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원종진 기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투쟁들을 취재합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지난 2013년 9월, 연출가 남인우는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인 연극 '아리스토파네스 3부작' 중 <구름> 연출 준비에 한창이었다. 국립극단이 그리스 희극을 재해석해 연출한 작품으로, 희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었다. 남 연출가는 극본 원본에 성추행 파문을 빚고 경질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 씨뿐 아니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등 야권 정치인들의 정책을 풍자하는 대목을 넣었다. 남 씨는 당시를 "배우와 스태프들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엄정하게 지휘하며 연출가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고자 분투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대 뒤에서 한창 일하던 그에게 국립극장 사무국장 A 씨가 봉투에 담긴 종이뭉치를 들고 찾아왔다. 남 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꺼내든 종이뭉치는 다름 아닌 사방이 빨간펜으로 난도질 된 자신의 연출 극본이었다. 1년여 뒤, 집회의 촛불이 전국을 뒤덮고 세상이 뒤집어졌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며 박근혜 정부 당시 작성됐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꾸려진 민관 합동 진상조사위원회는 수사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미시적 문화폭력이 정부 차원에서 자행됐음을 밝혀냈다. 남 씨의 경우도 그런 예다. 남 씨는 빨간펜으로 난도질된 연출 극본을 받아들었을 당시엔 그 일의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진상 조사 결과, 연극에 들어간 정치 풍자적 요소를 삭제하라는 정부 차원의 다각도 개입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남 씨는 국가에 책임을 묻고자 지난 2022년 국가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의 상대방 격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처음에는 화해나 조정의 방식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소송 기간과 비용을 쓸 필요 없이, 국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길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화해나 조정을 해보자던 문체부는 돌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섰다. 그렇게 소송은 길어졌고, 연출가 남 씨는 지난주에야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검열 사건이 있은 지 9년,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민사50단독 최미영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이 한 연극 대본의 검열 및 수정 요구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 활동을 직접 제약하는 것으로서,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나며, 철저하게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할 공무원의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일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국가 차원의 미시적인 검열이 일어날 수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대한민국은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가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 노벨문학상 수상 당사자는 물론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미시적 검열 통제 하에 놓고 있었던 국가이기도 하다. SBS <더 스피커>는 최근 나온 연출가 남인우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을 계기로, 사건의 당사자와 법률대리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Q.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연출가는 당시 본인이 국가 검열의 피해자라는 것을 몰랐나? 남인우 연출가 남인우 연출가 : 사실 국립극단 공연 소극장, 기껏해야 300석도 안 되는 극장이었는데, 1주일 2주일 한다고 얼마나 많이 와서 보겠어요? '사람들이 많이 봐야 3천 명 4천 명 보는 건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정도로 생각을 했지, 그때는 전혀 위에서 청와대든 어디든 국가적인 개입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죠. 그냥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니까 감독이 스스로 그냥 좀 어떻게 해보려고 하나 보다, 그런 식의 압박이 있나 보다 했지, 위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령이 왔다고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호출을 받아서 갔는데, 거기서 그런 저보고 대본을 수정한 사실이 있냐고 물어보면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랑 왔다 갔다 한 문건들을 이제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그 공문을 보고 제가 메모해 놓은 걸 보니까 일자가 이제 딱딱 맞는 거예요. 그때 알았죠. '보이지 않는 국가 차원의 검열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Q. 국가 차원의 검열이라는 건 몰랐겠지만, 당시 빨간펜으로 수정된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남인우 연출가 : 연출은 창작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역할도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는 행위를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보고 있는 극장에서 대놓고 한 거예요. 배우들이 볼 때는 지금 자꾸 예술감독이 와서 빨간펜 친 대본을 주고 막 그러니까 '쟤도 그냥 하라는 대로 지금 하고 있군' 이런 인식이 팽팽했겠죠. 제가 연출이 제대로 됐겠어요? 그때도 저는 너무 힘이 들었고, 그 일이 있고 나서 6개월 뒤에 상세불명의 혈압으로 중환자실에 입원도 하고 막 그랬거든요. 제 직업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침해를 받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거죠. 하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그런 일이 어떤 국가 권력이나 이런 것으로 인해서 저한테까지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는 상황이라고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Q. 소송전 끝에 국가배상 판결을 최근 받았다. 어떤 느낌이 들었나? 남인우 연출가 :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1차적으로는 진짜 참담했어요 솔직히. 그전까지는 물론 증언도 있었고 이건 사실이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법적인 판결문이라는 팩트가 돼버린 것이니까요. 사실 예술가로서 너무 창피한 일이잖아요. 우리나라가 지금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졌다는 게 사실로 굳어진 것이라 1차적으로 좀 참담했고요.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뭘 했는지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분들이 어떻게 예술원 회원이 됐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제 자신도 너무 창피했습니다. 저 자신도 그걸 검열이라고 인지 못 한 게 너무 좀 창피했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내가 너무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일에 함께했다는 것도 너무 창피했습니다. Q. 2022년에 제기한 소송이었는데 3년이나 걸렸다. 하주희 변호사 하주희 변호사 (남인우 연출가 소송 대리) : 처음에 소송을 제기한 2022년쯤에는 조정 가능성이 컸었어요. 문체부 측에서도 적정하게 액수를 정하겠다고 했고, 자기들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조정안을 만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정권이 바뀌고 새 장관들이 들어온 뒤에 급격하게 입장이 바뀌어서 국가배상 책임을 부인하는 걸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대한민국이 검열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 뭐 이런 취지로요. 그러면서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소송이 좀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합의나 조정 이런 걸로 하겠다는 의사가 정부 측에서 좀 있었는데, 갑자기 '조정 말고 변론기일에서 조정을 하자' 이렇게 해서 기일이 잡혔는데 갑자기 부인을 하고, 공방이 오고 가고 그렇게 된 거죠. Q. 재판부는 당시 있었던 국립극단의 검열 행위가 정부 차원에서 실행됐음을 상세히 명기하면서 헌법 위반이고, 배상 책임도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판결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판결문 중 '인정 사실' 부분> 피고 국립극단에서는 2013. 9. 3.부터 2013. 9. 15.까지 '개구리'라는 연극을 공연하였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라 한다) 공연전통예술과 김○○ 과장은 2013. 9. 12.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라는 문서(이하 '이 사건 보고서'라 한다)를 완성하여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이 사건 보고서는 연극 '개구리'에 대하여, '내용상 문제점'으로, '그분(노무현 전 대통령 상징)'과 '카멜레온(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화를 통해 '그분'을 미화하고 '카멜레온'을 비하적으로 묘사한 점,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기말고사 컨닝'으로 풍자한 점, 윤창중 전 대변인 스캔들을 풍자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국립극단 예술감독(△△△) 조치사항'으로, '연출가로 하여금 결말을 수정하도록 하고 과도한 정치적 풍자를 대폭 완화하도록 지도하는 등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하도록 조치'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 사건 보고서는 '향후 조치계획'에 관하여, "향후 국립극단 작품에 '편향된 정치적 소재'는 배제토록 강력 조치"한다면서 '아리스토파네스 시리즈 2차 작품[구름(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추문 등 패러디 내용 포함 예정), 9. 24.~10. 5.] 등 2013년 국립극단 후속 작품에 정치적 소재의 내용은 배제토록 조치'한다고 기재하였다. 하주희 변호사 (남인우 연출가 소송 대리) : 가장 기본적인 일반 원칙, 즉 예술에 대한 사전 검열이라든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민사적 차원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라고 봅니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서 피고인 '대한민국'은 그 책임에 대해서 부인했었어요. '우리가 지시해갖고 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 이런 식으로 나왔었는데, 국립극단에서 나온 진술이랑, 전체적으로 그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실행됐는지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서 대한민국 정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지라고 한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Q.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한강 작가가 대상이 됐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로서,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없나? 남인우 연출가 : 판결이 난 뒤에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댓글들을 보니, '국립극단'이라고 하면 어쨌든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국립'이니까 국가를 대신해야 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정치적인 얘기를 못 하게 하는 걸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예술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달성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보수 정권이냐 진보 정권이냐를 떠나서,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예술이라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제가 사실 소송까지 결심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선배 예술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통제와 검열이 실행될 때 그에 눈 감고 동조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공훈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보니 친일파 후손들 땅을 보훈처에서 다시 돌려줬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거기에 온 국민이 분노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검열과 통제에 동조했던 예술가들의 행위가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또한 반예술적 행위인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드러내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했음에도, 그런 것들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승소의 의미는 없어질 거라는 걱정도 들어요.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과 같은 자랑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국가가 예술가들의 자유를 검열하는 환경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경사를 축하하는 것 자체가 패러독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주 헌정사상 첫 검사 탄핵 심판을 기각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 씨를 검찰이 '보복 기소'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국회가 탄핵 소추한 사건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안동완 검사의 기소가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위법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재판관 의견은 5:4로 아슬아슬하게 갈렸다. 기각 의견을 냈던 재판관 5명 중 2명도 '검사의 기소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에 위배되고, 구 검찰청법상 권한남용에 해당돼 일정 부분 위법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 유우성 '보복 기소' 논란 화교 출신의 유우성 씨는 200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2010년 북한에 25억여 원을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고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유 씨가 탈북자들에게 예금 계좌를 빌려줬을 뿐 범행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다며 기소 유예 처분했다. 그런데 2013년 2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던 유 씨는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로 다시 수사를 받는다. 그는 구속기소됐지만, 1심은 2013년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원은 이후 유 씨의 북한 출입경 기록을 위조해 검찰에 제출했고, 검사는 이를 그대로 항소심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위조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 씨는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 수사검사는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었다. 이후에도 유 씨는 다시 수사를 받았다. 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장을 접수받은 검찰은, 과거 기소유예 처분했던 '불법 대북 송금' 의혹을 2014년 재수사해 기소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소 시점은 '간첩 조작' 사건에 관여한 검사에게 징계를 청구한 직후였고, '보복 기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유우성 씨는 또다시 기소된 '불법 대북 송금' 사건 1심에서 혐의가 모두 인정돼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은 검찰의 '대북 송금' 혐의 기소가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이라며 공소 기각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는데, 이후 2023년 9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안동완 검사가 유 씨를 '보복 기소'했다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통과시켰다. 역사적 결정 직후, 유 씨는 헌법재판소 건물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갈라질 대로 갈라진 공론장의 정치 지형 속에, 그의 울분은 선택적으로 반향했다. 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거대 야당의 무모한 탄핵이 국력만 낭비했다'고 손가락질했고, 반대편에서는 '법 위에 검찰이 있다'는 부정의가 확인됐다고 분노했다. 그렇게 탈북자 유우성 씨를 둘러싼 역사의 소용돌이는 개운치 않게 마침표를 찍었다. 1주일이 지나고, 뜨거운 감정이 조금 잦아들었을 무렵, <더 스피커>는 이 모든 일들의 당사자인 유우성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법률가들의 판단과 목소리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결정문에 상세히 녹아들어 담겼지만, 유 씨가 목소리를 낼 시간은 제한된 방송 시간 속, 십여 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과 함께 결정문의 내용을 며칠간 살펴봤다는 그는,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스스로가 겪은 일들을 평가했다. Q. 헌재 결정문에서 재판관들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어떻게 느꼈나? A. 사실은 탄핵 사유가 안 된다고 본 의견들을 자세히 봤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보복 기소가 맞고 공소권 남용이라고 한 것을 헌재 재판관 몇 분들은 또 할 수 있는 기소라고 하시니까 저는 잘 이해는 안 됩니다. 저는 법 공부를 안 했지만, 사실은 어떻게 보면 법이라는 게 모든 사람들한테는 공평한 거 아니겠습니까?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제재하고, 강자의 어떤 위법적인 행동을 제재하기 위해서 법이 있다고 저는 알고 있는데요. 대법원은 검찰 기관이 공소권을 남용했다는 결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헌재 재판관님들은 그게 또 아니라고 하니까 참 저는 피해자로서는 좀 두 번 세 번 피해를 더 당하고 짓밟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검사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일반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판단이었다면, 헌법재판관님들이 대법원의 의견을 거슬렀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2월 20일 탄핵 심판 변론에 참석하는 안동완 검사 안동완 검사는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결이 나온 뒤인 지난 2022년 5월 19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유 씨 기소가 '보복 기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유 씨 수사는 검찰 자체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장을 접수받아 시작된 것이며 ▲추가 범행이 새롭게 발견돼 기소가 불가피했고, ▲이에 대한 기소 시점이 늦어진 것일 뿐이지, 검사 징계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일부 재판관들은 탄핵 심판 결정문에서 안 검사 주장에 손을 들어주며, '공소권 남용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Q. 일부 재판관들은 '검찰이 과거의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하고 유우성 씨를 기소할 만한 사정들이 밝혀졌다'며 재수사와 공소 제기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 판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법은, 사실은 어떻게 보게 되면 증거를 놓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법원에서 받은 어떤 판결문도 제가 그 행위를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공소권 남용이 문제라고 공소 기각 판결을 한 것 아닙니까? 제 죄가 그렇게 인정이 되고 커 보였다면 2심이나 대법원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재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하려면 그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로서는 이건 불공정한 판단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안 검사의 이 같은 대응은 3년 전 검찰 수장의 반응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것이었다. 2019년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기소가 "공소권을 남용한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며 검찰총장 사과를 권고했고, 문무일 당시 총장이 이를 받아들여 고개를 숙인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검찰총장의 공소권 남용 인정과 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뀐 뒤 나온 담당 검사의 정반대 입장. '동일체'라는 검찰의 입장 변경은 양극화로 치닫는 정치 환경 속 또 다른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었고, 거대 야당은 헌정 사상 첫 '검사 탄핵'의 열차를 출발시켰다. Q. 수많은 재판 뒤에도 일이 끝나지 않고 '검사 탄핵 소추'까지 이어졌는데, 긴 과정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 A. 사실은 저로서는 그냥 이걸 좀 제 인생에서, 내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냥 일반인하고 평탄하게 살고 싶은 게 사실은 저의 소망이에요. 그런데 제가 원치 않게도, 제 사건이 어떻게 보게 되면 대한민국에 제일 많이 알려진 간첩 조작 사건 중에 하나로 돼버렸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냥 저 편하자고 입을 함구하고, 조금이라도 변화의 시도를 하지 않으면, 제가 정부나,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스스로 할 말이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입을 다물고, 인터뷰하기 싫은 것도, 떠오르기 싫은 것도 그냥 버티며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나부터잖아요. 나부터 어떤 변화를 조금이라도 가져가서 그 변화가 조금씩 조금씩, 아직 더디겠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사실은 어떻게 보게 되면 검찰이나 또는 법 기관에서 누군가를 조작하고 누군가를 공소권 남용하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그런 작은 씨앗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버티고 하는 겁니다. 비록 이렇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지만 사실은 그 실망스러운 결과 과정에서 또 보여준 것들이 있거든요. 특히 이제 네 분의 판사는 명확히 잘못됐다는 부분과 탄핵이 돼야 된다는 부분들이 이런 판결이 나왔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성과거든요. 비록 다수결로 돼가지고 5:4로 팽팽하게 기각은 됐지만 사실은 그 속에는 잘못됐다는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는 판사님들 계시니까 이게 저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사실 이제 조용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나오고, 인터뷰에 응하고, 얼굴이 팔리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고도 했다. 싸우기는 했지만 아직도 검찰이 무섭고,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말도 여러 차례 덧붙였다. 그것은 반격을 받았던 검찰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간첩 조작', '보복 기소'라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이 기관은 또 한 번 국민적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으니 말이다. 한 검찰 간부는 "같은 기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직무 수행을 열심히 하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간 것은 검찰 구성원으로서 많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은 꼭 이렇게 커져야만 했을까? 수십 명의 변호사들과 법관들, 그리고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탄핵'이라는 핵 버튼을 누르는 데 이르기까지, 다른 길은 정녕 없었을까? 검사 탄핵 소추라는 초유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결과는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허뿐. 유우성 씨는 '이것'이 있었다면 자신은 상황이 여기까지 오는 것에 반대했을 거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A. 검찰이 사과를 뒤집지 않았다면 굳이 탄핵까지 가는 데 반대했을 겁니다. 그 어떤 한 톨이, 어떤 반성과 또는 재발 방지와, 또는 사과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까지 간 거겠죠. 사실은 제대로 된 검사들이라면, 제 간첩 증거가 조작되고, 또 공소권이 남용됐다는 그 판결문을 보고 다시 당당하게 조직에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저는 의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기자님이 자기가 쓴 기사가 결국에는 법원에서 무죄는 받았지만, 그 기사 내용이 판결문에 잘못됐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박히게 되면 다시 돌아가서 당당하게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 근데 그런 걸 다 마다하고 사과를 뒤집는 거는 제가 어떻게 평가를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 수가 없어가지고 참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보이게 안 보이게 검찰에서 어떤 방식으로 저를 또 보복하고 괴롭힐지 그런 두려움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이걸 끝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굳이 제가 이렇게 계속 시끄럽게 인터뷰를 계속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어떤 변화를 주장을 안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고 또 계속해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소속 양회동 씨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앞 잔디밭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사망했다. 그런데 2주여 뒤인 5월 16일, 분신 상황이 찍힌 CCTV 화면 사진이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에 실렸다. 유족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었다. 기사에는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는 제목이 달렸다. 기사의 파급은 거대했다. '노조 운동을 위해 죽음을 이용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삽시간에 수천 개 달렸다.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연일 엄포를 놓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SNS에 기사를 공유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곧이어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는 분신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원 홍성헌 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공갈 협박'이라는 혐의가 붙은 피의자라고는 하지만, 분신한 이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뒤의 '음모론'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유력 언론과 최고위 공직자를 매개로 유포된 그 의혹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1년이 지난 뒤, 분신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기획 분신' 내지는 '분신 방조' 의혹을 받은 홍 씨는 경찰로부터 혐의가 없다는 통보를 받아들었다. 홍 씨의 정신과 육신은 무너졌으나, 그 누구의 사과도 없었다. 유력 일간지와 국토장관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던 언론들은, 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홍 씨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엔 인색했다. <더스피커>는 아직은 그날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홍 씨에게 어렵사리 인터뷰 승낙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목소리를 자세히 전한다. "동네 후배를 분신 방조하는 놈이 어딨습니까" Q. 사건 당시 언론과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고 양회동 씨와 홍 씨의 관계를 건설노조원-민주노총 간부로 묘사했다. A. 제 고향이 속초 아야진이에요. 그리고 회동이가 교암 사람이에요. 바로 옆 동네죠. 그러니까 우리 후배라고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친구들끼리 이렇게 해보니까 우리 학교도 동창이더라고요. 그리고 나보다 학교로는 한 7년 후배고 또 걔네 큰형이 우리 동창이에요.이름이 회동이, 특이하니까 제가 그냥 희동이 희동이 이렇게 불렀어요. 회동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가 당적(黨籍)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에요. 고향에서 먹고 살게 사실 속초는 마땅치 않으니까 노가다 하면서 먹고 살았는데, 진짜 우리는 그냥 뭐라 그래야 되나... 좀 막말로 노가다 대우 안 받고 그래도 이런 단체에 들어오면 막말로 '당신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 소리는 안 듣잖아요. 옛날 노가다가 그래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노조 한 거고 아시다시피 또 강원도가 노조 생긴 지가 그렇게 오래 안 됐어요. 그렇게 살기 위해 들어간 단체인데 뭐 단체가 시켜서 분신을 하라고 한다고요? 그런 일이 세상에 어떻게 있습니까? Q. <조선일보>는 분신 당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고, 국토교통부 장관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A. 사건이 있던 날에, 제가 그 친구 전화가 와가지고 거길 갔어요. 갔더니 벌써 거의 이성을 잃었더라고요. 내가 이런 얘기는 잘 안 했는데, 회동이가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하는데, 그냥 눈이 완전히 갔어요. 제가 "형하고 저 안에 들어가자. 라이터만 놓고 형이 판사 만나게 해줄게 가자" 별말을 다 했어요. 그다음에는 기억이 다 조각나서 사실 정확하지가 않아요.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 말에 의하면 불이 붙는 순간 내가 뒤로 팍 넘어가서 주저앉았다 그러더라고요. 진짜 기억이 그때 잘렸어요, 막. 그런데 몇 분 동안 뭘 하고 있었냐고요? 응, 나 보고 뭐라 그랬던가, 왜 그냥 거기 있었냐. 그러면 몸에 뿌리고 라이터를 들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딱 당기면 끝인데 그럼 내가 그럼 설득하는 게 먼저지 그사이에 어디 소화기를 찾으러 갔다 와야 되나요? '니 잠깐 있어. 내가 소화기 가지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있어' 이렇게 해야 되나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고향 후배가 죽는데 그거 보고 있을 놈이 어디 있어요? 낙인이 찍히고 악마가 돼버렸다 Q. '음모론'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 A. 진짜 애들이 나한테 인터넷 글 올라온 거 보지 말라고, 내가 그때 워낙 상태가 안 좋을 때니까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댓글을 보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잘난 노조 조끼 벗어갖고 빨리 꺼야지' 이런 댓글이 막... 제가 오죽했으면 <조선일보> 기자한테 전화했겠어요, 술 먹고. 그때 내가 그랬어요. "인간적으로 당신은 그냥 진보 보수를 떠나서 진짜 묻고 싶은데 아직도 내가 분신 방조를 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제가 언제 그렇다고 했습니까?'. 그래서 진짜 생각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걸 기획하고 방조를 한 의혹이 있다는 이런 글을 쓰면 그냥 글 하나 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거 당하는 사람은 장난 아니거든요. 제가 이거를 겪고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Q. 1년 가까이 수사까지 받았다. A. 단지 노조원이라는 거 하나 때문에 나는 고향 후배 죽는 걸 기획하는 악마가 돼버렸어요. 그런데 그거 밝힌다고 불러서 조사도 하고 포렌식도 하고 하는데 도저히 안 나오니까 그 다음에 방조죄로 걸고. 저 1년 동안 너무 진짜 힘들고 억울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무 놈도 사과하는 거 없이 그냥 집으로 죄 없다는 통지서 하나 날아왔더라고요. 그냥 다 각하 처리됐다. 그게 끝이에요. 내가 너무 억울해서 무고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 나도 고소 맞고소를 하자. 내가 각하를 받았으면 한쪽 놈은 무고 아니에요? 근데 그것도 하기 힘들더라고요. 또 그때 기억 떠올리면서 조사 받으러가고 또 나가서 뭐 해야 되고... Q. '건폭' 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건설노조 불법 행위'의 상징적 사건처럼 소비됐다. A. 솔직히 막말로 그렇다고 우리가 노조가 모든 걸 잘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잘못한 것도 있고 솔직히 뭐 잘못해서 잡혀간 놈들도 있잖아요. 그런 건 잘못한 거고, 근데 강원도 같은 데는 노조도 다 신생이고, 여기는 조직도 하는 것도 정말 일천한 수준이에요. 대통령이 민주노총하고 전쟁하고 있다고 계속 홍보를 했잖아요. 민주노총하고 무슨 전쟁을 해요? 우리 건설노조, 최고 힘없는 건설노조 때려잡은 거예요. 막말로 정규직으로 큰 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건드리지도 못해요. 건설노조는 주간 철근하고 목수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패고 약한 사람들 때려가지고... 때리는 사람들은 별로 피해 볼 게 없잖아요. 그래봐야 아파트 한두 달 늦게 짓는 거예요. 가장 힘없는 사람들 때리고는 홍보는 쫙 하고. 힘없는 사람들 때려잡는 거, 어디를 때려야 가장 약점인지 이런 거... 진짜 사람들 너무 하는 거예요. 진짜 너무 하는 거예요. 너무 하는 거예요. 무너져내린 몸과 마음…"사과만이라도 받고 싶다" Q. 사건 이후 일상은 어떻게 되었나? A. 한 10개월 술 엄청 먹었어요.제가 약간 마른 체형인데, 7kg가 빠졌으니까. 나중에는 누가 정신과 전문하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내가 끝까지 만나지 않았어요. '내 앞에서 그렇게 힘들게 죽은 놈도 있는데, 그걸 내가 이겨내야지'. 죽기 전에 회동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요? 애가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남자 쌍둥이가 있어요. 이제 3학년 됐구나. 그것도 놔두고 죽는다는 게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습니까? 사실 저도 술 먹으면서 '왜 하필 준비 다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나를 불러서 했을까' 회동이 원망을 엄청 했어요. 내가 평생 감당할 고통 같은 걸 생각을 했는지 진짜 엄청 원망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까 걔도 무서웠던 거예요. 마지막 순간에 불 붙인다는 게. 나라도 불러가지고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일부러 (치료를) 안 받았어요. 이겨내보려고. 그렇게 1년 놀았어요. 어디 가서 내가 현장일 한다는 게 사람들 보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약간 그런 게 있더라고요. 1년만 참고 버티자 하면서 5월 1일까지 버티고 있어요. 제가 버텨내면 그러면 5월달부터 일을 할 겁니다. Q. 바라는 것은 없나? A. 나 같은 사람 정도가 각하 처분을 받은 걸 그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알고 싶지도 않을 거고 알 필요도 없고 하겠지만, 혹시 아신다면, 원희룡 전 장관이나 <조선일보> 높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디 담당자 누구래도 '고생 많았다. 좀 미안했다'. 좀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한마디 사과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과할 만한 자격도 아무 것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겠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가 1년 동안 고통을 받았다는 걸 알면... 내가 저번에도 한 번 그랬어요. 담당 기자가 그냥 전화, 문자라도 해가지고 '부지부장님 그냥 미안했습니다. 강원도 가면 한번 뵙죠' 그러면 내가 진짜 막말로 소주 사준다 그랬어요. 내가 소주라도 한 잔 사주지 나이 젊은 사람들인데. 저도 이제 60이에요. 진짜 이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미안했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좋겠어요, 문자라도. 근데 그거 안 하네요. 고생 많으셨다, 그냥 1년 동안 고생 많으셨다, 언제 한번 그냥 뵙죠, 소주 한잔 합시다. 어차피 내가 감수하고 나 혼자 그냥 1년 고생한 걸로 치면 되니까 고생 많으셨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사람은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쎄요. 그냥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기자 주 고 양회동 씨의 분신 장면이 찍힌 CCTV 화면이 어디서, 어떻게 유족 동의 없이 유출됐는지 규명해달라는 고발 사건은 1년이 되도록 경찰 수사 답보 상태에 있다. 건설노조는 사설업체 감식 결과 보도된 CCTV 화면은 강릉지청에 설치된 CCTV 화면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으나, 수사기관은 아직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양회동 씨의 유가족들은 물론, 해당 사진을 근거로 '분신방조범'으로 몰렸던 홍성헌 씨 역시 자신의 인생에 닥친 일들의 내막을 여전히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23년 2월 28일, 30대 남성 A 씨가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 방 안에서 죽었다. 속칭 ‘인천 건축왕’이 빚으로 지은 빌라 건물 방 한 칸을 임차하고자 낸 7000만 원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짧은 유서에 그는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적었다. 두 달 뒤인 4월 14일엔 동년배의 남성 B 씨가 미추홀구 연립주택 방 안에서 죽었다. 역시 ‘인천 건축왕’이 빚으로 올린 건물이었다. 그가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보증금은 9000만 원이었다. 3일 뒤엔 또 다른 30대 여성이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죽었고, 그로부터 7일 뒤엔 미추홀구 길거리에 주차된 차 안에서 40대 남성이 혼자 죽었다. 그 역시 ‘건축왕’에게 1억 조금 안 되는 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인 상황이었다. 1년이 지났다. 죽음의 행렬을 마주한 피해자들은 그 행렬에 끼지 않기 위해 연대를 결성했다. 하지만 연대는 연대일 뿐,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뒤에도 이들의 처지는 그리 달라진 게 없다. 〈더 스피커〉는 체념 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는 정부의 완고함과 ‘무식해서 당한 피해를 왜 세금으로 갚아주느냐’는 여론의 싸늘함 사이에서 이들은, 조심스럽게 울분을 토했다. 피해자가 되는 길 지난해 6월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의 지위를 획득하면 사기당한 집의 경ㆍ공매를 유예받거나, 그 집을 우선매수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한국주택공사(LH)에서 주택을 매입한 뒤 공공임대주택 형태로 제공받을 수도 있으며, 4대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금리를 감면받거나 소송비용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지위를 얻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려면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둬야 하고, ▲경매나 공매 절차가 시작돼 다수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어야 하며, ▲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임대인 잠적 등으로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돈 안 내놓는 사람의 ‘고의성’을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2030 청년들 인데다가, 부동산 계약에 서툰 이들입니다. 게다가 임대인이 부동산과 결탁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임대인이 잠적한 상황 속에서 가해자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참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장 “부동산 PF 구제는 되는데, 전세사기 피해 구제는 왜 안 되나요?” 특별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이 경매 권리관계에서 후순위에 있으면 보증금 손실을 피할 수 없었고, 1억 원 안 되는 보증금 때문에 목숨을 끊는 이들이 수억 원의 빚을 내 주택을 매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에 국회는 지난해 12월 27일, 야당 주도로 보완책이 담긴 개정안을 상임위인 국토위에서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보증금을 떼이게 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2천~5천만 원의 정부 지원을 해준 뒤, 사기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들어있다. 또 임대인이 사라져 버린 주택이 관리 부실로 무너지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빈번해, 정부가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정부와 여당은 개정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인 간의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나서서 직접 구제하는 것은 전례가 없고, 과거 전세사기 피해자나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논리다. 내 돈인 세금을 들여 타인의 피해를 구제해 주는 것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냉랭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입법 활동을 촉구해 온 권지웅 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장은 전세사기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제거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대형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던 기업들을 도와주는 데에는 수천억 원의 공적 자금을 쓰는 정부가, 주택ㆍ금융 정책의 부산물인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는 지나치게 인색하다고도 지적했다.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PF 부실에 작년에만 28조 원에 달하는 정책금융을 지원했고, 예산으로 5천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적 계약으로 벌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필요하다면 개입해 왔으면서, 힘없는 개인들의 전세사기 개입은 할 수 없다니요?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계약하고, 은행에게 대출받으면서 대출심사까지 받았던 분들입니다. 그러한 공적 시스템에서 걸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혹자는 그 개인이 잘못해서 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보실 부분은 아닙니다. 지금 국토부 공무원도 전세 사기를 당했고 LH라고 하는 공기관도 전세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몰라서 당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구조적으로 피하기 아주 어려운 그 어떤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법 보완 논의됐지만... 선거에 매몰된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다음 주 중대 분기점을 맞는다. 이번 주 일요일인 2월 25일, 법사위 계류 60일 시점이 지나간 뒤 국토위가 재적위원 5분의 3 찬성 요건을 충족하면 개정안을 본회의에 바로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총선 정국 속에 공천 내홍에 빠진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에게조차도 국토위가 최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 국토위 관계자는 “선거철에 지방에 머무는 의원들이 많아 국토위가 개최된다고 해도 참석율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지난 14일 국회를 방문해 김민기 국토위원장을 면담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약속된 것이 없어 여전히 속은 타들어간다고, 그들은 한숨 쉬듯이 절규했다. 사실 저희 피해자들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여당은 다른 구제책을 내놓지 않고 반대만 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김민기 국토위원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국토위를 열어도 야당 의원들 전체가 다 출석해야 겨우 5분의 3을 넘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선거철이라 쉽지 않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어떤 의원실에 가서는 심지어 '지금 사실 전세사기 피해 구제보다 공천이 중요한 시기다'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 강민석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 부위원장 지난 정부 시절, 국가는 임대사업자들에게 손쉽게 대출을 내주며 빚으로 여러 건물을 올리는 길을 터줬다. 서울의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지만, 서울의 주거비는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인천과 경기 등지의 빚으로 올려진 건물들에 빚을 내 전세를 들었다. 일이 터지고 난 뒤 무지하고 멍청하다고 손가락질받고 있는 이들은,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의 대출 심사와 국가공인자격증이라는 부동산 중개 ‘시스템’을 믿었다고 말한다. 정치권은 이 모든 일들이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탓이냐를 두고 싸우지만, 요 몇 년 간 막대한 빚을 내 투자에 나섰던 거대 자본의 실패에는 뜻을 모아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른바 ‘대마불사’의 논리다. ‘대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증금을 날리게 된 세입자들은 어떨까.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도 그들의 처지는 그리 달라진 게 없다. 피해자이면서 아직 생존자인 이들은 “어떤 사기 피해는 불평등하다”고 절규하는데, 이들의 울부짖음에는 타당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설계한 제도에 문제가 있었고, 은행은 무분별하게 대출을 했는데 사기가 터졌을 때 상환 책임은 왜 임차인만 져야 되는 겁니까?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일상이 무너진 책임도 모자라, 실제로 목숨을 끊어야만 책임을 지게 되는 건가요? 장관님이 사기는 평등하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사기 피해가 다 같은 게 아니고요, 돈 없는 사람들의 피해만 불평등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A 씨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여성대리기사 간담회가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출처 : 참여와혁신) “나는 한겨울을 빼고 골프장이 몰려있는 용인 양지 근처에서 콜을 잡기 위해 출근한다. 매일 이곳은 100여 명이 넘는 법인 대리운전기사들이 콜을 잡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에서 몰려든다. 내가 곤지암에 도착하는 시간은 빠르면 오전 11시부터 늦어도 13시까지. 이때까지는 와 있어야 골프 치고 집에 가는 손님들의 낮 콜을 잡을 수 있다.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남성 기사들에게 오더가 왔다는 알람 소리와 진동이 울린다. 그러나 여성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린다.” -50세 여성 대리기사 A씨- 지난 7일, 국회의원 회관 회의실에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였습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의 노동 현실을 듣고자 간담회 자리였습니다. 통상 ‘대리기사’ 하면 ‘남성’이 떠오르지만, 이날 모인 대리기사 여럿은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들이었습니다. 대부분 40대 중후반~50대에 이르는 여성 대리기사들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입을 모았습니다. “우리도 차별 없이 콜을 잡고 싶습니다.” 20년 베테랑 여성 기사에게도... 고객 거절 없어도 작동하는 ‘노동 펜스룰’ SBS는 이들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을 다시 한번 만났습니다. 공식 간담회장에서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국회, 방송국, 카메라와 같은 것들이 낯설다는 이들은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원래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게 됐어요. 그러면서 2009년에서 2010년도 사이에 제가 대리를 처음 시작했고요. 대리한 지는 지금 13년 차입니다.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게 저한테는 대리더라고요.”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3개월 정도 호프집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사실 잘 안 된 거죠. 그래서 2003년도에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됐어요. 술 마신 사람들 차를 여성이 운전한다는 게 처음에는 망설여졌어요. 근데 되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거를 한번 해보고 그다음부터 거기서 계속 일을 하게 됐는데 운전을 해보니까 저하고 적성이 딱 잘 맞는 거예요.” -50대 초반 여성 대리기사 C씨- 운영하던 호프집이 문을 닫으면서, 혹은 하던 사업이 기울면서 시작하게 된 대리운전 경력이 어느덧 20년. 경력과 능력이 쌓인 이들은 법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법인 대리기사’ 업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벽은 ‘여자는 운전을 잘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자라난 것이었습니다. 일부 고객들은 여성 기사가 배정된 경우 업체에 항의를 했고, 업체들은 아예 여성 기사에 대한 콜 배정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몇 한두 분이 여성 기사가 오면 아마 전화해서 무지 화를 내시나 봐요. 몇몇 분들이 상황실에 전화해서 항의하는 것 때문에 콜을 잡아도 상황실에서는 ‘고객님들에게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이러는 거예요. 어제도 두 번 있었고, 하루에 한 세네 번씩 그런 일들이 생겨요.” -50대 초반 여성 대리기사 C씨- 실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지만, 업체들은 선제적으로 ‘펜스룰’을 만들었습니다. 경력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여성 기사들에게 일감이 적게 배정되는 일은 그렇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땅히 항의를 하거나 하소연하기도 어렵습니다. “밤 시간대도 우리 기사들은 운행을 해야 되는데, 여자 기사들이 잡게 될 경우는 갑자기 배정된 콜을 빼버린다는 거죠.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거기에 대해서 토를 달게 될 경우 상황실에서 좋은 경우에는 설명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거의 한 80% 정도가 ‘락’이라고 해서 회사의 콜을 운행 못하게끔 잠가버리는 거죠. 그러면 이제 거기에 대한 불이익이 또 많기 때문에 저희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 하는 겁니다”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공기처럼 자리 잡은 성차별에 더해, 자존감 자체를 무너뜨리는 성희롱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일감 배정에서부터 눈치를 봐야 하는 이들이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50대 후반의 베테랑 여성 대리기사 B는 노골적인 성희롱을 겪어도 스스로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고객님께서 뜬금없이 잘 가다가 ‘뽀뽀 한번 할까’ 이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거를 나쁘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되니까요. 고객님한테 이제 ‘저는 이런 말을 들어서 괜찮고 조금 이해는 하겠지만, 다음에 다른 여자 기사들을 만났을 때는 큰 문제가 될 테니 이런 발언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특고’는 노동자 아니다...남녀고용평등법, 노동법 적용도 어려워 설령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결심을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남녀고용평등법>이라는 이름의 법이 존재합니다. 이 법 1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지만, 적용 대상은 ‘근로자’로 한정돼 있습니다. 대리운전기사처럼 한 업체에 전속되지 않고 노동을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나라 법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조 ‘이 법은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의 노동 문제를 대변해 온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법 밖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숙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여성 대리기사님들은 여성이라고 하는 소수자적인 위치와 ‘특고’라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중적 복합 차별을 받는 위치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려움에 더 취약하죠. 예를 들면 고객으로부터 어떤 성차별 혹은 성희롱성 발언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이거에 대한 형법상으로는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성희롱 신고 대상은 되지가 않는 거예요.” ‘여성’과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중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문제에 대해서는 주무 관청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노동당국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며 문제 시정에 미온적이고, 인권위나 권익위 진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한철희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조직국장 “한 번은 어떤 여성 기사분이 저한테 전화가 와서 '국장님 저 정말 죽고 싶습니다. 정말 정말 좀 살려주세요' 그러는데, 내용이 뭐냐 하면 하루에 5번 이상을 여성 기사라고 배차 제한을 받아가지고 일을 못 했답니다. 이 분이 남편분과 사별을 하셔서 애를 3명을 키우는데 그 얘기를 딱 듣는데 정말... 어떤 조합원 분은 너무 억울해서 혼자서 인권위를 찾아가서 진정을 했어요. 근데 거기서도 사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그냥 권고 사항뿐인 거지. 지금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진 지가 36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런 제도들이 작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에요.” ‘노동력 감소’ 우려하면서...여성·특수고용 노동 사각지대 방치하는 한국 ‘이대로라면 곧 차압이 들어올 텐데...’ 대출금도 연체를 시킨 상태라 하루하루 불안감으로 수개월 잠도 못 자고, 불안정한 시간들을 보내고만 있었다. 좋았던 다니던 직장은 문을 닫았고, 나는 급한 마음에 180만 원이라도 벌기 위해 취업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밤 7시나 되어야 종일 땀으로 젖은 옷을 벗어던질 수가 있었다. 투잡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얼마나 훑고 훑었나. 눈에 들어온 희망이 ‘대리기사’ 였다. 몇 개월을 용기를 못 내고 있다가 사부님 같은 여기사님을 만나 카카오앱 하나로 일을 시작했고, 법인 대리기사까지 오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나도 제법 법인 대리기사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그러나 남기사가 아닌 여기사는 이 바닥에선 죄인 아닌 죄인이다. -49세 여성 대리운전 노동자 D씨- 90년대 생인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많은 도시 중산층 가정은 ‘직장 다니는 아빠와 집안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에 이은 지속적 노동시장의 붕괴, 소득 양극화와 고용시장 이중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가장 한 명이 부양하는 가정’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가 되었습니다. 경력이 단절됐던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해 소득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 변화에도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그대로였고, 이중 부담에 노출된 여성노동자 상당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저임금의 파트타임 일자리뿐이었습니다. “이제 여자들이 거의 보면 어디에 얽매여 있다 보면 본인의 생활을 못 하잖아요. 집안일도 해야 하고 신경 쓸 것들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집안일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약간의 자유로움, 시간상 얽매이지 않는 그런 것 때문에 대리 쪽으로 많이 들어오지 않나 싶어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49세 여성 대리운전 노동자 D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도의 저출산 문제까지 심화되며 한국 사회는 이제 ‘소멸’을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구성원이 만족할만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어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사회 전체를 부양할 절대적인 노동력은 부족해지는 역설. 우리 사회는 이제 점차 늙어가고 줄어들어만 가는 노동력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12월 7일 간담회를 주재한 민주당 을지로위원장 박주민 의원은 “여성 대리기사들의 문제는 여성 노동력의 노동시장 편입이라는 큰 차원의 과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박주민 / 민주당 의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밝혔던 여러 가지 계획 중에 하나가 무상 돌봄 기간 연장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임금 상승,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노동력 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대책들이거든요. 이처럼 많은 선진 사회들이 여성 노동력이 노동시장으로 잘 편입되도록 만듦으로써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정말 급감하고 있는 우리 사회도 결국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건 무슨 여성 우대 이런 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구조가 그렇단 말이에요. 아직까지 보면 이제 그런 것에 대한 뒷받침이 덜 돼 있는데, 이번 국회에서 많이 미진했던 걸 교훈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자리해 온 노동시장의 성차별 구조아래, 플랫폼 노동과 같은 ‘긱 노동’이 만연하게 된 시대. 생활을 위해 체계적인 재교육이나 경력 설계 없이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내몰리기를 반복하는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의 고충은 비단 이들 특수 직역의 문제는 아닙니다. ‘성차별적 불안정 노동 시장’이 점점 커지는 상황 속, 노동력 자체도 고령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딜레마를 이들은 표상하고 있습니다. 답이 없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며 저는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꼈습니다. ‘어디서부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막막한 고민 끝에 던진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50대 여성 대리기사 C씨는 의외로 간단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운전 잘하고 무사고 경력 길면 여성이고 남성이고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기록에 다 나오잖아요. 그거에 따라 대우받고 정정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진짜 여기서 내가 운전 못하고 고객 응대 못하고 그러면 못 버텨요. 금방 이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버티고, 적성에 맞고, 운전 잘하고 이러시는 분들이 그냥 차별 없이 일하게 조금만 국가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여성이라고 뭘 잘해달라는 게 아니라요.” -50대 초반 여성 대리기사 C씨-
지난 4월, 몽골인 O씨는 정부의 미등록 체류자 단속에 적발돼 3살 아들과 함께 구금됐습니다. O씨는 출입국관리당국 조사에서 “지난 2020년 2월 임신 상태인 여자친구와 한국 여행을 왔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몽골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러던 중 아들이 예정일보다 빨리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소명했습니다. 코로나19로 출입국이 막힌 상태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했고, 청구받은 3000만 원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불법 노동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몽골인 O씨와 함께 그의 3살 아동이 열악한 환경의 시설에 구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는 토론문 <출입국관리법상 아동구금 절대금지 원칙 도입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몽골 아동 구금 사건의 경과와 대응의 기록, 남은 과제와 제언>에서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⓵ 친부 O는 위 아동 A를 임신한 아내와 함께 2020. 2. 한국에 입국 ⓶ 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이 어려운 상태에서 2020. 6. A를 미숙아로 출산. A는 뇌 등에 문제 있는 상태로 태어나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있었음 ⓷ 미숙아 출산, 중환자실 입원, 3천만 원의 치료비 청구로 위기에 직면한 O는 체류기간 도과 후에도 남은 치료비 570만 원을 갚고 A를 정기적으로 진료받게 하기 위해 미등록체류함. 산후우울증을 앓던 아내는 A, O를 떠남 ⓸ A를 홀로 키우던 O는 2023. 4. 2. 아이의 음식을 사기 위해 지인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차를 빌려 운전하고 가다 무면허운전으로 단속을 당함 ⓹ 위 지인이 A를 수원출입국에 인계, 해당 공무원은 O에게 아들 A와 함께 구금될 것에 동의하는 취지의 서면을 징구. O는 A를 돌볼 위탁기관이나 어머니(아내) 등을 찾아달라고 했으나 출입국은 그럴 수 없다며 서류에 사인하라고 함. ⓺ 아동 A는 3일간 친부 O와 지하에 있는 격리시설에 구금되었다가 보호시설로 이동. 법무부는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 O는 ‘지하실로 갔는데 창문이 없고 냉방도 안 되고 주차장이랑 연결되었는지 항상 자동차 냄새가 났다. 방은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만 있었다. 문 옆에 밥을 주고받는 식판 구멍이 있었고, 화장실은 안에 있었지만 화장실과 가림막이 없었다’고 진술. ⓻ O는 4. 5. 보호일시해제를 신청하였으나, 출입국은 4. 12. ‘A에게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고 기타 중대한 인도적 사유의 존재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호일시해제 신청을 불허함. ⓼ 지하실 격리, 보호시설 구금 등 달라진 환경과 음식, 분리되지 않은 화장실과 유아용 변기 부재 등으로 아동 A는 변비와 배앓이에 시달리고 감기 몸살로 외부 진료를 받음. O는 수갑, 포승 등 구속장치를 채운 모멸적 상태에서 사람들이 있는 소아과에서 A를 외진. 구금 17일 차가 되자 A는 아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나빠짐. ⓽ O는 4. 19. 아동 구금을 알리고 보호해제를 구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에 제출. 한편 아동 A는 5. 4.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예약된 상태였음. ⓾ O는 4. 20. 오전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설명을 듣고 짐도 챙기지 않고 나왔는데, 직원들이 방에 놓아뒀던 짐을 모두 차에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함. A, O는 공항에서 공무원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몽골행 비행기 승객들이 모두 탑승한 후 태워져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몽골 공항에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이야기를 들음. O는 사법적 구제방안을 찾을 겨를도 없이 퇴거당함. ‘구금 통제 없는 출입국관리법’, 헌법불합치 결론 나왔지만.. 인권법 전문가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사례에서 두 가지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우선 ▲만 3세도 되지 않은 어린 아동을 구금했다는 점, 그리고 ▲아동의 건강 문제로 보호일시해제를 신청했으나 출입국 관리 당국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후 이의 제기 절차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국내 거주 외국인의 구금 절차에 법률적 하자가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왔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까지 제기돼 지난 3월 ‘헌법 불합치’ 결론이 나온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4일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보호기간의 상한을 마련하지 아니한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수원지법·서울행정법원의 심판 요청 사건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이 조항이 “외국인의 출입국과 체류를 적절히 통제하고 조정해 국가의 안전과 질서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된다”면서도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피보호자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구금 기간의 상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헌재는 또 “기간 제한이 없는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행정의 편의성·획일성만을 강조한 것”이라며, “감독관 등을 통한 지속적인 관찰 같은 다양한 수단으로도 가능하다”고 판시했습니다. 헌재는 기간 상한이 없는 것에 더해, 출입국관리법상 ‘보호’가 사실상 체포·구속에 준하는데도 외부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법원이 수사기관의 체포·구속을 감독하는 것처럼, 외국인 보호 조치에도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해당 헌법 소송을 대리한 사단법인 두루의 이한재 변호사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 헌법 소송도 난민 신청을 했다가 구금된 17세 아동의 사례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한재 변호사- 사진 왼쪽 이한재 변호사 / 사단법인 두루 당시 17세 정도 되는 아동이 난민 신청을 했는데 단독으로 아동이 신청을 하니까 출입국 담당자는 “이게 미성년자 혼자 하는 게 아니니 부모님 모시고 와라” 이렇게 했는데 올 부모님이 없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단속이 됐던 상황입니다. 저희가 이 친구를 만났던 당시는 구금 2주 정도 됐을 시점이었는데, 어른들이랑 뒤섞인 상태에서 너무 열악하게 지내고 있어서 법원에 긴급하게 지금 일단 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법원의 결정으로 풀려났는데, 이게 법원에서 되게 빨리 해줬는데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이렇게 아무런 기간 제한 없이 사람의 인신이 구금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서두에 언급한 몽골 아동과 같은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때까지 시한을 정해 기존 법 효력을 존속시키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헌재가 정한 법 개정 시한은 2025년 5월 31일인데, 헌재 결정 이후 국회에서는 아직 개정법 통과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일 이상 수용 시 법원 통제” 개정 법안 발의 박주민 민주당 의원 - 사진 가운데 이런 상황 속, 출입국관리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이주민의 외국인보호소 수용기간을 100일 이내로 제한하고, 20일 이상 수용할 경우 관할 법원 판사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발의한 것입니다. 해당 법안은 외국인보호 시설에 수용된 이주민의 이의 제기 대상을 법무부장관에서 판사로 바꾸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국회에는 여러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해당 법안은 ▲수용 기간을 20일 이내로 대폭 축소했고, ▲법원이 출입국 당국의 인신 구금을 통제하도록 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구금 기간이 짧아, 구금 해제 뒤 치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안 그래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법원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법안 발의자인 박주민 의원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Q. 구금 기간을 120일로 한 다른 발의 법안들보다 구금 상한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기간이 있는데? A. 저희가 최근 사례들을 다 분석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통계적으로 구금된 외국인 중 한 99.6%정도가 100일 이내에 출국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100일 넘게 규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을 했고 또 해외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90일 정도의 상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해외 사례와 우리나라 현실 사례를 비교했을 때 100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Q. 인력난에 허덕이는 법원에 추가적인 부담을 줘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비판이 있는데? A. 인신 보호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데가 법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금된 외국인들이 이의신청을 해도 구금 주체인 행정부의 심사를 받게 돼 있어서 굉장히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요. 그래서 구금 20일 뒤에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법원이 이제 판단을 받게 하면 법원이 해야 될 일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 이런 말씀을 지금 하시는데, 안 그래도 지금 법원에서는 본인들이 이제 업무 증가 이런 것들을 대비해서 법관을 좀 늘리겠다고 지금 국회에다가 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좀 통과되면서 이 법이 통과되고 시행되고 이렇게 된다면 그렇게 큰 부담 없이도 이런 제도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입국관리법 위헌심판 소송 대리를 담당한 뒤 법안 마련에 관여한 이한재 변호사도 법안이 이상만 좇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한재 변호사 / 사단법인 두루 정확한 현장과 통계를 보면 일단 평균 구금 기간이 10일 정도고요. 그러니까 외국인보호소 자체가 원래 구금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출국하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다보니까 99.9%의 사람들은 한 3일 이상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장기 구금이 필요가 없고요. 그래서 통계상으로 보면 전체 사건의 한 99% 정도가 20일 안에 종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법원의 부담을 줄이고, 법원에서 빠르게 판단해서 풀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20일 제안을 만든 것이고 이게 통계상으로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시간입니다. 100일 상한에 대해서도, 통계를 보면 구금된 외국인의 99.994% 정도가 100일 안에 출국을 합니다. 그러니까 통계적으로 보면 그것을 꽉 채워서 나올 만한 사람은 전체의 0.005% 정도, 정말 1년에 몇 명 안 되는 숫자입니다. 그 정도 숫자를 우리가 감당 못할 정도의 출입국 관리력이냐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거든요. 우리 사회가 인정할 ‘누구든지’의 범위 헌법 제12조 6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출입국관리법의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헌법 제12조 6항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헌법 제12조 6항은 모든 형태의 공권력 행사 기관이 체포 또는 구속의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안에 대해 적용되고, 외국인에 대해서도 인정된다”며 “심판대상조항에 근거하여 보호된 외국인에 대해서는 보호 자체에 대한 적법 여부를 법원에 심사청구할 수 있는 기회가 최소한 1회 이상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법 제12조 6항의 ‘누구든지’의 범위는 단순히 내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해석입니다. 외국인 혐오가 날로 심해지고, 치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소수자나 외부인을 손쉽게 원인으로 낙인찍곤 하는 요즘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해석을 반영한 입법 시도는 여론의 환영을 받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회가 다양한 대체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적극적인 논의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를 방증합니다. 하지만 출입국 당국이 행사한 행정권 행사를 돌아보고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라는 헌재 결정과 이어지는 입법 노력은 ‘외국인만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가권력에게 한 차원 높은 ‘성찰성’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은 결국, 더 나은 국가권력을 향유할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성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국회에서 ‘사회연대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중년의 노조 관계자,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 30대 초반의 청년 활동가가 자리했습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사회·정치 세력이 추진하는 노동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현우|청년 유니온 사무처장 오늘 우리가 함께 제안하는 사회연대 입법안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이 사회연대 입법은 오히려 우리 헌법이 약속하고 있는 적정 임금 보장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입법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호되지 않는 비임금 근로자 일자리로 밀려나고 있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무법 상태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여야 하는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으며 휴식권도, 건강권도, 일하는 과정에서 성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른바 ‘비임금 노동자’가 800만 명에 달하고, 청년층이라는 30대 이하에서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매주 이슈를 바꿔가며 싸움을 벌이지만 미래 세대인 청년들의 문제가 싸움의 주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 관련 기사 보기) 청년 활동가는 이런 상황의 절박함에 다시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주변 청년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그는 “더 나빠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세우기 좋은 청년 정치가 아닌, 진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영영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더 스피커〉에서는 TV에 나오는 유명 청년 정치인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청년 문제를 풀기 위해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싣고자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청년’을 호명하지만 문제 해결은 제자리인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기성 정당 논리만 쫓는 청년 정치인, 실종된 청년 담론” 비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연대입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날, 대표적 청년 정치인 중 하나인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장을 찾았습니다. 이 대표 앞에서 눈물을 보인 그는 단식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대표님, 제가 회복식 만들어 드릴 테니까 단식 그만하시고 저랑 같이 싸워요, 이제 그만하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언론과 각종 매체는 이제는 ‘셀럽’이 된 이 청년 정치인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의 언행을 둘러싼 유력인들의 논평이 각종 매체와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유명 청년 정치인’의 언행은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단식’, ‘회복식’과 같은 단어들에서 청년의 문제를 떠올리긴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 정치인들의 언행이 이렇게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시민사회의 청년 활동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청년이 겪는 각종 사회문제를 지역 청년들의 협력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고자 출범한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의 이주형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주형|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지금 주요 정당들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나 정당의 청년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냥 기존의 어떤 관습을 되풀이하는, 나이만 젊은 당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들이 그런 활동을 함으로써 일반 청년 시민과 기성 정치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계속 보여지는 패턴들이 사람들을 너무 피로하게 만들고, 어떤 면에서 청년의 삶을 논의하는 담론을 후퇴시키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예술대학생 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청년 예술가들의 복지와 진로 개발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황유택 씨는 현실 정치의 문법이 있겠지만, 영입된 정치인들이 아직 청년이라면 조금 더 대안적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황유택|예술대학생 네트워크 활동가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치적인 전략이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뭐라고 해야 될까 저는 대안적 정치를 약간 기대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전에도 청년 정치인이 없었냐고 하면 그거는 아니죠. 다만 소수였을 뿐인데 이번에 굉장히 많은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나서 보면 이게 약간 비하일 수도 있고 말이 좀 조심스럽긴 한데, 사실 나름의 철학을 갖고 하시는 분들도 꽤 많지만 또 일부에서는 말씀처럼 되게 기성 정치권을 따라다니거나 하는 형태의 청년들에게 기회를 줬다고도 또 한편 생각을 하거든요. 청년 유니온 나현우 사무처장도 “청년이 하는 정치와 청년을 위한 정치는 다르다”며, “기성 정치인의 문법 속에 손쉽게 빨려 들어가는 청년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심지어 ‘청년은 정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디어 착즙, 줄 세우기... 청년 정치 자생력 황폐화” 총선이 다가오면서 거대 정당들은 다시 청년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40대는 민주당, 60대 이상은 국민의힘으로 지지층이 고착된 상황 속, 2030 세대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거란 계산이 서면서 기성 정치권은 물밑에서 분주한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패턴은 낯설지 않습니다. 0.73% 차이의 박빙 승부로 끝난 지난 대선에서도 양당은 청년표 호객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청년 활동가들은 대부분 이런 정치 행위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주형|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아이디어 착즙기처럼 앉혀놓고 뭐 좀 내놔보라고 하는 거죠. 근데 이게 장기적으로 뭔가 어떤 정당 차원에서 그것을 어떤 정치적으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인가라고 하면 약간 저는 다소 회의적인 거예요. 예를 들면 아이디어 콘테스트 같은 거 하면 그때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지만, ‘네가 원하는 거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인기 있는 거 말해봐’ 이런 식으로 정치가 청년에게 말하는 화법을 바꾸지 못하니까 저는 결과적으로 그런 행위들이 청년들에게 별로 신뢰를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정당 내에서 되게 좋은 역량을 가진 청년 활동가들이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정당들이 청년 정치인을 영입한 뒤 기성 정당의 논리와 구조에 맞춰 소비하게 되면서, 청년 정치인들이 선배 정치인들 흉내내기에만 급급하게 되고, 애초에 이야기하던 대안적 청년 의제는 망각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황유택|예술대학생 네트워크 활동가 몇몇 청년 정치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하던 말들이 그거였거든요. ‘이제 내가 청년 정치인이긴 하지만, 나의 생각은 청년을 넘어서는 게 목적이다’라는 말이었어요. 어느 당이든 청년 정치인이라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이더라고요. 저는 근데 그 말이 사실 좀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게 결국은 청년 정치인이 되었지만, 사회의 비주류인 청년의 삶에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어찌 보면 주된 주류적 정치를 지향하겠다는 말로 저는 느꼈거든요. 활동가들은 공통적으로 정당들이 띄우고 있는 청년 기구들과 접점을 갖기 어렵다고도 말했습니다. 기존 정당들이 선거에 맞춰 반짝 영입에는 치중하지만, 실제 청년들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이들을 대표할 정치인을 육성하는 데에는 소홀하다는 겁니다. 청년 정치 활동을 거쳐 현재 국회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30대 비서관 A 씨도 이러한 활동가들의 지적이 ”일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은 전무하고, 가끔 명사 초청 강의를 열어 주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강의 몇 번 듣는다고 정치인이 만들어지지 않고 기초적인 교육과 함께 청년 정치인들이 함께 정치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중앙당 차원의 청년 정치인 육성 프로그램 마련과 함께, 이들이 실제 정치 무대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방 정치에서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청년 정치인들이 자생적으로 커 나가기 어렵고, 지금 당장 선거 때 청년팔이를 멈출 수 없다면 '청년할당' 방식을 조금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며, ”지금 같이 소위 ‘듣보잡’ 청년 정치인들 중에 한두 명을 선발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를 할당하는 방식 대신, 지방의원 재선 이상인 청년 정치인들끼리 경쟁을 붙여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을 할당하는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권 따라 춤추는 시민단체 지원금... 청년 자치 붕괴로 이어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년 정책의 지향점이 180도 달라지면서, 지원이 끊기는 문제도 지적됐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전 정부의 청년 정책은 ‘적폐’로 몰리면서, 청년 자치의 생태계가 5년마다 송두리째 갈아 엎힌다는 지적입니다. 이주형|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애초에 청년단체는 지원금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번에 정부가 바뀌면서 전반적으로 시민단체 지원금 자체가 삭감되면서 그냥 시민사회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이런 어떤 공익적 활동에 대한 자원 자체가 축소되는 측면이 있는 거죠. 원래부터 받는 게 없었던 청년들은 안 그래도 자원 경쟁에서 이제 더 밀려나게 되는 거고요. 최근 정부가 시민단체들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겠다며 추진하는 지원 삭감 등이 자치 실험을 벌이고 있는 청년 단체들에게는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 해도, 이를 저질러 온 건 기성세대의 시민단체들일 텐데 청년 단체들까지 송두리째 타깃이 되는 건 부당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황유택|예술대학생네트워크 활동가 사실은 지원금을 받으려고 했지만 받지 못한 시기는 딱 이번 시기인데, 이게 저희의 역량 부족인지, 아니면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활동을 하니까 진짜 찍혀가지고 못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활동가들 입장에서는 그런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거고요. 청년 자치의 붕괴는 비단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서서히 잉태 돼왔던 것이란 의견도 있었습니다. 청년유니온 나현우 사무처장은 “민주당 계열의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청년들에게 직접 행정에 참여할 기회를 줬던 것은 분명 의미가 있었지만, 활동가들이 이 과정에서 관(官)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서 오히려 시민사회 영역의 자원이 소진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참여와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만, 긴 시계열로 육성의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14일, 부산에서는 대대적인 ‘청년의 날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행사를 직접 찾아 "청년들이야말로 국정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이 청년 정책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또 "모든 위원회에 청년위원을 위촉해 청년들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며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청년보좌역과 2030 자문단을 24개 부처로 확대하고, 정부 부처 인턴을 2천 명에서 5천 명으로 확대해 보다 많은 청년에게 정부 근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청년 의제를 직접 챙기고, 행사에도 참석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역대 모든 대통령도 ‘청년’을 강조했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합니다. 매 정부마다 청년에게 기회를 넓히고, 이런저런 자리에 청년 몫의 인물들을 기용했지만, 우리 사회는 결국 청년의 삶의 문제가 정치에 반영되는 생태계를 수십 년째 구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A 씨는 다소 신랄한 어조로 현실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30대 국회 보좌진 A 씨 선거 때만 청년을 끌어올려 전면에 배치하는 '청년팔이 정치', 청년으로 늙은 기성정치의 주름을 가리는 '비비크림 정치', 청년할당으로 인해 청년이 자립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은혜만 바라보게 되는 '시혜주의 정치'. 이 세 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청년정치의 담론은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랄한 비판과 아쉬운 지적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권 각 분야에 자리한 기성세대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귀찮은 모기 소리로 치부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출산율 0.7, 청년이 절멸해 가는 대한민국의 진짜 청년 정치는 영영 볼 수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디자인 : 김정연
폭염 상황 속 부실 운영이 이어진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서 영국, 미국 등 주요국 스카우트가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파행을 빚자 정부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8월 5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긴급하게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대통령은 관광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냉방버스를 내려 보내라는 지시사항을 직접 하달했습니다. 170여 개국, 5만여 명이 참석하는 새만금 세계 잼버리 야영대회가 국가 차원의 국제 행사이니만큼, 긴급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국가가 나서는 일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국가 권력이 급하게 필요할 때, ‘어떤 방식’과 ‘어떤 태도’로 사회의 자원을 동원했는지에 있습니다. “코리아 잼버리, 금반지 정신”... “금이야 옥이야 자라 야영 경험 부족” 정부의 행정을 정치 영역에서 뒷받침하는 여당의 수뇌부가 월요일이 되자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현재 상황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설명한 뒤, 사회적 자원을 빌려달라는 ‘설득’의 언어라기보다는, 국가주의에 기댄 엉성한 프로파간다에 가까웠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만금 잼버리에서 이제 '코리아 잼버리'로 나아가고 있다”며 독려한 데 이어,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위기의 나라를 살렸던 (1997년 IMF 사태 때) 금반지 정신으로 돌아가면 못 해낼 게 없다”고 거들었습니다. 물론 국제 행사라고는 하지만, 스카우트 야영 행사의 파행 위기가 왜 전 국가적 국난인 IMF에 견주어져야 하는지, 또 실직과 생활고의 고통 속에서도 금반지를 내놓았던 공동체 의식이 왜 이번에 발현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논리는 없었습니다. 시민사회와 민간 영역에 급작스럽게 손을 벌리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진정성 있게 인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정치세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무능 탓이라며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국회와 지방의회 지역구 상당수가 자당 소속인 전라북도 차원에서는 정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전북도의회의 민주당 염영선 의원이 SNS에 단 댓글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도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 개인당 150만 원의 참가비를 내고 머나먼 이국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가며 고생을 사서 하려는 고난 극복의 체험”이라는 댓글을 달면서, “문제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 데다 야영 경험이 부족하다. 참가비마저 무료이니 잼버리의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몰라 불평·불만이 많다”는 말까지 덧붙인 겁니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초유의 폭염 탓이라고는 하지만 어떻든 현 정부여당이 이번 잼버리 준비에 좀 더 철저하지 못했던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짧은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영상까지 찍어서 홍보에 열중했으며 관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준비종합계획 수립 등 용역이 이뤄진 것도 문재인 정권에서 주도했던 일임을 민주당 자신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예산을 사용했던 국회 스카우트연맹 회장도 바로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다”라는 등 책임 돌리기에 열중했습니다. 채 상병 숨진 지 얼마 안 됐지만... 당연하듯 폭염에 군·공무원 투입 지시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업에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투입됐다가 해병대 소속 채 모 상병이 숨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안전 대책 마련도 없이 사람이 실려 나간다는 폭염에 군과 공무원 인력 투입을 지시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폭염으로 인해 행사 곳곳에 차질이 빚어지던 지난 3일, 한 총리는 “그늘막과 샤워시설 같은 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공병대 투입, 응급 의료 상황에 대응할 군의관을 배치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습니다. 사병 투입은 최소화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지만, 군 투입을 지시하면서도 징병된 대한민국의 청년들에 대한 안전 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군인뿐 아니라 지역 소방대원과 공무원들까지 현장에 긴급 배치됐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시설 열악 지적이 나온 잼버리 현장 화장실 청소 업무가 맡겨졌는데, 하달된 매뉴얼엔 ‘변기 뚜껑을 열어 배설물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국 공무원 노동조합은 ‘직원 휴게공간 없음(알아서 그늘 찾아 쉬어야 함)’, ‘사전 협의된 업무와 다른 일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지시’, ‘웰컴센터에서 업무현장까지 도보 이동(본인차량 이동 금지, 도보로 40분 걸린 직원도 있었음), ‘조직위 관리자 간 업무분장으로 자주 다투거나 혼선 발생’, ‘원활한 식사 불가’ 등을 문제점으로 제시했습니다. 군과 소방 인력은 본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물론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는 다른 업무에 투입될 수 있지만, 본연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벌어진 일에 마구잡이로 값싼 공공 인력을 투입하는 일은 ‘채 상병 사건’ 이후에도 성찰 없이 반복된 것입니다. 우리의 권력은 어떻게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는가 정부는 남은 잼버리 행사를 최대한 성황리에 치러내 책임론을 돌파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잼버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케이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 참여 가수를 긴급 보강하는 한편, 민간 기업들에게도 잼버리 지원을 독려했습니다. 삼성그룹은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연수원 3곳을 제공했고, SK그룹은 인천 영종도 SK무의연수원, 경기도 안성 SK브로드밴드 인재개발원 등 연수원 2곳을 숙소로 제공했습니다. LG그룹도 경기 평택 LG전자 LG디지털파크 내 연수시설에 잼버리 참가자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국가 행사에 발생한 위기를 민·관이 합심해 돌파해 내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하지만 외형과 달리 동원된 민·관의 구성원들은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사고는 정부에서 치고 똥은 공공기관 동원해서 치운다’, ‘강제동원해 놓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란다’는 등의 글들이 폭주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잼버리라고 하는 세계적인 행사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고자 했으나, 다양한 주체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든가, 불합리한 방식으로 동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본래 취지가 훼손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리아 잼버리’, ‘금반지 정신’ 과 같은 표어를 내걸고 위기를 합심해 돌파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 보려는 정치적 기획이 별다른 고민 없이 수십 년 전 방식을 답습하는 데 머물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준비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수습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 됐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더십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국민적 수용과 공감인데, 그것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가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고,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반복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나 지역사회나 국가가 위기 상황에 접하면 일단 지도자가 솔직한 사과를 한 뒤, 이를 기반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한데, 여전히 위에서 ‘금반지 정신’ 등을 제시하며 지시를 하달하는 방식이 올드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정권을 넘어, 우리의 ‘정부’가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보인 리더십의 미숙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디자인 : 방명환
지난주 나흘 동안 국회 전원위원회가 진행됐습니다. 국회의원 모두가 논의에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는 2003년 '이라크전 파병' 이후 20년 만입니다. 이번 전원위원회에서는 다음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지난 총선,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득표율 차이는 12%p입니다. 상식적으로 의석수도 비슷하게 나와야겠지요. 하지만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103석, 국민의힘은 17석을 가져가 의석 수에선 6배 가까운 차이가 났습니다. 비수도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은 대구 경북에서 27%를 득표했지만 1석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유권자 표의 절반 가까이가 사표가 되는 상황 속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이 신현성 전 테라폼랩스 공동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3월 27일, SBS는 신 전 대표의 1년 전 인터뷰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테라·루나 폭락사태 3주 전, 신 전 대표가 한 유튜브 채널과 진행한 영상인데, 신 전 대표는 폭락 사태 이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신 전 대표는 해당 동영상에서 자신의 사업인 ‘차이 페이’가 테라·루나 블록체인과 연동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차이 페이’의 유망성은 물론, 테라·루나 시스템의 신뢰성을 줄 수 있는 발언입니다. 또 신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테라·루나 블록체인 시스템은 물론 권도형 대표에 대한 강한 믿음과 신뢰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왜 중요한데? 검찰은 ‘차이 페이’가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신 전 대표가 거짓 홍보를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또 신 전 대표가 테라·루나의 폭락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숨겼고, 보유하던 코인을 고점에 팔아 1천400억 원대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신 전 대표는 SBS에 보낸 입장문에서 ▲차이 결제와 테라 블록체인은 직접은 아니지만, ‘미러링’이라는 핀테크 기법을 통해 분명히 연동되어 있었고, ▲본인이 2020년 권도형과 결별하기 전까지는 테라·루나 알고리즘은 정상 작동하고 있었으며, ▲해당 인터뷰는 지인의 수차례 부탁으로 거절 끝에 이뤄진 것이며, 본인이 권도형과 결별한 이후의 ‘테라·루나’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 검색 등을 토대로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제적 이슈가 됐던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이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 SBS가 입수해 보도한 동영상은 ‘테라·루나’ 비즈니스의 핵심 인물이 폭락 직전까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잘 보여줍니다.