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국의 '터미네이터'. 오지와 극한 상황을 마다하지 않는 취재로 잘 알려진 이강 기자는 에베레스트 원정대 동행취재 등 굵직한 현장에서 SBS 보도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두 달 전인 지난 7월 15일 충청과 남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와 근처 미호강의 범람으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습니다. 이 사고로 무려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습니다. 관련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현재 수사 중인 가운데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인명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은 다음의 3가지 주된 요인에서 비롯됐습니다. 1. 비상 탈출구 또는 대피를 돕는 시설이 없었다. 2.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배전반 침수로 제 때 작동하지 못했다. 3. 지하차도 입구에 진입차단 설비가 없었다. 우리나라에 지하차도가 920개나 있는데, 이 가운데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곳은 없을까요? 안전대책이 철저한 곳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문제의식 아래 SBS 〈이렇게까지〉 취재진은 현장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비상 탈출구와 배수펌프 부산 금정구 장전동 도로 지하에 있는 장전 지하차도는 길이가 1,220미터, 즉 1km가 넘는 큰 규모의 지하차도입니다. 2018년에 완공된 최신식 지하차도로 이곳의 특징은 지하차도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는 ‘탈출구’가 있다는 점입니다. 지하차도의 정중앙 부분인 610미터 지점에 배수펌프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면 왼편에 나선형의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의 높이는 5.5m로 이 계단을 타고 올라간 뒤, 다시 5.5m의 수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근처 인도의 맨홀을 열고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 맨홀이 너무 무거워서 장비 없이 열 수 없지 않나’라고 반문하실 분 있을 겁니다. 이곳의 맨홀은 조금 다릅니다.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는 위급한 시기에 이곳으로 탈출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맨홀은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 일반 맨홀의 5분 1 무게(약 20kg)로 줄였고, 맨홀을 여는 순간 근처 상황실에 바로 알람이 뜨도록 했습니다. 위급시 탈출구를 마련했지만 장전 지하차도는 웬만해선 잠기지 않을 시설들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100년 만에 내리는 큰 비’를 가정하여 배수펌프를 100마력짜리 3대, 30마력짜리 1대 총 4대를 구비해 놓았고 이 펌프들로 분당 32톤의 물을 퍼낼 수 있도록 대비하였습니다. 오송 지하차도의 3배 규모입니다. 물을 모아놓는 집수정의 용량도 커서 850톤 넘는 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펌프들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기시설이지요. 오송 지하차도에도 4대의 펌프가 있었지만 전기 시설이 침수되면서 펌프가 작동하지 않았고, 이게 사고를 키운 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전 지하차도의 경우 전기실이 지하차도 천장보다 높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하차도가 침수되어도 전기실은 잠기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대피를 돕는 시설 장전 지하차도처럼 비상시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드는 일은 지하차도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공사라 오히려 섣불리 시공하면 지하차도 전체의 구조 안전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요? 부산 남구의 문현 지하차도에 그 대안이 있습니다. 길이 260m의 문현 지하차도는 1980년에 완공된 오래된 지하차도입니다. 이곳에 가보고 취재진은 무릎을 쳤습니다. 지하차도 벽에 노란색 사다리가 붙어있는데, 지하차도 침수 시 사람이 매달리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간단하지만 위급 시 생명을 구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지하차도에 물이 차면 윗부분 1.4m 정도 공간이 생겨 일종의 ‘에어 포켓’에서 대피자가 구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남구청 건설과에서 설치했는데,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질문하자 이미 퇴직한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퇴직한 공무원을 만났고, 이 분의 대답은 담담했습니다. ▶ 기자 :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신 건지요? ▶ 김윤영(전 부산 남구청 안전도시국장) : 지난해 포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가 났는데, 지하주차장 에어포켓에 계셨던 분은 다행히 살아 구조가 됐거든요. 거기서 착안했습니다. ▶ 기자 : 퇴직 직전에 마무리하셨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신 건가요? ▶ 김윤영(전 부산 남구청 안전도시국장) : 사명감이죠. 내가 이것만큼은 하고 나가자.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 국민의 세금으로 이렇게 잘 지내왔는데 잘되든 잘못됐든 내가 책임지고 하나는 해보자. 진입차단시설 집중호우가 내릴 때 지하차도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시설은 ‘진입차단시설’이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탈출구가 있고, 대피시설이 있어도 일단 지하차도 안에 사람이 있고, 차량이 있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진입차단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은 부산의 초량 지하차도입니다. 이곳은 호우주의보, 태풍주의보가 발령되면 구청 근무자가 지하차도를 감시하기 시작하고 주의보가 경보로 전환되면 원격으로 진입 차단 시설을 작동합니다. 차단바가 내려오고 진입차단 메시지가 계속 흘러나오며 경고 방송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단바가 내려와도 지나가는 차량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수동으로 직접 잠금장치를 걸어 잠급니다. 만일 주의보나 경보 없이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경우 지하차도에 15cm의 물이 차면 위의 장치들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일종의 2중 장치인 셈입니다. 지하차도와 관련한 안전장비들이 유독 부산에 몰려 있는 건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2020년 7월 23일 갑작스러운 집중호우와 인근 하천의 범람으로 부산 동구의 초량1지하차도에서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고를 계기로 부산은 광역시청과 자치구청 대부분이 지하차도 침수에 최선을 다해 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여름 오송지하차도가 잠길 당시 부산에도 집중호우가 내렸고, 그 이후 8월엔 태풍 카눈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지하차도 35곳은 단 한 군데도 침수되지 않았고, 인명피해 역시 없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같은 비극이 부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AI로, 스마트하게 해결하겠다는 곳들 당초 취지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SBS보도본부에서 ‘이렇게까지’라는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데, 반복되는 사건사고에 대비해 ‘이렇게까지’ 예방책이나 대책을 세운 곳, 그러니까 잘하고 있는 곳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응급실 뺑뺑이 예방책을 잘 세운 곳은 없는지,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해결의 단초라도 제공하고 있는 곳은 없는지 취재했고, 2곳의 현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곳은 강원 원주였고, 한 곳은 충북 청주였습니다. 원주는 ‘AI 앰뷸런스’라는 이름으로, 청주는 ‘스마트응급의료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구급차와 병원 응급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마침 원주에서 ‘AI 앰뷸런스’ 시스템의 시작행사를 연다고 발표하여 저희는 5월 11일 원주를 방문했습니다. ‘AI앰뷸런스’ 시스템은 구급차와 병원 응급실을 통신망으로 연결해, 구급차가 확보한 응급환자의 정보를 병원 응급실과 바로 공유하는 시스템입니다. 특히 구급대원이 환자를 돌보며 말을 하면 자동으로 단말기에 입력되어, 대원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똑똑한 시스템이지요. 구급차 내부의 영상도 병원에 바로 보내 의료진은 관련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대로만 현장에서 활용된다면 의료진은 환자 도착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이 시스템으로 연결된 병원이 여러 곳이라면 어떨까요? 응급환자에 대한 정보를 받은 병원 여러 곳 가운데, 수락 신호를 보낸 병원으로 환자가 바로 가면 되기 때문에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AI앰뷸런스’에서 확보한 환자의 정보 보통 정부와 민간이 개발한 ‘새로운 시스템’의 취재는 별다를 게 없는 현장입니다. 높은 분들의 인사말을 준비하고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한 뒤 시연을 공개합니다. 저희 취재진도 준비한 분들의 노고를 고려하고 타 언론사도 있는 만큼 행사를 그대로 따라서 취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포커스는 분명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이 시스템이 적용된 현장을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발 끝났지만 사용은 못 한다고?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주최 측에 시스템이 적용된 현장을 취재할 수 있겠느냐고 문의하니, 난색을 띱니다. 시스템을 위한 단말기와 블루투스 마이크, 카메라 등은 구급차에 설치되어 있지만 본격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장비들이 설치된 구급차를 이용해 구급활동을 한 대원을 만나봤습니다. “구급차의 장비들이 연결된 병원은 아직까지는 000000 병원 한 곳뿐입니다. 이 병원은 저희가 늘 가는 곳인데,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관내에선 15분 정도면 도착하기 때문에 관련 정보가 병원에 넘어가기 전 저희가 이미 응급실에 도착합니다.” 최근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데, 함께하고 있는 병원이 한 곳뿐이다? 시연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고 현장을 취재할 길이 없어 저희는 그대로 철수했습니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중간 과정을 생략합니다만, 이후 후속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속사정을 잘 아는 내부 제보자를 확보했고 전말을 확인해 봤습니다. 제보자 A : “이 시스템을 준비하면서 응급실의 많은 관행과 부딪혔습니다. 그런 관행들은 더 나아가 적폐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당수 병원들이 구급차에 있는 환자의 상태를 자신들 병원 응급실과 바로 공유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기자 : “왜 그런 거지요?” 제보자 A : “의사가 부족한 것은 잘 아시겠지요.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각 병원들이 응급실과 더불어 당직체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에 벅찹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유지하고 있는 당직 체계 등 응급실의 능력을 실제보다 부풀려 복지부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응급의료기관평가가 있는데 그것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이죠. 그래야만 정부 지원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거든요.” 기자 : “더 쉽게 예를 든다면요?” 제보자 A : “중국집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상당수 병원들 응급실은 ‘여러 메뉴들 다 됩니다’라고 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면 ‘양파가 떨어졌어요. 식용유가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며 죄다 거절하는 식입니다.” 기자 : “그게 어떤 문제를 야기하나요?” 제보자 A : “양파가 떨어졌으면 애당초 ‘짜장면이 안 돼요’라고 공지해 손님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하고, 가게 주인에게는 ‘어제 짜장면 양파가 없어서 3명을 못 받았고요, 당근이 없어서 2명 못 받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해 줘야 가게의 상황을 고쳐나가겠죠. 그런데 주방장이 ‘문 앞에서 발걸음 돌린 5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어제 가게에 온 사람들이 4명입니다’라고만 리포트하는 상황인 거예요. 상황만 받쳐주었으면 가게에 총 9명은 왔을 건데 말입니다.” 기자 : “발걸음 돌린 5명에 대해선 리포트가 안 되는 상황인가요?” 제보자 A : “응급실에서 구급대의 전화 요청을 거절한 기록은 남지 않습니다. 그냥 사라져 버려요.” 기자 : “만일 AI 앰뷸런스가 도입된다면요?” 제보자 A : “그런데 AI 앰뷸런스가 도입된다고 가정해 보세요. 병원들의 응급실 거절 기록이 고스란히 남게 되겠지요? 구급차에서 확보한 기록들이 거의 동시에 응급실과 공유되니까요. 이러면 그동안 부풀리기 보고한 것들이 드러나고, 더 나아가 정부 응급의료기관 평가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수소문을 계속하여 이번엔 지역응급센터의 한 책임자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제보자 A와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지역응급센터 책임자 기자 : “위의 제보자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습니까?” 제보자 B : “응급실뿐만 아니라 당직 의사들이 부족한 것은 전국적인 상황입니다. 진료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게 자랑거리는 아니니까요. 그게 드러나는 걸 꺼리는...(상황입니다)” 119 구급대가 전화로 실행하는 ‘응급환자 이송요청’ 기록이 병원에선 사라진다는 내용 역시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제보자 A의 말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최근 사회문제화 됐던 3월 19일 ‘대구 10대 소녀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복지부가 낸 조사문을 살펴봤습니다. 복지부는 잘못을 저지른 병원 4곳에 지원금 중단과 과태료 부과, 또 공통적으로 6가지의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6번째 시정명령을 살펴볼까요? 6. 119 구급대 또는 119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전화 수용 의뢰-의료진 응답 대장을 전수 기록, 관리 및 주기적 환류 쉽게 말해 119 구급대가 전화로 환자 수용을 의뢰한 내용에 대해 의료진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전부 기록하라는 뜻입니다. 복지부 담당자와 확인해 보니 이것은 대구 병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스템 자체가 없어서 전국적으로 모두 안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은 AI앰뷸런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시스템인 청주의 스마트응급의료 서비스는 일찌감치 앞서 3월 31일에 시작행사를 마친 곳입니다. 취재진은 4월 15일쯤 이곳 담당자에게 연락했습니다. “스마트응급의료 서비스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아직 테스트 중입니다.” 스마트응급의료서비스가 완전히 구현됐을 때의 모습 이건 뭔 소리일까요? 31일에 ‘이제부터 시작합니다’라는 내용으로 행사를 마쳤고 그래서 취재진은 4월 중순에 연락을 했는데, 테스트를 또 한다고요? 사업단 이야기인즉슨 시작 행사는 했지만, 서버 안정화를 위해 테스트를 실시한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이미 2021년 6월부터 청주와 진천 등 시범지역에서 시작돼 6개월 동안 3천3백여 건의 서비스가 실현됐다고, 사업단이 발표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재차 테스트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환자의 생명과 관련한 사업이므로 취재진이 재촉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저희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지나 5월 10일쯤 다시 연락했습니다. ‘이제는 하고 있겠지...’하는 기대는 다시 한번 어긋났습니다. 최종 테스트, 말 그대로 실전 테스트를 6월 초까지 시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내부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또 제보자를 찾아봤습니다. 기자 : “시스템 개발이나 이런 것들은 2021년에 돼 있었던 건가요?” 제보자 C : “2021년부터 개발이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행을 한 겁니다. 처음에는 실증의 개념으로 몇 건을 해본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문제는 소방과 병원이 안 친해요.” 기자 : “그런가요? 환자를 두고 긴밀하게 협조하니까 친할 것 같은데...” 제보자 C : “안 친하더라고요. 만약에 이송된 환자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면 서로 미루는 부분들이 있는 거예요. 만약에 이송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면 이게 병원이냐, 소방이냐 누구의 잘못이냐라는 것에 대한 서로에 대한 불만이 있었어요. 두 집단 모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지만 두 집단은 안 친하더라고요.” 기자 : “제가 묻고 싶은 게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립니까..였습니다.” 제보자 C : “그 이유 때문이에요. 소방에 있는 재난정보를 병원과 연계하는 곳이 청주 지역이 처음이고 그래서 그것(두 집단의 불화)을 뚫기가 사실 너무 어려웠거든요.” 제각각 내놓는 대책들.. 언제쯤 제 역할하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여러 시스템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주체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원주 AI앰뷸런스는 과학기술정통부, 충북 스마트응급의료서비스는 국토교통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의 책임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잠자코 있을까요? 마침 지난 3월 21일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복지부도 응급실 안내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휴대전화로 해당 앱을 다운로드하고 증상을 입력하면 응급실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각각의 시스템들이 결국은 통합되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전국 단위가 어렵다면 인접 시도 차원에서라도 통합이 되어야 효과가 있겠죠. 지금처럼 부처별로 기관별로 각각 나뉘어 있다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고, 나중에 통합하려면 또 시간과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선 119 구급대가 급한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채 입원할 수 있는 응급실을 찾아 전화를 돌리는 80년대 같은 일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AI앰뷸런스와 스마트응급의료서비스와 같은, IT강국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최신 시스템도 이미 개발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도구가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그것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집단이 쓰려하지 않는데요.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의 예산이 이미 들어간 시스템들입니다. 급한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지 않고, 귀중한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자고 들어간 돈입니다. 이러한 도구들이 당초 의미대로 현장에서 잘 쓰이고 결과적으로 귀중한 인명을 구하는데 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같아선 너무 무서워서 일을 하면서도 내가 다른 것을 뭘 해야 되지 않을까 항상 매일매일 생각해요.”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경 씨(52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6년 동안 편의점을 운영해 왔다는 박 씨를 이토록 두렵게 만든 일은 무엇일까요? 이 사연에는 서민의 서러움과 정부의 ‘뒷짐’이 얽혀 있습니다. 호신용품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 박 씨의 편의점 계산대 옆에는 나무 몽둥이와 종이로 감싼 묵직한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종이와 테이프로 감싼 덩어리는 반으로 쪼갠 벽돌입니다. 호신용으로 가져다 놨는데, 혹시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이 보면 놀라지 않을까 염려해 종이와 테이프로 감쌌다고 하는군요. 박선경 씨가 구비한 몽둥이와 종이로 감싼 벽돌 인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 모씨 부부는 얼마 전 ‘호신용품 패키지’를 구매했습니다. 전기충격기와 캅사이신 스프레이, 호신용 방패로 이루어진 이 상품은 20만 원 정도로 꽤 값비싼 용품이지만 주저 없이 샀다고 합니다. 계산대 아래에는 전직 은행 경비원에게 받은 ‘경찰 곤봉’도 매달아 놨습니다. 장 모씨 부부가 구비한 호신용품 패키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SBS가 취재를 하면서 접촉한 전국의 편의점 운영자와 아르바이트생들은 여러 종류의 호신용품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야구방망이부터 망치나 쇠파이프, 심지어 제초용 나이프까지 방송에 내보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용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편의점 계산기에는 대부분 긴급호출 버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3분~5분 사이에 경비업체 직원 또는 경찰이 해당 편의점으로 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불안에 떠는 걸까요. 사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안의 시작…감사원의 감사와 보건복지부의 단속 2019년 4월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4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감사원의 지적을 받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4(담배에 관한 광고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담배에 관한 광고는 다음 각 호의 방법에 한하여 할 수 있다. 1. 지정소매인의 영업소 내부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광고물을 전시(展示) 또는 부착하는 행위. 다만, 영업소 외부에 그 광고 내용이 보이게 전시 또는 부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편의점 바깥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게 전시하거나 부착하면 담배 광고를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당초 청소년들을 흡연에서 보호하기 위한 취지의 법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편의점들의 담배 판매대는 계산대 바로 뒤에 설치되어 있어 가게 바깥에서도 보이지요.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어 법은 2011년에 제정되었지만 10년 가까이 유명무실한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갑자기 감사원이 지적한 것입니다. 보건복지부가 계도기간을 거쳐 2021년 7월부터 편의점들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자 편의점 업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복지부가 편의점 업계에 전달한 문건의 한 부분을 볼까요? <담배소매인 영업소 내 불법광고물 판단 기준>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불법 담배광고를 한 제조자 등에게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 불법 담배광고에 대한 시·군·구청장의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은 소매인에게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 가능 징역과 벌금뿐만 아니라 영업정지까지 당할 수 있어 편의점 업계는 서둘러 가게 바깥에서 담배광고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편광필름 부착과 광고물 위치 조정 또는 제거, 불투명 시트지 등의 방안이 논의됐는데, 시간과 비용에 쫓긴 편의점 업계는 가장 간단한 ‘불투명 시트지 부착’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2022년부터 전국 거의 모든 편의점들이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게 됐습니다. 담배 광고 막자고 한 건데…엉뚱한 부작용 그런데 이걸 붙이고 보니 엉뚱한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주이건 아르바이트생이건 대부분 비슷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진상 손님들에 의한 신체적 정신적 폭행’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취재를 위해 여러 편의점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한밤중 이상한 손님 때문에 두려움에 떨거나 실제로 폭행을 당해 다친 기억들을 갖고 있더군요.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와중에 가게 유리창을 불투명 시트지로 둘러쌓아 버리니, 두려움이 더욱 커지게 된 것입니다. 서울 상봉동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지운 씨의 이야기입니다. “손님 하고 트러블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들어오셔서 도와주시기도 하고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어봐 주시기도 하는데 이제는 이런 것(불투명 시트지)으로 시선이 차단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불가능해져서 아무래도 더 두렵게 되고 위협이 되는 거죠.” 이런 분위기에서 2월 2일 경기도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습니다. (▶ 관련 기사) 그리고 6일 뒤인 2월 8일에는 급기야 인천 계양구 편의점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는데, 야간에 홀로 근무하던 30대 아들이 살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50분이나 지나서 발견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지닌 과거의 안 좋은 기억에 불투명 시트지로 시야가 가려지면서 생겨난 불안감, 그리고 이에 더해 실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말 그대로 공포감을 경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자 각자도생 하는 심정으로 저마다 호신용품을 구입하고 구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준법투쟁’?...실무자는 한 달 넘게 공석 중 편의점 업계는 지난 한 해 줄곧 협회나 단체 등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불투명 시트지를 떼도록 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취재진은 보건복지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인터뷰를 사양하고 다음과 같은 입장문만 보내왔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 상 영업소 내부에서 담배 광고를 전시할 경우,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부착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2019년 4월, 감사원에서는 담배광고를 외부에 보이도록 전시한 담배 판매점들의 위법 사항을 시정하도록 지적한 바 있습니다. 법상으로는 판매점 내부의 광고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담배 및 편의점 관련 이해관계자(한국담배협회, 편의점산업협회, 담배판매인회중앙회)들이 모여 불투명 시트지 부착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자체 마련하고, 2021년 6월까지 시정조치를 이행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현장 판매점의 개별 특성을 고려해 불투명 시트지 부착 외에도 편광필름 부착, 담배 광고물 크기 및 위치 조정, 광고물 제거 등 다양한 방안을 선택할 수 있음을 업계에 안내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면서도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의견수렴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의견 수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길래, 대략 언제쯤 할 계획인지 다시 물었으나 복지부는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답변 내용이 부실해 담당과(건강증진과)를 찾아 실무책임자를 찾아보니 지난 1월 외부 기관에 파견됐고, 자리는 한 달 넘게 공석 중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이 죽고 그에 따른 공포감이 확산되어 전국 편의점들이 온갖 호신용품 창고처럼 변해가는데도 복지부는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취재과정에서 드는 느낌은 마치 복지부가 ‘준법투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10년 가까이 유명무실했던 법을 근거로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그래? 그럼 법대로 한번 해볼 테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봐라’라고 하면서 단속과 처벌만 하는 모습이지요. 단속한다니까 부랴부랴 불투명 시트지는 붙였고, 붙이고 보니 불안감이 커져 호신용품 밖에 믿을 게 없고, 공포감을 견딜 수 없어서 나라에 호소해도 대답은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전국의 편의점은 약 5만 곳으로 집계됩니다. 편의점 한 곳 당 근무자를 최소 3명만 잡아도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전국적으로 15만 명은 되는 셈입니다. 국민들의 이런 기가 막힌 현실, 정부는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