고 이를 식약처에 통보하면, 식약처에서 구성한 전문가위원회가 이 프로그램 대상자에 대해 중독 수준에 따른 적정 재활프로그램, 치료 연계 필요성 등을 다시 분석해 회신합니다. 그럼 검찰이 이를 참고해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겁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앞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는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치료와 재범 예방 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뤄지는지, 보호관찰관이 얼마나 충실하게 약물 투약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상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걸로 보입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1년 전체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6.6%, 그리고 보호관찰을 받는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8%라고 합니다. 재범 가능성이 낮은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보호관찰을 받는 집행유예 등의 처분을 받아서란 해석도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단 뜻이기도 합니다. 교도소는 어떨까? 앞선 보호관찰은 집행유예 등으로 우선 사회로 복귀한 이들을 위한 관리체계입니다. 동종 전과가 여러 차례 있거나, 단순 투약이 아니라 공급 등의 혐의까지 겹친 이들에겐 실형이 선고되곤 합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구치소, 교도소라는 환경은 어떨까요. 마약 투약이 아닌 별도 혐의로 수감됐다 지난 5월 교도소에서 출소했다는 김현수(가명) 씨는 ‘진짜 심각하다’며 SBS 취재진에게 지금의 마약류 실태를 얘기했습니다. 김 씨가 있었던 방엔 김 씨를 포함해 모두 4명이 수감돼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1명은 필로폰을 밀수해 들여온 혐의로 수감된 이른바 공급‧판매책이었고, 다른 1명은 단순 투약범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마약사범이 한 방에 있으며 여러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게 김 씨 설명입니다. 통상 마약사범들이 모여 있는 방을 ‘향방’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렇게 마약사범들이 같은 공간에 장시간 머무르면서 도리어 각종 범죄 정보를 공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법무부 내부 지침인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 제14조에 따르면 ‘마약류 수용자는 순수초범과 누범으로 분리수용하고, 수용형편 등을 고려하여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가능한 한 단순투약과 밀수‧제조‧판매 등을 분리수용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바로 이어 단서조항이 있긴 합니다. ‘다만, 수용거실 부족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비교적 죄질이 경미한 수용자와 같은 거실에 수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현수 씨가 증언한 현재 상황은 이 지침의 기본원칙엔 맞지 않습니다. 현재 전국 54개 교정시설에서 이 분리수용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느냐는 SBS 취재진의 질의에 법무부는 “대부분 교정기관은 지침에 따라 분리수용 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교정기관은 과밀수용에 따른 수용거실 부족 등으로 분리수용이 일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수 씨는 교도소 내부에 이미 ‘약’이 만연하다고도 했습니다. 약의 정체는 바로 향정신성의약품. 교도소 내에서 화상진료를 통해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고 모아뒀다 한 번에 먹어 환각 효과를 노리거나, 처방받은 당사자가 다른 수감자에게 이를 건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김 씨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직접 처방받지 않은 약인 졸피뎀을 다른 수감자로부터 건네받아 먹어봤다고 했습니다. 이런 교정기관 내 이른바 ‘마약류 거래’ 실태는 판결문으로도 확인됩니다. 지난해 4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나온 판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A 씨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약과 디아제팜 성분이 들어간 약을 포함해 모두 6종의 약을 한 번에 삼키는 방식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며칠 사이를 두고 여러 차례 이어진 이런 행위에 대해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과 같은 마약범죄는 그 특성상 적발이 쉽지 않고 재범 위험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엄하게 처벌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점’,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용 중인 상태에서 자중하지 않고 다시 범죄를 저지른 점’ 등을 재판부는 꼬집었습니다. 역시 지난해 나온 광주지법 목포지원 판결을 살펴보면 역시 해남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피고인 B 씨가 내부에서 처방받은 향정신성의약품 6종을 다른 재소자에게 여러 차례 건넸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습니다. ‘자신에게 처방된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는 척하면서 이를 다시 뱉어 보관하고, 이를 동료 수감자에게 건네주어 복용할 수 있도록 한 점’, ‘이러한 범행들이 모두 복역 중인 교도소 내에서 이루어져 피고인에게 범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교화 의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한다고 재판부는 판결문에 담았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일으킨 상해 사건과 더불어 기소된 B 씨는 추가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마약사범을 적극적인 단속을 통해 수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분명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끌어올려진 이들에게 특별한 중독 재활 치료 조치 없이 처벌만을 내리고 형사절차를 마무리한다면, 그래서 여전히 마약에 접하기 쉬운 환경 속으로 돌려보낸다면, 이들을 재범의 늪에서 구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서 소개한 기소유예처럼, 구속 수사 혹은 판결로 인한 수감 중인 과정에서도 중독 재활 치료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법무부는 교정시설 내에서도 단약동기를 강화하기 위한 각종 심리치료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본과정 40시간, 집중과정 80시간, 심화과정 120시간 등 단계에 따라 시간이 다른데 인지행동 치료와 개별‧집단상담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현재 기본과정은 전 교정기관, 집중과정은 9개 교정기관, 심화과정은 2개 교정기관에서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더 많은 마약사범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교육에 그치지 않도록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합니다. 마약중독은 ‘질병’… “단속 이후 가장 빠른 시점에 치료해야” 지난해 국내 마약 환자 치료의 60% 정도를 담당해 낸 인천 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은 우리가 마약 중독에 대해 ‘병’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쾌락에 미쳐서, 마약에 완전히 미쳐서 감옥에 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마약을) 쫓아간다고 생각을 하지만, 제가 만난 어떤 마약류 중독자도 마약이 좋아서 하는 건 아닙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마약을 함으로써 가면 갈수록 나중에 내가 고통스럽고 힘든 감정이 생겼을 때,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마약이 되는 거거든요. 한 마약 중독자가 궁극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악마로 여겨지고, (그래서 마약 중독자가) 숨어들고 하면 할수록 치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이면에서 더 많이 퍼지고 확산되기 때문에, 지금의 이 문제를 우리가 단순히 도덕적 실패로 보기보다는 마약류 중독을 뇌의 병으로 인지를 하고, 우리 사회가 이분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서 같이 힘써주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만나고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이한덕 중독재활팀장 역시 ‘처음’, 그리고 ‘함께’를 강조합니다. “‘나는 혼자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는 우리한텐 ‘나는 계속 마약을 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야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단순 (마약) 사용자들도 있거든요. 단속되는 가능한 빠른 시점에서 치료나 중독재활센터로 연계시켜서 회복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이라고 저희들은 보는 거죠.” 디자인 : 방명환
거리에서 비틀거리던 아이들 지난 4월 24일, 경기 수원시의 한 거리에서 10대 2명이 비틀거리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단순히 잠시 어지러워 비틀거린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SBS 취재진이 현장을 담은 CCTV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당시 이들은 바닥에 갑자기 주저앉았다가 비틀대며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하는 증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1시간가량 골목을 돌아다녔던 10대 여학생 2명은 주변 사람들에게 일본산 감기약을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걸로 전해졌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는 이들이 직접 감기약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걸 먹었다고 말했다고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이들은 ‘감기약 20알을 한꺼번에 삼켰다’, ‘약을 한꺼번에 먹으면 몽롱해진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기약에 포함된 마약류 성분, '댈구'하는 10대들 해당 약에는 ‘덱스트로메트로판’ 성분이 들어 있는 걸로 파악됐는데요. 이 성분은 뇌에 작용해 기침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다른 성분과 복합돼 감기약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복합제에는 소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의약품, 즉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약으로 존재하지만 1일 복용량으로 이 성분이 60mg 넘게 포함되는 약은 전문의약품으로써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됩니다. 마약류라는 뜻입니다. 이 성분이 1일 60mg 이상 용량 제품일 경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건 2003년입니다. 이후 복합제가 아닌 단일제는 제약사에서 허가를 취소해 현재는 유통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 남용으로 인한 청소년의 피해가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약학정보원은 설명합니다. 앞선 수원 여학생들의 사례는 바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처방 없이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여러 개 구매해 사실상 단일제를 먹은 듯한 환각 효과를 느낀 건데, 이런 약물 오남용이 10대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감기약, 또 다이어트 약은 10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SNS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약의 전문적인 성분명까지 거론하며 약을 사고 판다는 글을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댈구’라는 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댈구’는 ‘대리구매’를 줄인 말인데, 대신 약을 처방받아 사 달라는, 그래서 그걸 다시 팔아달라는 요청입니다. 청소년들이 살 수 없는 담배 등을 두고 대리구매가 성행했었는데 이게 이제 약물로까지 이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행법상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로 분류되어 있는 이런 약을 직접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기자가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보기로 하고, 이를 처방받을 수 있단 병원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그곳으로 가봤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의원, 문을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처음 왔는지 다이어트 약 처방을 위해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간단히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합니다. 현재 몸무게, 희망 몸무게, 그리고 식욕이 강한지, 일주일에 음주는 얼마나 하는지 등 질문에 답을 적어 넣었습니다. 의사 진료를 보기 위해 문진표를 들고 기다리던 중 처음 방문한 환자들을 모아 직원이 먼저 설명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기자와 비슷한 시간에 병원을 찾았던 환자 3명과 함께 설명을 들었는데요. 어떤 약이 처방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의사 진료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이름이 불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는 7kg 정도 감량하고 싶다고 한 기자에게 한 달 만에도 가능하다며 늦어도 두 달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식단 조절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등 간단한 상담과 당부 이후 진료가 끝났습니다.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사용 기준에 기자가 들어맞는지 여부는 전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21년 만들어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 사용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절한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m2 이상 ▲다른 위험인자(고혈압 등)가 있는 BMI 27kg/m2 이상 등 이런 외인성 비만환자들입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운동 등 체중감량요법의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식욕억제제를 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찾은 병원에서는 BMI를 따져보지도 몸무게를 재 보지도 않았습니다. 의사는 식욕억제제를 먹으면 잠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며 수면제 처방도 권했습니다. 이렇게 10여 분 상담 뒤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향정신성의약품, 즉 마약류로 분류된 식욕억제제, 신경안정제가 버젓이 담긴 처방전. 약국에서도 이 약은 처음이냐고 물은 뒤 처방전대로 약을 처방해 부작용을 설명해 주고 약 봉투를 기자에게 건넸습니다. 특별한 절차나 어려움 없이 식욕억제제 한 달 치를 그렇게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택시 타고 관광하듯 병원 다녔다”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건 식욕억제제류뿐만이 아닙니다. 역시 식약처에서 정한 안전사용 기준이 있는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난, 10대 때부터 마약 투약을 시작했던 현재 20대 마약 투약자 강단비 씨(가명)는 인터뷰에서 약을 구했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병원을 직접 돌며 마약류 진통제 처방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는 강 씨는 10대일 때는 다른 성인들에게서 이를 구매했다고도 전했습니다. 대리구매입니다. SBS가 입수한 지난해 10대 마약 투약 감정 의뢰 데이터 속에서도 이런 전형적인 대리구매의 모습은 잘 담겨 있습니다. 만 12세 여자아이가 SNS를 통해 판매책과 연락이 닿고 그에게 3만 1천 원을 송금한 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식욕억제제를 배달받은 겁니다. 판매책과 직접 만나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그야말로 아주 간단하게 이뤄지는 거래. 이런 환경이 10대들을 마약에 보다 노출시키고 있었습니다. 통상 전형적인 마약으로 언급되는 필로폰, 대마 등 ‘사람을 망가뜨리는 마약’과는 다르다며 이런 마약류에 접근할지 모르지만 이런 마약류 투약이 더 강도가 센 마약 투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최초로 마약백서를 펴냈던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장은 “(마약 투약으로의) 적극성을 띄게 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 전문 기관인 인천 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대들이 저도 모르게 또 타의에 의해서 더 회복이 어려운 마약 투약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겁니다. SNS 속 무방비 상태에 놓인 10대 병원 돌기, 대리구매뿐 아니라 직접구매도 무서울 정도로 쉬웠습니다. SBS 취재진이 SNS에서 직접 마약 판매상과 접촉해 봤습니다. 구매에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지 1시간 여 만에 답이 온 판매상. 처음이라며 추천해 달라고 하자 □□라는,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를 바로 답하고, 학생이라 마약 투약 사실이 겉보기에 많이 티가 날지 걱정된다고 하자 ‘그렇게 세지 않다’며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거래를 어떻게 하는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놨습니다. ‘들어는 보셨는지, △△△라고.’ 그 이후엔 어린 학생이니 더 친절히 설명하겠다는 듯 입금 방식과 어떻게 하면 적발되지 않는지 등까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SNS 클릭 몇 번이면 버젓이 광고되고 있는 마약에 접근할 수 있고 오프라인에서도 큰 제재 없이 돈과 수고를 조금 들이면 마약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현실. 성인에 비해 도리어 10대가 더 효율적으로 마약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을 그대로 두고 마약 투약자를 더 엄벌해야 한다며 단속 일변도의 정책만 추진한다면 새롭게 유입되는 (10대) 투약자들을 줄이는 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SNS라는 특성상 그 사용자를 끝까지 추적하고 걸러내기가 힘든 측면은 당장은 차치하더라도, 버젓이 존재하는 마약류 사용 기준을 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해 ‘병원 유랑’이라도 최대한 막아내야 하지 않을지, 손을 놓고 있기엔 이미 우리의 10대들은 너무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마약류 오남용 인식개선 예방교육에 앞장서며 30여 년 간 이 분야에서 활동해 온 마약퇴치운동본부, 그곳의 이한덕 중독재활팀장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진단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10대가 치료 재활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이제 예방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 단계, 재활 단계로 넘어오는 사람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거예요, 10대들이요.” 10대가 더 이상 마약 예방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와 재활 대상이 된 현실, 어느 때보다도 빠른 조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디자인: 방명환
“외장재가 만들어지지 않은, 막 건축해서 거기에 건축물들 쌓아놓고 자재(들이 놓여) 있는데 태풍이 몰려와 가지고 다 쓸고 가는 형태거든요.” 10대가 마약을 한다는 것에 대해 마약 중독치료 전문의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25살 즈음까지 뇌가 계속 성장을 하고 있는데 그전에 마약을 해서 뇌 손상이 일어나게 되면 그 정도도 더 크다는 겁니다. 성장기에 있는 10대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 사람이 마약에 노출되는 일생의 시간도 당연히 길어집니다. 점차 낮아지고 있는 마약투약 연령대, SBS가 10대 마약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10대 마약투약자, IQ 20 가까이 떨어져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마약류 중독 치료자의 65%가 거쳐 간 전문병원인 인천 참사랑병원에서는 10대 시절부터 마약에 손을 댄 투약자들의 지능지수(IQ)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심리평가를 함께 진행해 이들의 잠재지능, 즉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지능지수가 나왔을 지에 대해서도 추정해 봤습니다. 그 결과, 많게는 수치가 20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8살 때부터 식욕억제제류와 ADHD 치료제, 신경안정제 등을 투약해 지금 23살이 된 한 남성의 IQ는 78±6으로 측정됐습니다. 80 이상일 때 평균, 70-80 사이는 경계선, 70 이하는 매우 낮음으로 측정되는 IQ 범주로 보면 이 남성은 경계선 수준으로 지능이 저하돼 있었습니다. 심리평가 자료 등을 토대로 추정한 잠재지능은 90-109로, 평균 수준이었습니다. 마약 투약으로 인해 인지기능이 떨어진 걸로 추정이 됩니다. 특히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등 4가지 영역 가운데 백분위가 가장 낮으면서 가장 많이 떨어져 있는 부분은 처리속도였습니다. 처리속도는 ‘간단한 시각적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탐색하고 변별하는 능력과 정신 속도와 소근육 처리 속도를 측정하는’ 분야인데, 두정훈 인천 참사랑병원 임상심리팀장은 마약 중독으로 인해 전두엽 등이 손상되면서 판단력, 통제력을 잃게 되고 따라서 처리속도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19살 때부터 필로폰 등 여러 약물을 투약했던 25살 남성도 IQ가 72±6, 경계선 수준으로 측정됐습니다. 잠재지능 역시 90-109로 추정돼 지적 기능이 유의미하게 저하돼 있는 걸로 분석됐습니다. 또 19살부터 필로폰에 손을 댔던 22살 남성은 83±6으로 IQ가 측정됐는데 잠재지능은 90-109로 측정됐습니다. 처리속도 분야는 59로 측정되는 등 지수 간 편차가 커 인지기능의 불균형으로 인한 일상생활에서의 비효율성이 시사된다고도 연구진은 해석했습니다. 10대 마약 투약이 더 위험한 이유 취재를 하며 만난 10대 마약투약자 김은비(가명) 양도 자신이 겪은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만 13세부터 마약을 시작했던 김은비 양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말했던 것도 기억이 안 나고,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하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하고요). 여기로 가야지’ 하고 방금 휴대전화를 껐는데 ‘잠깐만, 어디로 가기로 했더라?’ 이 정도예요." 18살부터 마약을 시작했던 강단비(가명) 양은 마약을 하던 당시 시간 개념이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하루 종일 약을 어떻게 구해야 되지 이 궁리하고 있고, 약이 좀 비싸다 보니까 돈은 또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그냥 하루 패턴이 그래요. 돈을 어떻게 구해야 되지, 약을 어떻게 구해야 되지 그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이렇게 성장하는 뇌에 마약이 미치는 충격을, 중독치료 전문가인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장은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필로폰 한 번 했다는 건 노트북을 220(볼트) 콘센트에다 꽂아야 하는데 100만 볼트에 꽂은 거라고 설명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뇌가 거의 녹아내리다시피 해요.” 물론 이렇게 떨어진 지능지수는, 마약을 중단하고 재활치료를 성실하게 받으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0대의 경우 회복이 다소 빠른 측면도 있지만, 이를 과신하고 마약에 더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고도 합니다.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장은 최근 10대들이 마약에 노출되는 경향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으로 대표되는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을 하더라도 골방에 박혀서 했어요. 모텔에서 하거나 혼자 은밀하게 하는. 그런데 지금 2, 30대, 특히 청소년 그룹은 모여서 해요. 파티룸 같은 것 빌려서. 40대는 그래도 직장도 다니고 있었고 가정도 꾸리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회복의 동기를 갖기가 쉬워요. (하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회복의 동기를 갖기가 어려워요. 약의 부작용도 초반부터 심하게 나타난 경우도 많지만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해도 회복 속도도 빨라요. 그러니까 이들 입장에서는 ‘원장님, 저 2~3년만 더 놀다가 끊을게요’ 아니면 ‘저 그냥 캐나다로 이민 가겠습니다’ 이런 얘기가 서슴없이 나오는 거죠.” 10대 마약 데이터 분석, 앞으로 과제는? SBS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10대 마약 투약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처음으로 분석했습니다. 마약을 하다 적발된 10대가 몇 명, 20대가 몇 명 이런 식의 통계는 나온 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몇 살 때부터 마약을 했고 어떤 마약에 손을 댔고 성별에 따른 차이는 무엇인지 등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10대들 사이에도 마약이 파고들고 있다’는 명제를 실제로 입증해 주는 데이터인 셈입니다. 이제 이 데이터로 실태를 파악했으니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앞선 기사에서 보셨던 것처럼 10대 마약 투약자 총 숫자는 남성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만 10세에서 만 14세까지, 10대 연령을 또다시 반으로 쪼갠 뒤 더 어린 연령대를 살펴보면 여성이 조금 더 많습니다. 여성이 더 빨리 마약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단 걸 보여주는 측면도 있는데 이런 현상을 챙겨봐야 할 겁니다. 또 지난해 6월 교육부는 각 학교에 마약 예방교육 자료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는데, 고등학생용으로는 ‘대마’와 ‘엑스터시’ 편을 별도로 동영상 및 PPT 교육자료로 제작했습니다. 중학생용으로는 ‘식욕억제제’와 ‘공부 잘하는 약’ 편을 배포했고, 초등학생용으로는 ‘카페인’과 ‘약물오남용’ 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데이터에서 10대들은 이미 신종 합성마약에 많이 손을 대고 있단 사실이 확인되고, 마약 투약자 중에 가장 어린 나이는 만 12세였다는 걸 감안하면, 좀 더 어린 연령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SBS가 10대 마약에 초점을 맞춰 보도를 이어가는 건 10대 마약 투약자들을 더 철저히 단속해 더 무겁게 처벌하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데이터에 포함된, 어쨌든 수사기관 등을 통해 확인된 숫자가 290명일 뿐 수면 아래에 있는 10대 마약 투약자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인 거죠. 무작정 이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것으로는 마약 투약의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마약은 중독되는 것이고,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가 인식하고 대처에 나서야 합니다. 10대 마약 투약자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천영훈 원장도 이를 강조합니다.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해야 한다, 재활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나오면 댓글에 ‘왜 우리 세금으로’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와는 무관한 문제고 어디 안드로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처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어느 지역에 몇 명, 이렇게 집계되다가 어느 순간 봤더니 우리 직장 동료가 걸렸다고 하고 나중에 친척이 걸리고 우리 가족이 걸리고 내가 걸리거든요. 거기까지 오는데 금방이에요.” 앞으로 SBS는 10대들의 마약 거래 실태가 어떤지, 또 처벌 외 중독재활치료 상황은 어떤지 추가로 보도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디자인: 방명환
KTJ가 뭔지, 여러분 들어보셨나요? KTJ는 KHATIBA AL-TAWHID WAL-JIHAD(‘카티바 알타우히드 왈지하드’)의 약자로, ‘일신교와 성전의 설교자’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바로 시리아 등지에서 활동했던 테러단체의 이름인데요. 홍보 영상을 만들어 SNS 상에 배포할 만큼 조직원 모집에도 적극적입니다. 배포된 영상을 보면 총을 멘 채 구호를 외치고 격투 훈련을 하며 건물에서 라펠 하강을 하는 조직원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테러단체 조직원에게 암호화폐를 보낸 국내 체류 외국인이 경찰과 국정원 공조 수사 끝에 붙잡혔습니다. 이 단체는 어떤 곳이고, 이들에게 왜 돈을, 그것도 암호화폐를 왜 보낸 걸까요? 왜 중요한데? 경찰청 안보수사국과 국정원이 지난해부터 공조해 수사를 벌인 끝에 국내에 살고 있던 92년생 우즈베키스탄 국적 A 씨, 94년생 카자흐스탄 국적 B 씨를 지난달 구속해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습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테러방지법 및 테러자금금지법 위반입니다. 테러방지법 제17조 2항은 ‘테러자금임을 알면서도 자금을 조달, 알선, 보관하거나 그 취득 및 발생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는 등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A 씨는 여러 번에 걸쳐 9백여만 원, B 씨는 1백여만 원을 각각 위에 언급한 KTJ 요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방식이 지금까지와는 달랐습니다. 홍콩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USDT라는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KTJ 요원에게 전달되도록 한 겁니다. 현금을 계좌로 송금한 사례는 적발된 적이 있는데, 암호화폐를 사용한 사례가 적발된 건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